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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에서 만나자’(사도 1,11) 다시 길을 걷는 밀양 주민들과 함께 꾸는 동상일몽 2014. 07. 14~15. |
철탑 서더라도 우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철탑 뽑는다는 각오로 시즌2 시작합니다
용회마을 어르신 말씀
멀리서 오셔서 저희 마을까지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용회마을은 울산의 시민연대에서 활동가 한 분이 밀양의 송전탑 만드는 곳을 다 둘러보고 우리 용회마을이 가장 아름답고 정겨운 마을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용회마을’이라는 그런 노래를 하나 지어줬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그런데 마을 뒷산에 철탑 두 개가 섭니다. 철탑도 가깝지만 선이 문제죠. 선이 걸리면 맨 위 쪽 집에서는 이백 미터가 될까말까 하고 마을 입구인 주차창은 삼백미터 가까이. 이렇게 아주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만약에 탑이 들어서면 살 수가 없다. 철탑을 이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 밀양 노인네들이나 주민들은 참 평생 나라가 하는 일은 무조건 따르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이거는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지 않느냐? 해서 우리가 철탑 매고 죽으라는 말고 같지 않느냐 해서 주민들이 밀양 노인네들이 들고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그 싸움이 십년이나 지탱하게 됐는데, 그래도 마지막 끝까지 남아서 우리 마을은 공사가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어요. 우리 마을 주민들은 다른 마을에 가서 이렇게 같이 도와서 철탑 막는 걸 해 오다가 마지막에 우리 마을에 공사가 들어왔는데, 마지막 남은 마을이 네 개 마을이 있는데 우리 마을이 포함됩니다. 이 자리가 101번 송전탑 자리입니다. 이게 지난 6월 11일에 경찰한테 침탈을 당하고 물러났지만은, 우리 주민들만은 진짜 철탑 밑에는 살 수가 없잖아요. 머리에 이고 살 수 있지 않잖아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철탑이 들어서더라도 우리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죽을 수 없으니까 우리는 철탑 뽑는 투쟁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시즌2를 시작할 겁니다.
우리 밀양 노인들에게 연대하는 분들의 힘이 참 컸습니다. 처음으로 나라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데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나라가 하는 일을 막아도 되겠느냐? 우리도 죽을 수는 없잖아. 이건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잖아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는데 연대하는 분들이 와서 “예, 할아버지 할머니 맞습니다. 어르신들 생각이 맞습니다.” 이렇게 힘과 용기를 줬어요. “그렇제, 우리가 옳제, 우리가 정당하제?” 이렇게 해서 우리가 싸움을 하는데 큰 힘이 됐어요. 앞으로 이런 연대가 이것 때문에 우리가 십년동안 싸움을 해오지 않았나 이런 큰 힘이 됐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종교단체가 있습니다만, 우리 가톨릭이 가장, 신부님, 수녀님, 수사님, 신도님이 제일 많이 왔습니다. 전체 오신 사람의 반은 될거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저희들은 너무 고맙죠. 그리고 밀양, 우리 동네가 생긴 후로 이렇게 많은 신부님, 수녀님, 수사님, 신도들이 많이 오셨는데 아마 우리 마을에는 하느님의 은혜가, 축복이 아주 가득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또 힘을 내고 걸어가는 만큼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준한 신부(부산교구)
김준한신부입니다. 6월11일 인간사슬을 묶은 4-5분의 수녀님들이 몸을 던지셨지요. 여경들조차도 수녀님들을 감당 못 할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수녀님들 많이 다치셨죠? 골절상, 타박상, 실신하신 분들까지 참 많았는데, (만약) 수녀님들이 고이 나가셨더라면 당연히 다칠 일이 없었지요. 그런데 정말 주민들과 같이 하려는 마음들이 그렇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오늘 와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 번 다른 곳에 앞서서 공식적으로 전체가 함께 오는 이 그림들을 정말 잊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무수히 많은 분들이 밀양을 찾아주시고 함께 해주심으로서 지금껏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지금 본의 아니게, 혹은 흔들려서 합의를 하신 분들이 계시고, 그래서 이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분들의 숫자가 많이 줄기는 줄었습니다. 