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래에서
며칠 전부터 기온이 부쩍 내려가더니, 아침마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다. 우리 아파트 화단의 감나무들도
어느새 붉은 빛을 잃고, 몇 남지 않은 감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유난히 탐스럽게 열린 나무도 있고,
탱자만 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나무도 있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에도 감나무가 있었다. 둥그스름한 왕감나무 한 그루와 밭머리에 돌감나무 한 그루.
왕감나무는 해마다 몇 알 되지 않았지만 크고 달았다. 반면 돌감나무는 작고 떫었지만 열매가 많아, 겨울
이면 가지가 축 처질 정도였다. 홍시가 되기 전엔 입안이 바짝 마를 만큼 떫었는데, 서리가 내린 뒤엔 그
떫음이 단맛으로 바뀌었다. 그때서야 감은 비로소 제 빛을 냈다.
감나무는 어릴 적 접을 붙여야 제대로 된 감을 맺는다. 그냥 자라면 돌감이나 땡감으로 남는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도 감나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때 배우지 못하면 마음이 굳어버리고,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 가르침을 통해 단맛을 품게 되는 것도, 결국 사람의 ‘홍시 시절’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며칠 전 화단을 지나는데, 땡감나무 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직 덜 익은 감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예전 같았으면 까치밥이라며 그 감 하나쯤은 남겨두었을 텐데, 요즘은 누구 하나 새를 위해 감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감을 따면서도 꼭대기 몇 알은 까치밥이라며 남겼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마음
이 그 속에 있었다.
할머니는 뜨거운 구정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으셨다. “땅속 벌레가 데일라.” 하시며 식혀서 버리셨다고 어머니께
들었다. 나는 세 살 때 할머니를 여의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6·25 전쟁 중 피난길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지시
며 “손자 잘 키워라” 하셨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벌써 75년 전의 일이다.
아파트 화단의 감나무 아래서 그 이야기를 떠올리니, 문득 마음이 숙연해진다. 서리가 내리고, 잎이 모두 떨어져도
감나무는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운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추위 속에서도 단맛을 품은 감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아직 따뜻한 계절이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