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4F-D 와일드켓(Grumman F4F Wildcat)
태평양 전쟁 초반 미 해군의 주력 함상전투기로 활약했으며, 이후 F6F 헬캣, F7F 타이거캣, F8F 베어캣, F-14 톰캣으로 이어지는, 그루먼 "Cat" 가문의 맏이이다. 동생들처럼 대놓고 막강한 스펙을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철공소 특유의 튼튼하고 신뢰도 높은 설계에 힘입어 전략적 주도권을 빼앗긴데다 숫적인 면에서조차 미군이 아직 열세이던 태평양 전쟁 초반의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데 기여한 여러모로 생활력 강하고 꿋꿋한 소녀가장 같은 전투기였다.
1930년대 초반 미 해군은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그루먼사의 복엽전투기를 퇴출시키고자 여러 항공기 제작업체에 신형 항공모함 함재기 개발을 의뢰하였다. 당시 그루먼사는 예전부터 함재기를 계속 공급해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지만, 항공모함에서는 복엽전투기가 킹왕짱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원형기는 복엽기로 설계되었다. 이로 인해 단엽전투기로 개발된 브루스터사의 F2A 버팔로보다도 못한 성능으로 경쟁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하였다.
결국 급해진 그루먼사는 기존 원형기의 설계를 단엽전투기로 뜯어고쳤는데, 이로 인해 당대에 개발된 거의 모든 단엽전투기들은 날개가 동체 아래부분에 부착되는 저익(Low wing)구조를 채택했지만 와일드캣은 동체 중간에 날개가 부착되는 중익(Mid wing)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여튼 순조롭게 개량이 이루어지고 두 번째 원형기는 버팔로보다 훨씬 나은 스펙으로 해군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항공모함 작전에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서 결국 1939년 버팔로가 해군의 발주를 따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그루먼사는 아니었다. 1939년에서 1940년까지 악착같이 지적된 문제점을 뜯어고치고 과급기까지 설치하여 성능을 한 층 더 개선시킨 원형기를 해군에 제출하였고, 이미 앞선 경쟁에서 버팔로보다 좋은 스펙을 선보이면서 해군의 발주를 받은 전력이 있었기에 다시 테스트가 이루어졌고, 결국 버팔로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1940년 11월 정식으로 해군의 발주를 받았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와일드캣이 2차 세계대전 초반의 해군 전투기 중 매우 걸출했다고 평가한다... 내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를 통해 보증하건대, 이 그루먼제 전투기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함상기 중의 하나였다. - 에릭 브라운 (Eric M. "Winkle" Brown - 영국의 테스트 파일럿)
와일드캣이 미국에서 정식 발주를 받을 무렵 영국도 씨 글라디에이터를 대체할 함재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자국 항공사들이 제출한 후보기체들의 성능이 딸리자 그냥 미국에서 개발된 와일드캣 600기를 질러서 '마틀렛'이란 이름으로 운용하였다. 이 영향으로 와일드캣 역시 영국에서 먼저 실전데뷔를 하였으며, 항공모함 작전이 주로 이루어진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 쪽에서 활동하였다.
한편 미 해군은 버팔로가 와일드캣에 비해 성능은 떨어지지만 그리 다급하게 교체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그 영향으로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고작 항공모함 USS 호넷과 USS 엔터프라이즈의 전투비행단에만 와일드캣을 보급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버팔로가 A6M 제로에게 순삭나버리자 그제서야 모든 항공모함 전투비행단에 와일드캣을 보급하였다.
초기에는 제로 전투기의 우수한 파일럿들, 그리고 미숙한 와일드캣의 파일럿들과 낮은 사기로 열세를 보였지만 점차 베테랑 파일럿들과 전략이 쌓이고 사기가 올라가면서 제로센에 대등히 맞서게 되며 자신의 장점들을 활용해 다른 일본 전투기들을 막는데도 큰 공을 세운다. 그리고 와일드캣은 미국이 가장 위험했던 1년간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와일드캣이 버티는 동안 양산된 F6F 헬캣과 같은 후계기들이 항공모함에 배치되면서 사실상 일선기에서는 물러났지만, F6F나 F4U 등의 후속 기체들보다 소형이며 저속에서 착함이 가능하고 이륙거리가 짧다는 점을 활용해 호위항공모함 등에서 함대방공기로 계속 사용되었다. F4F 생산량 중 호위항모에서의 이용을 전제로 하고 만든 파생형인 FM-2가 5,280기로 최다를 차지할 정도. 선입견과는 다르게 의외로 전쟁 말기까지 꾸준히 사용된 기종. 요 FM-2의 경우 더 와일드한 와일드캣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일단 엔진 출력이 1350마력으로 늘어났으며, 과급기가 의외로 1개로 줄어버렸으나(그래도 2단계 속도 조절 가능) 일본기들이 사실상 전략폭격기들이 다니는 고도까지 올라가지도 못 하므로 그 이하 고도에서 더 성능이 좋도록 고친 것이다. 거기다 WEP도 추가. 덕분에 폭장은 대폭 늘어나서 로켓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후계기들에게는 밀리는 것은 사실이라 종전과 함께 완전히 퇴역하였다. 사실상 대전이 끝났으므로 호위항공모함이라는 함종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으며 이미 제트엔진의 등장으로 프롭기를 더 이상 운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전시에 생산된 병기답게 그루먼사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기체이지만, TBF 어벤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전시공업체계에 따라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제너럴 모터스에서도 자동차 생산을 잠시 접고 와일드캣을 생산하였다. 특히 그루먼사가 헬캣 양산으로 전환한 후에도 생산라인이 유지됐는데 그 덕분에 와일드캣 생산량 가운데 66%는 GM 제품이다.
태평양 전쟁 전 기간에 걸쳐 미 해군과 해병대의 와일드캣은 15,553회 출격했고 (그 중 14,027회는 항모에서 출격), 1,327기의 적기를 격추했으며, 178기를 공중전에서 잃었다. 전쟁 전기간의 손실-격추 교환비는 1:6.9. 기타 지상/함상의 대공포화로 24기, 기타 운용상 비전투손실 49기를 잃었다. 그러나 폭장탑재량은 빈약했기 때문에, 방공/호위 전투기로서의 역할에 집중되어 전쟁 기간 내내 폭탄 투하량은 154톤에 그쳤다.
