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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정리
2023.8.30
6월 11일 손목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가니 6주간 치료를 받고
이후 12주간은 재활훈련을 해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앞이 캄캄했다. 한참 농사일이 바쁜 시절인데...
자신의 실수를 후회해 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그나마 왼손을 다쳐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치료기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오른손으로 글씨는 쓸 수 있어
성경 필사를 열심히 해 신약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앨범을 정리해 컴퓨터에 저장하면서
당시를 회상하며 해외여행을 하기로 했다.
앨범은 커서 책장에 꽃을 수가 없어 보관하기도 힘들고
들쳐 볼 시간도 없기에 앨범 처분에 대해 골치거리였다.
2가지 목표를 세우고 나니 다친 것이 오히려 은총으로 여겨졌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글쓰고 사진찍고 작성하고,
틈틈히 재활 운동도 하면서 나름 보람있게 보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8.21)로서 10주가 지났다.
신약성경도 85% 정도 써서 9월 안에 완필할 예정이며
앨범정리도 거의 끝나가기에
직장시절 출장, 시찰, 어학연수 등으로 다녀온 여행사진을
조금씩 차례로 포스팅하면서 남은 재활기간
다시 여행하는 즐거움에 젖어 볼 생각이다.
일본출장(86년)
부산지점 근무할 때 생애 처음 나간 해외출장이다.
주로 기린맥주 회사, 맥주집 등을 방문하고
나머지 일정은 관광이다.
출국 전 지점장님이 거마비하라고 용돈도 주셨다.
당시 출장 다녀온 직원들은 통상적으로 동료들 선물을 사다 주었다.
출장 첫날부터 지점장과 직원들 선물 걱정한 것이 생각난다.
직원용 30여개,그리고 가족과 친지 선물을 샀던 것 같다.
앨범을 봐도 몇 군데(나라,교토,토쿄) 외엔 잘 생각 나지 않는다.
당시 4살 이었던 딸 선물로 검은색 오랑우탕을 사 주었는데 무척 좋아했다.
누르면 웩 웩 소리를 내었다.
이후 출장 때마다 인형은 필수품목이었다.
3살인 손녀는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열만 하고 있다.
좀더 크면 좋아하려나?
아내 선물은 간단했다.
필수품목은 장미향이 나는 마담로샤스 향수였다.
취급하지 않는 면세점도 있어서 찾으러 다닌 적도 있었다.
그래도 선물 품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나라 奈良
나라시(일본어: 奈良市, ならし)는 일본 긴키 지방 나라현 북쪽에 있는 시다.
나라시는 현청 소재지다. 그리고 나라시는 8세기에 헤이조쿄(平城京)가 자리 잡았던 고도다.
나라시는 나라 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인 동시에
고도 나라의 문화재로써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도시이고,
나라시 연간 관광객은 약 1,300만명이다.
또한 오사카의 위성 도시이기도 하고, 시 서부 지역에 주택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도다이지 東大寺
도다이지(東大寺)는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 위치한 불교 사원 단지이다.
이 절의 대불전(大佛殿)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로
그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청동 대불이 있다.
이 절은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이기도 하며, 고도 나라의 문화재로서
나라 시의 절, 신사 포함한등을 7개의 다른 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도다이지에서 제시한 대불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키 : 14.98m
얼굴 : 5.33m
눈 : 1.02m
코 : 0.5m
귀 : 2.54m
대불의 어깨 길이는 약 28m이고, 머리에는 총 960개에 달하는 꼬인 모양의 머리카락 돌기들이 있다.
뒤에 있는 광배의 지름은 27m이고, 그 옆에 위치한 16개의 각기 다른 광배는 각각 2.4m이다.
최근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대불상의 무릎 부분에서 사람 이빨, 진주, 거울, 칼, 보석들이 감지되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쇼무 천황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대불의 무게는 약 500t이다.
대불전 내의 대불 맞은 편의 뒤편 기둥에는
대불의 콧구멍과 같은 크기라 알려진 구멍이 있다.
통과할 수 있으면 무병 식재 등 액막이가 된다고 전해진다.
