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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시대
조 정 래
“고기 한 근 주세요.”
“한 근이라 가설랑은에……, 얼마짜리로 드릴까요?”
“네……?”
한눈을 팔고 있다가 갑자기 지적을 당한 아동처럼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말고 어리둥절했다.
“얼마짜리로 한 근 쓰실 거냐구요.”
쇠막대에다 칼을 칙칙 문지르고 있는 더벅머리 청년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왜 같은 말을 두 번씩 하게 만드느냐는 짜증이 역연했다.
“쇠고기 한 근에 천 원 아녜요!”
나는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다. 그러나 말에다 꼬챙이를 넣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불쾌감이 따끈한 물줄기로 솟아 목에 걸렸기 때문이다.
“영 캄캄하시구먼요. 이 동네서 며칠 밤 잤습니까요?”
“뭐라구요?”
나는 얼결에 되묻고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새로 이사를 와서 모르면 잔소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니, 쇠고기 지정 가격이…….”
“어서 오십쇼, 사모님. 안녕하세요?”
내 뒤쪽에다 대고 더벅머리 청년은 환성을 올렸다. 그리고 그때까지 장난삼아 칙칙 문질러대는 것같이 보이던 칼과 쇠막대기를 후닥닥 놓더니 이쪽으로 급히 돌아왔다.
“어떻게 사모님께서 이렇게 직접 나오셨습니까?”
전신에 돈 냄새를 포마이커 칠하듯 한 40대 여자가 마악 걸음을 멈춰서고 있었다. 그 앞에서 더벅머리 청년은 허리가 푹푹 꺾이는 신종 기계체조를 하고 있었다. 칼을 칙칙 갈아대던 두 손은 가상하게도 아랫배짬에 공손히 포개져 있었다.
“그으래, 시내 나가는 길에 들렀다. 고기 있겠지?”
“천 2백 원짜리 말씀이죠? 있구말구요.”
“냉동은 잘됐나?”
“예, 예, 염려 마십쇼. 얼마나 쓰실 건지…….”
“고기 50근하구, 갈빈 말이지, 세 짝만 잘 손질해서 배달해.”
“고기 50근, 갈비 세 짝, 곧 배달 올립죠.”
“쥔 아저씬 어디 갔나?”
“물건 하러 갔는데 곧 올 겁니다요. 편히 댕겨오십쇼.”
“우리 집 알겠지?”
돌아서다 말고 여자가 물었고,
“그러믄요. 점보맨션 아닙니까요.”
더벅머리는 나가는 여자의 엉덩짝에다 대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찌빠빠 루울라 지스 마이 베이비…….”
이렇게 목청을 뽑으며 더벅머리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저어 푸른 초원 위에, 뚜루 뚜루 뚜루 뚜루…….”
키 두 배쯤 높이의 어마어마한 냉장고에서 갈비짝을 끌어내 도마 위에 쌀 가마니 부리듯 하며 청년은 더욱 신바람이 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없었다. 나는 내 말을 빼앗긴 채 정육점에는 이미 없는 존재였다. “아니, 쇠고기 지정 가격이 얼만지 몰라서 그런 엉뚱한 말을 하나요?” 나는 빼앗겨버린 이 말을 되찾을 기력마저 빼앗겨버린 다음이었다. 코를 풀어 던진 휴지꼴이 되어 나는 정육점을 떠밀려나왔다. 청년의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를 외치는 고함에 압도당한 채로.
풀어헤친 이삿짐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대충 정리를 끝내기까지는 꼬박 하루 반이 걸렸다. 이 사실을 대학 다니는 여동생이 알면 또 핀잔도 놀림도 아닌 속사포 공격을 퍼댈 것이다. 뭐 대단한 살림살이고 얼마나 넓은 집이라고 하루 반씩 탕진해 가며 그렇게 죽기 살기로 덤비느냐. 이까짓 15평 짜리 아파트 하나 허겁지겁 장만해 놓고 그렇게 감격할 수가 있느냐. 언니의 그런 궁상이 천상 구질구질한 월급쟁이 여편네로 찍어낸 게 아니냐. 제발 작작 사람 실망시키고 이 청춘 슬프게 하지 말아라. 뭐 이런 식의 객기로 기염을 토할 것이다. 삼복 더위에도 팬티 자국이 드러나도록 옥죄여 끼는 바지를 입고 설치며 더위를 무찌르는 철부지 나이니까 그만한 객기 없으면 오히려 탄력 잃은 공처럼 흉할지도 모른다.
