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지금 악업을 저질렀지만 그 과보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좋아하거나 안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부처님께서는 “업에 따른 과보는 그림자처럼 그 사람을 따라 다닌다.”고 말씀하셨고, “선업에는 선과가 따르고, 악업에는 악과가 따른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항상 선업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다”라고 하셨다.
모든 중생이 생전에 잘살고 훌륭한 원을 세워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난다면 무슨 근심이 있으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모두가 편안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남은 가족들은 망인이 더 좋은 세계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마련이지만 죽은 사람의 한평생 업을 살펴볼 때 자유롭고 좋은 세상에 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이러한 중생들의 열망에 응하여 석존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천도법이다. 불보살의 크나큰 자비를 근거로 삼아 죽은 이를 보다 좋은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영가 천도의 묘법이 불가(佛家) 집안에는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은 맞게 되는 절망의 순간, 되는 일이 없는 자신의 운을 탓하며 삶을 포기하고 싶은 그때에 《보왕삼매론》의 말씀은 좋은 처방약이 될 것이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안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마음이 경솔하고 태만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劫)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어려움 속에서 도(道)를 얻으셨느니라.
인연설 중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불가에서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당부하는 말로 ‘수행이 성숙하면 저절로 때가 돼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해 보면 성심성의껏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반드시 적당한 시기에 그 뜻을 이룰 때가 온다는 뜻일 게다. 이 깨우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중생들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는데 그건 바로 ‘기다림’의 철학을 몸소 새겨 두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연이란 정확한 것이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그 맺는 인연에 달려 있는 것이고, 그 일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은 시절인연이 언제 도래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괜한 투정과 억지, 원망으로 시간을 소진하거나 자포자기할 일이 아니다.
이 몸이 태어나기 전을 생각해 보라. 어떤 모습이었을까. 또 죽은 뒤를 생각해 보라. 무슨 꼴이 될까?
늘 계속되는 불행이란 없다. 참고 용기를 내서 쫓아내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악의 과보는 그림자가 형상을 쫓는 것과 같아서 삼세의 인과는 순환하여 어기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생이 괴로우면 내세에도 괴로움을 받는다. 이 괴로움은 악업의 과보이니 다시 또 다른 데서 괴로움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또한 ‘아무리 급해도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다’는 말도 있다. 요즘처럼 상식이 무시되고 급행료가 횡행하는 시대에 천천히 한 발 한 발 정도를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임이 서글플 뿐이다.
연기(緣起)를 믿고 인내하는 지혜로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요즘이다.
묘심화스님 : 자비정사 주지 www.mswjbj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