와일드캣은 수치상 스펙으로는 그리 뛰어나게 보이지 못하게 전투기였지만 실전에선 튼튼하고 신뢰성 있는 기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전술운용을 통해 제로센 등을 상대로 대등이상의 전투를 벌이며 선전,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시작한 태평양 전쟁 초반의 열세를 버텨내며 일본군의 해상 제공권 장악을 저지하여 역전의 발판을 쌓는데 큰 기여를 했다.
앞서도 언급되었듯 사실 와일드캣은 제로센에 비해 외견상의 피상적인 스펙비교로는 상당히 떨어지는 전투기이다. 속도, 상승력, 선회능력 등 대부분의 수치에서 와일드캣의 카탈로그 스펙은 제로센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제로센과의 대결에서 와일드캣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상승률은 제로센이 와일드캣의 1.5배 가까이 된다. 저런 사항들 탓에 1:1 전투라면 제로센이 와일드캣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의 와일드캣 대 제로센의 실제 전과는 무기의 실전에서의 효용은 결코 피상적인 스펙상의 수치나 일기토적인 1:1 대결에서의 우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의 하나이다.
일단 와일드캣은 "방어력 그거 먹는거죠?"였던 제로센보다는 훨씬 훌륭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와일드캣은, 제로센은 전혀 갖추고 있지 않던 조종석 방탄판이나 캐노피의 방탄유리, 연료탱크의 자동방루 설비 등을 충실히 갖추고 있었다. 와일드캣의 캐노피 전방 방탄유리판의 두께는 무려 70mm. B-17 폭격기의 전방 글라스콕핏의 40mm 보다 두껍다. 물론 제로센은 아크릴 판이다. 즉 이를테면 와일드캣과 제로센이 헤드온으로 서로 사격한다면, 와일드캣의 경우라면 제로센의 7.7mm 기총은 엔진과 방탄유리에 막혀, 적어도 조종사는 안전할 수 있지만, 와일드캣의 .50구경 기관총을 '그냥 아크릴 판'으로 받아내야 하는 제로센의 조종사는...
그리고 다른 미군 전투기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와일드캣 등이 사용하던 미 해군의 자동방루 탱크는 전쟁기간 동안 12.7mm급 기총탄의 피해는 충분히 버텨냈고 경우에 따라서는 20mm 기관포탄을 맞아도 연료누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제로센은 자동방루 설비도 없는데다, 항속거리를 늘이려고 그런 무방비의 연료탱크를 주익까지 설치해 치명적 피탄부위를 널찍하게 늘려 주었다.
제로센 에이스로 유명한 사카이 사부로는 자신의 저서 '제로'에서, 와일드캣과의 전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나는 '그루먼'을 파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7.7mm 기관총만으로 적기를 끝장 낼 결심을 했다. 그래서 20mm 기관포의 스위치를 꺼짐 위치에 놓고 잠가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5-6백발의 기관총탄을 그루먼에 직접 퍼부은 다음에도 적기는 추락하지 않고 계속 날고 있었다. 그런 일은 처음 겪어본 일이라서 나는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루먼에 손을 뻗어 닿을 거리까지 접근했다. 놀랍게도 그루먼의 방향타와 꼬리날개는 넝마처럼 너덜너덜하게 찢겨나가 있었다. 비행기의 상태가 그렇다면, 파일럿이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 제로센이 그렇게 총탄을 맞았다면 이미 불덩어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게다가 와일드캣에 장착된 6정의 12.7mm 기관총은 발사속도도 빠르고 탄도도 곧은 신뢰성 높은 무장이었기 때문에 제로센 같이 장갑이 튼튼하지 못한 일본 전투기들을 상대로 유용했다.
이러한 방어력과 화력에서의 우세가 없었다면, 제로센 공략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 타치 위브 같은 전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제로센의 구조적 문제점에서 발생하는 내구성 문제로 인한 급강하 성능의 부실과 고속도에서의 조종성의 불량, 무전기를 통한 유기적 편대전술 실행 불가능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실전에서 와일드캣이 제로센에게 일방적으로 열세에 놓이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2차 대전 초반으로선 준수했던 1200마력대 엔진에 2속 2단 2-speed, 2-stage 수퍼차저를 사용하여 고공에서의 성능은 쓸만했다.
