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 서교빌딩에서 싱크탱크 성격의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계획을 발표 하고 있다. 안 의원은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에 이사장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소장에는 장하성 전 안철수 대선캠프 국민정책본부장을 각각 임명했다. ⓒ뉴스1 |
안철수와 최장집이 만났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인문카페 창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창립한다고 밝혔다. 이사장으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를, 소장으로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를 임명했다. 장하성 교수야 대선 전부터 안철수 측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지만 최장집 교수의 선택에 관심이 쏠렸다.
최장집 교수는 대선 전에는 민주당 손학규 고문의 후원회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후원회장과 싱크탱크 이사장의 위상은 다르다. 최 교수 역시 “손 전 대표 후원회장을 맡을 때 정치적 관계보다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와 친교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대선 때 후원회장으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대선이 끝나는 것과 더불어 자연적으로 해소됐다고 할까”라며 “공식적으로 손 전 대표와 관련된 직함을 맡고 있지 않다”며 이전의 역할에 대해 선을 그었다.
한편 이사장직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안철수 의원만큼 저에게 집요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정치와 민주주의를 배우고자 하는 열성과 열정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라고 설명한다. 안 의원이 최 교수에 대해 ‘삼고초려’도 아니고 ‘십고초려’했다는 말까지 언론에 나오는 상황이다.
정치학자 최장집이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4월, 최장집 교수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출사’는 그해 가을 조선일보가 그의 논문을 난도질하여 김대중 정부에게 ‘친북’의 색깔을 덧씌우려한 사건으로 귀결되었다.
당시 최장집 교수는 논문 왜곡을 통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조선일보를 상대로 5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은 월간조선의 기사에 대해 가처분 결정을 내리고 이미 배포한 잡지는 회수하라 지시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법원판결도 비판하고 나섰다.
이 사건은 조선일보가 비판을 멈추고 최 교수가 소송을 취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이한우 기자만이 자신을 비판했던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와 월간 말지 정지환 기자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지 않아서 이른바 ‘안티조선 운동’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최장집 교수는 이듬해인 1999년 4월에 ‘선거에서 보수 쪽 표의 이탈을 염려’하는 청와대의 뜻을 헤아려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그 후 최장집 교수는 연구와 저술에 집중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5)와 <민주주의의 민주화>(2006) 등 민주화 이후의 정치가 사회경제 문제를 악화시키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정당정치의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책들을 출판했다. 참여정부 말기에는 그런 관점에서 참여정부의 실패를 강조하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박을 받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최장집 교수는 박상훈, 박상표 등의 후학들과 함께 저술을 계속해 왔고 박상훈 대표가 운영하는 출판사 후마니타스는 최장집 교수의 저술을 내는 것은 물론 한국 사회비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해외 정치학의 고전들을 번역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최장집 교수는 2천 년대 중반 이후 줄곧 한국 사회 문제의 해법으로 ‘정당정치의 강화’를 내세워왔기 때문에, 무당파들의 지지를 얻었고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다소 탈정치적이고 행정편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만남이 의외라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맥락을 따져보면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은 아니었으되 전조는 있었던’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작년 11월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한 후 “안철수 현상이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꽤 많은 문재인 지지자들이 ‘안철수 현상’을 단지 거품이라 보았고 그가 후보 사퇴를 하는 순간 지나간 사건이 될 것이며 문재인이 무난하게 대통령이 될 거라 믿었던 반면 최장집 교수는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보았다.
