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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노래
시편 3 : 1 - 8
오늘 읽은 시편은 말할 수 없이 위험한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이 하루 밤을 무사히 지내고 나서 부르는 아침의 노래입니다. 시편 제목에도 나와 있는 대로 이 시는 다윗의 시인데 그가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이 시의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하려면 구약 사무엘 하 15장에서18장까지를 읽어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누이 다말을 욕보인 그의 형 암논을 죽인 일로 인해서 가정에는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50명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일찍이 일어나 성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서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는 그 사람을 불러서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물어서 아무 성 사람이라 대답하면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를 베풀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압살롬이 왕께 대하여 딴 마음을 품고 이스라엘 무리 가운데 왕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을 꾀어서 그들의 마음을 도적질했습니다. 이렇게 왕이 모르게 4년 동안을 준비한 압살롬이 왕의 허락을 받아 헤브론에 가게 되었고 거기 가서는 자기가 이 나라의 왕이 되었다고 선언을 하고 요샛말로 하면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더구나 압살롬의 세력이 커지는 것 같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대중은 승산이 큰 쪽으로 붙기 마련이어서 압살롬에게 오는 백성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자가 다윗에게 와서 전달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스라엘 백성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대세가 이만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 왕은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들에게 “여보게들, 우리 다 함께 일어나 이곳을 피하세. 그렇지 않게 되면 여기 있는 우리는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고 압살롬에게 해를 볼걸세. 어서 빨리 가세.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두렵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궁궐을 비워 놓고 신복들과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백성들과 함께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백성은 이 억울한 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왕과 모든 백성은 기드론 시내를 지나 정처 없이 목표한 곳도 없이 무작정 광야 길로 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같이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어서 다시 성으로 돌아가라고 만류했습니다. 나와 같이 나서서 공연히 고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왕 다윗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면서 왕이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왕과 같이 운명을 걸고 따라가겠다고 나섰습니다.
다윗은 너무도 창피하고 기가 막힌 노릇이었습니다. 다윗을 반역하여 일어나 정적이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아들인 것을 생각할 때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면서 올라갔습니다. 그를 따르는 백성들도 한결같이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따라 올라갔습니다.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 같은 사람은 다윗을 맞아서 위로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처량한 형편에 있는 다윗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반면 다윗의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는데 게라의 아들 시므이같은 사람은 대세를 판단해 보니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기는 신세인 것을 알아채고 저주를 하며 다윗 왕의 모든 신복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야단이 났습니다.
“피흘린 자여, 비루한 자요,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 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청하였느니라.”
이 때 다윗 왕과 같이 가던 아비새 장군이 “대왕이시여, 이 죽은 개 같은 것이 어떻게 내 주 왕을 저렇게까지 저주할 수 있습니까? 저로 하여금 저놈의 머리를 당장 베어 버리도록 허락하시옵소서.” 이 때 다윗 왕이 아비새 장군에게 “여보게, 저가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 다윗을 저주하라 하신 거야.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말할 수도 없어. 이것 보게. 아니, 내 몸에서 난 아들이 지금 나를 죽이려고 하는 판국인데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야 말할 것 있겠나? 하나님이 시키신 거야. 저더러 나를 저주하도록 내버려둬. 혹시 하나님이 나의 이 원통함을 감찰하실는지 알겠나? 오늘날의 그 저주를 잘 참으면 그것 때문에 언젠가는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실 것일세” 하였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의 일행을 계속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며 저주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도망치고 압살롬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고 많은 사람이 압살롬을 향하여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며 환영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제든지 강자 편에 서서 아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말렉 사람, 후새 같은 인물입니다. 아히도벨 같은 사람은 압살롬이 자문을 청할 때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렇게 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이렇게 되면 왕을 모시는 사람들이 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압살롬은 궁궐 지붕에 장막을 치고 온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이제 내가 1만 2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의 뒤를 쫓아가 저가 피곤하고 약해졌을 때 엄습하게 되면 같이 따라가던 신복들이 다 도망갈 것이고 그때 다윗만 쳐부수면 같이 따라갔던 사람도 결국은 왕께 돌아올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옳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후새같은 사람은 더욱 잔인한 계획을 말했습니다. “왕의 부친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다 용사입니다. 저희는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처럼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병법에 익은 사람이기 때문에 잘 때도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어느 굴에 숨어 있을 것이요. 그러니 온 이스라엘에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모래같이 온 국민을 왕에게로 모으십시다. 그리고 왕께서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일시에 덮치면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전멸하고 말 것입니다.”
