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조재형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에서 동창 신부님들이 와서 며칠 지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표를 샀습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당일 날 비가와서 경기가 취소되었고, 다음날 2경기가 연속으로 진행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경기장에 가서 표를 보여주니 문제가 있다고 티켓 판매 직원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티켓 판매 직원에게 문의를 하니 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30분은 기다렸는데 전산에 문제가 있는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직원은 저쪽 벽에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때까지는 참고 있었는데 감정이 상했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물었더니 답이 없었습니다. 정 그러면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5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5분이 지나니 직원이 표를 핸드폰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다시 입장하려하니 이번에는 좌석이 이미 지정되었다고 했습니다. 함께 티켓 판매 직원에게 가자고 하니 자기는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합니다.
동창들에게 면목도 없고, 다시 티켓 판매 직원에게 가서 이번에는 입구까지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직원은 저와 함께 입구로 갔고, 드디어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1시간이 지났습니다. 저와 비슷한 문제로 판매 직원에게 온 사람들은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말을 잘 못해서 무시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동양인이라서 무시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벽 쪽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것도 저를 무시한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직원은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하였고, 나중에는 함께 입구까지 가 주었기에 오해는 풀렸습니다.
전산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창 신부님들은 그래도 미국에서 몇 년 살았기에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며 저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이방인으로 타국에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난민이 되어서 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첫째는 언어의 소통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부담이 됩니다. 둘째는 차별입니다. 차별은 인격적인 차별도 있고, 경제적인 차별도 있습니다. 셋째는 자녀의 교육입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주민과 난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주민과 난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면 좋겠습니다. 생각하면 성서는 이주민과 난민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난민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인류의 시작이 바로 난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가뭄을 피해서 풍요로운 땅인 이집트로 가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난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을 끌려갔습니다. 낯선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난민이 아닌 포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뜻을 지키지 않았음을 뉘우쳤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나자렛의 성가정도 이집트로 피난 가서 살았습니다. 헤로데가 2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5대째 천주교를 믿는 저의 집안도 신앙 때문에 박해를 피해서 서울에서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쫓아냈지만 잘 지켜 주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버렸던 형제들을 용서하였고, 이집트에서 가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고통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페르시아 왕은 유배지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레스 왕을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가장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에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가진 것을 나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저도 미국 땅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가진 것을 나눌 수 만 있었다면, 헐벗고 가난한 라자로에게 자비를 베풀 수 만 있었다면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나눌 수만 있다면 부자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만 있다면 라자로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미주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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