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찬송가 383장(눈을 들어 산을 보니), 354장(주를 앙모하는 자),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 도착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 중 일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독수리 어미, 아비로 비유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새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독수리 하나님은 자기 새끼 이스라엘을 그 날개로 업어서 그곳 시내산까지 이끌어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독수리로 그의 백성들을 독수리 새끼로 비유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낳아 기르시고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는지에 대하여 묵상하게 해줍니다.
먼저, 독수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이 가장 빠르게 나는 새입니다.
욥기 9:26 말씀에,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는 그 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검독수리 같은 경우 시속 250km 정도까지 빠르게 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속도로 엄청나게 빠르게 날고 오랫동안 멀리 날고 가장 높이 날아오릅니다. 독수리는 거의 3천, 4천 미터 위의 산악에서 살면서 높이 날아올랐다가 골짜기와 절벽을 따라 비행하면서 먹이를 찾아 날다가 3km 밖에서 숲 가운데 있는 토끼를 알아챌 정도로 놀라운 시력으로 먹잇감을 발견하면 순식간에 날개를 접어 초고속으로 급강하여 접근하여 먹잇감을 잡아 챕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강하고 빠른 날개로 세상과 마귀와 육신의 정욕의 결박에 잡혀 있던 우리들을 순식간에 갑작스럽게 날아내려와서 우리를 그 강한 결박에서 풀어 건져내서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누가 그 강하고 빠른 날개와 발톱의 낚아챔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세상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애굽의 최강의 병거와 마병으로도 하나님의 높이 든 권능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도로 찾지 못하고 결국 홍해 바다의 고기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독수리 하나님은 그의 빠르고 강한 날개와 강한 발톱으로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내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독수리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새끼들을 가장 멀리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여 기릅니다.
욥기 39:27,28의 말씀에 보면,
“독수리는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욥 39:27,28)
라고 하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두고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 험준한 데 사는 것은 안전하게 새끼들을 기르기 위함입니다. 그곳에는 뱀이나 여우나 다른 새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여 새끼들이 안전하게 자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독수리는 자기 어린 새끼들을 주야로 사냥한 고기들을 먹어 가지고 와서 입으로 토해내서 하나 하나 먹여서 토실 토실 길러가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즉시 이끌지 않고 광야를 거쳐 시내산으로 인도한 까닭도 안전을 고려한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장 가까운 블레셋 땅을 통과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초기에 혹독한 전쟁을 맛보고 그들이 감당 못하고 돌아갈까 봐 그렇게 광야로 돌아서 가도록 인도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 시내산으로 데려온 것은 백성들이 심히 연약하고 어릴 때에 이렇게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살뜰히 보살펴서 영적인 유아기를 잘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13,14 말씀에도 이르기를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용은 마귀를 가리키고, 남자는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키고, 남자를 낳은 여자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용이 예수님을 낳은 교회를 박해하는데, 그 때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안전한 처소인 광야로 날아가서 거기서 마귀의 핍박을 피하여 양육받는다고 사도 요한은 묵시록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와 세상이 교회를 핍박할 때 큰 독수리 하나님은 그의 두 날래를 사용하여 교회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지켜주시고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의 길로 처음 인도하셨을 때에 지극히 자상하게 보살피시고 죄악 세상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물론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언제나 강하고 빠른 날개로 우리를 늘 지켜보며 보호하시고 계십니다만 처음에는 더더욱 그렇게 연약한 우리들을 살뜰하게 보살펴주시는 은혜가 있었음도 분명합니다. 주님의 이러한 자상한 보살핌과 보호로 인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영적으로 강건해지는 은혜가 있었기에 훗날에 여러 가지 도전과 시련과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보호해주신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또한 독수리는 그 새끼를 훈련시켜 창공을 날아 오를 수 있게 합니다.
독수리 새끼가 어미 독수리와 아비 독수리의 지극 정성으로 보살핌 가운데 잘 자라게 되면, 나중에는 새끼의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털도 엄청 풍성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덩치만 컸지 사실은 날지도 못하고 보금자리를 떠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나는 훈련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한 독수리는 혼자 날지 못합니다. 나는 것도 부모의 훈련이 없이는 날지 못합니다.