구멍 크기는 높이 약 37cm, 폭 약 30cm, 안 길이 약 110cm로,
원형이나 타원형이 아닌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다.
호류지(法隆寺, ほうりゅうじ, 법륭사)
나라현 이코마군 이카루가정에 있는 성덕종의 총본산이다.
이카루가데라(斑鳩寺, いかるがでら)라고도 한다.
쇼토쿠 태자가 세운 사원으로, 창건시기는 역시 쇼토쿠 태자가 세운 사원인
오사카의 시텐노지가 세워진 지 약 20년 뒤인 607년이라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금당, 5중탑 등이 있는 서원(西院)과 몽전 등이 있는 동원(東院)으로 나뉘어 있다.
호류지의 서원가람(西院伽藍)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들 중 하나이다.
호류지의 건축물은 호키지와 함께 1993년에 "호류지 지역의 불교건축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현재 호류지의 건축 특성은 한국의 삼국시대, 그 중 특히 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호류지 금당의 내부 벽에 그려진 벽화는 고구려 출신 화가로
610년 일본에 건너가 채색과 종이, 먹, 연자방아 등의 제작법을 전수한
담징(曇徵, 579〜631)이 그렸다고 전해온다.
법륭사 제6호벽 「아미타정토도(阿彌陀淨土圖)」, 가로 262cm. 세로 308.6cm.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보이는 중앙아시아적인 채색법이나 철선묘(鐵線描)를 위주로 한 묘법(描法)
그리고 이른바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사방불(四方佛) 사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법륭사 금당벽화를 일본 학계에서 담징과의 관련성을 애써 부인하더라도,
담징 이후의 고구려계 화사(畫師)들이 벽화 제작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일본에서 그는 일본 승 법정(法定)과 함께
나라(奈良)에 있는 법륭사(호류사, 法隆寺)에 기거하면서,
오경(五經)과 불법(佛法) 등을 강론하고 금당(金堂)의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석가‧아미타‧미륵‧약사 등으로 구성된 사불정토도(四佛淨土圖)인 이 금당벽화는
1949년 1월 수리 중에 화재를 당하여 소실되었고, 현재는 모사화(模寫畫)가 일부 남아 있다.
고후쿠지
고후쿠지(興福寺, 흥복사)는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 있는 불교 사원이다.
고후쿠지의 기원은 669년에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가
그의 아내 가가미노 오키미(鏡大君)의 병환의 회복을 기원하며 절을 세운데서 비롯된다.
원래 부지는 야마시로국 야마시나(오늘날의 교토시)였다.
672년에 절은 일본 최초의 계획적으로 건설된 수도인 후지와라쿄로 이전하였다가
710년에 새롭게 건설된 수도인 헤이조쿄(오늘날의 나라시)의 동쪽의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고후쿠지는 나라 시의 가스가타이샤를 포함한 몇몇 사원들, 헤이조 궁 유적, 기타 장소들을 포함해
고도 나라의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어있다.
교토(일본어: 京都)
일본의 역사적인 도시다.
미야코(일본어: 都), 교(일본어: 京)라고도 불렸다.
794년 일본의 수도로 세운 헤이안쿄(平安京)에 해당하며
오랫동안 일본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역사적으로 천자가 거주하는 수도를 의미하는
보통 명사로 경(京), 경사(京師)를 많이 사용했다.
예로부터 교토는 중국 고대 왕조 수도였던 낙양(洛陽)에 빗대어
교라쿠(京洛), 라쿠추(洛中), 라쿠요(洛陽)라고 하였다.
헤이안쿄를 동서로 나누어 서측 우경(右京)을 장안(長安),
동측 좌경(左京)을 낙양이라고 불렀다.
우경인 장안은 습지대가 많아서 시가지를 좌경인 낙양에 형성했기 때문에
교토를 낙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교토에 가는 것을 상경(上京, 현재는 도쿄를 지칭), 상락(上洛)이라고 말하였다.
