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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생님- 은혁이가 또 말썽부려요"
오전반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장난감을 치우고있을때
이제 갓 들어온 유세린선생님이 울먹이며 나에게 달려온다.
은혁이가 또 말썽을 부린덴다.
유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부랴부랴 종일반문턱에 들어섰고, 그곳에서
다른아이들의 장난감을 뺏으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장난감을 독차지고하고 있는
독불장군 은혁이가 눈에 들어온다.
"서은혁!!!!"
나의 부름에 은혁이는 움찔거리더니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곧 울듯한 태세로 돌입한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등장 5초만에 은혁이는 눈물을 질질짜며 내 품에 달겨든다.
"으아아앙 엄마 잘못했쪄요"
아휴...
나의 바지자락을 꼬옥 쥐고 얼굴을 파묻으며 엉엉 우는 은혁이.
이러면 내가 또 혼낼수가 없잖아.
"은혁이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뭐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훌쩍...훌쩍...떤땡님이요(선생님이요)"
"근데 왜 자꾸 엄마라고 불러요"
"자..잘못..훌쩍 했쪄요..으아아앙"
아직 4살밖에 되지 않는 애에게 이런 가르침은 소귀의 경읽기나 마찬가지다.
"정선생 그만해요. 그러다 은혁이 숨넘어가겠어요"
그때 지나가시던 원장선생님이 인자한 미소를 띄우시며 말하신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한번 은혁이를 주의 시킨다음 장난감을 치우러 다시 자
리를 옮겼다.
이곳은 창원에 있는 에덴어린이집.
4년전...그러니까 은빈이가 군대를 가고 나의 임신사실을 집에서 알았을때 나는 집에거 거의 쫓겨나다시
피 이곳으로 오게되었다
아버지는 믿었던 딸에대한 배신감으로 아예 호적을 파가라며, 두번다시 꼴도 보기싫다며 나를 내치셨
고,어머니는 나를 감싸주시면서도 미련한짓을 해서 인생을 망치느냐며 나를 붙잡고 하루종인 눈물을 흘
리셨다.
형제들은 주위에도 종종 그런일이 있다며 낙태를 강요해왔고, 결국 난 예상했던 결과를 받아들이며 집
에서 나오게되었다.
죄송하다는 말과..꼭 잘키워서..잘되서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긴채..
하지만 무작정 집을 나온 난 갈곳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정말 몇번이고 자살충동을 느꼈지만 그때마다 뱃속의 아이의 태동이 날 이끌어
주었다.
아이를 낳기전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나질않는다.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였어니까..
그리고 마침내 온몸을 찢는듯한 고통을 겪으며 그의 아기..
그와 나의 아기 은혁이가 세상에 나오게되었다.
하마트면..못난 어미의 잘못된 생각으로 태어나지 못할뻔한 그런 아기...서은혁..
은혁이는 나의 구세주며 희망이였다.
은혁이를 낳자마자 난 산후조리다운 산후조리도 못하고 바로 직장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일자리를 찾아다니는중, 나를 안타깝게 보시던 집주인 아주머니소개로 이 에덴어린이집
선생으로 오게되었다.
아무런 자격증도..그렇다고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던 것도 아닌데 원장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
으시고는 바로 이곳에 취직을 시켜주셨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아마 난 은혁이를 낳지도 못한채, 부모님께 돌아가겠다는 약속
을 지키지도 못한채 세상과 등질뻔했다.
"은혁이 선생님한테 뽀뽀"
장난감을 다 치우고 화장실을 가는 도중 유선생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은혁이가 유선생의 볼에 뽀뽀를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서은혁...
어렸을때 은빈이를 아주많이 닮은 내 아들..
은혁이를 볼때마다 가끔 은빈이의 얼굴이 겹쳐온다.
그럴때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를 기억에서 몰아내었다.
서은빈..2년후 돌아오겠다고 약속햇던 그.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는다 했지만 내심 내 속내는 그게 아니였나보다.
그의 제대날부터 세달정도는 그가 올꺼가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어머!! 현주야!!!!"
일을 끝내고 잠든 은혁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집앞에서 쭈구리고 앉아있는 친구 현주를 발견했
다.
실로 오랫만에 보는 그녀.
"야야~이 지지배. 멀쩡히 살아있었잖아"
"오랫만이야.보고싶었어!!!"
현주는 내가 유일하고 연락을 하고있는 친구였다.