동생이야 무슨 말을 어떻게 하건 나는 진실로 감격하고 있었다.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인형을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가방에서 찾아내 품에 안은 소녀처럼 내 가슴은 뜨껍게 달아올랐다. 결혼 4년만에 전세방으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적금을 마지막 붓던 날부터 나는 밤마다 무지개를 잡으러 가는 소년 같은 꿈을 꾸었다. 적금을 굳이 현찰로 찾아다가 남편 앞에 놓았던 날 밤 입만 열면 곧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돈을 물끄러미내려다보고 있던 남편은 내 손을 가만히 감싸잡았다. 그러고는 차츰 힘을 주었다. 남편의 그 떨리는 포옹 속에서 내 손은 조여들며 뜨끈뜨끈한 행복의 즙(汁)을 분비하고 있었다. 4년에 걸친 셋방살이의 통속적 서러움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집 장만을 내 뜻대로 하라고 전권을 위임했다. 나는 건강한 망아지가 되어 다방만큼 흔해빠진 복덕방을 뒤지고 다녔다. 며칠 만에 정한 것이 한강변의 15평짜리 공무원 아파트였다. 편리하다는 이유에 앞서 영등포에 근무처를 둔 남편을 우선으로 한 처사였다. 계약하기 전에 아파트 내부를 둘러본 남편은 오래간만에 월급쟁이가 아닌 남자의 웃음을 웃어주었다. 그리고 “부엌이 제대로 됐군.” 짤막한 소감을 피력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신혼 여행을 떠나던 기차에서처럼 열기로 끼쳐오는 당황한 행복감에 바르르 전율했다. 그때 남편은 쉰 듯한 막힌 음성으,로 “차암 예쁘군” 했던 것이다. 남편은 셋방살이를 하는 동안 블록 담에 슬레이트 천장을 걸친 간이 부엌에서 살아야 했던 내 고
충을 마음속에 조각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인 어제 오후 1시경부터 오늘 오후 6시경까지 하루 반을 나는 살림살이들과 격전을 치렀다. 그건 단순한 살림 정리가 아니었다. 내 집을 장만한 감격과 기쁨을 더 짜릿한 실감으로 어루만지고 싶은 욕심에서 한 일이었다. 액자 하나까지도 두세 번씩 위치 변경을 당하는 등, 거의 모든 세간이 제자리를 잡기까지 갖은 수난을 겪었다. 나는 서둘러 청소를 마치는 것으로 대충 정리를 끝냈다. 어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오늘 아침까지 성의 없는 밥상을 받아야 했던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역시 남편은 훌륭했다. 흐트러지지 않고 비틀거리지 않는 걸음걸이로 생활을 걸어준 남편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은 아직도 먼 내일로 남아 있을 것은 너무 간단한 산수였다. 진종일 종종걸음을 친 분주 속에서 시집은 틀림없이 잘 온 거라는 주책없는 생각이 문득문득 솟곤했다. 그때마다 딸 선희를 돌봐주러 오신 어머니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그 생각을 문지르기에 당황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남편은 건실한 남자였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절대 군주로 모시는 그런 빛 바랜 시민은 아니었다. 술에 만취당하는 즐거움을 책 사는 것으로 대신하고, 서재 갖기를 말없는 소원으로 간직한 엔지니어였다.
남편과 어머니 앞에 미안하지 않은 저녁상을 차리려고 첫 시장길을 나섰던 것이다.
나는 어느새 쇼핑 센터라는 지하 상가를 빠져나와 대로변에 서 있었다. 점보맨션……, 점보맨션만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나를 깨닫자 그만 울컥 화가 치밀었다. 머저리, 병신, 팔푼이, 점보맨션이고 점프맨션이고 염불 외듯 해서 어쩌겠다는 거야. 나는 나를 와드득 쥐어뜯고 싶었다. 정작 문제가 되어야 하는 건 점보맨션이 아니라 지정가격을 어겨 고기를 팔고 있는 정육점이었고, 그 버르장머리 없는 더벅머리 녀석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처구니없고 한심스럽게도 점보맨션이란 아파트를 탐정하고 싶은 굴욕적 호기심에 유혹당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나를 다시 꼬집으며 시야의 초점을 조절했다. 시장한 남편을 위해서 이러고 서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잇대어진 상가를 따라 걸었다.