|
|
|
▲ 경향신문 2012년 11월 27일자 31면에 실린 최장집 교수의 칼럼 |
그는 “안철수 현상은 두 주류 정당들이 적극적으로 대표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없었던 사회집단과 계층의 투표자들이 두 정당의 규모만큼이나 크다는 것을 실증했다”고 지적했다. 바로 그렇기에 정당정치의 강화를 해법으로 삼은 정치학자에게도 ‘안철수 현상’은 ‘정당정치를 경유하지 않은 포퓰리즘적 현상’이란 평가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그간의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당체제 밖에서 발생해 하나의 대안 정당 내지 정치 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성을 보였기 때문에 안철수가 퇴장한 다음, 그를 통해 대표되기를 원했고 그를 통해 분출되었던 커다란 정치적 에너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정당이 사회 각 영역의 문제를 매개해야 한다고 믿는 정당정치론자도 현재의 정당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기성 정당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라는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성 정당의 혁신을 요구하거나 기성 정당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 정당을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사실 이중에서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지를 판단내리는 것은 정치학자의 일은 아니라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는 과거 레디앙에서 “민주당을 강화할 것인지 독자적 진보정당의 성장을 지원할 것인지를 판단내리는 것이 정치학자의 몫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칼럼에서 최장집 교수는 “문제를 이렇게 본다면 기존 정당들과는 종류가 다른 새로운 외생정당의 출현을 통해 한국 정치가 좋아지는 경로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외생정당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준 안철수와 그의 지지 세력들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보기에 따라선 민주당을 내부에서 혁신하는 것보단 대안 정당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린 발언이라 해석할 수도 있고 그 대안으로 기존 진보정당이 아닌 안철수와 그의 지지 세력들을 주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 역시 최장집 교수의 이러한 발언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그는 지난 대선 정국에서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토론 과정에서도 최장집 교수의 발언을 인용했다. 그러나 당시 안 후보의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강하게 비판한 최 교수의 발언을 인용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최장집 교수의 발언은 친노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근거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정계 복귀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의 스탠스는 다소 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영화 <링컨>을 언급하며 ‘결과’를 내는 정치의 중요성을 말했고 최장집 교수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2012)을 언급하며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후자의 책은 굳이 비행기에서 독서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히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책에서 최장집 교수는 안철수와 같은 카리스마적 정치인이 정당을 대체하는 현상 자체는 포퓰리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책의 곳곳에서 자신이 대면한 삶의 현장에서 정당을 발견할 수 없었음을 토로한다. 사회문제를 매개해야 할 정당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비판자들이 아니라 정당 자신이었던 셈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시 서민들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대변하는 정당,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정당의 출현을 바랄 수밖에 없다. 카리스마적 정치인이 포퓰리즘을 넘어 기성 정당을 혁신하거나 제 역할을 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안철수 의원이 굳이 이 책을 골라 사진을 찍히면서 책 내용에 대한 고려를 안 했을리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부터 ‘새정치’를 내세웠다고 그 내용이 동일하다거나 그가 전혀 발전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안철수 의원이 <링컨>과 최장집을 끌어들인 건 ‘새정치’라는 슬로건을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서민들의 사회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수정했다는 사실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궐선거 과정에서 그가 “새 정치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라며 “서민과 중산층의 목소리를 대신 내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새 정치”라 설명한 것도 이 해석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다만 안철수 의원의 이러한 노선 변경을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제대로 된 각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기성 정당, 특히 유권자들에게 수권능력을 지닌 대안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주당을 넘어서기 위한 선택이었다 평가될 수 있다. 최장집 교수는 제3정당 쪽에 더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안철수 의원은 지금까지 그랬듯 곧바로 현재 시점의 구상을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실현가능성은 적지만 같은 구상을 가지고도 ‘민주당을 접수’한다는 명목으로 입당할 수도 있는 문제이며 민주당이 '들어오는 안철수를 잡아먹으려고' 입을 벌고 기다릴 때 거기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굳이 못 박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와 최장집의 만남을 계기로 많은 언론들은 ‘안철수 신당’의 출현이 가시화되었다 분석하고 있다. 정당을 곧바로 띄우지는 않더라도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통해 ‘새정치’의 각론, 민생정치의 내용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 왔다. 입각 이후 상임위배정이 늦어지며 아직까지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안철수 의원이 ‘안철수발 정계개편’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최장집 교수가 이사장이 된 ‘내일’의 활동에 달려 있다.
|
|
|
▲ 안철수 의원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으로 임명된 최장집 명예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싱크탱크 성격의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계획을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첫댓글 최교수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강력한 민주정당을 만드는 기초와 골격을 세우는데 있어 최적의 인물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