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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옛부터 사람이 칠십 년을 사는 예는 드물다는 뜻으로, 칠순 잔치를 고희 잔치라고 부른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人 : 사람 인(人/0)
生 : 살 생(生/0)
七 : 일곱 칠(一/1)
十 : 열 십(十/0)
古 : 옛 고(口/2)
來 : 올 래(人/6)
稀 : 드물 희(禾/7)
이것은 당(唐)나라의 시성(詩聖)인 두보(杜甫)의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시귀(詩句)에서 나온 말이다.
두보(杜甫)는 곡강이수(曲江二首)의 제 2수(首)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조회에서 돌아와 날마다 옷을 전당잡히고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매일을 강 어구에서 취하여 돌아온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술빚이야 늘 가는 곳마다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사람이 칠십 살기 옛날부터 드물다네.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
꽃 사이 나는 나비는 보일 듯 말 듯 날고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물을 치고 나는 잠자리 천천히 날아 다니네.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류전)
만물은 함께 유전한다고 봄 풍광에 말 전하노니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잠시 감상함을 방해하지 말거니
시(詩)의 대략의 뜻은 이러하다. 요즈음 조정에서 돌아올 때면 봄옷을 저당 잡혀, 그 돈으로 매일같이 곡강(曲江) 근처에서 술에 취하여 돌아오는 생활을 되풀이 하고 있다. 덕분에 술값으로 빌린 빚은 이르는 곳마다 있지만, 어차피 사람의 수명은 예로부터 70세까지 오래 산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갑자기 눈을 뜨면, 주변의 꽃을 누비는 것과 같이 나비들이 꽃송이에 기이 춤추는 것이 보이고, 잠자리들은 꼬리를 물에 잠그면서 훨훨 날아가고 있다. 얼마나 한가한 봄의 경치인가? 나는 이 봄의 경치에게 권하여 함께 떠돌아 다닌 몸이 되어, 잠시 서로 복 즐거워하며 배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구나.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란 말은 항간(巷間)에 전하여지는 속담(俗談)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두보(杜甫)의 이 시(詩)에 의하여 맛이 더해가고 있다고 하겠다.
이 시(詩)는 두보(杜甫)의 47세 때의 작품으로,그 무렵에 그는 좌습유(左拾遺)라는 벼슬로 조정에 나아가고 있었는데, 중앙기관의 부패는 그를 실망시켜 그에게 번민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했다. 그의 근심과 번민을 없애 주는 것은 오지 술과 아름다운 경치뿐이었다. 곡강(曲江)은 도읍인 장안(長安) 가운데 있는 연못의 이름으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어, 특히 봄철이 되면 꽃을 관상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공자(孔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 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살 때 입신(立身)했다. 마흔살 때는 미혹(迷惑)하지 않고 쉰살 때 하늘의 명을 알았다. 예순살 때는 귀에 따랐고 일흔 살이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사는 것이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는 의미로,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고희(古稀)는 '옛 고(古)', '드물 희(稀)'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래로 드문 나이'란 뜻으로 나이 70세를 일컫는 말입니다. 고희(古稀)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인생을 일흔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부터 드문 일이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어디에 나오는 문장일까요? 당나라 두보의 시 '곡강이수(曲江二首)'에 나오는 시 구절입니다. 혹시 어떤 분은 '고희(古稀)'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논어의 위정편을 봅니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우뚝 섰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렇게 논어 위정편에는 15세(志學), 30세(而立), 40세(不惑), 50세(知天命), 60세(耳順), 70세(從心)까지 나옵니다. 70세를 종심(從心)이라 했는데, 마음이 욕망하는 바를 따라도 불유구(不踰矩), 즉 법도(矩)를 벗어남(踰)이 없다(不)는 말이네요. 그러니까 공자의 논어에는 70세를 종심(從心)이라 했고, 또 후세들이 두보의 시를 보고 고희(古稀)라고도 했네요. 그 말고도 70세는 희수(稀壽) 등으로도 불립니다.
이제 두보의 시 '곡강이수(曲江二首)'를 만나보자. 시 '곡강이수(曲江二首)'는 2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두 번째 시(제2수)에 등장한다. 어떤 시일까?
두보 시 '곡강이수(曲江二首)' 제2수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 저당 잡혀, 매일 곡강에서 흠씬 취해 돌아오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몇 푼의 술 빚은 어디 가도 있지만, 인생 칠십은 예전부터 드물다네.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꽃 사이 맴도는 호랑나비 보이다 말다 하고, 강물 차는 잠자리는 유유히 나는구나.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유전)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경치를 즐겨보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인생 칠십 살기는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라는 해석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보려고 한다. 두보는 24세 때 과거에 낙방한 이후 타향을 방랑하며 가난과 비애 속에서 살았다. 이 시는 두보 나이 47세 때, 겨우 미관말직(좌습유)을 얻어 벼슬을 할 때 지은 시이다. 당시 두보는 나라의 쇠퇴와 기강이 흐트러진 조정, 자신이 올린 상소로 인해 관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는 등 암담한 현실에 놓여 있었다.
