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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2월 25일 화요일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자기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키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에 대하여 논쟁하는 제자들에게,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2,1-11
1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2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3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4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5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6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7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8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9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10 지난 세대를 살펴보아라.
누가 주님을 믿고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을 경외하면서 지내다가 버림받은 적이 있느냐?
누가 주님께 부르짖는데 소홀히 하신 적이 있느냐?
11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0-37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 벌써 두 번째인데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묻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수난과 죽음 부분에만 머물러 부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알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아는 것에만 머물러 있고 싶은 유혹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현세에서 지금 누리시는 존경과 권위에만 머물러 그분께서 겪으셔야 할 수난과 죽음은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지금 그분을 따르면서 큰 사람이 되려 하고 작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무가 높이 자라려면 먼저 뿌리를 땅속 깊이 내려야겠지요.
낮은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는 높이 오를 수 없습니다. 그처럼 제자 직분은 낮아지고 작아지면서 성장하는 신비입니다. 일등이 되려고 모든 것을 거는 세상, 일등만 환호하는 세상에서 꼴찌가 되라는, 어린이와 같은 작은 이를 받아들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진정한 첫째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높고 훌륭한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하면 거부감이 덜하겠지만 자신보다 작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죄인들의 종이 되라고 하면 선뜻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와 당신을 동일시하셨고 (마태 25,40 참조) 죄인인 우리의 종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을 섬기시려고 스스로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그분처럼 “모든 이”(마르 9,35)의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영웅적인 순교의 비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돈보스코는 꿈의 성인(聖人)으로 불릴 만큼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꿈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곤 했습니다. 그는 100년도 훨씬 전에 자신의 제자들인 살레시안들이 이탈리아 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활동하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런 돈보스코의 꿈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그를 향해 ‘약간 맛이 간 사람’ ‘지나친 몽상가’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120% 실현되었습니다. 지금 살레시오회는 160여 개국에 진출해서 그가 못다 이룬 꿈을 지속해나가고 있습니다.
한번은 돈보스코가 두 명의 살레시오 회원이 금으로 된 큰 성 잔을 들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 안에는 피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황하가 흐르는 중국이었습니다.
돈보스코가 꾸었던 그 꿈은 50여년 뒤에 정확하게 이루어졌는데, 1930년 당시 중국에서 활발히 사목활동 중이던 베르실리아 주교, 카라바리오 신부, 두 살레시안이 공소 사목 방문 중에 악한의 습격을 받고 피살되었으며, 시성되셨습니다.
베르실리아 성인 같은 경우 수도회의 꽃인 수련자들을 교육시키는 수련장 신부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무럭무럭 성장하는 제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큰 스승으로서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겸손했던 그는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슬슬 뒤로 물러날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돈보스코의 후계자이자 2대 총장인 루아 신부님께서 당시 베르실리아 신부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이미 그의 출중한 자질과 성덕을 파악하고 뭔가 부탁을 하러 온 것입니다. 그 부탁이 뭔가 했더니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마카오에, 홍콩에, 중국 본토에 수많은 가난한 청소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선교단을 좀 이끌고 가주셨으면...”
짧은 순간이었지만 주교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중국이라...거의 지구 반대쪽 나라인데...경제, 정치, 종교, 교육 등등 모든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라던데...가면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된다던데...사랑스러운 수련자들은 어떡하고...사랑하는 내 가족들은 또 어떡하지...
그러나 베르실리아 신부는 즉시 생각을 바꿉니다. 부정적인 생각, 인간적인 생각을 즉시 접습니다. 환하고 기쁜 얼굴로 즉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루아 총장님, 그럼 제가 언제 떠나면 될까요?”
중국에 도착한 베르실리아, 카라바리오 두 분의 선교사는 홍콩, 마카오를 거쳐 중국 본토 깊숙이 들어가 영웅적인 사목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던 교리교사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려다가 안타깝게도 화적들의 총에 맞아 순교하십니다.
