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로마의 밀정인가.
로마서 13장 1-7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바울이 로마의 밀정이 아니라면,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라는 망언을 할 수 없다. 더구나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므로 가이사의 권세와 권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비유해 본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주기철 목사가 동경에 거주하고 있는 동경 유학생들과 동경에 머물고 있는 거류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권면하는 편지를 썼다고 가정해보자. 구구절절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편지 말미에 '일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 위에 있는 권세이니 누구든 그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니 그의 권력에 굴복하시오'라고 써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개신교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바울의 로마서 13장 전반부가 마치 그와 같다.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일제에 항거한 순교자로 추앙하는 개신교가 아닌가. 만일 주기철 목사가 위와 같은 서신서를 썼다고 한다면 망발이고 망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뿔사, 로마서 후미에 있는 위의 글은 마치 그와 같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권위에 눈이 멀어 그냥 아멘하고 아무런 감각이 없다. 아니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의 금지옥엽으로 이를 채택해 그들의 신앙적 태도의 전범(典範)으로 삼고 있다.
이후 가톨릭교회는 순명 제도를 탄생시켰고, 조직의 운영시스템을 체계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모든 위에 있는 권세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고 그것에 순명을 요구하고 있다. 개신교 기독교는 개교회별로 운영되나 교회별 운영 시스템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에 있는 권세' 가 그 같은 국가 운영시스템과 권력의 정점에 있는 왕이나 혹은 대통령 그리고 그 아래 서열화 된 권력의 체계를 말하는 것일까. 바울은 정녕 로마의 밀정이어서 로마서 말미에 위와 같은 대목을 담아 놓고 로마에 있는 유대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그같은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누군가가 가필하여 로마서 말미에 첨가한 것인가.
바울이 갑자기 이 대목에 와서 실성한 것이 아니라면 밀정임에 틀림없다. 로마의 국가권력과 가이사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면, 동시에 로마의 유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언표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바울을 위한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평가한다. 그렇다. 바울은 엄혹한 시절, 로마의 시민권자로 로마의 권력을 정당화하는듯 보인다. 겉으로만 읽는다면 그렇다. 로마서를 쓰며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돌려 읽기를 바라고 이 편지를 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는 로마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은 아닐까. 하여 그 겉으로는 로마의 권력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위와 같은 내용을 덧붙인 것은 아닐까. 로마의 권력으로부터 이 편지가 살아 남은 까닭이기도 하지 않은가. 바울은 위와 같은 레토릭으로 로마의 정치 권력으로부터 면피 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위의 글은 텍스트에 숨겨 놓은 바울의 더 깊은 코드를 수신자가 읽고 해석해야 한다. 로마서의 전체 맥락에서 위 글을 읽지 않으면 도무지 바울의 문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지경이다.
물론 로마서가 정경에 채택된 후 위의 언급으로 년년세세 종교는 정치 권력과 결탁하고 불륜을 지속할 수 있는 명분을 삼고 있다. 그런 빌미를 준 점에서 바울의 더 깊은 의도와 상관없이 역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은 지난간 세월이고 지금도 여전히 종교에 영향력을 미치는 텍스트로 남아 있으니 재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김하고 기존의 이해를 전복시켜야 할 일이 오늘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로마서 전체의 맥락에서 위의 레토릭을 다시 해석해보고 나는 바울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재해석을 시도한다. 바울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정경으로 남아 어느 때까지든 텍스트가 갖는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그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위의 텍스트를 읽으며 할 수 있는 것이 겨우 그것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https://youtu.be/0iujb_RIuiM?si=9MQgTSHYAliQU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