이 시 '곡강이수'의 첫 번째 시의 마지막 구절은 미관말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심정을 말해주고 있다. "어찌 헛된 명성에 이 한 몸 얽매랴(何用浮名絆此身 하용부명반차신)." - 두보 시 '곡강이수 - 제1수' 중에서
자, 시인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면서 '곡강이수'의 두 번째 시를 만나보자.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조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 저당 잡혀, 매일 곡강에서 흠씬 취해 돌아오네
벼슬을 한다 해도 삶이 궁핍한 상태이다. 임금님과 아침 회의를 하고 와서는 봄옷을 저당 잡힌다고 한다. 그것도 매일 말이다. 이 시는 3월에 쓰인 시인데, 봄에 입어야 할 옷을 저당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상황이다. 그런데 봄옷을 맡기고는 매일 술을 마셨다. '진(盡)'은 '다하다' '극치에 달하다' '죽다' 등의 뜻이 있는데 '진취(盡醉)'했다고 하니 완전히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다. 암담한 현실에 대한 실망과 이를 헤쳐가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수심이 깊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몇 푼의 술 빚은 어디 가도 있지만, 인생의 칠십은 예전부터 드물다네
율시에서 핵심 내용은 이 3, 4구에 등장한다. '심(尋)'은 여덟 자, 상(常)은 그 배인데 '尋常'은 '얼마 안 되는'의 뜻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몇 푼'으로 새겨본다. 4구가 '고희(古稀)'의 유래가 된 문장이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들 70을 넘기기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자, 3, 4구를 연결시켜 뜻을 새겨보자. '몇 푼의 술 빚은 어디 가도 있지만 인생의 칠십은 예전부터 드물다네'
이 문장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3구의 마지막 글자인 '유(有)'와 4구의 마지막 글자인 '희(稀)'가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있고(有)'와 '드물다(稀)'. 외상 술값은 남아있고, 그걸 갚아야 할 사람은 드문, 혹은 없는 상황이다. 우리네 삶은 그만큼 지천에 널린 몇 푼 되지도 않는 술값도 다 못 갚고 갈 정도로 짧다는 의미가 스며 있는 것 같다.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현)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꽃 사이 맴도는 호랑나비 보이다 말다 하고, 강물 치는 잠자리는 유유히 나는구나.
'심심(深深)'은 '깊이깊이'라는 뜻이니, '깊이깊이 보인다(深深見)'는 '보일 듯 말 듯하다'는 뜻이네요. '관(款)'은 '천천히'라는 뜻인데, '款款飛'이니 느리게 나는 모양을 나타낸다. 세상사 번잡한 일에서 떠났을 때 보이는 풍광이 이 5, 6구이다. '곡강이수'의 첫 번째 시 마지막 구절에 나온 '부명(浮名)', 즉 '헛된 명성'에 매달리는 이라면 이런 풍경이 눈에 들어올 리 없겠다.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유전)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경치를 즐겨보자.
7, 8구에서 눈에 띄는 건 '막(莫)'이다. '막(莫)'은 '없다' '말다' '~하지 말라' '불가하다' 등의 뜻이다. 여기서는 '~하지 말라'라고 쓰였다. 그런데 이 '막(莫)'은 금지사(不, 勿, 莫)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그래서 뜻은 '~하지 말라'보다 더 강한 어조인 '~하지 말지어다'가 된다. 그러므로 '막상위(莫相違)'의 뜻이 '서로(相) 어긋나지(違) 말지어다(莫)'가 된다.
'상상(相賞)'은 '서로 즐겨 구경하다'는 뜻이니, '잠시라도 서로 즐겨 구경하라, 부디 서로 어긋나지 말고!'라는 어조이다. 왜냐하면 풍광(風光)은 우리 삶과 더불어(共) 쉼 없이 흘러 가버리니까. 그래서 풍광의 절정을 놓치지 말고 완상하라고 한다. 봄날엔 꽃구경 가고, 여름날엔 바다구경 가고, 가을날엔 단풍구경 가고, 겨울날엔 눈구경 가고. 우리네 인생은 짧으니까. 예부터 70을 넘기기 힘드니까. 그 70도 잠시(暫時) 잠깐 사이 지나가니까.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고희(古稀)란 70세를 뜻하는 말로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준말입니다.
곡강(曲江)은 중국 장안(長安) 근처에 있는 구불구불한 연못으로 당의 현종이 양귀비와 놀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두보는 벼슬을 하면서 듣고 본 관료들의 부패에 실망하고 술만 마시며 살 때에 쓴 시가 7언율시 '곡강'(曲江)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이를 시조로 의역해 보았습니다.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항처유)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류전)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봄옷 잡혀 술 마시며 곳곳마다 술빚이라. 나비와 잠자리 나는 봄에 대취하여 돌아오지만 인생 길 칠십 살 드문데 걱정할 일 무언가.
