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 '손잡기는 나중에'(자폐인의 사랑 이야기)가 대한민국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에서는 이와 관련된 온갖 종류의 논쟁들이 난무한다. 그중 나는 자폐인은 어느 정도까지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토론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선진국의 후진국에 대한 보호,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 남성의 여성에 대한 보호, 어른의 미성년자 보호, 정상인의 장애인 보호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하나를 해결하면 나머지 문제 모두를 해결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를 인류가 온전히 습득하면 이상향이 바로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속의 가해자가 유죄냐 무죄냐 하는 부분에 대한 판단은 너무나 쉽다. 이런 부분에서도 사람들의 의견이 갈린다면 그건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인간들의 통합이 불가능한 것처럼 인류가 화합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보는게 과학적이다.
가해자는 무조건 유죄이다. 그건 스스로에 대한 방어 능력이 거의 없는 자폐인 여성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무료 섹스, 금전적 이익)을 챙기려는 남자의 불순한 의도가 명백히 드러났기에 그러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만 가지고는 꼭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자폐인 여성 관련 과거가 파렴치하고 변호인단에서도 피고가 나쁜 남자라는걸 인정하고 자폐인의 나쁜 남자를 사랑할 권리를 보호하려고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한 사실 확인은 완전히 끝났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할 논쟁의 핵심은 피고가 나쁜 남자로 확인되지 않는 경우로 향해야 한다. 즉, 피고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을지라도 처음으로 자폐인 여성과 잠자리를 한 사건을 다루었어야 보다 바른 논쟁을 이끌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치 싸움처럼 개싸움으로 흐르는 논쟁은 사회에 피곤함만을 더하여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독재를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명분을 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정부를 무조건 비판하는 대열에 동참하는 비극의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발전하지 못할 일이라면 익숙한 시스템이 제일 좋은 시스템이다.
처음으로 그런 소송에 휘말린 정상인 남성은 나쁜 의도가 있어도 그 의도를 철저히 숨겨서 자신을 무죄로 만들고야 만다. 판사가 아무리 유죄를 선언해도 그를 지켜보는 법조인이외의 사람들은 모두가 피고인 편이 되는 것이다. 이런걸 바로 자기 보호 능력이라 하며 시대가 바뀌어 법이 더 합리적이 되면 다시 재판을 하여 무죄 선고를 받아낼 수도 있다. 현재도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하고 밤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강압이 없는데다 남자의 과거도 아주 깨끗한데 법리의 노예가 된 일부 판사나 검사같은 사람들이 아닌 이상 누가 그를 유죄라고 하겠는가? 제정신을 가진 법조인은 죄가 증명되지 않은 피고를 유죄로 판결하면서도 법리때문에, 외부적 압력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함을 명백히 알고 있다.
이런 식의 판단은 후진국과 국민과 여성과 미성년자와 장애인들에 대한 사건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만 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후진국과 국민과 여성은 자기 방어능력이 있고 미성년자와 장애인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고 법이 판단하는 사실 하나 뿐인데 상대적 약자는 상대적 강자 앞에서는 언제나 자기방어능력이 없다고 보는게 옳기에 위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전혀 그릇됨이 없다. 특히 국가의 경우엔 전과가 없는 경우가 없으니 후진국을 침탈한 선진국은 무조건 유죄이나 그로 인해 처벌받는 선진국은 없다.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의 성전 정신의 일반화뿐인데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겐 미친 생각에 불과하니 인류는 영원히 중요하지 않은 논쟁이나 계속할 운명이다. 현재로선 분명히 그러하다.
그러면 유죄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보호를 받는다고 알려진 존재들이 더 큰 이익을 보는가? 보호를 한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더 큰 이익을 보는가? 이 부분을 해결해야만 쓸데없이 피해의식에 빠져 세상을 저주하며 행복한 인생을 불행한 인생으로 재창조하는 어리석은 일을 막을 수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국가와 국민의 경우엔 보호하는 존재들이 보호받는 존재들을 약탈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 전체적으로는 후진국이 선진국을 국민이 국가를 보호한다고 보는게 더 옳다고 생각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내가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내가 줄곧 국가를 보호해 왔지 국가가 나를 보호한 적은 전혀 없다. 대신 직접적 피해를 준 일은 고엽제 피해와 교사 임용 거부 총 두번이나 있다.
반면 남자와 여자, 어른과 미성년자, 정상인과 장애인의 경우엔 판단이 아주 어렵지만 핵심을 들여다 보면 진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호가 약탈이 되는 경우와 정말 보호인 경우가 혼재하나 전체적으로는 보호가 맞다고 봄이 옳다. 사건 사고에 집중하면 이 경우에도 강자들의 약탈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들은 극히 일부의 사례임을 알고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경우엔 여성들의 평균 수명이 남성들의 그것을 압도하는 통계 자료를 가지고 보호가 분명하다고 추측할 수 있고 성인과 미성년자 그리고 정상인과 장애인의 경우엔 성인과 정상인은 미성년자와 장애인이 없어도 삶이 가능하지만 그 역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보호가 확실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페미니즘에 물든 현대 사회인지라 남자가 여자를 보호한다는 아이디어가 가장 동의를 받기 어려운 생각인데 유리천장이란 단어로 대표되는 고위층에 남자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가장 큰 반론의 근거물이다. 그러나 특권층 여성들이 서민층 남성들보다 더 고위층에 많음을 보여주면 이 반론은 아주 쉽게 허물어진다. 남성이 거칠고 여성이 온순함을 증거로 제시한다면 이는 서민층이 더 거칠고 특권층이 더 온순하다는 사실로 격파가 가능하다. 인생이 불행할수록 약탈을 많이 받을수록 인간은 거칠어지게 되어있다. 비록 여성일지라도 미성년자일지라도 장애인일지라도 온순하게 오래 사느니 거칠고 짧게 사는게 좋다고 생각한다면 즉시 실행에 옮기면 된다. 더 크게 거칠수록 더 빨리 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이이디어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강하다는 논리로 대신해야만 한다. 여성이 더 오래 살았는데 남성들의 보호를 받은 덕분이 아니라면 스스로 강해서 더 오래 살아남았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쓴 이 글이 사회적 약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국가간의 관계와 계층 그리고 지역간의 문제를 제외하면 약자들은 언제나 보호를 받고 사니 타고난 약함으로 인한 서러움이 대폭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열심히 약자들을 보호해주는지 장애 진단을 받으려는 정상인과 여자가 되려는 남자와 철없는 철부지로 남으려는 어른들이 줄을 설 지경이다. 심지어는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려는 부자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