순교자들이 그 혹독한 현실을 기꺼이 견뎌낸 배경,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여유를 지닐 수 있었던 배경에 어떤 힘이 있었을까 묵상해봅니다. 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임마누엘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습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렬한 신앙, 그것이 순교의 비결이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6년 전에 유아세례 주었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며, 아이의 할머니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잠시 추억에 잠기며, 유아세례 주었던 아이와 찍었던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이도, 저도 해 맑게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은 가장 좋은 추천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년이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16년 전의 사진을 보며, 배우 ‘손지창’ 닮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배우 ‘더스틴 호프만’ 닮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의 얼굴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건 저의 표정이 웃는 모습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굴 때문에 유명해진 그림이 있습니다. 아마 짐작하시는 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저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원본을 보았습니다. 표정으로 유명해진 그림도 있습니다. 아마 짐작하시는 대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입니다. 뭉크의 절규는 얼굴이라기보다는 표정에 가깝습니다. 거울 보고 활짝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얼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표정을 통해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얼굴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얼굴’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을 뜻합니다. 시편 27장 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셨으니, 주님, 당신 얼굴을 찾나이다." 우리는 신앙 여정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모세는 하느님과 대면하며 대화했고, 그 만남 후 그의 얼굴은 빛났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즉, 예수님의 얼굴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깊어질수록 얼굴은 더 평화롭고 기쁨에 차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얼굴과 표정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도 강조하셨듯이, 신앙인의 얼굴이 어두우면 다른 이들이 하느님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기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고,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아픔이 서려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슬픔을 겪으며 병고를 아는 이였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할 때, 우리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굶주린 이의 얼굴, 병든 이의 얼굴, 외로운 이의 얼굴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성녀는 늘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그들을 돌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표정과 태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불친절한 얼굴이 아니라, 희망과 자비가 담긴 얼굴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얼굴을 남겨 주셨습니다.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빵을 떼실 때야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도 성체 앞에 머물며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분과 깊이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얼굴은 하느님을 증언하는 도구입니다. 신앙인의 얼굴은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사랑과 희망으로 빛나야 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이웃을 향해 따뜻한 얼굴과 사랑의 표정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만 사람일 수만 있다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마르 9,34)
다만
사람일 수만 있다면
높든 낮든
뭐 어떻습니까
낮은 사람
올려야
참으로
높은 사람이요
높은 사람
받쳐야
참으로
낮은 사람이니까요
다만
사람일 수만 있다면
크든 작든
뭐 어떻습니까
작은 사람
품어야
참으로
큰 사람이요
큰 사람
돋우어야
참으로
작은 사람이니까요
다만
사람일 수만 있다면
앞서든 뒤서든
뭐 어떻습니까
뒤선 사람
이끌어야
참으로
앞선 사람이요
앞선 사람
밀어줘야
참으로
뒤선 사람이니까요
오늘의 성인
성 아베르타노 (Avertanus)
활동년도 : +1380년
신분 : 수사
지역 : 리모주(Limoges)
같은 이름 : 아베르따노, 아베르따누스, 아베르타누스
프랑스의 리모주 태생인 성 아베르타누스(또는 아베르타노)는 겨우 말할 수 있을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행동은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주 기도하고 관상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천사의 환시를 보고 카르멜회에 입회하려고 마음을 먹고 부모를 설득하였다. 마침내 그는 부모를 설득하여 동의를 받은 뒤 카르멜회에 지원하였다. 수도원장은 그를 환영하였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가 서원할 때에는 천사들의 노래와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고, 성모님께서 친히 이 평수사의 머리 위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수도원의 온갖 잡일을 하였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밤에는 수도원 언덕 위의 바위에 기어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한 번은 그가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동료인 로메우스(Romaeus, 3월 4일) 수사와 함께 출발하였다. 그들이 겨울 알프스 산을 넘어 이탈리아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루카(Lucca) 성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만 성 아베르타누스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성 아베르타누스는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환시를 보며 웃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고, 로메우스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8일 동안 무작정 길을 가다가 운명하였다.