다윗이 이런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 어떤 모양으로 압살롬의 군대에게 변을 당할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그리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윗은 그의 신앙을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역경을 돌파한 위대한 신앙의 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1. 다윗은 어떤 역경을 당했습니까?
본문 1-2절을 보십시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했습니다.
원수가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압살롬의 편을 들어 달려들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의롭고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적들도 의인 한 사람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마귀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바로 서 있으면 이 마귀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데 때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듯한 불행에 직면하곤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온 세상이 나를 대적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 같을 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젊었을 때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웅덩이에 던짐 받아 비참하게 죽을 뻔 했습니다. 때마침 애굽에 가는 대상이 있어서 그들에게 돈 얼마를 받고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어려움과 시달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나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힘썼습니다.
청년으로서는 정말 이기기 어려운 시험과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을 잘 물리쳤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큰 상이 있어야 마땅한데 상은 고사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처럼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할 수 있을까 불평할만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죄수의 몸으로 있으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 오해를 받아 고생하는 관원의 꿈을 잘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원은 정말 요셉의 해몽대로 복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만 그 사람은 요셉의 고마움을 갚겠다고 말만 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요셉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볼 때 그는 사람으로서 참기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불평이나 원망, 아니 한숨 한 번 내쉬지 아니하고 굳건히, 그리고 늠름하게 모든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종래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높이 올리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형들이 말하기를 “이제는 아버지도 세상에 안 계시니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라며 걱정하였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요셉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였습니다.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이 말을 전해 듣고 있던 요셉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왜요? 자기 마음속에는 형들에 대한 미움과 없고 원수 갚을 생각은 더구나 없는데 왜 이렇게 생각할까 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인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너희가 모르나 이후에는 알리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이 어려움을 통해서 나에게 또 무슨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그러시나 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빌립보 지방에 가서 말씀을 전하여 되었는데 한 곳에 기도하는데 점치는 귀신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귀신 들려 귀신의 힘으로 점을 치는데 그녀의 주인은 그것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쫓아와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고 했습니다. 여러 날을 그러기에 불쌍해서 그 여종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귀신이 나가 깨끗해졌지만 반면에 귀신을 통해서 점치던 것을 못하게 되니까 그 주인의 수입이 없게 됐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가 시 당국에 고발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고 있소.” 이 말을 듣자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관리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튼튼히 지키라고 지시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발을 착고에 튼튼히 채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바울과 실라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한 마디의 원망도 불평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사실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밤중에 찬미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의 선한 목자가 되어서 나와 함께 하셔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위험스러운 곳을 걸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 이유를 다 모릅니다. 때로는 실패의 골짜기, 때로는 질병의 골짜기를 걷습니다. 때로는 눈물의 골짜기를 걷습니다. 왜요?
어두운 골짜기를 걸을 때에야만 오직 목자의 인도를 따르고 목자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내 주의 사방이 캄캄해서 보이지 않을 때에 오히려 눈을 들어 새벽별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인류 역사 가운데 보면 캄캄한 골짜기를 걸으면서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론 인하여 내가 주의 규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욥 같은 사람도 얼마나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까?
우스 땅에서는 소위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7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재산도 넉넉한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자랑하고 마귀가 시기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욥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많던 소유, 그 훌륭한 자녀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이 때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으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라.”라며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자신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었느니라.” 이 때 사탄이 얼마나 악하나 보세요.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탄이 욥을 치는데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처량합니까! 재산, 자녀 다 잃고 건강까지도 잃었습니다. 욥의 아내도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이때 욥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 이렇게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신앙입니까? 그는 친구들의 말에도 영향받지 않고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게 될 때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의 간증입니까?
자녀가 상급 학교에 진학만 못 해도 이불 쓰고 드러누워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 사업이 좀 어려워져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낙심되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2. 다윗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요동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다윗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역경에 직면할 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의 간증대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 대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함은 하나님의 오른 손이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쓰러질 때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되십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의 해결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는 것 같을 대 오히려 그를 가리켜 나를 돕는 자라고 고집하고, 의심날 때 한층 더 신뢰하는 그 믿음이 참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환난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4절에 보면 기도의 응답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소박한 신앙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소유자는 걱정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어떠한 역경 중에서도 요동치 않는 믿음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선한 양심과 회개한 양심은 무적 요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신앙이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이것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천사가 와서 깨우도록 감옥 안에서 아니 그의 생명이 언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까?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보세요. 도단 성에 있을 때 아람 군대가 3중 4중으로 포위했습니다. 그의 종은 눈이 둥그래지고 겁이 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아들의 눈을 밝히 뜨게 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아람 군대를 막아 서 있는 하늘의 군대와 병거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6절 말씀대로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하였습니다.