특히 방어력과 화력 만큼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제로센의 급강하 성능의 문제 역시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전투에서 피상적인 스펙과는 딴판인 결과를 낳는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본질적으로 레시프로 시대의 전투기들은 오늘날의 제트 전투기와 비교한다면, 순수한 엔진추력에 의한 급상승이나 급가속 등에 훨씬 더 많은 제약을 갖는다. (물론 상승력에는 양력도 중요한 요소지만 양력에 대한 요구와 속도에 대한 요구는 종종 충돌한다.) 때문에 당시의 공중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리미리 높은 고도를 선점하고, 이렇게 얻은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 속도로 바꾸는 것이었고, 그렇게 고도의 우위-속도의 우위를 이용해 상대를 급습하고 이탈하는 (그리고 다시 그것을 고도의 우위로...→ 반복) 일격이탈의 "붐 앤 줌(Boom and Zoom)"이 가장 보편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기체강도가 사망이라 강하속도를 630km/h 남짓으로 제약해야 했던 제로센은 기껏 우수한 상승력으로 고도를 확보해도 그것을 충분한 속도로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강하시에 제대로 속도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은 빠르게 다시 고도를 획득할 때도 문제가 된다. 제트시대의 전투기들이 F-15, F-22 등 4세대, 5세대 전투기라면 대체로 "1.0"이상의 추중비를, F-4등 3세대 전투기라고 해도 대체로 0.7~0.8의 추중비를 내는 강력한 제트엔진으로, 초당 2-300미터 이상을 상승하는 것과 비교하면, 엔진출력에 더해 양력으로 상승해야 하는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프로펠러 전투기들의 상승속도는 - 설령 Bf109나 P-38 라이트닝등 당시 최고수준의 상승력을 자랑하던 기종이라 해도 - 그 10% 남짓한 상승 속도 밖에 낼 수 없었다. 즉 만일 '붐 Boom' 하고 강하하며 사격 한 다음 후, 열심히 프로펠러 돌려 지속상승력만으로 고도를 회복하려면, 엔진에 전시비상출력을 걸어가며 뺑이를 쳐서 상승해도 1000m 회복하는데 1분 가까이 걸린다는 것. 그 상승력 좋다는 Bf109라도 말이다. 이런식이라면 공격주도권은 고사하고 상승에 에너지를 쓰느라 두둥실 두둥실 천천히 떠오르는 동안 아주 먹음직한 표적이 되어 목숨이 위태롭다. 물론 이런 바보짓을 하는 파일럿은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금방 '없어졌을 것'이다...) 당연히 강하하면서 생긴 속도에너지를 이용 (거기에 엔진출력을 더 보태) '줌 Zoom' 하고 타력상승으로 급상승해서 고도를 회복한다. 그리고 붐에서 줌으로 전환할 때 기체와 조종사에게 가장 강한 G가 걸린다. 기체강도가 괜히 중요한 게 아니란 말씀.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이나 전투기를 논할 때면, 아주 약간만 깊게 들어가도 '(급)강하속도' 떡밥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 P-51이나 Fw-190, F4U(콜세어의 분당 상승률은 깡 엔진출력+넓은 익면적 & 낮은 익면비중의 힘으로 Bf-109, Fw-190은 물론 아군 전투기까지 통틀어 가장 좋다.)등 2차 대전 후반의 공인 깡패들이 괜히 뛰어난 게 아니다. 올라 갈 때도 쭉쭉 올라가지만 내려 꽂힐 때도 마하 0.7-0.8로 거의 음속을 돌파할 기세로 내려 꽂힐 수 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만 잘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 경우 남는 장사를 한 쪽은 그나마 내려꽂힐 때는 빠른 녀석들이었다. 대표적으로 P-47처럼. 물론 P-47이 '떨어지기만 잘 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유럽전선 기준이다. 제로센과 비교하면 P-47의 지속상승률이 더 좋다...(물론 이는 평균수치상 그렇다는 것이고 고도에 따라, 모델에 따라 세세한 유불리가 또 발생한다. P-47 후기형은 상승률에서 독일기도 쌈싸먹는다.) 이래서 '닥치고 엔진!'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괜히 맥주통에 달아놓아도 상관없으니까 2000마력짜리 엔진을 단 전투기를 내놔!를 외쳐 댄 게 아니다.
반면 애초 와일드캣은 '철공소' 제품에 걸맞는 견고한 기체강도에, 제로센보다 훨씬 묵직하고 익면하중도 높아 떨어지는 속도만큼은 제로센보다 훨씬 빨랐다. F4F-3의 경우 772km/h. 덧붙여, 와일드캣은 기체강도를 믿고 아예 '제한속도'라는 걸 설정해 놓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실 와일드캣이 느렸고 튼튼했기 때문이다. 워낙 항력이 많이 발생하는 구조라 급강하(고도가 줄어들면 당연히 공기 밀도가 커지고, 이렇게 되면 기체 항력이 급강하 속도를 제한하는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고공 급강하의 경우는 역시나 엔진 파워지만.)하는 도중에도 기체가 부서질 정도로 속도가 붙지를 않았기 때문(...)에 급강하 최고속도 따위 메뉴얼에 안 써도 되었던 거다. 그런데 제로센은 이 조차 따라가지 못 했으니 그거대로 굴욕이다.
즉 고도의 우위를 빼앗겨 제로센에게 먼저 일격이탈의 기회를 내 줬다고 해도 와일드캣은 (고도의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더 빠른 강하속도로 제로센을 떨쳐내고 퇴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로센의 급강하 속도는 기체강도가 향상된 후기형 A6M5에서도 740km에 그쳐 끝끝내 와일드캣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간신히 그나마의 개선을 달성한 시점에서는 이미 태평양 상공엔 와일드캣 정도가 아니라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가 드글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방어력이나 강하속도 보다는 덜 중요한 이점이지만 '롤 Roll' 성능의 우위도 지니고 있었다. 즉 제로센이 꼬리에 붙으면 (기관총탄 몇 발 정도는 튕겨내며) 롤 기동으로 사선에서 벗어난 후, 빠른 강하속도로 빠져나가는 것. 참고로 제로센에게 기총사격을 당한 후 간혹 연기를 뿜으며 롤 - 급강하로 빠져나가는 와일드캣을 보고 일부 일본군 조종사들이 격추라고 착각한 것도 전쟁 초기 제로센의 전과에 대한 과장된 평가에 일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게 제로센이었다면 그런 경우 분명 불타는 미트볼이 되었을테니 와일드캣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또한 F4F-4부터 뒤로 완전히 접히는 날개 덕분에 같은 항모에 함재기를 더 실을 수 있으므로 항공전력 전반의 전투력 향상에도 기여하였다. 제로센의 경우는 엘리베이터에 맞춘다고 끄트머리 살짝 접는게 전부였다.
또한 카탈로그 스펙은 와일드캣보다 제로의 성능이 더 우수하긴 하지만 실전에서는 조종사의 실력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에는 제로센과 3대 1로 싸우면서 오히려 제로기 1대를 격추해버리는 서덜랜드 소령 의 와일드캣에 대한 언급이 있고, 제트기와 미사일 등의 정밀한 전자장비가 도입되기 전이니 만큼 조종사들의 실력이 기체의 성능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와일드캣이 굴러다닐 땐 일본군 파일럿들에 비하면 마땅히 베테랑 파일럿이 부족했다는게 문제였고, 이 점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차츰 개선해나가게 된다.