50근의 고기, 세 짝의 갈비. 한꺼번에 그걸 다 먹어치우려면 얼마만큼의 입이 동원돼야 할까. 한 사람 앞에 고기 한 근, 갈비 서너 대로 잡더라도 50개의 입이 필요하다. 50명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크기의 집이 있을까. 아마 이삼 일을 계속 치르는 잔치겠지. 그렇다면 이 여름에 고기가 견더내지 못할 텐데. 그럼 그 많은 고기를 저장할 수 있는 냉장고가 있단 말인가.
“어머…….”
“앞 좀 보고 다녀요.”
내가 미처 사과를 할 틈도 주지 않고 긴 홈 웨어를 입은 여자는 나를 훑으며 지나쳐갔다. 나는 역정이 났다. 어쩌자고 그따위 얼빠진 공상에 말려들다가 이런 창피를 당하는지, 나 자신이 풍기는 원색의 속물 냄새가 역겨웠다.
나는 새로 찾아낸 정육점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들어갔다.
“고기 한 근 주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천 2백 원짜리로 주세요.”
나는 얼결에 대답해 놓고 아차 싶었다. 그러나 곧 틀린 주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우습지도 않게 안도의 숨까지 쉬었다.
“예에, 암소 등심으로 쓰십쇼.”
정육점을 나와 길을 건너며 나는 왠지 고기볶음이 맛없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짐이 정리된 집 안을 돌아본 남편은 예상했던 것보다 한결 흡족해 했다.
“가구가 기를 못 펴는 것 같은데, 그렇지?”
남편은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상처를 입은 낡은 가구에 신경을 썼다. 나는 남편의 그런 관심만으로도 번쩍거리는 자개 장롱이나 화장대를 새로 가진 기분이었다.
“엄마, 테레비…….”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오자 할머니 무릎에 앉아 있던 선희가 눈치를 살폈다. 선희는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제 맘대로 텔레비전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 조금만 보고 자는 거야, 응?”
“알았어. 할머니가 심심해서 그래.”
“아이구 내 새끼야. 그래, 이 할미가 심심해서 죽겠다. 어서 틀어라.”
꼭 깨물고라도 싶은 듯 어머니는 선희를 끌어안았고, 신문을 들고 앉았던 남편은 사진에 박힌 것 같은 딱 멈춘 포즈로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켰다. 이상하다. 다시 껐다가 켰다.
“엄마, 왜 그래? 고장났어?”
선희의 카랑하면서도 불안한 음성이다.
“가만있어 봐라. 엄마가 나오게 할 테니.”
나는 콘센트를 살폈다. 제대로 꽂혀 있다. 다시 켰다. 마찬가지로 화면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여보, 테레비 좀 봐줘요. 이상해요.”
남편은 콘센트부터 점검했다. 이상이 없다. 켰다. 역시 화면은 엄숙한 표정일 뿐이다. 남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채널을 바꾸고 다시 켰다. 여전히 화면은 냉담했다. 남편은 한참이나 실랑이를 하다가 떫은 입맛을 다시며 돌아앉았다.
“고장인가 보군. 병원옐 가야겠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인부들이 짐을 나를 때 내가 꼭 지켜서 있었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여태껏 속으로만 되씹고 있던 말을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생돈이 바숴지게 생긴 것이다. 、
“자넨 대학까지 나온 기계 기술자 아닌가. 왜 라지오방으로 보내나.”
내 속을 점친 어머니의 계면쩍고 쑥스러운 참견이었다.
“제가 뭘 알아야죠. 병원도 신부인과 따로, 내과 따로, 치과 따로 있잖습니까. 기계 기술도 뭐 그런 건가 봐요.”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담배를 빼들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자 나는 선희를 데리고 전기 용품상을 찾아나섰다.
전기 용품상은 한 방을 칸막이도 없이 복덕방과 반씩 나눠 쓰고 있었다. 아마도 방세가 비싸 그러는 모양이었다. 꽤 많은 가게들이 그런 식이어서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파트로 정글을 이루다시피 한 이 지역 상가의 특색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어디가 고장인지 봐야니까 거기 앉아서 잠깐 기다리시죠.”
