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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36-50 성도와 아닌자의 다른 모습 2019년 1월 27일 주일오전예배
(서론)
1. 오늘 본문의 내용은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집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계시는데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계심을 알고 귀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오지도 못하고 예수님 뒤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향유를 붓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이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이 분이 진정 선지자라면 이 여인이 어떤 죄인인지 알 것이기에 내 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채업자에게 두 사람이 돈을 빌려 갔는데 한 사람은 500데나리온이며 또 한 사람은 50데나리온이다. 그런데 둘 다 갚을 길이 없게 되자 사채업자가 다 탕감해 주었다. 누가 더 감사하겠느냐?” 그러자 시몬은 자기 생각에는 많이 탕감을 받은 자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판단이 옳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너는 내가 너의 집에 들어올 때 발 씻을 물로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라고 하신 후에 그 여인을 바라보시면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포하시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도 사하시는가?”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생각들을 다 아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하십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올바로 모르는 사람의 모습과 예수님을 알고 죄를 회개함으로 용서받는 성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들의 모습들이 이 시몬 같은 모습인지, 이 여인같은 성도의 모습인지를 잘 판단하고 올바른 결단이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인 성도와 성도가 아닌 사람의 모습을 다섯가지로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본론)
1. 예수님을 아는 면이 다릅니다.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 하는 면이 다릅니다.
1) 하나님에 대해 특별한 열심을 가졌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바리새인인 시몬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알고 있는가요? 39절에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한 랍비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함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려한 사람입니다.
2) 반면에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었을까요? 이 여인의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38절입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님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왔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3) 여기 시몬은 현실적으로는 잘 나가는 사람이었으나 영적으로는 무지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교만한 죄인의 대표입니다. 반면에 이 여인은 현실적으로 천한 신분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성도를 대표합니다. 당시의 잔치 집에는 초대 받지 못한 거지들이 부스러기 음식을 거두어 먹었습니다. 이 여인은 그들 틈에 섞여 있었던 천한 신분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과거의 죄로 말미암아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해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까지도 용서하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살아 있었던 겁니다.
4)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에 따라 이 땅의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인생의 결과가 너무나 놀랍게 달라집니다.
2.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달음이 다릅니다.
1) 47절에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진리는 이 바리새인도 알고 있었습니다. 빚진 두 사람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 이 사람이 옳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모른다는 겁니다. 아마 이 사람은 자신이 받은 사랑은 500데나리온이 아닌 50데나리온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데나리온은 성인 남자 하루 품삯입니다. 적은 돈이 아닙니다.
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요? 특별은총이 아닌 일반은총만으로도 계산 할 수 없습니다. 매일 없으면 살 수 없는 공기, 빛, 비, 바람, 자연 등등 이런 것들은 계산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돈으로 얼마를 처야 할까요?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돈으로 얼마를 계산해야 할까요? 주님의 목숨 값을 얼마로 계산해야 할까요?
나) 시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계시는 사랑은 누구나 계산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시몬은 깨달음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산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시몬은 깨달음이 없기에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도 정성을 다하지도 기본적인 예의도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라고 지적하십니다. 당시의 관습은 손님이 오면 종을 시켜 손을 씻고 발을 씻겨 드리거나 최소한 씻을 준비를 해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아무것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2) 감기로 며칠 고생하다가 치료된 분과 맹장 수술을 하여 건강을 회복한 분과 암으로 수술 받고 항암치료 받으면서 건강이 회복된 분과 누가 더 기뻐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까요? 답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내가 받은 사랑이 물질의 복을 받았다는 정도로 깨달은 분과 병 고침 받았다는 정도의 깨달은 분과 지옥 불구덩에서 건짐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분중 누가 더 감격하며 하나님을 더 사랑할까요?
3) 우리 모두가 깨달음이 다릅니다. 믿음이 다릅니다. 행동이 다릅니다. 결과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주님의 은혜를 깨닫는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이 다릅니다.
1) 시몬은 예수님을 선지자로도 여기지 안했기에 예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도 못했으면서도 예수님을 적대하는 대부분의 바리새인들과 다르게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까지 해 놓고도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본 보기입니다.