또한 방어력, 화력과 함께 와일드캣이 제로센에 비해 결정적인 우위를 가지는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와일드캣은 무전기를 통해 유기적으로 편대가 협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를 통해 와일드캣은 둘 이상일 경우 처음 만나는 파일럿이라고 해도 문제가 생기면 즉시 연락을 해 보호받거나 보호할 수 있었고 대규모 편대가 맞붙을 때도 확연한 이점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두 기체의 성능 비교에 대해, 제로센에 후한 평가를 하는 이들도 1:1싸움에서는 기동성이 뛰어난 제로센이 유리하지만 2:2의 경우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주기에 일방적인 꼬리물기가 불가능하기에 화력과 방어력에 우위를 지닌 와일드캣이 유리하다고 평가하며, 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이 무전기라고 말한다.
거기에다가 존 S. 타치 대령이 고안한 일명 제로 서치 전술 타치 위브로 두 기의 와일드캣이 꽈배기 꼬듯이 비행을 하면서 서로의 꼬리를 지켜주는 전술 등 제로센을 상대하기 위한 적합한 전술 들이 도입되면서 교환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타치 위브가 처음 등장한 미드웨이 전투 당시 와일드캣 4기와 제로센 10기가 맞붙어 와일드캣 1기를 잃는 동안 제로센 3기를 격추하며 가능성을 선보였는데, 미드웨이 전투 이후에 정식으로 채용되면서 제로센을 사냥하였다.
그 외에 지상기지와 연계된 작전에서는 저공성능이 뛰어난 P-39 에어라코브라와 P-40을 떡밥으로 던져서 이를 본 제로센이 저공으로 내려오면, 훨씬 더 고공에서 대기중이던 와일드캣이 급강하하면서 때려잡는 낚시성 전술도 사용되었다. 특히 과달카날 전투 동안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레이더와 솔로몬제도 섬들에 배치된 해안감시대 덕분에 조기경보 능력에서 우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와일드캣을 이용한 '고공매복' 전술은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군 조종사들이 실전에 적응해가기 시작하며 최종적으로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교환비는 1 대 1.5가 되어 와일드캣이 밀리는 성능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격추비를 역전하고 만다. 대전 초 제로센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와일드캣이 1대 격추될때 제로센은 1.5대가 격추된 것이다. 물론 이 교환비는 전쟁 전 기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제로센의 전성기이자 또한 와일드캣이 미 해군, 해병대의 주력 전투기로 제로센에 맞서 가장 크게 활동했던 1942년 5월에서 11월 까지 산호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까지의 기간 동안의 전적을 살펴보면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까지 와일드캣과 제로센 사이의 공중전에서 손실은 와일드캣 10 대 제로센 14, 과달카날 전투에선, 일본 라바울 항공대와 미 해병 1항공대, (일명 "캑터스 항공대") 사이의 공중전에서는 각각 제로센 72기와 와일드캣 70기를 손실했고, 함재기간 공중전에서는 제로센 43기 손실에 대해 와일드캣 31기 손실로 1942년 5월 에서 11월 사이의 기간동안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공중전에서 와일드캣 총 111기 손실에 대해 제로센 129기 손실로 와일드캣은 이미 이 시점의 전투에서 제로센을 상대로 근소한 우세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제로센과 와일드캣이 한참 싸우던 대전 초기, 일본군은 실전을 경험한 최정예 파일럿들 이었지만 미군 조종사들은 이렇다할 공중전 경험도 없었으며, 태평양 전선은 인적, 물적으로 2선이었다. 거기다 미국이 전시생산체제로 전환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항공기와 함선을 쏟아내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 태평양에서 미군 전투기보다 일본군 전투기가 더 많았음을 생각하면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수준의 전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은 결국 질적 열세를 견디지 못하고 공세종말점을 맞이하며 과달카날을 기점으로 짜부라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와일드캣 보다도 고성능기인 F6F 헬캣, F4U 콜세어, P-51 머스탱이 일선에 배치되자 격차가 더욱 벌어져버리며 완전히 망했다.
그래도 헬캣이 배치될 동안은 제로센과 대등하게 맞설 해군의 주력전투기는 와일드캣이었고 수많은 방어책을 연구해보는 등 오만가지 노력을 해야했다. 와일드캣이 헬캣으로 교체되기 전까지가 딱 제로가 태평양에서 위엄을 떨치던 시기였으니.
종합하자면 와일드캣은 당시 상대하던 제로에 비해 비행성능에선 열세이긴 했지만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그 단점들을 메꿀 수 있었다. 나아가 표면적인 스펙상의 수치나, 순수한 1:1 대결상황에서의 우열과, 다수 대 다수가 맞부딪히는 실제 전장에서 작전행동의 구성요소인 병기로서의 유용성은 언제나 등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이다. 분명 와일드캣은 비행성능에선 제로센에 뒤쳐졌다. 하지만, 튼튼한 기체 강도와 효과적인 화력구성, 정교한 조직적 전투를 가능케 한 통신장비, 함재기로서의 적재성까지, 공중전을 수행하는 병기, 즉 "전쟁을 위한 항공기"로서의 종합적인 능력에선, 제로센 보다 실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아직 베테랑 조종사들을 다수 보유한 일본군에 비해 인적자원에서도 열세였고, 당장 전역에 배치될 수 있는 항모와 항공기의 물량에서조차 열세였던 태평양 전쟁의 초반, 일본군의 예봉을 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며, 미드웨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에 이르는 태평양 전쟁 초중반의 전황 반전의 분수령이 된 주요 전투에서 미해군 항공전력의 주축으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동시대의 Bf109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혹은 2차 대전 전반의 공중을 지배한 걸출한 미군 전투기들 처럼 화려한 성능을 자랑할 기종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낸 전투기라고 말 할 수 있다. 비교하자면 영국 본토 항공전의 숫적인 주력을 이뤘던 호커 허리케인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와일드캣에 탑승했던 미군 조종사들은 방호력과 생존성에 신경 쓴 든든한 기체 덕분에 조금 피탄 당해도 살아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전쟁 초반, 더 날렵한 기체를 모는, 무엇보다 훨씬 더 노련한 일본군 조종사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앞서 각주에 언급된 사카이 사부로의 회고에서도 나타나듯) 와일드캣은 꼬리날개가 찢겨나가고, 날개가 구멍투성이가 되거나, 혹은 엔진이 연기를 뿜고, 조종패널이 박살이 난 상태에서도 기지로 돌아와, 조종사를 생환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제로센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비행기의 차이 뿐 아니었다. 미군 조종사들은 일정 근무시간과 격추수를 쌓아 베테랑 조종사가 되면 규정상 후방으로 돌려져 후임 파일럿들을 교육하고 그 후임들이 다시 전장에 나서며 숙련도를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리고 언니보다 훨씬 더 무서운, 악몽과도 같은 동생을 데리고 전장에 돌아왔다.