그녀가 우리집을 올때마다 우리부모님소식, 다른친구들의 근황을 들려준다.
현주는 손에들린 소주병과 마른안주를 들어보이며 씨익- 웃는다.
"나 회사 때려쳤다!! 오늘 마시고 죽어보자!!!!!"
내 주머니에 있는 키를 쑤욱- 꺼내고는 문을 따고 들어가는 그녀.
그녀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잠든 은혁이를 벽쪽으로 눕히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 정보배 몸매 죽지않았는데~~휘익~"
"당연하지!! 내가 한 몸매 하잖냐!!"
현주의 앞에서 미스코리아 포즈를 취하며 그녀의 말을 받아쳐주었다.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인지...
그렇게 현주와 나는 오랫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회사 상사의 성희롱에 현주는 상사를 고발하고
회사를 때려쳤다고 한다. 역시 화끈한 현주성격다웠다.그리고 여느때처럼 가족,친구들의 근황을 들었
다.
엄마가 날 많이 보고싶어 하신덴다. 언제나 엄마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눈물이 나지만 오늘은 꾹- 참았
다.
마음 약해지는게 싫다. 반드시..반드시 당당하게 부모님앞에 돌아갈테야..
"아, 그리고.."
현주가 갑자기 뜸을 들인다.
나는 그녀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그녀를 바라봤다.
"왜 뜸을 들이고 그래"
"그게...아씨..이런말 해야하는건지.."
"뭔데- "
"은빈이...은빈이새끼- 약혼한데드라"
알수없는 배신감이 물밀듯 밀려온다.
현주의 잔은 어느새 소주로 철철 넘쳤고, 소주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난 정신을 번쩍차렸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서은빈...약혼.....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술잔을 들어 한번에 소주를 들이켰다.
애써 태연한척했다.
하지만...창백해진 내 얼굴은 감출수가 없었다.
"아휴...괜히 이야기했나. 나쁜새끼. 내가 결혼식날 가서 아주 다 뒤엎어버릴꺼야"
현주는 아무말못하는 날 대신해 은빈이를 욕했고, 마치 자기일처럼 열을내며 술을 들이켰다.
그와의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군대를 간다며..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나를 붙잡던 그.
자신을 기다리라며..내가 기다리던것보다 열배백배 더 기다리겠다던 그가..
그가..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다.
.....한심해....왜 눈물이 나는거지..어차피 기다리지도 않았으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슬프지않지만 가슴이 아파온다. 미칠듯이...
"하아....그랬구나...그래서...안..온거구나.."
그를 기다리지 않았지만...그를 그리워했던 4년의 시간이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이제 그를 그리워해선 안된다.
그를 보고파해서도 안된다.
....이제는 가슴속 깊히 묻었던 그를 보내야한다....
현주가 서울로 올라가고 몇일지나지 않아 심한 감기몸살을 앓게되었다.
괜찮다며 웃으며 보내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였을까..
하는수없이 원장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은혁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쉬기로 했다.
침도 삼킬수없을정도로 목이 따가웠고, 온몸은 열로 뒤덮혀 버렸다.
행여 은혁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쉬는김에 병원을 가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아프니까 엄마생각도 나고..아빠생각도 난다.
집을 나오고나서 정신없이사느냐 그 흔한 감기한번 걸리지 않았던 나기에 오늘따라 가족이 더 그리웠
다.
그리고 아니라고하지만 은빈이의 모습도 자꾸 아른거린다.
탕탕탕-
그때 누군가 대문을 두들긴다.
초인종을 놔두고 대문을 두들기는건 초인종이 닿지 않는다는 소리.
설마 은혁이가 돌아온걸까..아니면 은혁이 친구들..?
힘겨운 몸을 일이켜 문을 열러 일어섰다.
탕탕탕-
"하아- 누구..세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해서인지 밖에서 아무런 대답이없었다.
걸쳐입은 가디건 앞섬을 손으로 조이며 문을 열었다.
철컥-
"콜록- 누구세"
"........"
"........"
쾅-
나도모르게 문을 닫아버렸다.
환상이야. 환상을 본거야..정신차려 정보배!!!
현관문안에서 놀란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방금전 내가 본 사람...분명.......은빈이였다.
"환상이야. 환상일꺼야.."
탕탕-
"보배...야..."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아니야..아니야...그럴리없어
"보배야..나야..나 은빈이.."