그렇게 평온하던 이 공동체가 다 깨져버렸습니다. 아마 강정도 그렇겠지요? 이렇게 다 깨져버린 공동체이지만 이렇게 연대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 파견미사를 드리는 이 용해마을이 참 모범적인 마을입니다. 여기는 서른 가구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여기는 다른 곳에 비해서 싸움을 조금 늦게 했습니다만 이분들이 싸움을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보여주신 것이 당신들 마을 막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마을 막으러 다니신 것입니다. 여기서 15-20분 떨어져있는 바드리마을, 여기 고준기 어르신, 고미연 사모님이나 옥희 어머니, 루시아씨나 그 외 많은 분들이 그곳에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바드리마을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 길을 막고 그렇게 버텨냈습니다. 참 대단하죠? 거기에서 연대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연대자들도 밀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오셨고, 그 바드리마을을 지키신 용해어르신들도 자기마을이 아닌 남의 마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연대자들과 인연을 맺고 나중에 용해에서 그 끈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참 이런 모범적인 마을이 있을까요?
“우리 마을로 와주세요. 다른 곳 말고 우리 마을 지키러 와주세요”하더라도 그 어른들을 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내 코가 석자인데... 그런데 이 용해마을은 이 연대의 새로운 공동체를 자기 마을이 아닌 다른 마을에서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이어져서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결합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가 시즌 2를 시작할 때 암담했습니다. 솔직히 밀양싸움 참 오래되었습니다. 대책위차원에서 머리를 쥐어짤 것은 다 짜봤습니다. 해보고 싶은 것은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도대체 새로운 것이 뭐가 더 있을까? 더 이상 우리 머릿속에서 나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즈음에 또 어르신들이 힘을 준 것입니다. 이 용해마을이 제일 마지막으로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졌습니다. 헬기가 열 번 이상 떴고, 흙먼지를 다 뒤집어쓰면서 끝내는 처절하게 내려왔습니다. 연대자 한 명은 나무위에 올라가서 몸을 묶고 안 내려올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농성을 풀고 내려왔습니다. 참 비참하죠. 저 산에서 자기발로 내려와야 했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 어르신들과 연대자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딱 하나, 인간사슬입니다. 쇠사슬 한번 해봤습니다. 절단기 들고 와 다 끊어버리더군요. 경찰들은 밀양시내에 있는 한 공구점에 가서 절단기 수십개와 쇠사슬 수백미터를 사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훈련소에서 열심히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는 연습을 했습니다. 결전의 날은 6월11일에 목에다 절단기를 드리밀면서 그 쇠사슬을 다 끊었습니다. 그 쇠사슬은 다 끊어졌는데, 그래도 안 끊어지는 것이 인간사슬이더군요. 사람들이 그래도 오겠다고 하더군요. 6월11일 가장 진이 빠지고 처참했던 그 날 바로 여기에서 정기집회를 했습니다. 흙구덩이를 구르다가 저녁에 여기 와서 연대자들과 마지막 정기집회를 하면서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할지 이야기 했습니다. 정말 이게 가능할까? 그날 하루만큼은 어르신들이 실망하고 포기하고 나도 모르겠다고 하고 집에 가더라도 누구하나 뭐라 하지 않을 텐데도 어르신들이 마지막까지 의연하게 연대자들과 함께 힘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시즌2입니다. 그 밑바닥에 우리 수녀님들, 신부님들, 수사님들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힘들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까 싶었는데 정말 적절하게 필요한 때에 그만큼 사람들이 모여 주었고 이곳을 지켜냈습니다.