반면 일본군 파일럿들은 부상을 입거나 드물게 휴가를 받기 전까진 대체로 죽을 때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몇 발만 잘못 피탄당하면 불덩어리가 되기 일쑤인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말이다. 당연히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숙련된 조종사 다수가 항공모함 대신 야스쿠니로 재배치되며, 조종사의 질적 격차는 전쟁 초반과 정반대로 뒤집혀, 베테랑들을 상대로 허둥대다 격추당하는 초짜의 역할은 미군에서 일본군으로 넘어간다.
나아가 와일드캣은 적절한 시기에 후계기가 등장해 바통을 넘겨주고 1선기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후계기의 개발이 지연돼서 울며 겨자먹기로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날아다니며 칠면조 신세가 된 제로센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명예로운 퇴진이었다.
그러나, 이를 단지 '와일드캣은 운 좋게 제 때 후계기가 나와 험한 꼴을 안 보았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사실 2차 대전 전 기간 동안 날아다닌 것은, Bf109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기체는 꾸준한 성능향상으로 언제나 1선기로서 충분한 성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로센의 최후가 비참해진 이유는, 후계기도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태평양 전쟁 내내 우려먹혔음에도 불구하고 옆그레이드 수준의 개량 밖에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후계기가 제 때 나오지 못한 이유도, 개량다운 개량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모두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이 더 고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필수적인 고출력 엔진을 제대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제로센이 딸리는 성능으로 전쟁 말기까지 날아다니며 수모를 당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제로센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귀결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저사양 엔진에서 비행성능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된 무리한 원가절감, 급강하하면 안 되는 골다공증의 허약한 기체강도, 맞으면 타오르는 방어력 등 제로센 그 자체가 문제투성이였고 후계기도 제대로된 업그레이드도 없이 맞이한 최후는 그저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로센 자체의 한계와 직접 연관된 것이었다.
반면 좀 더 고출력의 엔진을 탑재한 와일드캣의 강화버전 격의 전투기를 개발 중이던 그루먼은, 마침 이착함 문제로 인한 콜세어의 전력화 지연과 맞물려, '이왕 쓰는 김에, 아예 콜세어나 썬더볼트 처럼 2000hp 짜리 엔진을 달아버리면 어떨까'라는 미 해군의 요청을 받는다. 크고 아름다운 R-2800 더블와스프 엔진에 맞춰 이리저리 만들다보니, 결국 기본적인 짜임새는 비슷하지만, 기체 자체도 엔진에 맞게 크고 아름답게, 아예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름도 새로 붙였다. 이름하여 'F6F 헬캣'이라고. 그렇게, 제로센의 초반운을 꼬아놓은 걸림돌 같은 녀석을 바탕으로, 이번엔 제로센의 말년을 비참하게 만든 본격 재앙이 탄생한다.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중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공중전을 다룬 시즌1 3화에서, 와일드캣 vs 제로센의 전투를 비교적 잘 소개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에게 F4F를 구매하였고 1940년 8월에 처음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마틀렛의 첫 격추는 804 NAS에 의해서 1940년 12월 25일에 지상기지에서 발진한 기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해당 링크에서 Loch Skail라고 적힌 장소는 Loch of Skaill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Orkney 섬의 지명이다. 이는 804 NAS가 Orkney 섬의 비행장에서 출격했다는 위키피디아의 설명과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에 HMS 아크로열은 1941년 11월에 격침될때까지 마틀렛을 운용하지 않았다. 아크로열은 일러스트리어스급이 배치되기 전까지는 가장 신형 항공모함이었고 마틀렛으로 풀머를 대체하려고 생각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마틀렛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에도 수출된 기종이다. 초기에 항모에 배치된 와일드캣들은 이 기종이었는데 새러토가에 처음 탑재되었던 기종, 그리고 산호해 해전에 참여했던 당시의 렉싱턴과 요크타운에 배치된 기종도 해당 기종이었다. 웨이크섬 전투 당시의 와일드캣도 이 형식이다.
아직 접히지 않는 주익을 사용하던 형식. 무장은 12.7mm 기총 4정을 탑재했다.
수납성이 훨씬 뛰어났던 F4F-4가 등장한 이후로는 함재기로서는 사용되지 않고 F4F-4로 교체되어 285대 생산으로 그친다.
이후 주로 해병항공대에서 남은 기체가 쓰인 정도. 미드웨이 해전당시 미드웨이섬의 해병항공대가 F2A 버팔로와 함께 소수 장비했던 것도 이 형식. 또한 일부는 과달카날 전투 당시 캑터스 항공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접히는 주익 탓에 중량이 상승한 F4F-4에 비해 비행성능은 좀 더 좋았다. 때문에 많은 와일드캣 파일럿들은 차라리 F4F-3때가 더 낫다고 평하며 그리워 하기도.
와일드캣의 주요 특징인 뒤로 접히는 날개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기종. 와일드캣을 대표하는 기종이다. 미드웨이 해전부터 대거 투입되기 시작하여 이후 F6F 헬캣이 등장할 때까지 미 해군의 주력 함상전투기로 활동했다. 총 1169기가 미 해군에 인도되었다.
