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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에 병실엔 그녀 밑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를 앉히고 병원 앞 포장마차에 나온 기연과 지
후......
1시간째 한마디도 않고 술을 먹고 있는 기연과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지후의 모습 때문
에 작은 주홍색 불을 비치는 포장마차까지 어두워지고 있다.
계속해서 자신에 옆에 쌓여가는 술병과 입으로 들어가는 독한 소주가 오늘따라 더욱더 취하
지 않는 느낌이 드는지 기가 막히다는 듯 웃음을 흘리는 기연....... 그의 눈이 또 다시 눈물이
맻히고 있다.
“ 정말.. 미치겠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난 술이 안취하는 거야.......... 뭐 때문에 그렇게
정신이 놓쳐지질 않는 거냐고.......... 정말 이럴 땐 땅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 죽고 싶어. ”
큭큭 대며 고개를 숙이는 기연을 보며 그의 손에 잡힌 술병을 뺏는 지후..... 고개를 올리는 기
연이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지후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다.
기연이 눈이 많이 먹은 술 때문인지 여태와는 다르게 많이 풀려 있다.
“ 뭐야... 형........ 나 형 술 먹는 거 처음 봤어. 술도 마실 줄 알았단 거야? 야~ 감동인데......
우리 사랑하는 형님이 술도 드시고...... ”
술 한 잔을 꺽은 지후가 굳은 얼굴로 웃고 있는 기연을 본다.
짧은 검은 머리.... 그리고 살짝 각인 진 강인하지만 하얀 얼굴과 어떻게 보면 인텔리 적인 회
사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한 회색빛 정장을 입고 있다.
도저히 한 조직의 주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외모를 지닌 그는 그의 냉혹하고 철저히 마
음을 숨기는 눈만이 그의 위치를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굳게 닫혀서 아무도 열지 못할 것 같은 지후의 입에서 말이 튀어 나온다.
“ 당황할 생각이라면..... 어린아이처럼 울고불고 늘어질 생각이라면 포기해. 난 너의 그런
꼴 .. 보지 않을 거니까... ”
차갑디 차가운 지후의 말.... 그런 지후를 기연이 고개를 들고 쳐다본다. 또 다시 흐르는 한 방
울의 눈...... 그 눈물을 손으로 무의식적으로 닦아 낸다.
“ 뭐야..... 지금 그게 동생한테 하는 위로의 말이야? 그렇게 밖에 할 말이 없어? 도대체 왜 내
주위엔 이런 사람들만 있는 거야. 한명은 나이가 마흔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자신이 17살이라
고 생각하고 또 한명은 심장이 얼음으로 되어 있는지.... 같이 이렇게 앉아 있어도 숨소리조차
느껴지질 않아. 그래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나한테..... 둘 다 너무 한거 아
니야.... ? ”
애처롭게 말하며 또 다시 소주잔을 입에다 가져가는 기연을 지후가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쳐다본다.
자꾸만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기연이 안타깝긴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위로라... 그거하면 달라지는 거야? 뭐가 달라지는 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닦아 주면서
어떡하냐 어떡할까?.. 이런 말이라도 나누면 어머니 병이 달라진대? 그 머릿속을 꽉 차고 있
는 그 종양들 다 사라진대? 그런 썩어빠진 생각 넌 이제 버릴 때도 됐잖아. 아직도 니 자신을
몰라? 니가 처해진 상황을 모르냐고....... ”
아니.... 기연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 주위엔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과 일명
건달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속에서 자라왔던 그 어둡던 삶.....
어머니의 직업 때문에 기연은 술집에 나오는 아가씨들에게 기저귀를 갈았고 우유병을 무는
법을 배웠으며..... 술집 복도를 첫걸음으로 첫발을 내딛었었다.
그리고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처음 담배와 술을 배웠다. 하지만 그들은 기연에겐 슬
픔을 그리고 위로를 사랑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냥 마음속에 담아 두는 것 뿐....... 표현하지는 않는 것이다.
기연이 다시 술을 먹는 지후를 본다. 박지후...... 자신에게는 아버지이자 형이자 친구인 사
람.... 그리고 어머니의 두 번째 남편의 아들.......
성격은 냉철하고 일에선 잔인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중.....
한사람...
그를 보며 가슴 한구석이 차갑게 식고 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오늘따라 지후가
너무나 낯설다.