젊은 날의 두보는 각지를 방랑하였습니다. 그러다 나이 30세가 넘어 장안(長安)으로 돌아와 벼슬길에 나서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허탈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황제 현종(玄宗)이 난을 피해 쓰촨[四川]으로 가는 등 나라가 온통 뒤흔들렸습니다.
두보도 난을 피하여 새로 즉위한 숙종(肅宗)이 있는 영무(靈武)의 행재소(行在所)로 가려다가 반군에게 붙잡혔습니다. 9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탈출하여 봉상(鳳翔)의 행재소로 갔는데,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에 임명되었습니다. 관군이 장안을 탈환하자 숙종을 따라 환도하였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쯤 되었습니다.
수도 장안의 동남쪽에는 곡강이라는 못이 있었고, 그 못의 남쪽에 부용원(芙蓉苑)이라는 궁원(宮苑)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곡강' 시는 이곳을 배경으로 하여 지은 것입니다. 두보는 59세에 죽었는데, 그의 말처럼 70세까지 살지는 못했습니다.
두보(杜甫)는 회갑도 못 넘기고 59세에 갔습니다만, 두보(杜甫)와 가까이 지내던 이태백(李太白)은 62세에 갔습니다. 중국 최고의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중 누가 더 술꾼일까요? 중국 최고의 고전 시인은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당나라 사람인데 시풍은 매우 달랐다고 합니다.
이태백이라고도 불리는 이백(李白)은 주로 호방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두보(杜甫)는 신중한 태도로 나라에 대한 충성과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가족에 대한 애정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술을 좋아했다는 점입니다.
술에 취해 채석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남겨질 정도로 이백이 술을 좋아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후세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백보다는 두보가 훨씬 더 술꾼이었다고 합니다. 시 속에 나타난 것만 보아도 1,050여 수의 이백의 시 중에서 16%가 술을 언급한 것에 비해 두보는 1,400여 수의 시중에서 21%가 술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술을 마시는 방법도 달랐다는데요. 이백은 술을 즐기면서 마셨지만 두보는 술에 원수진 사람처럼 마셨다고 합니다. 두보가 일단 술을 마시면 완전히 취할 때까지 2차, 3차를 가고 말에서 떨어져 다쳤을 때도 병문안 온 친구와 술을 마셨다고 하니...
말년에 당뇨와 폐병으로 고생할 때도, “흰머리 몇 개 났다고 술을 버릴 수야 없지 않는가”하고 노래한 두보는 59세에 힘든 방랑 생활을 끝내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평균 수명으로 볼 때 평생 말술을 마신 사람치곤 오래 산 것일까요? 하긴 술 많이 마신다고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지금처럼 의술이 발전하기 전이어서 당시로서는 이분들은 그래도 장수한 분들에 속합니다. 이조 27대 왕들은 어의(御醫)를 거느리고서도 60세를 넘긴 왕이 다섯 분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러나 의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고희(古稀)란 그 원뜻이 무색하게도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78세로, 선진국 유럽인들보다는 조금 짧지만 미국인들보다는 높습니다. 북한 동포의 평균 수명은 61.4세로 아세아에서 두 번째로 낮습니다.
그렇다면 질병이나 사고로 죽은 이들을 빼고 나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70세 이상을 살게 되는데 고희가 70세를 뜻한다는 두보의 생각은 현대에 와서는 타당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80세가 넘는다니 고희를 90세로 바꿔서 ‘인생구십현재희(人生九十現在稀)’라 하여야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동안 남자 수명이 여자보다 7.2년이나 낮은 것이 술로 인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서 교통사고 등의 사고에다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많아서랍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 국민의 7% 이상을 고령화 사회라 하고, 14% 이상을 고령사회, 20% 이상이 되면 초고령사회라고 구분하는데요, 한국은 그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국가라 합니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걱정이 되는 일이겠지만, 우리 한국 노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준비 없이 노년을 맞는다는 것은 비록 건강하다고 해도 장수가 욕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물며 나이가 깊어 갈수록 점점 나빠지는 건강을 가난 속에서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두려운 일입니다.
선진국은 젊어서 일하면서 나라에 세금만 열심히 내면, 아무 저축이 없이도 노후를 나라가 책임져 주는 사회입니다. 물론 자기가 납부한 세금을 기준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노후 준비를 자신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우리나라에 고령사회화가 진행되어 오고 있으니 그게 큰 문제입니다. 게다가 우리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는 드물고, 노동의 나이는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아아, 이를 어찌 하여야 한단 말입니까?