이 와일드캣의 독특한 뒤로접히는 날개는 설계자인 그루먼이 직접 종이 클립과 지우개를 가지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고안해낸 방법이라 하며, 현재 미해군에서 쓰고 있는 E-2 호크아이도 비슷한 방식으로 날개를 접고 있다. 그루먼제 함재기들 특유의 날개접기로 인해 수납시 차지하는 공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날개를 펼쳤을 때의 폭은 11.582 m, 접으면 4.369m 정도.
하지만 개량형임에도 불구하고, 엔진 출력은 그대로 1200마력이었는데, 접히는 주익으로 인한 중량증가와 저항증가로, 최대속도와 상승력등 비행성능은 악화되었고, 항속거리는 감소했다. (대신 급강하 속도는 F4F-3보다 빨라졌다고도 한다. '신형'버전이라면서 되려 다운그레이드 된 F4F-4의 비행성능에 불만이 많았던 파일럿들은 이에 대해 '더 무거워졌으니 더 빨리 떨어지는 게 당연하겠지'라고 비꼬았다.)
또한 날개를 접는 것 이외에도 무장의 강화가 이루어져 12.7mm 기관총을 6정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증설된 기관총이 외익쪽에 설치되어, 안 그래도 어느정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늘어난 기관총+접히는 날개의 조합으로 인한 반동이 커져 일선에서 파일럿들의 선호도는 스펙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1정당 탄약 숫자가 450발에서 240발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 들어, 지속사격시간이 34초에서, 20초 미만으로 줄어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사실 화력강화 등 다른 개량은, 특히 조종사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던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날개를 컴팩트하게 접을 수 있음으로 해서, 한 척의 항모에 실을 수 있는 전투기의 숫자를 대폭 늘릴 수 있다는 전술적 이점은 약간의 성능상의 불이익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전투기만 실을 경우 2배의 숫자를 실을 수 있었고, 폭격기나 뇌격기 등도 적재해야 하는 실전에서도 50%는 늘릴 수 있었다.
이런 덕분인지, 와일드캣이 일선 항공모함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하던 시절은, 아직 미국이 쇼미더머니 신공의 효과를 보기 이전이라, 태평양 전역에 배치된 항공모함과 항공기 전체의 숫자는 일본군이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해전에서 미 해군은 당장 머리 위에 띄울 수 있는 전투기의 숫자에서는 별로 밀리지 않고 싸웠다.
그럼에도, 개량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에 대해, 조종사들 뿐 아니라, 함대 지휘관들도 그루먼사에 문제제기와 개선요구를 했다. 니미츠 제독 등이 요구한 탄약량 확대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플레처 제독과 홀시 제독이 요구한 보조연료탱크 장착 등은 이루어져, 줄어든 항속거리를 어느 정도 벌충할 수 있었다.
다만 대전 후반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등이 일선에 배치되자, 주로 호위항모 탑재용으로 생산된 FM-1/2 버전에선, 기관총은 다시 4정으로 돌아갔다. 주된 이유는 호위항모에서의 임무를 위해, 폭장량 강화가 필요해서 폭탄 랙을 증설하기 위해서였지만. 참고로 애초 F4F-4에서의 기관총 증설은, 사실은 원래 영국해군의 요청에서 시작된 것. 독일 전투기나 폭격기들을 상대하려다 보니 .50구경 기총 4정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었던 것. 그러나 맞으면 타오르는 태평양 전선의 일본기들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중량증가와 반동으로 인한 진동 증가는 물론, 특히 그 가장 큰 부작용으로 지속사격시간이 급감한 것까지 따지면 옆그레이드라는 파일럿들의 비판에는 꽤 일리가 있다.
와일드캣의 장거리 정찰기 버전. 무장과 방어 장갑을 철거해 무게를 줄였으며, 제로센처럼 날개접기를 포기하고 고정식 날개에 555갤런(약 2010리터)를 적재할 수 있는 연료탱크를 설치하여 기내 연료만 672갤런 (약 2540리터)를 적재할 수 있었다. 기타 그외의 개량이 이뤄진 결과 순항속도 300km에 항속거리는 7400km나 되는 정신나간 수치를 뽑아냈다. 실제 작전 범위는 약 3,700 마일(약 5,950Km) 정도. 체공시간은 24시간 이상이었다고 한다.
1942년 시험비행에서는 뉴욕에서 LA까지 3,000마일, 약 4,800km 거리를 11시간에 걸쳐 비행 미 대륙을 논스톱 횡단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 미 해군은 이런 초장거리 정찰기의 보유 자체를 기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험비행 기록은 나중에야 공개될 수 있었다. 당시 미 해군이 제출한 시험비행 계획을 본 육군 항공대 관제사들이 4,800km에 달하는 비행거리를 보고는 '이거 혹시 착오로 숫자 잘못 적은 거 아니냐'고 해군에 다시 연락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미 해군에서는 '실수 아니다, 그 비행계획 맞다. 원래 우리 해군 전투기들은 다 3000마일 정도는 날 수 있다'고 뻥을 쳤다고... 또한 장시간에 걸친 초장거리 비행을 하는 만큼 조종사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스페리 Mk. IV" 오토파일럿을 장비했다.
프로토타입에 가까웠던 만큼 생산 댓수는 21대밖에 안 되었다. 원래는 100대 정도의 생산이 계획되었으나 실전을 치러보니 이런 초장거리 정찰기의 필요성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기 때문. 그래도 태평양 전쟁 동안 해병대 등에서 정찰기로 운용했다. 과달카날 전투 당시 헨더슨 비행장에서도 운영되었고, 항공모함에서도 소수 운용되어 동부 솔로몬 해전 등에 투입되었다.
위에서 언급된 GM에서 생산한 와일드캣. 대형에 고속의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를 운용할 수 없는 호위항모에서 운용하기 위해 생산된 버전들이다. 원 개발사인 그루먼은 1942년 10월 부터 신형기 헬캣의 양산에 집중하며 와일드캣의 생산을 종료했기 때문에, 이후 호위항모를 위한 와일드캣의 추가 생산은 모두 GM으로 돌려졌다.