성 타라시오 (Tarasius)
활동년도 : +806년
신분 : 주교
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같은 이름 : 따라시오, 따라시우스, 타라시우스
성 타라시우스(Tharasius, 또는 타라시오)는 콘스탄티누스 6세와 그의 어머니 이레네(Irene)의 비서로 활약하던 평신도로 왕궁과 성직자 그리고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었다. 귀족 출신이자 황제의 비서였던 그이지만 주교가 되면서부터는 철저한 수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황제의 섭정이던 황녀 이레네가 성상파괴 정책을 반대하도록 했던 그는 교황의 성상 및 성화 공경으로 인한 박해를 치유하고 신심 부흥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그 당시의 악습이던 성직매매를 엄격히 규제했다. 만년에 그는 병으로 거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미사만큼은 꼭 봉헌하다가 선종하였다. 그는 결국 21년 동안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서 봉사하여 교회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큰 기둥이 되었다.
성 제를란도(Gerland)
활동년도 : +1104년
신분 : 주교
지역 : 지르젠티(Girgenti)
같은 이름 : 게를란도, 게를란두스, 제를란두스
성 게를란두스(Gerlandus, 또는 제를란도)는 노르망디(Normandie)의 백작인 로베르 기스카르(Robert Guiscard)와 로제르(Roger)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러나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고, 다만 그가 교회의 여러 직책에 있다가 큰 스캔들을 일으켜 은수자로 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지르젠티(오늘날의 아그리젠토, Agrigento)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모슬렘들이 파괴한 성당들을 재건하는데 헌신하였다. 또한 그는 유대인과 사라센인들과도 접촉을 시도하여 많은 이들을 개종시켰다. 이에 대한 그의 성공은 과히 기적이었다고 전해온다.
성녀 발부르가 (Walburga)
신분 : 수녀원장
활동지역 : 하이덴하임(Heidenheim)
활동연도 : 710?-779년경
영국 웨식스(Wessex)의 데번셔(Devonshire)에서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2월 7일)의 딸로 태어나서 윔보른(Wimbourne)에서 수녀가 된 성녀 발부르가는 크레디톤(Crediton)의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월 5일)와 더불어 독일의 선교사로 활약했던 성 빌레발두스(Willebaldus, 7월 7일)와 성 비네발드(Winebald, 12월 18일)의 여동생이다.
761년 성 비네발드가 선종했을 때 그녀는 성 비네발드가 설립한 하이덴하임의 남녀 이중 수도원의 장상직을 맡아 일생동안 헌신하였다.
영국 출신인 성녀 발부르가 원장은 독일인의 풍습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지혜로운 여성이었다.
그녀의 경당은 '신비스러운 기름'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2세(Hadrian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자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 (Sebastian Aparicio)
신분 : 3회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1600년
같은이름 :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세바스티아누스 아파리치오(Sebastianus Aparicio,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에스파냐의 갈리시아(Galicia)에서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양치는 일을 해왔다.
15세 때에 그는 살라망카(Salamanca)의 어느 과부 집의 종으로 들어갔는데, 그 부인의 유혹이 심하여 즉시 나왔다.
그 후 그는 산 루카스에서 농부의 일을 거들었는데, 항상 기도와 묵상에 열중하며 8년 동안 일한 결과 여동생의 결혼 지참금을 넉넉히 벌게 되자 고향으로 왔다가 아메리카로 떠났다.
그는 멕시코의 푸에블라(Puebla)에 정착하여 농사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장사, 건축 등으로 성공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돈을 자기만의 소유로 생각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권위는 에스파냐 사람은 물론 인디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는 부유한 가운데서도 극도의 엄격과 절제를 실행했고, 매트 위에서 잠잤으며,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으로 만족하였다.
1552년 그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전원생활을 즐겼는데, 20년 동안이나 땅을 개간하고 소를 키웠다.
60세 때에 그는 어느 가난한 처녀와 결혼하였으나 부인이 곧 운명하였고 다시 재혼하였으나 그 생활도 오래 가지 않았다.
70세가량 되었을 때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곧 있을 것으로 믿고, 모든 재산을 클라라회에 기증한 뒤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원이 되었다.
그 후 그는 멕시코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서 수련자로 지냈고, 푸에블라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문전걸식을 하며 지냈다.
그는 동물을 극히 사랑하고 친하게 지낸 것은 유명하다.
그는 90세의 나이에 선종하였다.
그는 1787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