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에 홀로 사정(射亭)에 올랐다.
계절이 가을에 가까워질수록 물안개가 산 중턱에 있는 이곳 사정까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과녁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사정에서, 보이지 않는 바로 그곳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잠시 후 ‘퉁’하는 소리가 화살이 명중되었음을 알렸다. 그러나 두 번째 부터 세 번째 화살 까지는 과녁을 빗나갔고, 마지막 두 화살은 다시 또 명중했다.
나는 안개를 헤치며 과녁이 있는 곳 까지 천천히 걸어가 땅에 떨어져 있는 화살을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혼자서 두 순을 쏘고 나니 사원(射員)들이 하나 둘 사정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 G군으로 발령이 난 것은 1991년 1월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산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다는 이곳으로 자원해서 내려온 것이다.
내가 근무한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사원들 4-5명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내게 국궁처럼 좋은 운동이 없다면서,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활을 쏘며 건강을 회복하라고 권유했다. 나는 그들에게 1주일 뒤에 사정에 오르겠다고 약속했다.
활을 잘 쏘셨던 아버지는 고향의 연무정에서 사두(射頭)를 두 번이나 지내셨는데, 내가 대학생이 되면 활을 가르쳐 주시마고 다짐했지만 내 학업 때문에 그 약속은 뒤로 미루어졌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사정에 자주 올랐고, 정식으로 궁도를 배우기를 이제나 저제나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월 초에 아버지가 그만 생을 마치시고 말아 이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으로써 부자간에 나란히 사대에 서서 활을 쏘고자 했던 내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참으로 마음이 아파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약속했던 1주일 뒤 나는 활터인 봉덕정에 올랐다. 젊은 사원들이 나를 어르신들께 인사 시켜주었다. 그들 중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잘 알고 계셨다. 아버지 생전에 신세를 많이 졌다며,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열심히 배우고 익혀 아버지의 뒤를 이으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활은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잘 안 쓰는 근육을 쓰다 보니 활을 당기는 힘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지런히 당기다 보니 한 달 쯤 지나서 연습용 활 하나를 부러뜨릴 정도로 힘이 붙었다. 나를 지도해 주시는 사범님은 이제 활을 당기는 힘이 좋아지고 있으니 곧 사대에 서도 되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활을 배운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사대에 서서 활시위에 화살을 재는데 웬일인지 마음이 흔들림이 없이 차분했고, 자세 역시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내가 화살 3개를 연달아 명중시키자 사원들은 쥐죽은 듯 조용히, 오직 귀와 눈으로만 내가 다음 화살을 명중시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개가 명중하고 화살 하나만 남았을 때 사대(射臺)에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지만 이 날 따라 이상하게 나는 전혀 동요가 되지 않았다. 그 자세 그대로 나는 활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마지막 화살마저 과녁에 여지없이 꽂히는 것이었다.
‘5시5중’(五矢五中) -화살 다섯 개를 모두 맞힌, 이른바 몰기(沒技)를 한 것인데, 사범님의 말에 의하면 몰기를 하면 ‘접장’이라는 칭호를 받는다고 했다.
활쏘기가 끝난 후 나는 사원들에게 차 한 잔씩을 대접했다.
한 고참 사원이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군!”이라고 했다. 나를 가르쳐 주시는 사범님과 선배 사우들도 매우 기뻐했고, 나에게 활쏘기를 권유했던 젊은 사원들 역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좋아라 했다.
물안개는 연일 사정을 감싸 휘돌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계속 쏘았다. 다음 주에 있을 궁도대회에 명단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이 들어가서 인지 화살이 잘 맞지 않았다. 활은 자신의 마음을 실어 보내는 것이란 말이 과연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낌없이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S군에서 열리는 궁도대회 참석을 위해 군청에서 버스 한 대를 내어 주었다. 그리고 음료수와 간식거리도 차에 실었다. 날씨는 맑고 푸르렀다.
그러나 타지에서 처음으로 치러보는 대회라서 그런지 나는 적응을 잘 하지 못해 성적이 영 부진했다. 우리 팀 전체적으로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는 이 대회를 새로운 자극제로 삼아 내년 대회에는 더욱 분발하기로 다짐했다.
오늘 새벽에도 안개 자욱한 사대에 홀로 서있는데 내 등 뒤에서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제법 실력이 늘었구나.” 분명 부드러운 음성의 아버지 목소리였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실비 같은 안개만이 자욱할 뿐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해진 내 두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따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몹시도 보고 싶었다.
(끝)
첫댓글 활은 자신의 마음을 실어 보내는 것이란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도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는데 안 넘어지거나, 일상 속에서 겪을 만한 불상사들을 피해갈 때 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돌봐주신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미 '접장'이 되셨으니 다음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 거두실겁니다! ^^
존경하는 안유정님!
제가 쓴 글이지만 이 글을 다시금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격려해주신 돌봄 잊지 않을게요
아버님이 생전에 보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제 마음도 선생님과 똑 같습니다.
막상 좋은 시절이 왔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으시더군요.
활뿐 아니라 제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면 어떠실까요?
아마도 하늘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 것만 같군요
활을 잡게 하는 건
아들에게 인생을 가르치려는
아버지 마음인 것 같네요.
화살이 과녁을 향해
제대로 질주할 수 있도록
지탱하는 아버지의 자리가
활이겠지요.
좋은 수필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멋진 표현이군요
아버지의 뜻이 사후에라도 조금 이루어젔으니......
그리고 격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자도편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