FM-1/2는 기총을 4정으로 줄이는 대신 근접지원이나 대잠수함 초계 등의 호위항모에서의 임무를 위해 폭탄 및 로켓 랙을 추가로 증설하였다.
덕분에 FM-1/2는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에 비하면 빈약하지만, F4F-3/4 시절의 100lb(45kg) 폭탄 두 발이 전부이던 빈약한 폭장량에 비해 두 배 이상 대폭! 상승한, 250lb(112kg) 폭탄 두 발이나, 5인치 로켓 6발을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배 이상 늘어났어도 여전히 빈약하다는 건 함정...
FM-1은 F4F-4와의 성능차이는 크지 않으나 FM-2로 들어가면서 기체를 경량화함과 동시에 엔진을 Wright R-1820-56으로 교체, 엔진출력을 1350 마력까지 높였다. 출력이 강화된 엔진의 토크를 상쇄하기 위해 좀 더 대형의 수직미익을 채택했다. 그와 함께 카울링 옆의 배기구가 이전 F4F과 외형상 구별되는 점.
FM-2는 원래 그루먼사가 1942년 후반부터 개발하던 개량형 XF4F-8, "와일더 와일드캣 Wilder Wildcat"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 FM-2도 종종 "Wilder Wildcat"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출력 엔진과 경량화된 기체 덕에 이착륙이 쉬워졌고 특히 호위항모에서 캐터펄트 없이도 이륙이 가능한 점을 살려 주로 호위항모에서 운용되었다.
엔진 출력은 향상되었으나, 기체 중량은 F4F-4에 비해 가벼워져 이전 형식인 F4F-3에 가까울 정도로 줄었기 때문에 비행성능은 당연히 좋아졌다. 이를테면 상승률은 F4F-4은 물론 좀 더 나았던 F4F-3에 비해서도 1.5배 가까이 좋아졌다. (그 이전 버전인 F4F-3 보다도 구려진) F4F-4의 비행성능에 불만이 많았던 조종사들은 FM-2의 비행성능 향상에 매우 고무되어 '제로센 후기형 A6M5에도 안 밀린다'고 말하기 까지도 했다. 사실은 그래도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상승력, 속도, 선회력 모두 나름 향상되어, 제로센 전기-중기형과 F4F-4 사이의 비행성능 격차보다는 꽤 줄었다고 한다. 전후 행해진 제로센 52형과의 성능테스트 결과에서도 별로 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이는 와일드캣의 성능 향상 만큼이나, 제로센의 개량이 옆그레이드에 그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면 엔진의 수퍼차저가 1단-2속 1-stage, 2-speed 수퍼차저로 간략화되어 고공성능은 F4F-4에 비해 다소 약화되었다. 하지만 상륙부대의 근접지원을 비롯 호위항모에서의 임무에서는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던듯 하다.
그리고 상기한 개량 덕분에 저고도에서라면 헬캣, 심지어는 머스탱과도 스펙차이가 크지 않다고 파일럿들은 좋아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물론 기총이 6정에서 다시 4정으로 돌아가며 한 정당 탄약량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지속사격 시간이 늘었다는 부분도 좋아했다.
그러나 후기형 기체간의 "와일드 캣 vs 제로센 : 시즌 2"에서 FM-2의 향상된 비행성능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는 알 도리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FM-2는 일선 항모가 아닌 호위항모에 배치되어 전투기 간의 공중전을 벌일 기회도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역시 그 시점이면 태평양 상공의 제로센은, 이미 F6F 헬캣과 F4U 콜세어의 등쌀에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레이테 만 해전 당시 킨케이드의 수송함대에 포함되어, 사마르 해전에서 활약한 와일드캣들이 바로 이 FM-2 기종이다.
그리고 일본 해군 항공대가 사실상 몰락한 이후라, 그리 많을 수 없었던 와일드캣 FM-2과 제로센 52형의 공중전의 드문 경우 중 하나가 바로 위의 "사마르 해전"에서 벌어졌다.
당시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의 비행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가했던 조 맥그로우 Joe McGraw 소위의 증언에 따르면, FM-2는 제로센 52형에 거의 대등한 기동력을 발휘하며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친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갬비어 베이가 포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출격, TBF어벤저 뇌격기들과 함께 일본 함대를 저지하기 위한 공격에 나섰고, 이후 태피 1, 태피 2 소속 항모에서 재급유와 재무장을 해가며 11시간 동안, 3차례의 전투를 치렀다. 마지막 3번째 출격에서 그의 부대는, 이번엔 일본군의 D3A 급강하 폭격기 요격에 나서, 폭격기를 호위하던 제로센들과 교전했다.
...제로기 편대의 리더는 뛰어났다. 그는 우리 부대장기의 엔진을 맞춰 바다에 추락시켰다. (부대장은 나중에 구조되었다.) 나는 가파르게 기체를 끌어올리느라 요기와 떨어져야 했지만, 강하해 오는 제로기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내가 회피한 것이 제로기 리더를 당황하게 했거나, 혹은 화나게 만들었는지, 그는 나를 잡기 위해 내가 이제껏 본 중 가장 타이트한 선회를 했다. 하지만 나는 급상승하며 왼편으로 선회했고, 그의 사격은 빗나갔다. FM-2의 급선회 능력에 그는 당황한 게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재빠르게 헤드-온 코스로 들어가 그의 엔진에 사격을 가하자, 그는 정말로 화가난 듯, 마치 내게 충돌하려는 듯 다가왔고, 나는 그의 기체를 피하기 위해 급상승해야 했다.
