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3291
명심보감-075
제5 정기편
동봉
선으로 옮김은 풍속과 같아야 하고
잘못을 고침은 우레와 같아야 한다
허물을 알았으면 필히 고쳐야 하고
능력을 얻었으면 잊지 말아야 한다
--- 근사록 ---
근사록 운
천선당여풍지속
개과당여뇌지열
지과필개
득능막망
近思錄云
遷善當如風之速
改過當如雷之烈
知過必改
得能莫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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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분 명심보감에는 없는 글이다
'지과필개'와 함께 '득능막망'은
<천자문>에도 실려 있는데
범입본 명심보감에는 실려 있다
'지과필개'와 '득능막망'에 관하여
2016년 3월 2일~3월 3일
기포의 새벽 편지에 올린 글이다
경어체를 그대로 가져왔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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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을 득得
능할 능能
없을 막莫
잊을 망忘
지과필개知過必改의 지知와
득능막망得能莫忘의 능能은
성서를 번역하면서 빌려 썼습니다.
하나님의 지능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지능과
인간의 지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 인간의 앎과 앎의 힘이란
전지全知가 되지 못하고
전능全能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신에게 쓰는 지능과
인간에게 쓰는 지능이란 용어가
영어英語에서는 달라집니다.
온전하게 아시는 분
옴니스신스Omniscience
전지全知 무한한 힘의 소유자
옴니포텐스Omipotence
전능全能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올마이티 갓Alghtymi God
디 올마이티the Almighty 등이지요.
이에 비해 인간에게 쓰는 지능은
인텔리젠스Intelligence
멘털 캐퍼시티Mental Capacity
인텔렉츄얼Intellectual
팩큘티Faculty와
비슷한 말로
애빌리티Ability를 쓰기도 합니다.
지능연령을 the I.Q.age라 하고
멘털 에이지Mental age라 하지요.
신에게 쓰는 말이 다르고
인간에게 쓰는 말이 다릅니다.
우도할계牛刀割鷄란 말이 있습니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것인데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도구를 씀을 이르는 속담입니다.
따라서 신에게 쓰는 용어를
사람에게 쓰려면 어울리지 않겠지요.
얻을 득得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
이 짧디짧은 속담 한 마디 안에
얻을 득得 자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일찍'이란 언제쯤일까요?
그날그날의 이른 시간입니다.
해日가 지평선一 위로 솟아오를 때
곧 해돋이Sunrise 무렵입니다.
두 인변彳을 이야기할 때
보통은 '조금 걸을 척彳'자이므로
'조심조심' '짧은 거리'의 뜻이 있지만
홑 인변亻도 아니고 두 인변彳은
두 날개를 마음껏 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듯이
정확하고 신속할 때
얻은 먹이를 놓치지 않습니다.
으레 마음寸을 온통 쏟아야겠지요.
새는 먹이를 얻는 게 목적이라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목적을 삼을까요?
능할 능能
능能은 스킬풀Skillful입니다.
숙련된 솜씨, 능숙한 솜씨입니다.
스마트Smart입니다.
현명하고 야무짐이지요.
애드로이트Adroit입니다.
한마디로 재치가 있음이며
상대방을 편하게 해줌입니다.
엑스퍼트Expert입니다.
전문가며 명인이며 대가지요.
컴퍼텐트Competent입니다.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자며
역량이 있는 자입니다.
프로피션트Proficient지요.
능숙하고 뛰어난 사람입니다.
덱스터로스Dexterous입니다.
빈틈없고 손재주가 뛰어난 이지요.
바로 이와 같은 능함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함을 얻기 위해
여명日이 바다 저 편一으로 밝아올 때
일찍이 일터로 달려가고
운영하는 가게로 달려가고
연구실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 조심彳스럽게
있는 힘寸을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얻을 득得 자에는
부지런함이 담겨 있습니다.
얻을 득㝶자에는
이처럼 촌음寸도 아끼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판소리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설렁설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득음得音 과정에서 피를 토하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지 않은 채
영예로운 명창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능能에 대해서는 모두 최고입니다.
기독교는 구체적인 것을 피하고
온전하게 능하다고 했습니다.
온전全에서 백분율%이 나왔지요.
온전의 '온'은 순수 우리말이고
온전의 '전'은 온의 중국어입니다.
따라서 온전이란 2글자에는
우리말과 중국어가 동침중이지요.
온은 다른 말로 '백百'이라 합니다.
퍼센트Percent 역사는 단순합니다.
미화 1달러가 몇 센트cent입니까?
네, 100센트입니다.
100센트와 온전한 1달러
이 사이에 부사 '퍼per'를 끼워 넣어
100분의 몇 센트라는 식으로
백분율을 만든 것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다름이 아닙니다.
