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이남의 최고 명문으로 비상(飛翔)하다 1960~1980
4-1 3.8 학생의거의 선봉에 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국민들의 삶이 곤궁한 가운데서도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는 날로 심해졌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법 부정선거가 횡행하자
본교 1천여 명의 학생들은 3월 8일에 7개항의 결의문을 발표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많은 학생들이 부상당했고, 5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의 3.8의거는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박선영(40회)과 박제구(40회) 동문에게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훗날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한 역사적인 업적으로 인정받음에 따라 동문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2005년에 자료집을 발간하고, 2006년 7월 둔지미 공원에 ‘3.8민주의거기념탑’을 세웠다.
4-2 4.19혁명의 눈부신 꽃으로 산화하다
3.15 정·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로 점철되면서 그해 4월 19일 학생들의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되자
자유당 정권은 발포 명령을 내리고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4.19혁명에 동참했던 본교 졸업생 3명이 희생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서울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손중근(孫重瑾, 36회), 경희대 4학년이던 이기태(李基泰, 36회), 중앙대 3학년이던 고병래(高炳來, 37회) 동문이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과 발포로 숨을 거둔 것이다.
1962년 6월 23일. 학교와 동창회는 세 사람의 구국정신을 기려 대고 동산에 기념탑을 세우고 ‘현정탑(顯正塔)’이라 명명하였다.
4-3 교육 시설의 정비와 확충
주한 미군의 실화로 건물이 전소된 후 가건물을 지어 교사로 사용했으나
워낙 협소한 데다 운동장마저 미군이 점유하고 있어 교사와 학생들의 불편이 극심하였다.
우선 부족한 교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9년 7월 3층 본관 신축공사에 착공하여 1962년 6월 10일에 준공하였으며,
유도장만 남긴 채 기존 건물을 철거한 후 운동장으로 사용하였다. 미군으로부터 교지를 돌려받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었다.
본교는 오랜 설득 끝에 대전시 도마동 소재 국유지 1만 평을 미군 이전부지로 제시하여
1965년 6월 15일에 이르러서야 교지를 인도 받을 수 있었다. 본교는 미군이 이전한 교지를 정지하여 운동장을 조성하였다.
1964년 2월에는 2층 규모의 도서관 건축공사에 착공하여 1967년 5월에 준공하였다.
1966년 11월 3일에는 4층 규모의 본관 신축공사에 착공하여 1972년 9월 30일에 완공하였으며,
1974년 11월 강당 및 체육관을 착공하여 1975년 5월에 준공하였다.
4-4 장백의 정기와 남팔남아의 기상으로
1960~1970년대는 대전고의 황금기였다. 본교가 ‘한강 이남의 최고 명문’으로 불렸던 것은 두드러진 학력 신장 덕분이었다.
서울대 합격생 숫자로 교육의 질을 평가하던 당시. 본교는 매년 세자리 숫자의 합격자를 내고 단과대 수석을 3명까지 배출하였다.
특히 1974년에는 송기호 군이 대입예비고사에서 전국 수석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또 본교는 경희대가 1957년부터 주최한 전국고교학력경시대회에서 10회 대회까지 1위만 6차례를 차지할 만큼 독무대를 이루었다.
4-5 주요 학생활동
1949년 출범한 학도호국단은 4.19혁명 이후 학생회로 대체되었으나,
1975년 6월 7일 학도호국단 설치령이 공포됨에 따라 본교에서도 6월 30일 학도호국단 발대식을 갖게 되었다.
학생활동은 체육부를 중심으로 다채롭게 펼쳐졌으나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는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학예부의 활동은 점차 영역을 넓혀 나갔다.
연극반은 1966년 11월에 열린 백제문화제 연극경연대회에서 단체 최우수상과 개인상을 차지하였다.
미술반 역시 전국 규모의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많은 화가들을 배출하였다.
문예반은 ‘한모문학회’를 조직하여 1962년에 문학동인지 「石蘭」을 창간하여 연간으로 23집까지 발간하였다.
1963년에는 발간이 중단되었던 학보를 「대고 학보」란 이름으로 속간하여 1966년 7월까지 발행하다가 중단하였다.
1963년 5월에는 음악반이 대전 시민관에서 개교기념 제1회 음악연주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행사는 1965년부터 문학, 음악, 미술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제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