"환청이야. 환청일꺼야. 환청이여야만해!!!!!!!!!!!!!"
두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아버렸다.
악몽이라면 빨리 깨고싶었다.
철컥-
현관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린다.
나는 악몽에서 빨리깨야한다는듯 주저앉아 계속 자기암시를 걸었다.
이건 꿈이라고...꿈이여만한다고..
하지만 이내 내 어깨에 닿는 커다란 손의 감촉에 의해 꿈이아닌 현실이라는걸 깨닳아버렸다.
"오랫만..이지. 현주한테 너 여기있다는 소리들었어."
오랫만이란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은빈이 앞에 커피를 내놓았다.
딱 보기에서 값비싸보이는 은색세미양복에 커피잔을 잡는 그의 손목에서 반짝거리는 로렉스 손목시계
가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의 인사에 나는 대답하지않았다.
차라리 나타나지말지...나쁜사람.
"잘 지냈..어..?"
조심스렇게 묻는 은빈이.
그는 4년이란 기간동안 나이를 먹엇을뿐 외모며 성격이며 모두 똑같았다.
나는 그가 현 내모습에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픈몸을 꾹 참으며 지탱했다.
머릿속이 울린다.
"아이는...."
"지웠어-"
거짓말을했다.
은혁이의 존재를 부정해버렸다.
은빈이는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은혁이의 존재를 부정하기엔 여기저기 널려있는 은혁이의 흔적들이 너무 많았다.
벽의 낙서..한글모음포스터..다 떨어진 자동차 장난감들...
은빈인 알고있지만 보배의 단호함에 모른척을 할수밖에없었다.
"제대하고 찾아올"
"약혼한다며"
어떻게든 그를 빨리 돌려보내고싶었다.
혼란했기에..지금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엔 내 몸이 너무 약해져있었다.
그의 말을 단번에 자르며 약혼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멈칫거리며 말을 잇지못한다.
"현주한테 들었어. 축하해- 그리고 걱정마. 니가 한 약속 이미 다 잊었으니까.
기다리지도 않았고..기대도 안했으니까. 그거에대한 사과를 하러 온거라면 됐으니까 돌아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난 그에게 냉정하게 대할수밖에없었다.
은빈이는 말이없었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나는 내앞에 내앞에 놓은 커피잔을 들고 일어섰다.
나의 행동은 그만 가달라는 표현이였다.
그러자 은빈이는 그때처럼...마지막으로 날 붙잡던 날처럼 내앞에 무릎을 꿇는다.
"보배야 미안해. 용서해라"
은빈인 그날처럼 애절하게 매달리지 않았다.
단 두마디. 미안해 용서해..그게 끝이였다.
뒤돌아있는 나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툭- 떨어졌다.
사과하지말지. 차라리 예전처럼 나가떨어지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지..
나쁜놈...서은빈 나쁜새끼..
행여 나의 눈물을 그에게 들킬까 입술을 꽉- 깨물고 부엌으로가 설겆이를 했다.
설겆이거리는 없었지만 깨끗히 씻어놓은 그릇들을 다시 꺼내 부서지도록 닦았다.
그렇게 약 5분정도 지나고나니 달칵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가 있던 방안에 들어서니 바닥엔 하얀 봉투가 놓여있었다.
설마하는 생각에 봉투를 집어들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니 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통장이 도장과 함께
들어있었다.
그 통장안에는 정확히 일천만원의 돈이 입금되어있었다.
탁-
그에 대한 배신감과 수치감이 온몸을 전율시켰다.
그는...그는....그의 잘못을 이런식으로 보상을 한것이다.
"으흑.....흐으으으윽..."
그자리에 주저앉아 정신나간 사람처럼 울기만했다.
잔인한 사람...
내 기억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
은빈이가 주고간 통장은 현주가 내려오면 부탁을 해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은빈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점점 증오로 부풀어오르고있었다.
아무리 제멋대로라지만..사람이라면..사람이라면 그러는게 아니였다.
애써 좋게 생각해보려해도 은빈이에대한 미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요즘들어 부쩍 아빠를 찾는 은혁이를 혼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외국출장때문에 은혁이가 어른이되면 아빠가 오신다는 말을 매번해주지
만 은혁이도 서서히 의심을 하는 눈치이다.
어쩔땐 정말 아빠가있느냐 묻는 아들한테 대체 무얼 어떻게 말해야하는것일까..