나는 남자가 권하는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50객의 남자가 담뱃진이 밴 상아 물부리를 콧잔등에다 하릴없이 문지르고 앉아 있었다. 한눈에 복덕방 주인이었다.
“저어…… 말씀 좀 여쭤보겠는데요. 점보맨션 말예요…….”
“아예 점보맨션, 조오치요. 사시게요?”
복덕방 주인은 밥을 보고 달려드는 며칠째 굶은 개의 형상이었다.
“아아뇨. 어떤 아파튼지 알아보려구요.”
나는 그 남자보다 더 다급하게 말을 해치웠다.
“거야 뭐 알아보나마나 아뇨. 엘리베이터 설치된 18층이니 전망 트여 좋겠다, 자그마치 80평이니 넓어서 좋겠다, 내장(內粧) 일류로 뽑았으니 편리해 좋겠다, 천국이 별거고 신선이 따로 있답디까.”
80평…… 80평……, 나는 더 이상의 아무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 이리 와보세요. 여기가 고장입니다, 보세요,”
델레비전을 들여다보며 남자가 목청을 돋우었다. 나는 복덕방 주인에게 말을 건 것을 후회하는 것만큼 다급하게 소파에서 일어섰다.
“바로 이것이 터졌습니다.”
남자는 어지러울 뿐인 텔레비전의 내장 한 부분을 긴 드라이버 끝으로 가리켰다.
“비용이 얼마나…….”
“뭐 간단한 거니까 4천 원만 내십쇼.”
너무 비싼데 좀 싸게 해주세요. 혀끝까지 밀려나온 말을 나는 침으로 반죽을 해서 애써 삼켰다. 복덕방 주인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쯤 다 되나요?”
“오후면 됩니다. 고쳐서 배달해 드릴 테니 댁을 알려주고 가세요. 렉슨가요?”
“아뇨.”
“왕궁이세요?”
“아뇨.”
“그럼 현댑니까?”
“아뇨.”
“한신이군요?”
“아뇨.”
“아아 민영에 사시는군요?”
“아뇨, 공무원 아파트예요.”
“네에 그러어세요오.”
남자는 늘여뺀 목을 연신 끄덕였다.
“엄마 나 아이스크림…….”
“못써, 배탈나!”
나는 가당찮게도 선희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나한테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 렉스냐고 물었을 때 공무원 아파트라고 대답했어야 했다. 꼭 등신처럼 아뇨, 아뇨만 되풀이한 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리비를 한 푼도 깎지 못한 병신스러움이 뒤미처 고개를 들었다.
“엄마, 어디 나갈 거야?”
“아아니.”
“근데 왜 입술 칠해?”
선희의 말에 나는 새삼스럽게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은 어느 외출 때보다도 짙게 화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평소에 거의 화장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화장을 하는 것은 곧 선희에겐 외출의 신호가 되었다. 나는 지금 김칫거리를 사러 나가면서 엉뚱하게도 짙은 화장을 한 것이다. 나 스스로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장을 지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남편이 즐기는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열무단을 뒤적이다가 귀를 세웠다.
“예, 배추 두 단하고 파 한 단, 부추 한 단, 알았어요. 어디요? 아 예, × ×맨션 706호요. 곧 배달 올립죠.”
주인 남자가 소리소리 지르며 전화를 받았다. 찬거리를 손수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전화 주문을 한다. 그리고 배달. 나는 반사적으로 뒷덜미가 화끈해졌다. 상점에 나오는 여자는 전화가 없다는 표시를 내는 것이나 아닐까.
“아주머니, 아 그만 고르세요. 우리 집 물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두 하이칼라 일등품이라구요¨ 자꾸 만지면 채소가 쉬 상해요.”
주인 남자가 배추 두 단을 집어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획 비위가 상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한 마디 쏴댈 수가 없었다.
“아저씨, 우리 집에 계란 한 줄하고 고추 한 근만 보내줘요.”
한 여자가 문밖에서 째지게 소리 쳤고,
“예, 예, 나들이 가시는군요? 곧 배달 올립죠.”
주인 남자가 헤프게 웃으며 굽실거렸다.
나는 주인이 계산을 뽑은 대로 돈을 치렀다. 결혼 후 처음의 일이었다.