아직도 길이 그리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또 힘을 내고 걸어가는 만큼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어르신들도 다 나갑니다. 정말 다들 나가고 싶어 해요. 여기 고미연 사모님은 평택시(을) 김득중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십니다. 그리고 탄핵을 위해서, 또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결합하면서 함께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베풀어주시는 것 받고 그냥 돌아서는 분들이 아니니까 끝까지 연대해주시면 어르신들도 더 풍성하게 되갚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방문 정말 감사드리고, 또 방문해주시길 기대하면서 공지사항 몇 가지만 하겠습니다.
어르신들 심신이 많이 지쳤습니다. 특히 정신적으로 많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농담처럼 이야기합니다, 제 정신이 아니라고. 저도 감정조절이 안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고종삼거리에서 광주에서 오신 수녀님들, 신부님들과 레미콘을 막았는데 제가 10-15분동안 제가 정신없이 경찰을 향해서 욕을 하고 있었어요. 수녀님들이 말리는데, 제의를 입고 미사 준비하다가 제 입에서 오만가지 욕이 다 올라왔습니다. 한참을 욕하다보니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던거죠. 저도 감정조절이 안되고 어르신들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요. 이런 일들이 벌어져서 저희가 두 번의 힐링캠프를 했습니다. 성공회신부님의 도움으로 실컷 울고, 실컷 웃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힐링캠프를 저희가 꾸준히 하려고 하는데 혹시나 어느 수도회에서 1박2일로 이런 피정을 할 수 있는 초대를 해주신다면 우리 어르신들이 회복을 위해서 다녀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인원수는 상관없습니다. ‘우리 수도회에서는 형편상 10명만, 혹은 다섯명만 가능할 것 같다’시면 그에 맞춰서 적절히 할 수 있지않을까요? 혹은 ‘우리는 딱히 프로그램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우리는 같이 기도하는 정도이다.’하더라도 또 원하시는 분들을 모을 수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능하시다면 그런 자리를 저희에게 허락하시면 고맙겠고, 필요하다면 저희가 공문으로라도 저희의 뜻을 정리해서 청을 드릴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저희가 시즌 2를 준비하면서 가장 주력했던 것이 협동조합입니다.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이라는 공식명칭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모든 분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분이 농사를 짓는 분들이십니다. 때부자가 아닌 이상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버리고 다른 곳을 이사를 할 수 없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여기서 살아가셔야 하는 분들인데 저희들이 싸움만, 투쟁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체적인 삶을 공유하는 것은 당신들이 정직하게 땀 흘려 재배한 농산물을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로 드러났습니다. 추후에 이런 농산물을 함께 연대하는 마음으로 공유해주십사 청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약간의 자극이 되라고 말씀드리면, 지율스님이 이 밀양농산물을 운문사나 내원사 등에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논의하기위해서 한번 오신다고 하네요. 성사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노력들을 함께 해주시면 어떨까싶습니다. 단순히 농산물만 하지는 않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게스트하우스가 될 수 도 있고, 또 여기서 밀양의 싸움을 연대할 수 있는 외부적인 활동을 위해서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가 우리 어르신들이 참 많이 다니셨습니다. 쌍차도 가고, 한진중공업도 가고, 유성도 다녀오고, 다른 송전탑지역도 다 다녀오고, 부산의 신고리5호기 공청회 할 때는 오히려 저희 어르신들이 다 밀고 들어가서 어떻게 보면 부산시민들보다 더 잘 싸웠습니다. 그런데 못 가본 곳이 딱 한군데 강정입니다. 한번 가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한주만 미루자고 했다가 저희 일이 생겨서 못 갔습니다. 그래서 아파하는 곳에 연대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이 가득한 만큼 밀양을 포함한 모든 곳에 여기계신 수녀님들, 수사님들, 신부님들, 어르신들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다시 한 번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언제나 관심 기우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있는 자리에서 지치지 않고