"으흑..으흑-"
"뚝해!!! 안그쳐?!!!"
"끄윽..나는...핫머니(할머니)도 없꾸, 핫아버지(할아버리)도 없꾸..
으흑-...아빠는..어..언제..흑...와요"
오늘도 한바탕 전쟁을 벌였다.
현주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집을 치우는데 정신이 없거늘
어린이집에서 가족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고 집에와서는 온갖짜증을 부리는 은혁이다.
이럴때보면 정말 은빈이랑 판박이라는 생각이든다.
결국 회초리를 들고나서야 간신히 투정을 멈춘다.
"오늘 현주이모가 멋진장난감 사온다고했으니까 말 잘들어야돼. 알았지?
말안들으면 안줄꺼야. 은혁이 알았어?"
"끄윽- ..네에.."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지만 잘못은 바로잡아야한다.
그래야 애비없이자랐다는 말을 안듣게될테니..
겨우 집정리가 끝나고나서야 은혁이의 숙제를 도와주기시작했다.
그때 현주가 초인종을 누른다.
초인종소리를 듣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은혁이.
"누구떼요~~~~~~"
아마 현주보단 장난감이 더 기다려졌겠지.
문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여기저기 널부러진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치웠다.
"빨리 안들어오고 뭐해~"
들어오는 인기척이 안들리자 나는 소리를 쳤다.
"엄마....엄마..."
은혁이의 풀죽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현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현관문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은혁이를 부둥켜안고 오열을 하시는 엄마와 뒤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현주를 보았다.
4년만에 본 엄마는 여전히 예쁘셨지만 주름이 많이 느셨다.
아마 못난 자식걱정때문이겠지..
"엄마..."
"어이구 보배야아아아 내새끼.내새끼 으흐흑"
"흑..엄마..미안해요..흑흑"
4년만의 모녀상봉.
아무것도 모른채 내가 우니까 따라우는 은혁이와 그런 은혁이와 나를 부둥켜안고 우시는 엄마.
현주는 아무말없이 뒤돌아 눈물을 닦고있었다.
"혼자오려고했는데 어머니가 꼭 같이 가자고해서"
좁은방에 네명이 둘러앉았다.
엄마는 집안을 훑어보시고는 부족하게 사는 딸이 불쌍한지 또 한번 눈물을 흘리셨다.
생활하는데 불편없다고 애써 웃어보였지만 엄마는 그저 내가 안쓰러울뿐이였다.
방안에 들어와있는내내 내 손을 꼬옥 잡으시고 절대 놓치않는 엄마.
엄마의 정 많이 그리웠어요..
"은혁아. 할머니야. 너 할머니 없다고 엄마 막 괴롭혔잖아. 인사해야지"
내 뒤에 찰싹 달라붙어 처음보는 할머니를 슬쩍 쳐다보고있는 은혁이.
나의 말에 은혁이가 쭈삣쭈삣 앞으로가 인사를 한다.
엄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계속 닦으시면 은혁이를 품에 안았다.
"니가 은혁이구나..니가 은혁이야"
엄마가 여기까지 오신이유는 이제 집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셨다며 집으로 가서 같이 살자고 하셨다.
갑작스런 이야기에 나는 당황을 했지만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였다.
저녁을 먹고 은혁이와 현주는 동네놀이터로 놀러나갔고, 엄마와 난 둘이 남아 그동안 못나눴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빈인 만났니?"
엄마가 은빈이의 이야기를 꺼낸다.
고개를 끄덕일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랬구나. 은빈이 약혼하는것도 알고있겠구나"
"네"
"은빈이 너무 미워하지말아라"
엄마는 은빈이에게 자비를 베풀라하셨다.
어떻게....딸을 이렇게 만든 놈에게 무슨 자비를...
"은빈이도 쉽지 않았을께야"
"....무슨..."
엄마는 무거운얼굴로 이해할수없는 말들을 늘여놓으셨다.
"이제와서 이야기하는거지만..은빈이 그녀석 니네 아버지한테 많이 맞았다"
"...네...?"
"처음 100일휴가나와서 보배어디있는지 알려달라며 울고불구하는 애를 쥐잡듯이 패고, 두번다시 얼씬거
리지 말라는 엄포를 노셨지.
그리고 그녀석 한번 호되게 당해서 두번다시 안올줄알았는데 휴가나온 10일 내내 집에 찾아와서 늬아버
지 신경건들였어.