한국인들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똑 같은 나이는 몇 살일까요?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남자는 37세, 여자는 41세였습니다. 한국의 45세 나이로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이는 남자가 앞으로 30.8세, 여자가 36.9세가 됩니다. 50살인 사람이 80살까지 생존할 확률은 남자 41%, 여자 64%였습니다. 그보다 빨리 일하던 남자가 죽는다면 그 가정 경제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요. 곰곰이 생각하고 준비하며 살아야 할 일입니다.
인간칠십고래희(人間七十古來稀)
인간칠십고래희(人間七十古來稀)는 거짓말로 들었지요. 1960년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56세로 60세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그러므로 70세까지 장수한 분들을 보기 드물었다는 뜻이 인간칠십고래희(人間七十古來稀)이다. 60세의 회갑(回甲)과 70세의 고희(古稀)잔치를 베풀어 건강장수를 축하하였다. 100세 시대의 지금 70은 대부분 중년의 삶을 산다.
나 역시 부모님의 유전자를 받아 80세를 넘겨도 특별한 건강의 이상은 없지만 늙어감에 대한 아쉬움은 참으로 많다. ‘만고 영웅 좋다한들 백발 중에 영웅 없소. 절대가인(絶代佳人) 좋다 해도 백발 중에 인물 없소. 백발 올 줄 알았다면 문 닫아 꼭꼭 잠그고 깊이깊이 숨어 앉아 사람 없다 속여 볼 걸’ (작사 미상의 “노인가”의 한 소절)
1년전 만 해도 큰소리 떵떵 치던 81세의 나와 동갑내기 고향 친구가 타계했다는 부고(訃告)에 가슴이 멍해졌다. 보름 전 그 친구가 노인복지사업을 하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는 그의 부탁을 해결하기 위하여 백방(百方)으로 알아 봤지만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 친구가 요양병원에 입원 한지 6개월 요양으로 건강이 다소 회복되어 퇴원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당부였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그 친구의 간망(懇望)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 친구는 80여 평생 살아온 고향집에 가지 못하고 객지의 요양병원에서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
얼마 전 네이버 검색 중 노인요양원과 노인요양병원으로 부모님을 보내는 것이 현대판 고려장이며 노인요양시설에 입원하는 순간 가족들과는 '이승에서 이별하고 바로 저승 대기소인 그곳에서 저승길 대기자로 전락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노인을 버린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집에서 70세가 된 늙은 아버지를 그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속에 내다 버리려고 지게를 버리고 막 돌아서려 할 때, 따라왔던 그의 아들이 지게를 다시 가져가려고 하니 그의 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더니, "아버지가 늙어 70세가 되면 이 지게로 다시 져다 버리려고요"라고 대답하여 그 말에 아버지는 뉘우치고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가서 효도를 다하였는데, 이로부터 이 악습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자식의 거울인 부모의 언행이 실로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인 우리의 효사상과 어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敬老思想)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효가 있는 가정 경로하는 사회’를 위한 운동으로 조손교실(祖孫敎室)운영과 노인과 가족합동운동회, 노인대학 졸업식과 노인대학생들의 솜씨 자랑인 학예 발표회에 자녀들과 손자녀들의 참여로 경로효친운동을 50여년 추진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
얼마 전 105세의 김형석 교수님이 모 대학 특강에서 20대의 대학청년들을 향해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해 지금 고민하지 않으면, 평생 타인의 인생을 보거나 타인의 인생을 좇으며 살게 될 것”이라 하셨다고 한다. 또한 “50~60대가 되어 어떤 분야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 것인지 고민하라”고 권면(勸勉)했다고 한다. 김형석 교수님은 “사람은 아는 만큼 일할 수 있고, 인격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인간관계를 통해 인격을 키우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학문을 탐구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노인의 고독한 심리는 첫째로 가부장적인 역할상실과 노쇠에 따른 심정의 약화이며, 둘째로․배우자와 친지 등과의 사별에서 오는 슬픔과 고립감이며, 셋째로는?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두려움과 인생의 허무감 등이라고 한다. 아무리 평균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육체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노인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 비참한 것인데, 어쩌면 몇 년 후에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 심란(心亂)한 마음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노인은 인간발달 단계로 볼 때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고 있는데, 죽음에 대한 태도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복합적일 수 있다. 노인이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삶의 질이 좋아지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죽음준비 교육의 참여는 물론 추하지 않는 노인, 건강하고 떳떳한 노후를 위한 알뜰한 삶이 필요할 것 같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100세 시대, 걱정인가 - 인생칠십고래희에서 본격 열린 장수시대
예로부터 인생 칠십이 드물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옛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읊은 시 ‘곡강(曲江)’의 한 구절이다. 그때는 인생 70이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 틀림없다. 두보 자신도 요즘 같으면 마을 회관이나 노인정에서 노인 선배님들의 잔심부름이나 하고 그들을 깍듯이 모셔야 할 한창 나이인 겨우 59살에 세상을 떴다.
