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의 현장검증 엄상익(변호사)
<붉은 가난> 천안시의 외곽에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그 야산으로 난민촌처럼 한 채 두 채 무허가 집이 들어섰다. 그 산의 소유자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냥 그들이 살게 놔두었다. 산을 소유했던 사람이 죽고 상속세가 나오게 되자 자식들은 그 야산을 팔아야 세금을 낼 형편이 됐다. 그 사람들이 땅을 비워주어야만 토지 대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땅 위에서 공짜로 살던 사람들이 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보상금을 요구했다. 나는 그 전체 주민을 상대로 땅을 돌려 받으려는 소송을 맡았었다. 사람들은 요즈음 같은 시국에 그런 소송을 맡으면 몽둥이로 맞아 죽는다고 했다. 나는 일단은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재판장과 판사들에게 일단 현장에 같이 가서 보자고 했다. 그게 현장 검증이었다. 법대 위에 앉아서 서류로 보는 것은 작은 창 틈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기 때문이다. 재판서류 안에는 생생한 세상이 없었다. 나는 판사들과 야산 비탈의 산동네로 갔다. 미로 같은 골목들이 거미줄 같이 퍼져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의 브로크집들이 비탈을 따라 포개지듯이 있었다. 나지막한 함석문을 단 한 집 앞에 이르렀다. 좁은 마당에 묶여있던 누런 개가 판사들을 보더니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법원에서 나왔는데요.” 재판장이 소리쳤다. 법복이 아닌 소박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잠시 후 방안에서 오십대쯤의 부스스한 머리의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법원요? 소송은 우리 남편이 동네 대표에게 다 맡겼어요. 기다리세요. 내가 남편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할 테니까.” “아닙니다. 기다릴 시간 없어요. 오늘은 현장 검증을 나온 것이고 내일부터 감정인이 측량을 하러 올 거니까 협조를 해주시죠.” 여자는 현장 검증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 현장에서 하는 공식적인 재판절차였다. 다시 판사들 세 명이 나와 함께 산동네 진창길을 걸었다. 여판사가 신고 있는 하이힐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됐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는 편이 나을 걸 그랬어요.” 내가 안된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판사로 재판인 현장 검증을 나오는데 그런 복장으로 나올 수는 없죠.” 여판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복을 입고 나오지 않으니 사람들에게 권위가 서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인기척에 동네 개들이 목소리를 합쳐 무섭게 짖고 있었다. 우리는 개가 없는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갔다. 안에서 빨간 내복에 몸뻬 바지를 입은 여자가 나왔다. 재판장이 같은 말을 공손하게 하자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웬 놈의 소송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겄소. 우리가 땅을 내 주면 무조건 아파트 한 채를 받아야 한다는데 아무튼 법원에서 나온 분이라니 잘 부탁허요.” 그 다음 법원에서 재판이 열릴 때였다. 법정 밖에는 투쟁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주민들이 서 있었다. 내가 원고석에 서 있었고 주민대표가 피고석에 서 있었다. 산동네를 걸어다니면서 그들의 생각을 알게 된 재판장이 말했다. “우리나라 법은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남의 땅을 이십 년씩이나 공짜로 쓴 것만 해도 덕을 본 거 아닙니까? 더구나 소유주 측은 주민들의 사정을 고려해서 이사 비용이나 작은 방 하나 얻을 돈을 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비용도 법적으로 따지면 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동안의 땅 사용료를 받아야 하는 게 법의 입장입니다.” 그 말에 피고석의 주민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은 가진 사람들을 위한 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의 법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런 법을 준수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한 법이 아니니까요. 다만 방법은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아파트를 한 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준다면 땅 주인에게 땅을 돌려줄 수 있습니다.” 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그들 비슷한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는 뼈가 휠 정도로 일을 해서 나를 가르쳤다. 누구 신세도 지지 말라고 하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나를 가르쳤다. 땀을 흘린 노동으로 감사의 밥을 먹어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가난을 앞세우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후 그 산동네를 혼자 거닐었다. 동네 가게 앞에서 술판을 벌이는 그들끼리 한 몫 거저 잡을 궁리들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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