“야 임마, 좀 빨랑빨랑 다녀. 배달이 산더미다.”
주인 남자는 막 문을 들어서는 사내애를 향해 고함을 퍼댔다. 때와 땀에 전 구지레한 옷을 걸친 사내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꿍얼거렸다.
“자아, 이 아줌마 것부터 배달해라.”
주인 남자가 사내애 앞으로 내 시장 바구니를 밀쳐놓았다.
“아줌마 어디세요?”
사내애는 이마의 땀을 쓱 문지르며 나에게 물었다.
“가자, 공무원 아파트다.”
나는 선희의 손목을 잡고 돌아섰다.
“공무원 아파트요? 얼마 안 되는데 그냥 가져가세요.”
“뭐야?”
나는 나도 모르게 꽤액 소리를 지르며 돌아섰다.
“너 방금 뭐랬니?”
“아니 아주머니 왜 이러십니까?”
주인이 당황하고 놀란 표정으로 다가섰다.
“여기 감자 있어요?”
“있는데요……, 갑자기 감자는 왜…….”
“한 관에 얼마예요?”
“550원인데요.”
“두 관만 줘요.”
주인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빨리 이것 들어. 주먹만 한 게 벌써부터……, 다 똑같은 돈 내고 물건 사는 거란 말얏.”
나는 야속하게도 흥분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사내애는 감자 두 관이 든 봉투까지 팔이 모자라도록 안고는 낑낑대며 걷고 있었다. 괜히 이 아파트촌으로 뛰어든 게 아닌가 하는 딱한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곧 완강하게 부정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법은 없었다.
얼굴이 땀으로 젖은 사내애는 짐을 마루에 내던지듯 하고 돌아섰다.
“씨이팔 좋아하시네.”
나는 팔을 뻗치며 입을 벌렸디가 그만두었다. 불러서 돌아설 애가 아니었다. 나무란다고 들을 애가 아니었다. 결국 패배한 것은 나였다. 그렇게 골탕을 먹 여서 사내애의 버릇이 고쳐질 리가 없었다. 내가 감정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사
내애도 감정을 되뱉어내고 만 것이다.
나는 털퍽 주저앉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피로가 전신을 눅눅하게 적셔왔다. 내 집을 갖게 된다는 감정의 이상(異狀) 팽창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는 그저 뿌듯하게 차고 햇솜처럼 부풀어오르는 기분을 아무하고나 신바람 나게 떠들며 웃고 싶었었다. 그런 기분으로 집을 구하러 다닌 나에게 이 아파트촌의 황당한 기류가 감지될 리 없었다. 나는 강을 앞에 둔 패잔병처럼 뒤늦게 난감한 감정의 골짜기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 언제 가실 거예요?”
“짐도 다 풀었겠다 하룻저녁 잤겠다, 오늘은 가봐야겠다.”
“어머니 가시기 전에 나 목욕 좀 하고 올래요.”
“그래라. 목욕을 하면 노독이 다 가시니라. 김칫거리는 내가 다듬어줄 테니까.”
나는 어머니를 만류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 주기를 은근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목욕탕에 들어선 나는 어리둥절해서 코를 벌름거렸다. 비누 냄새가 나야 할 탕에서 난데없는 채소 비린내가 끼쳐왔던 것이다. 그게 마사지용으로 달걀을 섞어 즙이 되도록 간오이 냄새라는 걸 알기까지는 내 직감은 너무 촌티에 절어 있었다. 나는 결국 배추 한 단을 사면서도 값을 깎아야 사는 맛을 아는 졸렬하기 이를 데 없는 밑바닥 목숨이었다. 이곳의 목욕탕은 때를 벗기러 오는 곳이 아니었다. 전신 마사지실을 겸한 휴게실이었다. 여자들은 병원의 진찰대처럼 생긴 비닐이 깔린 나무 침대에 벌렁 누워 있거나 넙죽 엎드려 있었다. 그 옆에 여자들이 하나씩 붙어서서 정성 들여 전신을 문질렀다.
“얘, 얘, 적당적당 해둬라.”
“넌 왜 그리 안달이니.”
“이 놈의 마사지 할래다가 사람 시들겠다.”
“아서라, 느이 서방님 몸살난다. 시들질랑 말아라.”