지금의 세속(世俗)은 그때와 확연히 달라져서 인생 60에 치르는 환갑잔치나 70을 기념하는 고희연이 왠지 남부끄러운 시대가 돼버렸다. 심지어 건강을 타고났거나 평소에 관리를 잘 해온 사람들의 경우라면 70대를 신중년기(新中年期)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한마디로 ‘인생칠십고래희’는 두보가 살던 때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꽉 꽂히는 촌철살인의 경구였지만 지금은 전연 실정에 맞지 않는 말인 것이 분명하다.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거니와 장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는다. 100세를 넘긴 장수 인구가 전국적으로 3000명, 90대 인구도 15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밝혀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해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빠르게 진행되는 일종의 되돌릴 수 없는 ‘추세적 사실이나 기대’로서 굳게 자리 잡은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장수화(長壽化)’의 진행이다. 그것을 공식적으로 입증해준 것이 통계청의 이 같은 조사결과다. 그러니까 통계가 본격적인 장수화와 장수시대의 개막을 공식적으로 알린 것이 된다. 그렇지만 그 같은 추세를 읽어내는 데 있어 일반의 감각은 정부 통계보다도 훨씬 더 빨랐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어느 경우 문상(問喪)을 갔을 때 언제부터인가 혹여 고인의 나이가 적어도 100세에도 근접한 것이 아니라면 필시 적잖은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던 것이 이 시대를 사는 문상객들의 대체적인 심경이 아니었던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반의 감각은 막연한 것 같아도 이처럼 현실의 맥을 무섭도록 정확히 짚어내는 마법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치에 각계의 지도자들이나 정치인, 전문가, 권위자들이 경외감을 지닐 수 있다면 그들의 활동은 더욱 진솔해지고 사회적 기여는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될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의 100세 이상 장수 인구는 불과 10년 전보다 무려 3배가량이나 늘어난 숫자인 것이 통계로 밝혀졌지만 이는 기실 일반이 벌써 감각으로 읽어낸 빠른 장수화의 추세를 뒤늦게 통계로서 뒷받침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떻든 앞으로의 장수화의 추세는 그것이 재앙이냐 아니냐의 뜨거운 논란을 부추기면서 더 빠르게 진행될지 모른다. 환갑잔치나 고희연이 지금은 쑥스러운 행사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축복의 행사였던 때가 결코 오래전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장수화는 경제의 압축성장과 함께 가장 빠른 지름길을 달려왔다.
더구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확고한 시대다. 여기에 의학기술 발전이 첨단을 향해 경쟁하며 눈부신 성과로 장수화를 뒷받침한다. 이래서 우리가 당면한 엄연한 사회경제적 문제는 이른바 ‘노인문제’이며 사회인구학적인 ‘노령화 문제’의 대두다. 이것 역시 되돌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추세적 문제지만 마치 사회에 몰려오는 ‘재앙’의 쓰나미 쯤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문제의 해결을 돕는 태도가 아니다.
인구의 장수화는 지금 노인들에게도 당연히 축복이다. 스스로는 아직 멀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곧 노인이 되고야 마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들, 말하자면 미래의 노인들에게도 역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분명히 축복이 맞는 것이라면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인을 비생산인구라거나 현업종사인구에 짐이나 되는 무용 무익한 흘러간 세대로 치부하는 듯한 시선과 인식을 흔히 경험하게 되는 것은 노인들에게 큰 슬픔일 것이다. 이는 사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칫 세대 간 밥그릇 싸움과 혐오를 불러 사회를 불행에 빠뜨리기 쉽다.
노인들은 나름대로 이미 사회에 충분한 기여를 했고 그들이 지나온 그 젊은 시절을 살면서 지금 노약한 자신들에게 짜증을 내는 현업종사인구들을 피를 짜내고 살을 발라 기르고 가르쳤다. 도덕 강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는 인구학적인 구성비가 변동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어린이가 아버지가 되고 그 아버지가 노인이 되는 노장청(老壯靑)의 순환과 전변(轉變)을 멈추지는 않는다.
자신이 아직 노인이 되지 않았다 해서 노인을 원망하거나 불행하게 한다면 그것은 장차에 있을 자신의 원망과 불행을 만드는 것이나 하등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청년 일자리가 많고 행복한 사회가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인 것은 맞지만 그들에게도 곧 닥칠 노인 세대를 홀대하는 사회가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조화롭게 행복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인문제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노인이 아닌 다른 모든 세대들의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하며 사회경제 문제로서 국가와 전체 세대가 진지하게 합심해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노인 표가 많을 때는 노인에게로, 청년 표가 많을 때는 청년에게 포퓰리즘적 타산으로 접근하는 정치인들의 얄팍한 일시적 미봉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청년 문제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노인문제와 함께 더불어 심각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긴 매사가 그렇다.