맷집이 좋은건지 정신력으로 버틴건지..그래도 늬아버지 얼굴을 내놓고 다녀야한다고 얼굴을 빼놓고 때
리시는데..온몸은 멍으로 뒤덮혔었지. 그때 내가 약 발라주면서 그만오라고 했는데 씨익- 웃으면 '괜찮
습니다 장모님'라고 말하는데어찌나 안쓰럽던지..에휴.."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상상도 할수없는 이야기였다.
은빈이가 군대에 있는2년동안 휴가를 나오면 우리집앞에서 밤을 샛다고 한다.
나의 행적과 아버지의 용서를 구한다고.....
의외의 말에 나는 또한번 말을 잃었다.
엄마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찮게 우리집에온 현주랑 만나서 니 사는 이야기를 듣고, 늬아버지랑 약속을 하나 했지.
자기는 용서 안하더라고 보배만이라도 용서해주면 자기가 알아서 떠나겠다고..
너 이렇게 사는게 안쓰러웠던모양이야. 그렇게 3년을 우리집에 오더니 그 약속을 하고는 얼씬도 하지 않
았어.그리고 1년후에 약혼한다며 너 다시 집으로 오게해달라는 인사를 하러 왔더구나"
"......말도..안돼.."
"그러니까 은빈이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그날밤 나는 한숨도 잘수가없었다.
인간말종 서은빈이 3년동안 우리집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니...
머릿속이 또 복잡해진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도 모르고 은빈이를 천하의 쓰레기같은 남자로 생각햇던 내가 한심해진다.
은빈인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아서 안지킨게 아니였다.
서은빈....진짜 바보자식..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시고 정확히 1주일후..
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늘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밤차로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지라 선생님들은 펑펑 눈물을 보이셨고, 종종 놀러오겠다는 인사를 남긴채 난
서울로 향했다.
4년만에 가는 서울.
현주가 짐을 들어주겠다며 몇일전부터 이사를 도와주었다.
은혁인 처음으로 장시간 버스를 타 지쳤는지 잠이들어버렸다.
"오늘 은빈이 약혼식이야"
현주가 덤덤히 말한다.
잠시 나의 행동이 멈칫했지만 이내 태연해졌다.
이제 괜찮다. 그동안 은빈이를 미워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나서부터는 모든게 평화로워졌다.
정말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와의 있었던 과거..좋은 추억으로 남기기로했다.
"뭐야. 왜이렇게 태평한건데?"
현주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나에게 토끼눈을 뜨며 묻는다.
그런 그녀에게 씨익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글쎄- 너무 오래된 일들이라서 무뎌졌나봐"
서울의 아침은 생각보다 상쾌했다.
집앞에 다가선 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빠를 보면 어떤말부터 해야하나..형제들을 보면 어떤표정을 지어야하나..
또 은혁이에게 어떻게 소개시켜줘야하나..
다시한번 심호흡을 하며 살짝 열린 대문을 여는 순간!!
"이녀석이 여기가 어디라고 또 와!!!!!!!!!!!!!!"
아빠의 큰목소리에 모든행동이 멈춰졌다.
곧이여 아빠를 말리는 가족들의 소란도 이어졌고, 그 속에서 작지만 귓가에 또렷히 들려오는 익숙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아앗, 자,장인어른!!!"
"누가 니 장인이야!!!!!"
은빈이였다.
은빈이...?....오늘 약혼식이라고..
나는 재빨리 은혁이를 데리고 대문을 열어 마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오빠와 여동생에게 제제당하고있는 아빠와 그앞에서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무릎을 꿇고있는 은
빈이가 눈에 들어왔다.
"엇!! 싸운다!! 엄마 싸운다 싸워!!!"
그때 은혁이의 외침으로 모든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뭔가 감동적인 만남을 바랬던건 아니지만 이렇게 가족들과 은빈이를 보게될줄이야...
나는 그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그때 은빈이가 모두 얼어붙은 가족들을 보다가 이때가 기회다 싶어 말을 한다.
"장인어른!!! 저 약혼 취소했습니다!! 도저히 보배를 버릴수가 없습니다!! 용서해주십쇼.
죽으라면 죽는 척 이라도 하겠습니다!!"
은빈이녀석...약혼식장에서 달려나온듯 보였다.
은빈인 눈을 질끈감아버렸다. 곧이어 떨어질 아빠의 호통을 예상했기에..