이제 7절을 보십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를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겪으셨나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신앙 체험을 생각하고 현재에도 신앙의 용기를 얻게 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소년 대 맹수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골리앗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사울 왕의 핍박 속에서도 건져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귀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하나님께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또 그를 믿으므로 안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에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래야겠습니다. 우리 중에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당하신 분 계십니까? 주님을 의지합시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건져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사람
시편 3편 1-8절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서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아무리 큰 문제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홍해 앞에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이겼습니다.
여리고성을 돌던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점령했습니다.
죽음 앞에 기도하던 히스기야왕!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사막에서도 생수를 맞을 수 있고, 사자굴 속에 들어가도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2005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거꾸로 또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이 만큼 된 것은 내가 힘이 있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심을 믿으세요!
우리 교회가 이만큼 부흥된 것은 인간 누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세요!
앞으로 저 곳에 하나님의 큰 성전, 우리의 꿈, 새 성전을 지을때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새 성전을 지은다음에 인간 누구도 영광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건강했던 분이 갑자기 병이 들어요.. 그러면 저에게 “목사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병이 드나요..”
또 가정에 시험이 왔어요. “목사님,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시험이 내 가정에 왔나요?”이렇게 묻습니다. 사업이 어렵습니다. 그러면 또 묻습니다. “목사님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닙니다. 물론 어떤 분은 잘못을 했기에 벌을 받는 분도 있지만은 여러분이 받는 대부분이 당하는 시련, 고통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아멘?
우리는 평안할 때 보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습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건강할 때는 건강의 복이 얼마나 귀한지 잘 모릅니다. 그냥 건강하니까 그런 줄 알지요.
그런데 한번 중한 병에 걸려보세요. 그러면 내가 건강하다는 것이 엄청난 복을 받고 있는 거구나, 그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환란을 통해서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고, 우리를 더욱 귀하게 쓰시려고 다듬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지금, 질병이 있습니까? 내 가정에 시험이 있습니까? 사업이 어렵습니까?
목사님..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묻지 마세요!
아~ 하나님께서 나를 더욱 귀하게 쓰시기 위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려고 내게 무엇인가 유익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이 훈련을 나에게 시키시는구나! 아멘? 아멘?
군대도 보통 군인은 훈련이 그냥 그렇습니다. 그런데 진짜 강한 부대는 훈련이 아주 셉니다.
공수부대들...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얼마나 훈련이 센지 모릅니다. 그래야 그 귀한 사명을 감당하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으시구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말씀 시편 3편은 다윗이 썼습니다. 그런데 언제 썼는고 하니, 다윗의 일생 중에 가장 비참하고, 힘들 때 썼습니다. 여러분은 다윗을 성공한 사람! 축복받은 사람! 그렇게 생각하지요? 믿습니까?
맞아요. 다윗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입니다.
그런데 그 다윗에게도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세상이지, 천국이 아닙니다.
따라합시다! “세상은 세상이다. 천국이 아니다!” 믿습니까?
무슨말인고 하니, 세상에는 모든 인생들에게 다 환란과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아닙니다.
다윗은 날마다 평안하고, 날마다 승승장부하고 날마다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도 엄청나게 어려운 시련이 다가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쓴 시가 시편 3편입니다.
언제인고 하니,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아들 압살롬이 발란을 일으킵니다.
남도 아니고, 아들이 왕이 되고 싶어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발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윗의 가슴이 아프겠어요. 남도 아니고, 자식인데...
어제까지 충성을 다하던 신하들이 하룻밤 사이에 바뀌어져서 압살롬에게 붙어서 다윗에게 칼부리를 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궁전을 떠나서 도망을 칩니다. 그때 쓴 시가 오늘 읽은 시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다윗도 이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 주변에 많은 대적이 있었습니다. 글쎄,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달려들었으니까요.. 또 어제까지 충성하던 신하들이 하룻밤 사이에 다 변해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많은 대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여러분을 괴롭힐 때도 있구요. 병이 여러분의 대적이 될 수도 있구요. 또, 성경에 보면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는 자는 고난도 많다고 했습니다. 많은 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대적이 있다고 벌벌 떨지 마세요!
또 다윗에게는 2절에 보니까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못한다 하나이다..” 사람들이 다윗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입니다.