온과 전이 만나 온전히 되었는데
이는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걸 보면 영어나 중국어나
순우리말보다 특별히 잘난 게 없네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능은
온전히 다 능하다는 말씀인데
불교에서는 우리 부처님을
'능인적묵각能仁寂默覺'이라 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는 종전 해석이고
둘째는 나의 새로운 해석입니다.
종전 해석의 '능인적묵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나의 해석은 개별적입니다.
부처님은 외형적으로 능한 분입니다.
눈에 보이는 거룩한 모습에서
귀에 들리는 사자후 음성에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평범한 모습에서
맵씨, 말씨, 솜씨에서 능能한 분입니다.
부처님은 어진 분입니다.
중생을 사랑하는 포근한 마음과
고통을 함께 슬퍼하는 연민의 정과
크나큰 원력과 날카로운 지혜와
어짊과 옳음과 품격과
맑은 정신과 인내의 힘과
보살의 정신을 안으로 간직한
인仁의 세계에 완전하신 분입니다.
외식제연外息諸緣의 성자십니다.
겉으로 모든 인因과 연緣을 쉬고
고요 환경寂을 만들어가는 분입니다.
내심무천內心無喘의 성자십니다.
안으로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습니다.
천만 가지 언어를 놓아 버린黙
진정 거룩한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입니다.
깨달음으로 능能을 이루고
깨달음으로 인仁을 이루셨지요.
깨달음으로 고요寂를 이루고
깨달음으로 침묵黙을 이루셨습니다.
최고 깨달음의 경지所覺도
깨달음能覺으로 온전해지신 분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 부처님이야말로
전지全知 전능全能하시지 않습니까?
어디 전지전능뿐이겠습니까?
전적全寂이시고
전묵全默이시며
전각자全覺者이신 게 확연합니다.
우리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연옥의 유황불로 심판하고
거대한 홍수로써 심판하고
번갯불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서가모니 부처님은
질투의 세계를 벗어난 분입니다.
부처님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입니다.
질투로 심판하는 일은 없습니다.
없을 막莫
상식常識으로 '없을 막莫'자는
'말 막莫'자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막莫의 뜻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묻힘墓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묘에 묻힙니다.
죽은 자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요.
묘는 시신을 땅에 묻기에
'흙토土' 자가 들어있습니다.
막莫과 묘墓는 흙의 유무일 뿐입니다.
둘째는 가림幕입니다.
천으로 가려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커튼을 치고 블라인드를 내려
안에서 밖을 볼 수 없고
밖에서 안을 볼 수 없습니다.
막莫과 막幕은 커텐巾의 유무일 뿐입니다.
셋째는 땅거미暮입니다.
날이 저물면 태양日이 사라집니다.
사실은 사라지는 게 아니지요.
엄폐물 뒤로 넘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입니다.
태양日이 있으면 '저물 모暮'이고
태양日이 없으면 '없을 막莫'입니다.
넷째는 사랑慕입니다.
사랑은 몰입의 세계를 불러옵니다.
사랑은 사람을 눈 멀게 합니다.
사랑은 '칵테일 파티 효과'가 있어서
감관을 발달시키기도 하지만
무디게도 만들어갑니다.
대상의 국한이 있을 뿐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할 때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그리움'이지요.
정지용(1902.5.15~1950.9.25)시인의
<호수1>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그리움이 극에 달하게 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냄새도
음식 맛도 모릅니다.
사랑은, 그리움은 마취제입니다.
사랑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깡그리 차단해 버립니다.
따라서 '사모할 모慕'와
'없을 막莫'은 같은 뜻입니다.
마음㣺이 있으면 사모할 모慕이고
마음㣺이 없으면 없을 막莫입니다.
잊을 망忘
'잊을 망忘'자는 단순합니다.
없을 亡망에 마음 심心을 더했으니
이 말은 마음心의 세계에서
이미 '다 없어져버렸다亡'는 뜻입니다.
솔직히 다 없어진 것은 아니지요.
혹은 치매痴呆 현상이거나
그냥 단순하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없을 망亡'은 '망할 망亡'자입니다.
'도망 망'으로 새기기도 합니다.
이 글자의 뜻은 '사라진 것'입니다.
죽은 것이라 해도 좋지만
시야에서 사라진 게 맞습니다.
감출 혜匸 위에 점丶을 찍은 것은
상대를 더욱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죽음은 존재할까요?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완전한 죽음이 될 수 있을까요?
죽음은 육신이 사라지는 것입니까?
화장이나 매장으로 인해
앞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를 죽음이라 단정 지을 게 있나요?
"능함을 얻으면 잊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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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장하고 있는 노자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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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1/2024
어제가 큰추위大寒!
오늘 날씨도 영상零上?
곤지암 우리절 선창禪窓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