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소를 키워서 잡아다가 팔아서 먹고사는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사실, 옛날부터라고 하기에는 뭐 좀 그렇습니다.
그 전에는 이 마을 사람들도 소를 잡아서 키우고 길들여서 생산적으로 이용했다기 보다는
'소뒷발에 쥐잡듯' 야생소가 어쩌다가 덧에 걸리면 마을사람 모두가 달려들어
그자리에서 허기를 채우기에 급급했으니까요.
그렇게 살아오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40여년전 정희라는 '治牛'가 나타나서
소를 잡아다가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마을은 일대변혁을 불러왔으며 드디어 오천년의 가난을 몰아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론, 그렇게 되기까지 전혀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만해도 소를 사로잡거나 해체할 때 필요한 장비라고는 전무하던 시절이라
맨손으로 소를 잡아야하기에 治牛는 목숨을 걸어야했고
몰이꾼 역할을 하던 마을사람들도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소에대해 거침이 없는 치우를 믿었고
치우는 착실히 외양간을 늘리면서 소를 축적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에게는 외양간을 튼튼히 지키라는 당부로
'有備無患'이라는 간판을 내 달았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부자로 만들었던 치우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온 마을의 도가니에는 소고기대신 눈물로 가득채워
'눈물의 도가니'라는 말이 그 때부터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治牛역할을 맡은 사람은 머리에 빛이 났는데
사람들은 그를 '頭奐치우'라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소가 탐이 났을 뿐이지 마을사람들은 애초에 염두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의 일부사람들이 분배에 대해 항의를 했다가 소를 모는 채칙을
사람들에게 휘둘러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 그도 결국은 마을사람들에게 내쫒기고 말았는데.
떠나면서 그는 수많은 소들을 빼돌려 숨기고는 마을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29만원 밖에 없어서 소는커녕 개도 못 삽니다"
그후로 사람들은 그를 개두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두환치우는 친구하나를 소등에 태우고 떠나갔는데
소등에 태워졌던 사람이 바로 태우치우입니다.
그는 원래 마굿간에 물을 공급하던 친구라 사람들은 그를 물태우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정희治牛님이 워낙 견고하게 만들어놓은 외양간과
길러놓은 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큰 근심이 없었습니다.
여유를 가진 마을 사람들은 이웃마을 사람들을 초청해서
'세계종합소싸움경기'를 보여주며 잔치도 배풀었습니다.
다음으로 치우를 맡게 된 사람은 '뻥삼치우'였습니다.
이 사람은 소를 자랑하는 것 말고는 소를 다를 기술이 전혀 없었습니다.
지난번 '종합소싸움경기'를 보고 갔던 이웃마을 사람들이 부추겨주는 바람에
마을의 소가 실제보다 훨신 부풀려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랑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소들만 거래한다는 'OECD牛시장'에 마을 소를 꺼내다가 내놓지 않나,
외양간에 붙어있던 '有備無患'이라는 팻말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大道無門' 즉, '큰길에는 문이 없어도 도둑을 맞지 않는다'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소를 끌고 큰 길로 돌아다녔습니다.
뻥삼치우가 그토록 자신있는 모습에 마을사람들도 잠시 허리띠를 풀고
풀밭에 드러누워 샴페인을 트뜨리며 有備無患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소고삐가 예상외로 낡았음을 인지한 마을 사람들이
고삐교체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같은시절 뻥삼치우와 오랫동안 치우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대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번이 자신이 치우를 맡게될 절호의 기회인지라
소고삐의 제질문제를 시비하며 교체시기를 자꾸만 늦추고 말았습니다.
결국 고삐를 제때 교체하지 못하는 바람에 문이없는 大道에 뛰어나왔던 소들이
모두 흩어지고, 손도 써보지도 못하고 소들을 몽땅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을의 외양간에는 IMF라는 외국소들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안했지만 마땅한 치우가 없던 터라
준비된 치우라고 내세우는 대충이라는 사람에게 치우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비록 외양간에는 외국소들로 채워졌지만
들판으로 흩어진 마을 소들을 다시 몰아넣고 소를 잡아다 팔면
다시 부자가 될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대충치우의 화술로 마을사람들을 모아서
소를 일단 외양간에 몰아넣는데는 성공 했습니다.
아직 우리도 어렵지만
5,000년동안 가난했다가 계속 꾸준히 가난한 북쪽마을 사람들에게도
정주영옹을 시켜 소를 몰아다가 넘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준비된 치우라고 자부하던 대충치우가
실제로 곁눈으로만 소잡는 모습을 봐왔지 원래 닭을 잡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치우가 되자말자 연장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쇠붙이를 모아다가 녹여 '연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도 턱도 없었던지 '궁민연금'이라는 '연금술'로 칼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의료용구'도 연장에 필요하다고 해서 내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50조라는 어마어마한 '연장'을 챙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아무리 그렇게해서 밀어주어도
역시 닭을 잡던 사람은 닭을 잡아야지 소는 잡지 못합니다.
'닭잡는 사람에게 소를 잡아 달랬더니 잡아라는 소는 못잡고 난도질을 해대는 겁니다.'라는
위대한 속담을 남기고 그도 떠나고 말았습니다.
소들은 결국 난도질만 하다가 비틀거리며 달아났습니다.
대충치우는 자신은 그래도 저만큼 찔어놨으니 자신의 책무는 마쳤다고 자부하며
'칼만 들면 설치는 후배'에게 치우자리를 넘기고 물러났습니다.
정말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하리란 것을 마을 사람들은 짐작도 못했습니다.
칼만 들면 설쳐대길래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치우를 '無見치우'라고 불렀습니다.
하도 칼을 휘둘러대길래 자칫 사고라도 발생할까싶어 원로회의에서는 잠시동안
무현치우의 손에 잡힌 칼을 뺐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칼휘두르는 모습만 보고 좋아서 따라다니는 마을어린이들이 하도 보채는 바람에
다시 칼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이제,마을 사람들은 난도질만 당하고 비틀거리는 소들을 하루빨리 처리해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무현치우는 우리의 외양간은 충분히 튼튼하고
난도질 당한 소들을 이미 잡았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뼈만 남아 앙상한체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소를 따라가서 칼을 휘두르다
칼집에서 떨어져 나온 살덩이를 구워다가 잔치를 열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앞서서 가리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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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가운에 정신없이 적다보니 두서가 없네요.^^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ㅋㅋㅋㅋ 참 재미 있네요~~~잘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입니다 ,,재치와기지가 예사롭지가 않구요 ,신춘문예에 당선작후보입니다 ,, 박사모의 훌륭한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화이팅 !!
ㅎㅎㅎㅎㅎ 잼나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님들 모두 즐겁고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더불어 환희까지 맛 보실 것입니다. 박사모 화이팅!!
정말 잼있게 읽었읍니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