너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그러더니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너를 도와주시면 네 자식이 너를 죽이려고 하겠느냐? 이렇게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얼마나 괴롭겠어요? 여러분도 똑같은 조롱을 받을 때가 있지요?
너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병에 걸리냐? 너 하나님이 복준다더니 왜 사업이 어렵냐? 왜 너희 가정에 어려운 일을 당하냐?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손가락질 할 때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은 흔들리지 않아요. 다윗은 자식이 배반하고, 어제까지 충성했던 신하들이 칼을 대고, 백성들이 손가락질하며 조롱할지라도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멘?
노아가 흔들렸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는 백성들이 다 조롱해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짓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욥은 그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욥이 당한 고난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열 남매가 다 죽었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몸에는 병이 들었습니다. 친구도 떠났습니다. 위로해줘야 할 아내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욥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멘?
오히려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다윗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 흔들리지 않았느냐?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3절에 그는 말합니다.“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란을 당하면 하나님을 더 믿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그러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윗이 왜 흔들리지 않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아니까.. 그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나의 방패입니다.
원수들이 자식까지 들고 일어나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을 막아주셨습니다.
그런데 방패라는 말이‘막켄빠디’라는 말인데.. 이것은 아주 특별한 방패라는 말입니다
보통 방패는 앞에만 막아주는데... 막켄빠디라는 말은 앞과 뒤를 막아주는 방패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앞에서도 오는 원수도 막아주고, 뒤쪽에서 치려는 원수들도 막아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 또 나의 영광이요, 승리자가 되게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머리를 드세요! 졸지 말고 머리를 드세요!
인간적으로 볼 때, 다윗을 보세요! 자식이 배반을 했습니다. 왕의 자리에서 궁전에서 도망을 갑니다. 어제까지 충성하던 부하들이 배신을 합니다. 어제까지 우리의 왕, 우리의 왕이라고 다윗을 칭송하던 백성들이 손가락질하며,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보통 이 정도 되면 다 고개를 떨굽니다. 내 인생은 끝났나보다.. 절망이구나.
그러나 다윗은 아닙니다.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방패요, 나의 영광이요,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시다..
절망의 자리에서 소망으로, 슬픔의 자리에서 기쁨의 자리로, 하나님께서 머리를 들게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종종 믿음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이나 이웃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어봐야 합니다.
이런 말을 못 들어본 사람은 믿음 생활을 잘못 한 것입니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야! 너는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냐? 너는 무슨 빽 믿고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도 기가 안죽고 당당하냐?’ 그런 말을 좀 들어야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고개를 떨구고 금방 죽을 사람처럼...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승리하기로 이미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중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지.. 그것이 내 인생의 성공, 실패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그런 가운데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너는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냐고 물으면 대답하세요! 나의 방패요, 나의 영광이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나는 여호와를 믿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다..
제 친구들이 저 보고 그럽니다.
앞으로 큰 교회당을 짓는다며? 헌금좀 모아놓았냐? 없어.. 그런데 걱정도 안되냐? 안돼..
제가 요즘 이상합니다. 그 어마어마한 교회당을 지어야 되는데.. 걱정이 하나도 안됩니다.
너 뭐 믿고 당당하냐? 여호와 하나님 믿고 당당하지..
제가 여러분 앞에 교회를 지으면서 기가 죽어서 큰일 났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우리 교회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제가 그런적 있습니까?
이미 제 머릿속에 아름다운 성전에서 이렇게 좁게 나누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한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벌써 저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그런 말을 좀 들어야 됩니다. 좀 당당해야 됩니다.
너는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냐? 나는 지금은 어려워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당당하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다윗의 일생가운데서 제일 어려운 고비에서도
“여호와 주는 나의 방패요, 나의 영광이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당당해야 됩니다.
그 다음 다윗이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4절,“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이 말씀 중에 중요한 단어가 ‘나의 목소리’입니다.
다윗이 방패요, 영광이요, 머리를 들게 하시는 여호와께 나의 목소리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나의 목소리란? 기계적이고, 형식적이고, 남을 흉내 내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의 기도란? 내 심령에서 나의 간절함, 나의 정성, 내 땀과 눈물.. 내 몸에서 마치 기름을 짜내듯 짜여진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더니,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성산은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곳이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말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세요! 물론 우리가 어디에서 기도하든지 하나님은 다 들으세요! 들판에서 기도하든지, 산에서 기도하든지, 집에서 기도하든지, 직장에서 기도하든지, 다 들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장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소가 중요합니다. 집에서도 기도하지만,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장소가 있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여러분! 새벽에 교회에 나오시기 어렵잖아요?