영상을 보니까, 우리나라에 날개가 다친 검독수리 두 마리가 합사를 해서 새끼를 낳았답니다. 그런데 그 독수리 새끼가 날개를 다친 어미 독수리와 아비 독수리가 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그 새끼 독수리도 전혀 날지를 못하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새끼를 훈련시켜 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마침내 숲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새끼 독수리가 하늘로 날아가는 훈련 기간만 해도 무려 5개월이나 되었다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독수리는 훈련을 통하여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지, 저절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처럼 독수리가 새끼를 비행 훈련시킬 때에는 여러 번에 걸쳐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먹을 것을 사냥해서 보금자리 밑에다 놓고 내려와서 먹게 유도하곤 하는데, 그 때 날지 못하는 새끼들이 좀 날다가 힘없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힐 것 같으면 어느틈엔가 그 아비 어미 독수리들이 날아와서 그 새끼들을 날개로 받아서 다시 보금자리에 올려놓고 좀 기다렸다가 다시 그렇게 훈련 시키곤 해서 마침내 날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자기 백성들을 거친 세상의 바람과 맞서 믿음의 날개를 사용하여 영적인 창공을 날아오르도록 훈련하시곤 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를 기록한 신명기 32:10~12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새끼가 컸는데도 둥지를 떠나지 않고 비행 훈련을 하지 않으려 하면, 독수리는 새끼가 자란 보금자리 위에서 발로 푹신한 깃털들을 날려버리고 날개로 너풀거려서 그것들을 흐트러놓습니다. 그래서 보금자리가 더 이상 편안하지 않게 하고, 새끼를 보금자리 밖으로 내몰아서 날개짓을 치도록 훈련시킵니다. 그러나 땅바닥에 떨어져 죽게 될 때가 되면 쌩하니 날아와 그 날개로 새끼를 받아서 다시 올려놓기를 거듭합니다. 그리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세상을 떠나려 하지 않을 때 그 보금자리를 흩고 애굽 왕 바로로 악독하게 만들어서 그곳을 떠날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들이 광야에 들어서서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게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믿음의 날개짓을 배워서 하나님을 알고 영적으로 살아가는 영적 날개짓을 하도록 자꾸만 훈련하셨습니다. 그들이 죽을 것 같은 지경에 이르면 이적적인 은혜를 베푸사 물도 주시고 만나도 주시고 메추라기도 주시고 물샘 열둘과 70주 종려나무도 주시고 각종 치유의 은혜도 주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그 험한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들을 영적인 어린 새끼로만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이제 믿음의 날개를 사용하여 은혜의 창공을 날아오르도록 훈련하십니다. 가만히 있기만 하여 몸만 커지고 날개는 전혀 사용하지 못한 채 보금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철부지 새끼로만 머물길 원치 않습니다. 날개를 치고 창공을 날아오르며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도 자유롭게 비행하며 영적인 시력을 가지고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사냥술도 배워서 마귀와 세상과 악과 타락의 본성들을 밥으로 삼으면서, 독수리 하나님과 같이 담대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지배하는 창공의 왕자처럼 영적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말씀 속에서 가르쳐주는 영적 이미지를 기억하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금자리를 너풀거리면서 밖으로 내몰면서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추락을 경험하게 하실 때 절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금방 죽을 것 같은 그 시간에는 어김없이 순식간에 날아와서 그 날개로 우리를 받아주실 것을 믿읍시다. 그가 이렇게 강하게 훈련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날개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고 더 힘차고 더 높이 더 빠르게 날개를 펴서 날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영적 나래를 펼치는 힘이 지금 연약합니까? 우리는 혹시 날개는 가지고 있지만 얼마 멀리 날지 못하는 새들인 닭이나 꿩과 같은 존재들은 아닙니까? 우리의 영적 부모는 바로 독수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의 정체성도 독수리입니다. 아직 새끼일지 모르지만 우리들이 독수리인 것을 분명히 기억합시다.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처럼 우리들도 저 높고 푸른 구름 위를 날아올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영적인 거대 산맥 위를 순식간에 오르고 깊은 협곡을 누비면서 영적으로 드넓은 세상을 보고 모든 것들을 살피면서 모든 대적들과 맞서 싸워 승리하며, 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를 본받아 영적으로 훈련받아 강한 독수리들이 되어서 또 다른 영적인 독수리 새끼들을 낳아 길러가는 영적 전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독수리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을 독수리 새끼로 비유해주신 이 말씀의 의미를 묵상해보았습니다. 하늘의 제왕 검독수리가 그 큰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자유 자재로 날아오르고 빠르게 비행하는 멋진 모습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 생명을 얻고 영적으로 독수리 새끼로 양육받아 이렇게 성장했사오니, 믿음의 날개짓을 더욱 강하게 훈련하여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드높은 영적 창공을 힘차게 날아올라 더 많은 영적인 은혜를 맛보고 더 영적인 비밀들을 보고 많은 영적 싸움을 싸워 적들을 제압하고 더 넓은 영적 영토를 개척하고 또 다른 영적인 독수리 새끼들을 길러 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