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철에 주의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과거엔 먼지만 애써 피하면 됐다. 그러나 요즘은 황사에 포함된 납ㆍ카드뮴ㆍ수은·알루미늄 등 유해 중금속도 조심해야 한다. 황사 발원지에서 한반도로 이동하는 도중 다렌ㆍ베이징 등 중국의 중공업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사 때 외출하면 유해 중금속이 몸에 쌓일 수 있다.
황사에 섞여 있는 중금속을 돼지고기가 제거해준다는 속설이 있다. 민간에선 오래 전부터 돼지고기를 체내에 쌓인 먼지ㆍ석탄ㆍ분필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식품으로 여겨왔다. 직업상 석탄ㆍ분필 가루에 노출되기 쉬운 탄광 직원ㆍ교사가 퇴근 후 돼지고기집을 즐겨 찾았던 것은 이래서다. 지금도 황사철엔 삼겹살이 인기 회식 메뉴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돼지고기가 정말 중금속 제거에 효과적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국내에서 두 차례 수행됐다. 첫번째는(1998년) 실험동물인 흰쥐를 이용한 연구였다. 결과는 돼지고기가 첨가된 사료를 먹은 흰쥐의 혈중 중금속 농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두 번째 연구는 직업상 중금속 노출 빈도가 잦은 사람(58명)이 대상이었다. 이들에게 돼지고기(제육볶음ㆍ돈가스ㆍ돼지갈비) 100∼150g을 매주 2∼3번씩 6주간 제공했다. 이 연구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섭취한 공장 근로자의 혈중 납ㆍ카드뮴 농도가 섭취 전에 비해 각각 2%ㆍ9%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결과만으로 돼지고기를 황사 디톡스(해독) 식품으로 인정하기엔 미흡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자체 평가다.
“돼지고기가 중금속의 배출을 돕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가설은 녹는 점이 체온보다 낮은 돼지고기의 지방이 중금속에 달라붙어 함께 체외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했다. 다수 전문가들은 돼지고기가 황사철에 유익하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부족하며, 굳이 삼겹살을 고집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고 조언한다. 순전히 중금속 해독을 위해 돼지고기를 일부러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을지대병원 을지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조용선 교수). 오히려 동물성 지방이 많은 든 돼지고기를 과다 섭취하면 비만·고지혈증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한방에선 몸이 찬 사람은 황사철에도 돼지고기를 가급적 피하라고 충고한다.
민간에선 양파·마늘·미역·다시마·클로렐라·녹차 등도 황사철의 권장 식품이다. 중금속 배출을 돕는다고 봐서다. 이들의 체내 중금속 배출 효과를 확실하게 밝혀준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 전문가들은 미역ㆍ김ㆍ다시마 등 해조류의 알긴산(식이섬유의 일종, 미끌미끌한 성분), 녹차의 카테킨(항산화 효과, 떫은 맛 성분)에 기대를 건다. 더욱이 이들 식품은 하나같이 웰빙 식품이어서 황사철에 즐겨 먹는다고 해서 손해볼 일은 없다. 그러나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맹신은 금물이다. 이런 음식이 황사의 독(중금속 등)을 제거해줄 것으로 과신해 마스크 착용·손·얼굴 씻기·양치질·보습제 바르기 등 개인 위생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일단 몸에 들어온 중금속은 잘 배출되지 않는다. 사우나를 하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일부 빠져 나가지만 그 양은 미미하다.
중금속이 몸에 과하게 쌓이면 피로ㆍ집중력 저하ㆍ입맛 감소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감기에 걸린다. 혈액순환도 나빠진다.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우울증에 빠지거나 성격이 공격적으로 변한다.
양의학엔 중금속을 체외로 내보내는 똑 부러지는 치료법이 없다.
보완·대체의학에선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방출하기 위해 킬레이션 요법(킬레는 그리스어로 가재의 집게)ㆍ디톡스(detox는 해독) 요법을 활용한다. 이중 킬레이션 요법은 중금속 제거 효과가 있는 EDTA 등 약물을 정맥으로 주사하는 중금속 배출법이다. 디톡스는 주로 식품을 이용해 중금속 등 체내의 독을 내보낸다.