서너 명은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까르르 웃어젖히곤 했다. 열한 명의 여자 중에서 때 벗기는 목욕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까지 네 명에 불과했다. 그 떼거리들과 등을 지고 이쪽으로 앉은 여자들이 그야말로 ‘목욕’을 하는 중이었다.
“얘, 넌 오늘 재료가 뭐니?”
“오늘이라고 별나니 뭐.”
“맨날 오이 계란, 계란 오이, 피부도 식상하겠다 얘.”
“아니, 그럼 넌 오늘은 달라?”
“아암, 메뉴에 변화를 줘야 피부가 식성을 돋구지.”
“뭔데, 어디 봐.”
“가만있어, 가만. 왜들 이러니?”
탕 안이 무당굿하는 방인처럼 어지러운 소란으로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탕에서 물을 펴내 비누질한 몸에 좍좍 끼얹었다.
“뭔고 하니, 제주도 토종꿀을 섞었다 이거야.”
“요런 깍쟁이, 너 정말 이러기냐?”
“좋아하시네.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내돌리니?”
“진짠지 알게 뭐니. 꿀처럼 속이기 쉬운 것도 없대더라.”
“미쳤니? 아빠 회사 지점장이 보낸 거라구. 가짜 보냈다가 제깍 날아가려 구?”
“그렇담 진짜다!”
“그렇구나! 얘, 나두 좀 얻자.”
“글쎄 돈 주고도 못 사는 물건이라니까.”
“그러게 누가 공짜로 달래니. 홍보석에서 점심 뻐근하게 살 거야.”
“얘, 얘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 이러니? 내가 몇 킬론지나 알고 그런 악담이야?”
나는 눈을 꼬옥 감은 채 탕 속에 몸을 잠그고 있었다. 탕으로 들어오며 얼핏 본 그들은 서른대여섯 또래였다. 나는 내 나이가 서른인 것을 상기 했다. 그리고 ‘벌써’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아파하고 있었다.
세숫비누를 다이알로 바꾼 것도 얼마 전의 일이었다. 마사지라고는 결혼식 때 해본 것이 경험의 전부였다. 나는 이제 여기로 이사 온 것을 완전히 후회하고 있었다. 어제부터 그런 생각을 쳐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노력의 제방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집을 나서면서는 때밀이 처녀에게 몸을 맡길까도 생각했었다. 그만큼 몸은 피곤에 친친 묶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념해 버렸다. 때밀이 처녀가 정욱점의 더벅머리나 채소 상회의 사내애가 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어서 였다. 나는 건성으로 때를 밀고 목욕탕을 나왔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으면서 말했다.
“오늘 회사로 영숙이라는 친구가 전활 걸어왔었어. 친구들하고 내일 오전에 찾아오겠다고 전하라더군.”
“병신 같은 기집애, 오긴 뭣하러 와.”
난 불쑥 이렇게 쏟아놓고 말았다. 이런 내 경솔이 안타까웠다.
“왜, 집 자랑하고 싶지 않아? 당신 어디 아픈가? 안 좋아 보여.”
“아네요, 좀 피곤해서 그래요.”
나는 얼버무렸다.
남편은 나를 위해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의 그런 뜻과는 아랑곳없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이틀 동안 당한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 조소로 일축해 버릴 것이다. 기껏 동조를 얻는대야 불필요한 것에 신경 과민하게 쓰지 말라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불필요한 신경 소모가 아니었다. 셋방살이를 하며 주인집의 일방통행으로 빚어지는 감정적 누명이나 피해도 거뜬하게 소화시켜 낸 무쇠 위장을 가진 나였다. 나는 가고 싶은 것이다. 풍요한 소비가 자랑인 이런 지역이 아니라 근면한 절약이 미덕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내 집을 장만한 그 벅차오르는 보람의 사탕을 두고두고 핥으려 했다. 그런데 사탕은 걷잡을 수 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공무원 아파트의 세 배 이상의 높이인 맨션이란 아파트들은 꿈틀꿈틀 움직이며 괴물로 변해갔다. 공상영화에서 불을 뿜어대는 그런 거대한 괴물로 둔갑하고 있었다. 필경 그 불길에 타죽고 말 것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나는 도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다시 이사를 가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은 돈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에 매달려 사족을 못쓰거나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허겁지겁하는 꼴을 영 달갑잖게 여겼다. 더구나 그것의 위력을 무기 삼아 뻔지르르하게 으스대는 부류들을 똥 뭉개는 돼지 취급이었다. 남편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보다 내가 왜 이렇게 흐물흐물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짜증을 부리다가 나는 잠이 들었다.