2) 반면에 이 여인의 믿음은 47절에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50절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로 믿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이번 기회에 용서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향유를 붓기까지 했습니다.(37-39) 예수님을 사모하다가 마침내 인격적으로 만난 자입니다. 반드시 본 받아야 하고 우리도 이런 믿음이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가)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예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고 기적의 복을 받는 믿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하인의 병을 고치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의 믿음이 이 땅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만한 사람이 없다고 칭찬 받았습니다. 오늘 이 여인의 믿음이 칭찬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렇게 칭찬 받는 믿음이 되도록 도전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헌신이 다릅니다.
1) 시몬은 식사로 대접하기는 했지만 믿음이 아닌 자기 의로움과 그에 따르는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는 헌신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헌신이 없는 형식적인 헌신이었습니다.
2) 그러나 이 여인의 헌신은 오가가는 모든 세대의 경건한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는 헌신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까지도 아낌없이 번제로 드렸던 것처럼 모든 것을 아끼없이 그러나 기쁨으로 희생하는 헌신이었습니다. 자기 생애에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깨뜨려 드린 헌신자입니다. 당시의 향유는 아주 비싼 화장품이었으며 돈 많은 로마의 귀부인들이 사용했던 것들이며 구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귀한 재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향유를 이 여인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님을 사모하며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향유는 아주 귀하고 비싼 손잡이가 없는 둥근 옥합에 보관했는데 이 향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옥합의 목 부분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향유를 부어 드림으로 비싸고 귀한 옥합을 깨뜨리게 되고 구하기도 힘든 향유를 소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아낌없이 깨뜨리고 부어 드렸습니다. 왜 입니까?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평생 한 번 보는 것만도 행운이라고 하는 재산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자기 의로움을 위한 믿음이나 자기를 인정받기 위한 헌신이 아니라 나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한 믿음의 헌신이 있다면 구원 받으신 겁니다. 그러므로 헌금이나 섬기는 사역이나 봉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감격으로 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헌신과 헌금이 복이 되는 겁니다.
5. 결과가 다릅니다.
1) 시몬은 물질로 대접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형식적인 헌신자의 모습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모습입니다.
2) 그러나 이 여인은 모든 죄를 영원히 완전히 용서 받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의 복을 받았습니다.(48-50절)
6.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어야 합니까!
1)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여인의 신분을 알고 계시며, 시몬의 마음속의 생각들, 함께 있는 자들의 마음의 생각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2)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가)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나) 무한히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48절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씀은 앞으로의 죄까지도 영원히 다 용서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다) 완전한 사랑을 주십니다. 누구라도 사랑해 주십니다.
(결론)
1. 참된 믿음은 자신이 죄인임과 예수님을 올바로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만큼 그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죄 용서받음과 평안과 참된 안식과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입니다.
2. 불치의 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서울대 박 모 교수는 미국의 큰 병원에서 치료받고 6개월 만에 완치했다고 합니다. 박 교수는 병원 입원비, 수술비, 약값 등 엄청난 비용을 이마 한번 찡그리지 않고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자신을 수술해준 의사에게 사례를 했고, 간호사들과 간병인 에게도 정성껏 사례를 했습니다. 그는 병상일기에는 병을 치료해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아무리 큰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다 새롭고 가진 것을 주고 싶은 흥분과 감격으로 귀가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그는 크게 깨닫게 됩니다. 육신의 병 치료 받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감사하고 사례까지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에 대해서는 한게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오늘날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께는 향유 한 방울도 부어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개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3. 영국의 한 여인이 종신형을 받고 남은 생애를 감옥에서 보내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주께서 나로 하여금 하늘을 날지 못하게 하시었네. 나는 이 좁은 새 장의 한 마리 새, 주님이 나를 가두셨네. 나 할 일 없기에 종일 노래하노라. 찬송하노라. 나 여기 가두셨으므로 나의 영은 주를 향해 종일 찬송하네. 찬송하며 눈을 떠 찬송하며 잠들고 찬송하며 숨지리라.”
4. 이번 주 적용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에서 나오는 헌신을 해 봅시다. 내가 아끼는 그것을 예수님께, 하나님께 드려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