노인은 비록 몸이 쇠약해져 허리는 굽고 몸동작은 어색하고 둔해져도 영혼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시인 워즈워스가 시로 읊은 것처럼 사람은 나이를 먹어 늙어도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콩닥거리고 설레기는 어렸을 때나 다를 것이 없다. 또 그래야 된다고 워즈워스는 노래한다.
인생 100년, 그것은 단순한 개인 인생 스토리이자 경우에 따라 한 세기의 ‘역사’다. 스웨덴의 인기 작가 요나스 요나슨은 자신의 저서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주인공 알란 칸손 노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통해 그걸 말하려 하고 있다. 지나치게 희화화된 느낌은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본격적으로 도래한 한 세기를 뛰어넘는 장수시대, 그것이 진정 우리 모두에게 축복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이 아닐까 싶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이 70세까지 살기란 예로부터 드문 일
삶의 덧없음과 함께, 사람이 70세까지 살기란 예로부터 매우 드물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사자성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입니다. 이 사자성어는 '사람이 70세까지 살기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는 뜻으로, 삶의 유한함과 긴 세월을 버텨온 삶의 경이로움을 표현합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인생(人生)’은 '사람의 삶'을, ‘칠십(七十)’은 '70세'를, ‘고래(古來)’는 '예로부터'를, ‘희(稀)’는 '드물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사자성어는 '사람이 70세까지 살기란 예로부터 매우 드문 일'이라는 뜻으로, 인생이 얼마나 덧없고 유한한지를 강조합니다. 이는 주로 삶의 짧음과 삶의 귀중함을 깨닫게 할 때 사용됩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우리가 인생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 자체가 큰 축복이자 경이로움임을 인식하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70세 생일을 맞이한 후, 그 긴 세월 동안 살아온 삶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할 때,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이 70세까지 살아온 것을 경이롭고 축복받은 일로 여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로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이 있습니다. 이는 '인생이 덧없다'는 뜻으로, 인생의 유한함과 무상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인생칠십고래희’와 ‘인생무상’ 모두 인생의 덧없음과 그 속에서의 삶의 귀중함을 강조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와 관련된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생에서 오랜 세월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자 경이로움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특히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는 우리가 인생에서 나이 들며 더 깊이 생각하고, 삶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교훈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의 삶도 더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노력하세요. 이는 여러분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둘째,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세요. 이는 여러분이 더 성숙하고, 삶을 풍요롭게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셋째,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얻은 지혜와 경험을 소중히 여기세요. 이는 여러분이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가 주는 교훈처럼, 우리는 인생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경이롭게 여기고, 그 속에서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지혜와 태도를 가지고,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러한 태도가 여러분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인면수심(人面獸心),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인사불성(人事不省),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등에 쓰인다.
▶️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날것과 찬 것을 생랭지물(生冷之物),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
▶️ 七(일곱 칠)은 ❶지사문자로 柒(칠)과 통자(通字)이다. 다섯 손가락을 위로 펴고 나머지 손의 두 손가락을 옆으로 편 모양을 나타내어 일곱을 나타낸다. 아주 옛날 숫자는 하나에서 넷까지는 선(線)을 그 수만큼 한 줄로 늘어 놓고, 다섯 이상은 다른 기호를 사용했다. 그 중 五(오)와 七(칠)과 九(구)는 닮음꼴, 六(육)과 八(팔)과도 닮음꼴로 되어 있다. 일설에서는 七(칠)은 베다란 뜻의 글자를 빌어 쓴 것이며 후세의 切(절)이란 글자를 기원이라 한다. ❷상형문자로 七자는 ‘일곱’이나 ‘일곱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七자는 칼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과 금문에 나온 七자를 보면 十자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칼로 사물을 자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十(열 십)자가 막대기를 세운 그려졌었기 때문에 十자와 七자는 혼동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두 글자의 구분이 어려워지면서 끝을 구부리는 방식으로 지금의 七자를 만들게 되었다. 七자는 본래 ‘자르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후에 숫자 ‘일곱’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刀(칼 도)자를 더한 切(끊을 절)자가 ‘자르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七(칠)은 일곱의 뜻으로 ①일곱 ②일곱 번 ③칠재(七齋; 죽은 지 49일 되는 날에 지내는 재) ④문체(文體)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의 열두 달 가운데 일곱째 달을 칠월(七月), 사람의 일곱 가지 심리 작용을 칠정(七情), 바르지 못한 일곱 가지 견해를 칠견(七見), 그 수량이 일곱이나 여덟임을 나타내는 말을 칠팔(七八), 나이 70세로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에는 드문 일이다는 뜻의 칠순(七旬), 일곱 걸음에 지은 시를 칠보시(七步詩), 한 줄이 일곱자로 된 한시를 칠언시(七言詩), 일곱 줄로 매어 만든 거문고를 칠현금(七絃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 유교에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조건을 이르는 말을 칠거지악(七去之惡), 사물이 서로 연락되지 못하고 고르지도 못함을 칠령팔락(七零八落) 등에 쓰인다.