어떤 분들은 교회에 갔다 오는 시간에 집에서 기도를 더하지.. 하는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기도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는 시간, 기도하고 가는 시간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여기에 와서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해주신, 이 곳에 와서 기도하세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오늘 말씀에도 나의 목소리로 기도했더니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열심히 기도하세요!
내일 모레, 2월 1일! 전교인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한달을 시작하면서 주의 전에 나와 시작하세요!
새벽기도회, 열심히 참석하세요! 금요심야기도회, 2월부터 새롭게 시작을 하는데.. 우리 모두 열심히 참여해서 성전 건축! 나라와 민족, 내 가정, 내 사업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성산에서 응답하실줄로 믿습니다
5절에 다윗은 노래합니다. 기도한 다음에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하나님은 누구를 붙잡아주십니까? 기도하는 자를 붙잡아주십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는 자는 기도하는 자입니다. 잠자는 자가 아닙니다. 노는 자가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아 주십니다. 여러분의 사업을 붙잡아 주십니다. 여러분의 육신을 붙잡아주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붙잡아주십니다. 하나님이 붙잡아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 다음에 확신에 섭니다.
우리 다 같이 6절을 한번 읽어봅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께 기도한 다음에 다윗은 노래하기를...천만인이 나를 둘러서 나를 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시니까....
성경에 보면 믿음의 위대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싸우러 나갈 때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까?
다윗은 비록 손에는 돌맹이와 막대기 하나 들고 있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나간다..
담대했습니다. 확신해 차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 목을 잘라서 새의 밥이 되게 해주겠다...
기드온 장군은 300명의 군대를 데리고 적과 싸울 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아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두려워했습니까? 아닙니다.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를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제국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천주교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확신 가운데 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예를들면 우리집 막내가 저를 보고 아버지, 내일 꼭 필요하니까 만원만 주세요... 이렇게 요구를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제 막내는 어떻게 해야 하는고 하니, 제가 만원을 못주겠어요? 내일? 제 지갑에 돈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것은 틀림없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막내는 지금 자기 주머니에 만언이 없어도 받은줄로 믿어야 됩니다. 아멘?
그래서 ‘성경에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을줄로가 아니고, 받은줄로 믿어라..’ 고 했습니다.
왜?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주시니까..
막내가 아버지에게 만원을 구하긴 구했는데.. 아버지가 줄려나.. 밤새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쓸데 없는 고민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으로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라는 말은 믿음의 기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내가 책임지마!’그 말입니다. 아멘?
우리는 기도하고 내가 그 기도를 지워버립니다. 내가 의심해버립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 있을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가 백만번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이 정말로 성전을 짓게 해주실려나?
그 사람의 기도는 전부 지워버립니다. 무효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천배, 만배, 큰것도 하실수 있습니다.
확신가운데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은 마지막으로 노래하기를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있습니까? 여호와께..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여러분! 우리 교우들 가정에 여러 가지 어려움 당한 가정이 있습니다.
갑자기 몸에 병이 있어서 어려움 당한 가정도 있구요, 사업이 어려워서 힘든 가정도 있습니다.
자녀 문제 때문에 어려움 당한 가정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두렵고 떨면 안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내 인생 가운데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오늘 여기에 서있는 최목사가 대학 다니면서 피를 토하고, 폐병으로 고생한 것, 여러분은 모르시죠?
그때는 제가 죽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의 과정이고, 제 인생을 이끄는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아팠던 것이 얼마나 내 인생에 아름다운 은혜인지..
지금 괴롭다고 낙심하지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방패요, 여러분의 영광이요, 여러분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세요!
잠깐이면 지나갑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내 자식이 한 사람도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한사람도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의 과정입니다. 훈련입니다. 잘 믿음으로 이기세요!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세요!
오늘은 이 달의 찬송을 부르면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집에 가서도 이 찬송을 많이 부르시구요, 컴퓨터 있는 분들은 설교를 또 듣고, 또 듣고, 말씀으로 한주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픔이 있을 때에 주님은 내 곁에 오셔서 따스한 손길로 감싸주면 내 마음에 평화가 넘쳐나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붙들리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와 함께하리
내 마음에 외로움 느껴질 때 주님은 내 곁에 오셔서 포근한 손길로 안아주면 내 마음에 평안이 넘쳐나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주님이라
내 마음에 어두움 있을 때에 주님은 내 곁에 오셔서 사랑의 빛으로 비춰주면 내 마음에 소망이 넘쳐나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감싸 주리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빛이 되리라.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