맥그로우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제로센 리더기는 심하게 연기를 뿜으며 구름속으로 강하해 사라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경험이 많은 조종사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낡은 와일드캣이 쉬운 상대일 거라고 기대한 것 같다. 아마도 그는 FM-2 버전이 많이 향상된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그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엔진에 피격당했으니, 아마도 기지까지 돌아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3. 활약상" 항목에도 나와있듯, 사실 7800대 가량 생산된 와일드캣의 전 형식 중, 가장 많은 숫자가 생산된 것은 FM-1/2 버전으로, 5800대, 전체 생산량의 70% 을 차지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4,777대가 생산된 FM-2가 가장 많다. 반면 F4F-3/4 및 기타 소수 버전을 포함 그루먼 생산분은 2000대 남짓... 명칭은 '그루먼 F4F 와일드캣'에, '주요 활약시점은 과달카날 전투 까지, 태평양 전쟁 전반'이라는데, 정작 대부분은 GM에서 만들었고, 그것도 1943년 이후였다는 게 함정.
FM-2는 태평양 전쟁 후반 20여 개월 동안 호위항모의 주력 전투기로 활동하며 앞서 언급했듯 422기의 일본기를 격추했다. 그리고 대공화기에 62기, 공중전에서는 13기만을 잃었다. 그래서 무려 1:32를 넘는, 헬캣보다도 더 막강한 공중전 교환비를 자랑한다!! 물론 그 대부분이 카미카제 공격기를 격추해서 쌓은 기록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6.7. XF2M-1 "수퍼 와일드캣"
1944년 제안된 FM-2의 개량형. 엔진을 통상최대출력 1350hp, 전시비상출력(WEP) 1500hp의 "XR-1820-70"으로 업그레이드한 모델이다. 하지만 시험기 3대가 만들어진 후 전쟁 종료와 함께 취소되었다.
여담으로 와일드캣의 바퀴는 전 기종이 모두 수동으로 기어를 돌려 수납하는 방식이었다. 근데 이 기어핸들은 돌리던 중 자칫 삐끗했다간 손목이 나갈 수도 있었고 무려 서른바퀴나 돌려야해서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부분은 악평이 자자했다고. 아마도 '비록 고성능은 아니지만 견실하고 믿을 수 있는 항공기' 와일드캣에서 보기 드문, 처음부터의 '컨셉오류'로 인한 최대의 단점이었을 것 같다. 확실한 근거자료는 없지만, 또한 다 접고 나서도 다른 전투기에 비해 외부로 많이 노출되는 방식의 바퀴와 랜딩기어 수납방식이 - 안 그래도 통통한 기체에 - 공기역학적으로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을 것도 분명하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복엽기에서 설계변경'한 개발사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부분이다.
저 바퀴 수납 레버의 가장 큰 문제는 30바퀴 돌려야 하는데 26-7 번째부터 엄청나게 뻑뻑해진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뻑뻑해졌을 때 다 돌린 줄 알고 착함이라도 하면 아이쿠 콰당(...). 그러나 나름대로 변호할 만한 점은 있다. 유압싱 방법은 유압 장치가 고장이라도 나면 역시나 수동으로 해야 하거나 이착륙시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아무래도 수동인 것이 구조가 단순해 더 튼튼하고 신뢰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기체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수납되는 랜딩기어를 찾아볼 수 없고 당시 조종사들도 악평하는 일이 잦았기에 유압식을 비롯한 자동식 랜딩기어 인입장치가 여러모로 나은 방식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PBY 카탈리나 비행정(Consolidated PBY Catalina)
훗날 보잉에 합병되는 제네럴 다이내믹스 사의 전신이 되는 콘솔리데이티드(Consolidated) 사에서 개발하여 1936년부터 미합중국 해군에서 운용한 쌍발 비행정으로 3,305대가 생산되어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비행정이기도 하다.
동시기 타국의 비행정에 비해 스펙상으로 보면 크게 내세울 점이 없었고 느리고 못생겼다며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튼튼하고 신뢰성이 높은데다 크기가 타국의 4발 비행정 보다 작아서 조종과 착수, 이수가 편하다는 장점을 살려 2차 대전 중 정찰, 대잠, 대함, 구조, 긴급수송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이중 대함 야간전을 위해 검게 칠해진 카탈리나를 미군은 블랙 캣(Black Cat)이라고 불렀다. 2차세계대전에 등장한 비행정 중에선 가장 많이 활약한 일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잠 방면에서는 36척의 U보트를 격침, 대함 임무에서는 톤수로 112,700톤의 일본 선박을 격침, 47,000톤의 선박 및 10여척의 일본 군함에 손상을 입혔다. 하지만 진짜로 진가를 발휘한 것은 정찰 임무로, 일반 수상기에 비해 대형에 항속거리, 체공시간이 길고, 타국 비행정보다 소형이라 운용 비용이 적기 때문에 대량 운용에 적합하여 B-24 정찰버전이 등장 이전 유보트를 때려잡는데 앞장섰고, 영국 해군의 시야에서 사라진 독일 해군 비스마르크급 전함 비스마르크를 찾아 소드피시 뇌격기가 치명타를 입힐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미 해군 소속 카탈리나였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최초로 일본 해군 함대를 육안으로 확인한 것도 카탈리나였다. 그래서 미국의 태평양전쟁 해전사를 읽다보면 "PBY가 적을 발견해서~" 라는 구절을 지겹도록 볼 수 있다. 구조 임무에서도 잠수함들과 함께 대활약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카탈리나 1기가 침몰한 미 해군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USS 인디애나폴리스의 승조원 75명을 구조한 것이 있다.
미군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빠르게 퇴역했으나 브라질에서 1980년대까지 군용으로 사용되었으며 2021년 현재에도 일부 남은 기체가 무장을 제거한 채 민수용으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에선 소방기로 일부 사용중이며. 유럽에는 이 4대가 마지막 남은 것이라고 한다.
동시기에 활동 라이벌 기체로 PBM 마리너가 있었다. PBY보다 2년 정도 나중에 나온 신형인데다 스펙상으론 거의 모든 면에서 PBY를 능가했지만, 실전에선 잦은 잔고장 등의 문제로 인해 결국 조역에 그쳤다. 단독~ 소수로 장거리 임무에 나서는 특성상 신뢰성이 더 중요하기도 했고, 비행정이라는게 애초에 운용에 필요한 성능만 갖추면 굳이 고스펙을 추구할 이유가 없는 기체라서 그런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