▶️ 十(열 십)은 ❶지사문자로 什(십), 拾(십)은 동자(同字)이다. 두 손을 엇갈리게 하여 합친 모양을 나타내어 열을 뜻한다. 옛날 수를 나타낼 때 하나로부터 차례로 가로줄을 긋되, 우수리 없는 수, 다섯은 ×, 열은 Ⅰ과 같이 눈에 띄는 기호를 사용하였다. 나중에 十(십)이라 썼다. ❷상형문자로 十자는 ‘열’이나 ‘열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十자는 상하좌우로 획을 그은 것으로 숫자 ‘열’을 뜻한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十자를 보면 단순히 세로획 하나만이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나무막대기를 세워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이렇게 막대기를 세우는 방식으로 숫자 10을 표기했었다. 후에 금문에서부터 세로획 중간에 점이 찍힌 형태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十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十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모양자 역할만을 할 뿐 의미는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十(십)은 ①열 ②열 번 ③열 배 ④전부(全部), 일체(一切), 완전(完全) ⑤열 배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가운데 열째 달을 시월(十月), 충분히 또는 넉넉히로 부족함 없이를 십분(十分), 어떤 분야에 뛰어난 열 사람의 인물을 십걸(十傑), 보통 4km 거리를 십리(十里), 사람이 받는 열 가지 고통을 십고(十苦), 열 살로부터 열아홉 살까지의 소년층을 십대(十代), 썩 잘 된 일이나 물건을 두고 이르는 말을 십성(十成), 오래 살고 죽지 아니한다는 열 가지 물건을 십장생(十長生), 실을 십자형으로 교차시켜 놓는 수를 십자수(十字繡),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십벌지목(十伐之木),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 열에 여덟이나 아홉이라는 십중팔구(十中八九), 열 번 살고 아홉 번 죽는다는 십생구사(十生九死),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있다는 십목소시(十目所視), 십년 동안 사람이 찾아 오지 않아 쓸쓸한 창문이라는 십년한창(十年寒窓), 열흘 동안 춥다가 하루 볕이 쬔다는 십한일폭(十寒一曝), 오래 전부터 친히 사귀어 온 친구를 십년지기(十年知己),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성격이나 사람됨이 제각기 다름을 십인십색(十人十色) 등에 쓰인다.
▶️ 古(예 고)는 ❶회의문자로 여러(十) 대에 걸쳐 입(口)으로 전해온다는 뜻이 합(合)하여 옛날을 뜻한다. 十(십)과 口(구)를 합(合)한 모양으로 十代(십대)나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 낡다, 옛날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古자는 ‘옛날’이나 ‘예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古자는 口(입 구)자와 十(열 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古자의 갑골문을 보면 口자 위로 中(가운데 중)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입’과 ‘방패’를 표현한 것이다. 방패는 전쟁에 쓰이는 무기로 古자는 오래전에 있었던 전쟁 이야기를 말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전쟁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후세에게 들려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古자에 攵(칠 복)자를 더한 故(옛 고)자가 ‘옛날’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참고로 口자를 ‘세대’로 해석하여 古자는 10세대를 거친 것이니 ‘옛날’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갑골문에서의 十자는 丨자 형태로 그려졌었기 때문에 같은 시기 古자에 그려졌던 中자와는 모양이 다르다. 그래서 古(고)는 헌 또는 낡은의 뜻으로 ①옛, 예, 예전 ②옛날 ③선조 ④묵다 ⑤오래 되다 ⑥예스럽다 ⑦순박하다 ⑧잠시(暫時) ⑨우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예 석(昔),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이제 금(今), 새 신(新)이다. 용례로는 옛날과 지금을 고금(古今), 옛 시대를 고대(古代), 옛 일을 고사(古事), 옛 역사를 고사(古史), 옛날 사람을 고인(古人), 옛날부터 현재까지를 고래(古來), 옛적부터 내려오는 관례를 고례(古例), 예로부터 전해 내려옴을 고전(古傳), 옛날의 법식이나 의식 또는 고대의 책을 고전(古典), 오랜 역사를 지니는 옛 절을 고찰(古刹), 오래 전부터 그 일에 종사하던 사람을 고참(古參), 낡은 당집을 고당(古堂), 옛날에 지은 오래된 성을 고성(古城), 옛 궁궐을 고궁(古宮), 고대의 무덤이나 옛 무덤을 고분(古墳), 70세를 일컬음으로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에는 드문 일이다는 뜻의 고희(古稀), 고금을 통하여 홀로 뛰어남을 고금독보(古今獨步),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속을 고래지풍(古來之風), 늙은이들의 말로 예로부터 전하여 옴을 고로상전(古老相傳), 오래 되어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을 고색창연(古色蒼然), 옛날부터 지금까지를 고왕금래(古往今來), 가락이 썩 예스러워서 화창하는 이가 없음을 고조독탄(古調獨彈), 대대로 자손이 번성하고 세력 있는 집안을 고족대가(古族大家), 옛 모양 그대로임을 고태의연(古態依然), 옛 곡조라서 연주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고조불탄(古調不彈), 오래 된 우물에는 물결이 일지 않는다는 뜻으로 마음을 굳게 가져 정절을 지키는 여자를 비유하는 고정무파(古井無波) 등에 쓰인다.