“ 하지만 그건.... 그냥 상황이잖아.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 이럴 땐 위로가 필요하다
고...... 제길....... 마음에 담아두면 그게 다야? 그게 다 끝나냐고.... 모르는 척 그걸 상관안하
면 그냥 끝나? 없었던 일 되는 거 아니잖아.... 형..... 난 오늘 위로가 필요해..... 형의 그 넓은
어깨가 필요하다고........ 그니까..... 오늘은 제발..... 날 몰아 넣지마..... 정말..... 그러지
마....... ”
기연의 말을 들어도 변하지 않는 얼굴..... 그리고 그의 눈...... 기연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지금 어머니를 진찰한 그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귀로 다시 한번 그 상황을 자신
이 납득할 수 있도록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는 몸.......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챈 건지 지후가 기연의 술잔에 술을 따른다.
“ 그 의사..... 정확하게 말한 거야. 나도 처음 그 말을 의심해서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 불러다
그 차트를 보게 했는데..... 결과가 맞대.. 지금 찾아가 봤자 그 사람 연락처도 알 수 없으니까
그냥 앉아. ”
그래... 그랬다. 기연은 박지후를 알았다. 어머니의 상황이 확실하지 않았으면 절대 한마디도
기연에게 내뱉지 않을 사람.... 그게 사실이라고 밝혀진다 해도....... 자신의 아는 모든 사람들
을 불러 다가라도 그를 설득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자신과 자리에 앉아 술을 먹지는 않으리라
는 것을.....
그래서..... 기연은 더욱 절망했다. 지후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거면..... 절대 그녀에겐 희
망이 없다는 이야기니까......
그 생각에 점점 또 다시 차오르는 울음....... 떨리는 목소리로 기연이 지후를 향해 말한다.
“ 그럼....... 그냥 그렇게 둬? 그냥 저 사람 죽으라고...... 그냥 저렇게 두냐고.... 방법이 없더
라도..... 살려야 하잖아. 나나 형한테 지긋지긋해도...... 그 사람은 내 어머니야. 형 어머니라
고 ...... 그런데 이렇게 우리는 술이나 먹고 있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이 난 형이 시키는 일
이나 하면서? 그럼 저 여잔 어떡해..... 저 불쌍한 사람은 어떡 하냐고.... 응 ? 형 ...... ”
“ 어떡할 수가 없어. 수술해서 열어봤자 그냥 다시 머리를 열었다 닫을 뿐이라고........ 이 우
리나라 최고의 의사들조차 선뜻 수술을 원하지 않아. 서로 맡으려 하지 않는 다고....
설상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그래서 어머니의 열어봐도 확실히 완쾌될지는 거의 희박하다고도
했어.
그리고 너 어머니 성격 몰라? 아신다 해도..... 절대 수술 같은 거안하실 거야..... 그냥 그렇게
지내실 거라고.... 우리가 그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건.... 멀리 가실 때까진 그냥 이렇게 묵묵
히..... 예전과 똑 같이 ....... 그냥 사는 거 ..... 그것뿐이야... ”
점점 울음으로 떨리는 몸을 힘들게 지탱하며 지후에게 상처받은 아이처럼 물어보는 기연
“ 그냥 사는 거뿐이라고? 아무런 노력도 안해 보고? 난 그냥 이렇게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거야? ”
울먹이며 소리치는 기연의 말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마지막 잔을 다 비운 지후가 자
리에서 일어난다.
“ 오늘 넌 그냥 들어가. 어차피 병실엔 사람 있을 거고..... 나도 있을 거야. 어머니가 사실 아
시게 되면 이렇게 술 취한 너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 테니까..... 그 분에게도 시간을 드려. 먼
저 너에게 이야기 하실 때까지 아무 말도 티도 내지마. ”
표정 없이 묵묵히 말하는 지후가 기연에게 뒤를 돌아 포장마차에서 나간다. 다시 의자에 쓰
러지듯 앉는 기연..... 다리가 아까처럼 다시 떨리며 힘이 빠진다.
그리고 눈물이 고여서 뿌옇게 보이는 시선 속에서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녀 앞에는 6살짜리 남자아이였던 자신도 보인다.
언제나 입는 검은색 드레스.... 그리고 긴 머리를 살짝 내리고 곱게 화장을 한 그녀가 어릴적
자신에게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리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 기연아 ~~~~~ 이리와 !! ’
엄마의 부르는 소리에 기연이 토닥토닥 작은 발로 달려가서 안긴다. 그리고 따뜻한 엄마의
체온과 그녀에게선 언제나 느낄 수 있는 향이 진한 술 냄새와 독한 향수냄새와 섞여 기연의
코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지독하리 만큼 강한 냄새에 점점 그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또 다시 입에서 튀어나오는 울음소리.....
“ 제길...... 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