“친구들이 오면 오늘은 심심찮겠군.”
남편은 어느 때 없이 건강한 표정으로 출근을 했다. 네 활개를 펴고 누울 면적이 제대로 남지 않는 서재였지만 남편은 무척 흡족해 했다. 나는 남편의 당당한 걸음걸이를 바라보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실한 바람벽 뒤에서 나는 왜 그리도 심한 바람을 타는 것일까. 내 속은 구멍 뻥뻥 뚫린 시루였을까, 빈 소라 껍질이었을까. 난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몰려들기 전에 미장원에나 다녀올까 하다가 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전 동네에서도 팁 투정을 당했는데 여기는 오죽하랴 싶어서였다. 미장원에는 도저히 이해 못할 악습이 있었다. 팁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몰상식이었다. 그것도 일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5백 원짜리 고데를 하고는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에 따라 백 원도 주고 2백 원도 던지고 갔다. 그래서 팁을 안 주는 사람은 일방적 피해를 입었다. 달갑잖게 대하는 것은 물론 빗질을 사납게 하거나 머리를 태워놓기가 일쑤였다 나는 앞으로 클립을 말기로 작정해 버렸다.
성냥과 하이타이를 사든 친구 셋은 10시 반쯤에 습격해 왔다. 친구들은 안방에서 부엌으로, 마루방에서 서재로, 화장실에서 다시 안방으로 쓸고 다니며 제각기 떠들어댔다. 그들의 종합적인 심사평은 생각했던 것보다 알차고 쓸모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루방에 자리를 잡았다.
“나 같은 건 정신없어 어디 이런 동네서 살겠니? 다 똑같은 모앙으로 생겨먹어서 집 잃어먹기 꼭 알맞겠다.”
숙자가 다리를 쭈욱 뻗으며 말했다.
“또 나사 뻐진 소리 하고 앉았다. 어기가 바로 둘도 없는 별천지라구. 안 그러냐, 유경아?”
영숙이가 나에게 동의를 청해왔다.
“이거 왜 이러니. 별천지 아니라 천당이라도 이사 온 지 사흘 만에 뭘 알겠니.”
정미가 끼여들었다. 나는 얼른 정미의 말에 편승했다.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내 대답을 아주 멋지게 대신해 준 말이었다.
“난 집 잃어먹을까 봐 걱정이 아니라 와르르 무너질까 봐 오금이 저리더라. 아까 집 찾으면서 멋모르고 올려다봤다가 혼이 났지 뭐니. 눈앞이 어질어질한 게 자꾸 속이 메슥거리더라니까.”
정미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것들이 그래봬두 다 40평이 넘는 맨션이래더라.”
영숙이가 입술을 삐죽하고는 새우깡을 집어넣어 와삭 씹었다.
“허긴 그런 으스스한 데 사는 사람들이야 맨날 잘 먹고 살 테니까 어지럽지도 않을 게고 속이 메슥거릴 리도 없을 테지.”
정미가 자조적인 웃음을 입가에 엷게 물었다.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얘. 내 동생 친구가 말이지, 제비를 기차게 뽑아서 부잣집 아들한테 시집을 갔대잖니. 바로 이 동네 50평짜리 맨션으로 새살림을 났대더라. 근데 식모하고 세 식구뿐이라 밤엔 무섬증이 생긴다는구나. 더
웃기는 건 말이지, 식당에다 상을 차려놓고 남편이 어느 방에 있는지 찾으러 다니기가 귀찮아서 얏호, 어보 식사하세요 하고 소릴 지른댄다 글쎄.”
“어머머, 저걸 어째.”
“아니 세상에…….”
숙자의 말에 영숙이와 정미는 입을 딱 벌린 채 멍청해졌다.
“감자 삶아올 테니까 얘기들 하고 있어.”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친구들은 감자를 먹으면서 많은 것을 물었다.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전화만 걸면 배달을 해준다는데 사실이냐, 상점의 물건이 최고급이라는데 정말이냐, 미장원이나 의상실이 서울에서도 일류들만 여기 모였다는데 진짜더냐, 물가는 어떻더냐,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그저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을 피해나갔다. 영숙이가 물었다.