하지만 아버지는 그냥 집으로 들어가버리셨다.
뒤따라 가족들도 집으로 들어가버렸고, 나 역시 은혁이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무릎꿇고있는 은빈이를 뒤로한채..
아빠는 여전히 화가나신듯 보였지만 어느정도 누구러지셨고, 오빠나 동생이나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은혁이를 가족들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갑자기 할머니와 할아버지,삼촌,이모가 생긴 은혁인 마냥 행복해보였다.
아빠는 겉으론 아닌척하셨지만 은혁이가 그리 싫지는 않으신거 같았다.
은혁이 또한 금방 할아버지하며 아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나저나 아직도 무릎을 꿇은채 밖에있는 은빈이.
나는 가족들몰래 마당으로 나갔다.
"보배야"
그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그의 과거를 들어서일까..예전엔 그가 죽도록 미웠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저 이런 그가 안쓰러울뿐이다.
"뭐하는거야. 돌아가. 약혼날 이게 뭐하는거야"
"나 약혼안해 보배야"
"....돌아가..."
"싫어! 내가 그랬지. 너 기다린다고. 나 이약속만큼은 꼭 지킬꺼야"
그의 눈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러기엔 우리 너무 멀리왔다고 생각안해?"
나의 말에 그는 잠시 표정이 굳었지만 바로 애써웃음을 지어 보인다.
"괜찮아. 나 달리기빠르니까 금방 쫓아가면돼. 좁혀가면 되니까 괜찮아"
"너 진짜 바보구나"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직 은혁이에겐 은빈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은빈이 역시 은혁이를 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아마 내 허락을 기다리는거겠지..
서은빈....철들었네..
은빈이에게 돌렸던 마음이 서서히 조금씩 돌아오고있음을 난 느끼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지 1주일이 넘어가고있다.
여전히 은빈인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리집마당앞에 무릎을 꿇고 아빠의 용서를 빌었다.
아빠는 여전히 완고하셨지만 은빈이를 때리지 않는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가족들은 눈치못챘지만 은혁이는 몰래몰래 은빈이에게 먹을것을 갖다 주곤한다.
또한 나역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이 돌아서고 있었다.
"은혁아!!"
TV를 보고있는 은혁이를 조그마한 소리로 불렀다.
그리고는 은혁이에게 물과 손수건을 주면서 귀에 속삭였다.
"아빠한테 갖다드려. 알았지?엄마가 줬다는 소리하면안된다!!!알있지?"
은혁이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쪼르르 마당으로 향한다.
"아빠아아~"
은혁이가 조그마한 소리를 내며 마당에 무릎을 꿇고있는 은빈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물과 손수건을 그에게 건넨다.
은빈인 은혁이가 마냥 귀엽기만 하다. 볼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그자세어서 번쩍들어올리기도 하고..
그러다 가족들의 누군가 인기척이 들릴때면 재빨리 은혁이는 집안으로 돌아온다.
"아, 은혁아"
"네?"
"이거 엄마한테 좀 전해줄래?"
은빈이가 주머니속에있는 무언거를 꺼내 은혁이의 손에 쥐어준다.
은혁이는 알았다며 은빈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다시 쪼르르 집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내손에 조그마한 종이쪼라리르 쥐어주고는 헤죽헤죽 웃으며 TV앞으로 간다.
나는 내 방으로 올라와 그 종이를 펴보았다.
삐뚤삐뚤하고 하얀종이에 갈겨쓴 글씨지만...
너무 흔한 말이지만...
감동을 해버렸다.
'사랑한다'
아직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이상의 아픔은 없을것 같습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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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번외는 부담감이 조금 없지않아있네요^^;
그래도 나름데로 열심히 썼습니다!!!!
재미있게봐주세요(비굴비굴;)
전편보다 길어서 두개로 나눠쓸까하다가 그냥 한번에 보시라고
쭉- 올렸습니다!! 재미있게보시구요! 좋은주말 되세요!
(오타는 애교로 봐주세요^^;)
저 진짜 펑펑 울었어요 ㅠㅠㅠ 엉엉, 그래도 전 여전히 은빈이 미워요 ㅜㅜ
아 너무재밋다..ㅠㅠ넘 재밋어요 우연히보다가 게속 님소설만 보는중입니다!!너무재밋어요
스크랩해갈께요-
창원나왔다~~~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