오늘날에도 라쿠난(洛南)·라쿠호쿠(洛北)·라쿠사이(洛西)·
라쿠토(洛東)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도쿄를 포함하여 교토 이외 지방에서 교토로 가는 것을
상락(上洛), 입락(入洛)이라고 표현한다.
기요미즈데라 (清水寺)
기요미즈데라(일본어: 清水寺, きよみずでら)는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사원이다.
정식 이름으로 오토와산키요미즈데라(音羽山清水寺)로도 불린다.
본존은 천수관음, 개기(창립자)는 엔친이다.
관세음보살을 안치한 33곳 중 관음영지의 16번째 영지이다.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이다.
기요미즈데라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설립되었다.
기요미즈데라는 778년에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다.
당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는
현재 기요미즈데라가 있는 언덕의 아랫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막 출산한 아내의 산후조리를 위하여 사슴을 잡으러 나갔다고 한다.
사슴을 잡은 후 귀가하던 도중, 엔친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님이
폭포 아래에서 독경을 하는 것을 보고
살생한 것을 참회하는 뜻으로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아내의 건강이 좋아지자 부부는 절에 관세음보살 상을 만들어 바쳤고,
이 보살상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어
현재의 기요미즈데라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 기요미즈데라의 본당
일본의 국보로,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기부금을 통해 재건됐다.
"시미즈의 무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붕은 요세무네즈쿠리(寄棟造)이며, 외부는 유약칠이 되어 있으며,
본당의 날개는 정면(남쪽면)의 양 옆으로 돌출되어 있다.
요세무네즈쿠리는 우진각 형식의 지붕 형태이며,
지붕 위에는 노송나무 껍질을 얇게 발라 만들어진 것이다.
본당의 전반부는 산비탈에 지어졌으며,
139개의 느티나무 기둥이 무대를 지탱하고 있다.
본당 건물에는 못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채로 건립되었다.
로쿠온지 (鹿苑寺)
로쿠온지(일본어: 鹿苑寺)는 일본 교토부 교토시 기타구에 있는
일본 선불교 사찰에 있는 정자로 비공식적인 명칭으로는
킨카쿠지(일본어: 金閣寺)가 있는데, 이 이름으로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킨카쿠지'라는 이름에서 '킨카쿠'는 정자 전체를 두텁게 덮고 있는
황금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금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생각, 감정들을 없애준다고 믿어졌으며,
사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사원에 칠해졌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쿠온지는 본디 사이온지 긴쓰네의 별장으로 키타야마다이(北山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1397년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은퇴 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의 정자를 짓고 관련 시설들을 만들었다.
이후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죽자,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 건물을 린자이 학파의 선불교 사찰로 그 용도를 바꾸었다.
로쿠온지는 1950년 7월 2일, 새벽 2시 30분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22살의 젊은 승려 하야시 요켄에 의해 화재에 휩싸였다.
이후 그는 사원 뒤쪽에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죽지 못했고
사람들에 의해 체포되어 곧바로 수감되었다.
하야시 요켄은 약 7년 동안의 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이유로 1955년 5월 가석방되었다.
이 화재로 인해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상이 손실되었으나,
현재 복원되어 다시 안치되어 있다.
이 방화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1956년 미시마 유키오가 소설 <킨카쿠지>를 발표하였다.
지쇼지(慈照寺)
지쇼지(일본어: 慈照寺)는 일본 교토부 교토시 사쿄구에 위치한 선불교 사찰이다.
비공식적인 명칭은 긴카쿠지(일본어: 銀閣寺)인데,
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무로마치 시대의 히가시야마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일본의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1460년 무렵에
은퇴 후에 살 저택과 정원, 즉 지쇼지를 처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에는, 이 저택과 정원을 선종 사찰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었고,
이로 인해 지쇼지는 사찰의 소유로 바뀌게 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은각사에는 '은'이 없다. 유래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재밌다.
관음전은 1482년 2월 21일에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은각사를 건축한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세운
킨카쿠지(금각사)의 화려한 건축물을 닮은 건축물을 짓고 싶었다.