▶️ 來(올 래/내)는 ❶상형문자로 来(래/내)는 통자(通字), 간자(簡字), 倈(래/내)는 동자(同字)이다. 來(래)는 보리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아주 옛날 중국 말로는 오다란 뜻의 말과 음(音)이 같았기 때문에 來(래)자를 빌어 썼다. 나중에 보리란 뜻으로는 별도로 麥(맥)자를 만들었다. 보리는 하늘로부터 전(轉)하여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다란 뜻으로 보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쓰는 것이라고 옛날 사람은 설명하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來자는 ‘오다’나 ‘돌아오다’, ‘앞으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來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來자의 갑골문을 보면 보리의 뿌리와 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來자는 본래 ‘보리’를 뜻하던 글자였다. 옛사람들은 곡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來자는 점차 ‘오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來자가 이렇게 ‘오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夂(뒤져서 올 치)자가 더해진 麥(보리 맥)자가 ‘보리’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來(래)는 ①오다 ②돌아오다 ③부르다 ④위로하다 ⑤이래 ⑥그 이후(以後)로 ⑦앞으로 ⑧미래(未來) ⑨후세(後世) ⑩보리(볏과의 두해살이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왕(往),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죽은 뒤에 가서 산다는 미래의 세상을 내세(來世), 다음에 오는 주를 내주(來週), 겪어 온 자취를 내력(來歷), 후세의 자손을 내예(來裔), 외국인이 한국에 오는 것을 내한(來韓),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을 내습(來襲), 오고 가고 함을 내왕(來往), 손님이 찾아옴을 내방(來訪), 와 계신 손님을 내빈(來賓), 찾아 오는 손님을 내객(來客), 와 닿음을 내도(來到), 남에게서 온 편지를 내신(來信), 다음에 다가오는 가을을 내추(來秋), 어떤 결과를 가져옴을 초래(招來),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未來),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앞으로 닥쳐올 때를 장래(將來), 가고 오고 함을 왕래(往來),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사물의 내력을 유래(由來),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래(本來), 이르러서 옴이나 닥쳐 옴을 도래(到來), 오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내자물거(來者勿拒), 오가는 사람을 내인거객(來人去客), 오는 사람을 금해서는 안 됨을 내자물금(來者勿禁), 올 때는 갈 때의 일을 모른다는 내부지거(來不知去) 등에 쓰인다.
▶️ 稀(드물 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벼 화(禾; 곡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적다의 뜻을 가진 希(희)로 이루어졌다. 벼가 적다의 뜻이 전(轉)하여 드물다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稀(희)는 ①드물다 ②드문드문하다 ③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 ④희소하다 ⑤적다 ⑥묽다 ⑦묽은 것 ⑧묽게 된 것 ⑨멀건 것 ⑩극히 ⑪매우 ⑫아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밝을 앙(昻), 드물 한(罕), 귀할 귀(貴)이다. 용례로는 일이 그렇게 될 희망이나 가망이 적음을 희박(稀薄), 드물어 매우 귀함을 희귀(稀貴), 세상에 드물어 흔히 없음을 희대(稀代), 또렷하지 못하고 흐릿함을 희미(稀微), 몹시 묽게 섞어 타거나 풂을 희석(稀釋), 일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을 희년(稀年), 일흔 살이 되는 해의 생일 잔치를 희연(稀宴), 어떤 현상이나 대상이 좀처럼 대하기 어려울 만큼 특이하거나 기묘함을 희한(稀罕), 드물고 썩 적음을 희소(稀少), 흔하지 아니함이나 드물게 있음을 희유(稀有), 소식이 드문드문함을 희활(稀闊), 조금씩 흩어짐을 희산(稀散), 보기 드문 귀한 책을 희서(稀書), 세상에 드묾을 희세(稀世), 드물고 괴이함을 희괴(稀怪), 매우 드문 성을 희성(稀姓), 70세를 일컬음으로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에는 드문 일이다는 뜻을 고희(古稀), 썩 드물어 좀처럼 듣지 못함을 희대미문(稀代未聞), 세상에 드문 재주를 희세지재(稀世之才), 드물기 때문에 인정되는 가치를 희소가치(稀少價値), 달이 밝으면 별빛은 희미해진다는 뜻으로 한 영웅이 나타나면 다른 군웅의 존재가 희미해짐을 비유하는 말을 월명성희(月明星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