“너 어디 아프니? 영 맥이 빠져 뵌다.”
“피곤이 아직 덜 풀렸나 봐.”
“네 성질에 어련했을라구. 이 집 정리해 놓은 걸 보면 알쪼지 뭐니. 이젠 극성 그만 떨어라. 쉬 늙어빠진다구.”
“그래, 일어나자.”
“점심이나 해먹구 가지 그러니.”
“관둬라 얘. 신경질 나는데 우린 나가서 짜장면이나 곱빼기로 해 치워야겠다.”
“미장원에나 좀 가거라. 머리가 그게 뭐니.”
나는 친구들을 보내고 나서 휴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설거지를 하고 들어오자 남편은 산보를 나가자고 했다.
“이 동네 구경도 할 겸 슬슬 나가볼까?”
신이 나서 뛰는 선희를 가운데 세우고 나는 내키지 않는 산보를 나섰다. 깔리기 시작한 어둠 속에서 백열등이나 형광등의 조명을 받은 상점들은 낮에보다 한결 윤기 있게 돋보였다.
“명동이 따로 없구먼.”
느린 걸음을 걸으며 상점을 구경하던 남편의 말이었다.
“여보, 저기 저 장롱 어때. 쓸 만한 것 같은데?”
걸음을 멈춘 남편은 가구점 안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가리키는 장롱을 대뜸 알아볼 수 있었다. 어제 지나치며 눈길을 준 자개 무늬가 박힌 문이 네 개 달린 두 쪽짜리 장롱이었다.
“여보, 우리 들어가서 구경하지.”
남편의 말에 내 가슴은 침에라도 찔린 것처럼 뜨끔했다. 못해도 사오십만 원은 할 것이었다. 남편에게만은 내가 겪은 것 같은 그 비위 상하는 어지러움을 당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까짓 거 보면 뭘 해요. 별로 좋아 보이지도 않아요.”
“아냐, 미리미리 봐뒤. 이번 보너스가 나오면 새로 사서 나쁠 건 없잖아. 돈이 좀 모자라면 월부로 살 수도 있는 거니까. 자 들어가, 쓸 만한지 가까이서 봐둬.”
나는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끌려 가구점 문을 밀었다.
“아 역시 두 분께서는 고급적인 눈을 가지셨군요. 이 장롱이야말로 대대로 물릴 수 있는 재산입니다, 예. 이 앞판이 바로 통짭니다. 쪽나무를 이어붙인 게 아니라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이 무늬는 전부 손으로 판 조작입니다. 얼마나 기막힙니까. 이 칠로 말할 것 같으면 바로 옻칠입니다. 장롱 속을 보십시오. 여기도 옻칠입니다. 뒤쪽을 보십시오. 여기도 옻칠입니다.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든 농을 보셨습니까. 옻칠이라는 것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닦으면 닦을수록 광이 번쩍거립니다.”
내 몸은 이미 바짝 굳어 있었다. 남자의 수다는 과장이 아니었다. 장롱은 그야말로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제발 남편이 값을 묻지 않기를 조바심쳤다.
“이게 얼맙니까?”
나는 얼른 시선을 길 쪽으로 옮겼다.
“뭐 많이도 말고 350만 내십쇼.”
“350이라니…….”
“에에, 삼, 백, 오, 십, 만 원이라구요.”
나는 어떻게 해서 가구점을 나왔는지 모른다.
“제기랄, 딱 우리 집 값이구먼.”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한 마디를 했다.
이불을 펴고 불을 끌 때까지 나는 차마 남편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보, 자나?”
“아아뇨.”
“미국 유학 가 있던 사장 아들이 불치의 병으로 곧 귀국하게 된대.”
“……?”
남편이 내 손을 더듬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을 남편의 손에 놓았다.
“나 말이지, 가을이 되면 계장이 될 것 같은 눈치가 보여.”
나는 비로소 남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목젖이 아프도록 눈물이 솟구쳤다.
“여보…….”
나는 남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남편은 숨이 막힐 지경으로 날 꼬옥 끌어안았다. 조여드는 압박 속에서 나는 남편이 아직도 젊다는 것을, 나에겐 박달나무 같은 남편의 억센 어깨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동안 흐물거리던 내가 다시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남편의 목을 끌어 안았다.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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