황사철에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은 물이다. 황사에 가장 취약한 조직은 호흡기인데 수분이 부족하면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져 유해물질의 침투가 용이해진다. 또 물을 많이 마시면 체내에 들어온 중금속이 희석된다. 소변·땀 등의 형태로 중금속을 몸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황사가 폐ㆍ기관지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대신 식도→위→장→항문으로 빠져 나가게 한다. 기관지를 촉촉하게 적셔서 목이 쉬거나 잠기는 것도 막아준다. 따라서 황사철엔 하루 약 8~10잔의 물을 의식적으로라도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최민규 교수).
물을 많이 마시기가 부담스럽다면 오미자차ㆍ결명자차·감초차·갈근차 등 허브차를 따끈하게 끓여 수시로 마시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황사로 인해 기관지 질환이 생겼다면 커피·콜라·사이다 등 이뇨 효과가 있는 카페인 함유 음료의 섭취는 제한한다. 카페인 음료를 과다 섭취하면 기관지가 건조해져 황사의 중금속 등 유해물질의 체내 유입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잡곡밥과 제철 과일ㆍ채소 등도 황사철에 권할만한 식품이다. 입·코로 들어온 황사는 장까지 내려올 수 있다. 이때 고(高)식이섬유 식품은 장운동을 도와 황사를 신속하게 몸밖으로 내보낸다. 식이섬유는 또 황사의 중금속과 결합해 함께 체외로 빠져 나가기도 한다.
황사나 황사의 중금속은 우리 몸에 유해산소와 염증 반응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과일·채소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식품을 즐겨 먹는 것이 좋다. 유해산소·염증을 없애는 항산화 성분은 비타민 A·C·E와 베타 카로틴·폴리페놀·셀레늄 등이다.
황사철에 특별히 피해야 할 식품은 없다. 포장마차나 길거리에 진열된 식품, 야외에서 조리된 식품은 황사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포장되지 않은 채 노점에서 팔리는 과일·채소·수산물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품은 가급적 구입하지 않는 게 좋다.
한편 황사로 인한 각종 증상을 가볍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방약초도 몇가지 있다. 황사로 인해 콧물ㆍ코막힘 등 알레르기성 비염 증세가 악화됐다면 오미자차나 생강ㆍ대추차를 하루 서너번 마실 것을 권해본다. 오미자 8g에 물 3컵을 부은 뒤 양이 반으로 줄 때까지 중간 불로 가열하면 오미자차가 완성된다. 주전자에 마른 생강이나 생 생강(3개)·건 대추(10개)·물(5컵)을 넣고 양이 절반으로 줄 때까지 열을 가하면 생강ㆍ대추차가 얻어진다.
황사 탓에 가려움과 피부건조증이 심해졌다면 감초차나 갈근차(칡차)가 유익하다(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한방재활의학과 송미연 교수). 따끈하게 끓여 하루 서너번 마시면 좋다. 감초차ㆍ갈근차는 감초 또는 칡 8g에 물 3컵을 넣고 반으로 줄 때까지 가열해 만든다. 갈근차 대신 칡을 직접 갈아서 즙을 내어 마셔도 괜찮다.
황사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칼칼하며 숨이 가빠오고 기침이 쉴 새 없이 나오는 등 천식 증세가 악화된 사람에겐 도라지차·오미자차를 추천한다. 도라지차와 오미자차는 도라지나 오미자 8g씩을 물 3컵에 넣고 중간 불로 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달이면 완성된다. 도라지차 대신 도라지 가루를 하루 4g 가량 먹어도 효과는 비슷하다. 도라지(한방명 질경)는 한방에서 폐의 기운을 고르게 하고 담을 삭이며 기침을 멎게 하는 약재로 친다. 오미자는 기침이 심하게 나고 숨이 가빠져서 기(氣)가 위로 치밀어 오르는 증상(천식)을 완화시키는 데 쓴다.
한방에선 호두와 은행도 천식 치료에 사용한다. 호두를 하루 3개씩 까서 먹으면 가래가 많아 숨이 차오는 증상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봐서다. 또 은행알을 매일 5개씩 먹으면 폐와 위의 탁한 기가 맑아지고, 기침과 숨이 찬 증상이 완화된다고 본다.
황사철에 눈이 침침하고 충혈돼 있으며 눈곱이 끼어 괴롭다면 갈명탕이 유용하다. 아침ㆍ저녁으로 하루 두번, 10일 가량 복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갈명탕은 갈근(10g)ㆍ결명자(10g)ㆍ감초(4g)에 물 1ℓ를 넣고 중간 불로 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달인 약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