외관을 은으로 씌울 계획을 세웠지만, 건물 전체를 씌울 만큼의 은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교토에는 오닌의 난이 일어나 물자 조달이 어려워지고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건축물에 옻칠만 칠한 채 사망했다고 한다.
건축물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하여 그가 원했던
할아버지만큼 화려한 건축물을 짓지 못했지만,
일본 특유의 운치가 은각사 곳곳에 남아있다.
료안지 (龍安寺)
료안지(龍安寺)는 일본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에 있는 선종 사원이다.
돌로 꾸민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선종 분파인 임제종(臨濟宗)의 묘심사(妙心寺)파에 속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고도 교토의 문화재 가운데 하나다.
료안지는 가레산스이로 불리는 돌과 모래로 꾸민 정원으로 유명하다.
정원은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정원은 248m2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가로 약 25m, 세로 약 10m이다.
정원은 흰 자갈과 15개 이끼가 낀 돌로 이루어져 있고
돌을 놓아둔 위치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한 번에 14개 밖에 볼 수 없다.
전통적으로 깨달음을 통해서만 15개 돌을 한 번에 볼 수 있다고 여겼다.
쓰쿠바이(蹲踞,蹲)
절의 흥미로운 볼거리 중 하나는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이나 입을 맑게 하기 위해 세숫물을 담아둔 돌 그릇인 쓰쿠바이이다.
웅덩이의 낮은 위치 때문에 물에 닿기 위해서는
허리를 구부려야 하고 이는 기원과 경의를 뜻한다.
돌 표면의 글자들(五・隹・矢・疋) 만을 읽었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각각의 글자를 읽으려면 그릇 중앙의 "口(구)"자를 결합시켜야 하고
"口"를 합쳐서 각각 吾, 唯, 知, 足이다.
직역은 "나는 오직 족(足)함을 알 뿐이다"이다.
새겨진 이 구절의 의미는 불교의 기초적인 반물질주의적 가르침을 보강하는 것이다.
도쿄, 동경(東京とうきょう, Tokyo)
메이지 시대 이후 사실상 일본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도쿄도에 속하지만, 도쿄도는
다마 지역이나 이즈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의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어서
도시라는 뜻의 "도쿄"와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도쿄에는 일본 각 정부 부처, 천황이 기거하는 고쿄 등이 있다.
도쿄는 세계에서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이다.
또한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도쿄에 본사 또는 지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의 게임산업,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 영상, 디지털, 첨단산업 등의 중심지이다.
도쿄는 세계 최대의 지하철 교통망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광역권을 구성한다.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경제 수도로 불린다.
황거(皇居)
황거(일본어: 皇居 코쿄)란, 일본 천황의 평소 주거지, 즉 황궁으로 관광지다.
고쿄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불린 명칭이다.
현재 옛 에도 성일대를 황거(皇居)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황거는 황제가 거주하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이 황거라는 말을 일본에서는 고쿄라고 한다.
영어명은〈The Imperial Palace〉이다.
고쿄의 천황이 주거하는 곳을 어소(御所)라고 하며,
각종 공식행사와 정무를 보는 궁전과 궁내청사 등도 고쿄에 있다.
도쿄 디즈니랜드
도쿄 디즈니랜드(영어: Tokyo Disneyland, 일본어: 東京ディズニーランド)는
일본 도쿄 근교의 지바현 우라야스시에 위치한 46만 5천 제곱미터 규모의 테마 파크이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건설된 첫 디즈니랜드로, 1983년 4월 15일 개장하였다.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이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와
플로리다의 매직 킹덤과 같은 양식으로 건설한 공원이다.
주식회사 오리엔탈 랜드가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부터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있다.
공동 운영하는 도쿄 디즈니씨와 함께 유일하게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소유하지 않는 디즈니 공원이다.
도쿄 디즈니 랜드에는 각기 다른 테마로 나뉜 구역이 일곱 개 있고
그것들을 「테마랜드」라고 부른다.
각 테마랜드에 배치되는 어트랙션이나 물건 파는 상점, 음식점 및 장식류는
각 테마에 맞춰서 이미지가 통일되게 도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