체념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선영 수녀(예수수도회)
안녕하세요. 예수수도회 안선영 세칠리아 수녀입니다. 제가 밀양 엠마오 때도 왔었는데, 그때는 제 마음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사는 수도회 수녀님 조카가 그때까지도 (세월호)배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엠마오를,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가 엠마오를 와서 1박2일을 지내는데……. 전 정말 몸이 여기 와있는데 마음은 저쪽 어디 항구 쪽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차안에서 소감을 나누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저는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가 없었어요. 지금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제가 그 시간을 지나면서 너무 많이 지쳤었어요. 조카를 잃은 수녀님을 옆에서 보면서, 그리고 그 조카가 제 조카가 되어서 소임을 하러 나가야하는데 소임을 하러 나가면서도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미사를 함께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어주고, 정말 함께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함께 한다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였기 때문에 정말 힘을 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력감이 아주 많이 들었어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 있는데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가까이에서 그런 소식들을 자꾸 들으니까 점점 더 (이 세상은) 나빠져만 가는, 무력감과 절망이 가득 찼었지요. 많이 지쳤었어요. 그리고 제가 동상일몽을 신청하고 집에 짧게 1박2일 다녀왔어요.
저희 집에서 아버지가 유일한 박근혜 지지자이십니다. 대선 때 (하시는 말씀이) 1번을 찍지 않으려면 집에 오지 말라며 나가라고 (하실 정도지요.) 집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사시는데 어머니에게도 진심으로 나가라고 하실 만큼이요. 전 아버지가 그런 상황인 줄 몰랐어요. 전 아버지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인 줄 알았는데 그렇더군요. 하여튼 우연치 않게 짧게 1박2일 집에 다녀오게 되어 그때 아버지와 심도 있게, 깊이 있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아시듯이 그게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격렬한, 대화라고 할 수 없는, 저는 처절하게 울고 아버지는 제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당신 하고 싶은 이야기만 막 하시는, 그래서 부녀간에 파토가 나고 그 시간에 집을 나와서 수녀원으로 들어가야 할 것 만 같은 (상황이라) 어린 조카들도 있고 하여 그만 두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비단 저만의 상황이겠어요? 여러분도 집에 돌아가시면 저희 아버지 같은 분이 한 두 분쯤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버지가 제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나도 너처럼 그렇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다 찍었다. 그런데 세상이 하나도 변하지 않더라.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그 바위가 깨질 것 같더냐. 국가에서 뭐 좀 해보자고 하면 우선 해보고, 안되면 그 때 이것 이것을 바꾸자고 이야기하면 되지 않니?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니? 그리고 다른 수녀들은 자기자리에서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넌 왜 자꾸 강정이고 밀양이고 그런 곳에 다니느냐? 네가 자꾸 그런 곳에 다니니까 내가 TV볼 때 우리 수녀가 또 저기서 끌려가거나 매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정에 그 많은 신부님들이 끌려가고 재판받아도 바뀌는 것이 무엇 있니? 그렇다고 거기 해군기지 안 짓니?”
그런데 제 생각에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버지도 그렇게 열심히 저처럼 힘을 내서 싸우셨는데 하다 보니 하나도 변하는 것이 없고, 세상은 그대로고, 더 나빠져만 가고. 아! 순리대로 그냥 쥐죽은 듯 조용히 살아야겠구나하고 체념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념하고 자포자기하고 그냥 그 안에 갖혀버리신 것이죠. 우리 집안 식구들, 내 딸들, 손주들 아무일 없으면 그냥 괜찮은 세상인 것으로요.
그래서 제가 여기 동상일몽 오면서... 사실은 여기 움막도 다 철거되고 6월11일에 그런 일을 겪으면서 상처도 많이 받으시고요.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다 빼앗겨버리고 모든 것이 파토난 것 같은데, 그 안에서도 다시 걸으시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시고 힘을 내시고 행동하시는 밀양 어르신들, 그리고 그런 밀양의 어르신들과 함께하려고 짧지만 이렇게 1박2일 모인 우리들을 보면서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너무 절망적이어서 ‘내가 지금 그 미사에 함께 한들, 내가 기도를 한들, 좋아요 누르고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들 뭐가 바뀌지? 이게 다 쓸 데 없는 짓 아닌가?’ 하며 절망 안으로 빠져들던 내가 다시 1박2일 (밀양에) 와서 다시 힘을 내서 걸으시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우리들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제가 정말 많은 힘을 얻습니다.
말로는 그랬어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그것,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하면 그것이 가장 최선을 것이고, 그게 바로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말했지만 그 안에서도 제가 많이 지쳐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정말 “많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작을 만큼 엄청난 힘을 얻고 갑니다. 제가 와서 어르신들께 어떤 힘을 드렸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정말 많은 힘을 얻어가고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지치지 않고, 체념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 공동체 회복은 신앙적 과업입니다
파견미사 강론 : 하춘수 신부(마산교구)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 큰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주요 공직자를 검증하는 청문회 자리라든지, 국민의 생명과 권익에 심대한 영향이 있을 일에, 거짓을 일삼는 것은 참으로 심대한 범죄행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국책사업이라는 미명의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도, 많은 부분에서 밀양 주민들과 국민들에게, 거짓을 통해서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작년 여름, 전기가 모자라 곧 큰 위기가 올 듯이 매일처럼 메인뉴스를 도배하다시피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 정부와 한전은 어쩐지 올해는 너무 조용합니다. 오히려 실내온도 규제를 풀어 강제단속에서 권고조치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전기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밀양 송전탑 공사도, 신고리 3·4호기가 제어 케이블 문제로 언제 완공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거세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송전탑 공사로 인하여 밀양은, 인간의 기본권인 생존권과 민주주의의 중요한 정신인 타협과 합의가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정부와 한전은, 밀양 송전탑 공사는 국책사업으로 국익과 국민 편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변하면서도, 밀양 주민들의 의견과 주민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의 대안들을 모두 무시하고, 한전의 원안대로만 살인적이고 폭압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폭력 앞에 목숨을 잃고, 다치고, 고통 받고 있습니까? 정부와 한전은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진정으로 주민들과 대화하기 바랍니다. 특히 한전의 불법적 공사강행을 비호하고, 불법을 중단하라는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행동을 중단하고, 중재의 장을 만들어 합리적 타협으로써 공의롭게 공사를 지원하기 바랍니다. 지금도 저는 밀양의 한 할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선 합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입니더. 공산주의도 이렇지는 않을 낍니더.” 정말로 이 밀양에서는 민주주의가 상실된 듯합니다. 밀양에서는 권력가와 기업의 자유만 있고 주민의 자유는 없습니다. 도시와 농촌,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에 평등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인간의 기본권인 생존권이 무너져 버렸으니 어찌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고되고 두려운 중에서도 용감히 일어서는 밀양 어르신들의 저항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밀양 어르신들의 이 투쟁은 우리가 그 동안 잃어버리고 있는 공동체 문화와 생명과 환경,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지난 6월11일 공권력의 침탈로 어르신들 저항의 자리들이 무너졌을 때, 이분들을 기억하며 모인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기억납니다. 각기 살고 있는 지역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어떠면 얼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마치 한 가족인양 함께 인사하고 먹고 자고 담소를 나눕니다. 공동체가 형성된 것입니다. 정말 인상적인 모습은 수녀님들께서 많이들 와 주셔서 열심히 기도해 주실 뿐만 아니라, 연약한 몸으로 거대한 공권력과 마주하셨습니다. 감사롭고 감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는 곳이 다르지만, 서로의 문제에 공감하고 자기의 시간을 나누면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려 합니다. 오늘 이 자리도 그런 자리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도 아니고 나와 인간적으로 가까운 이들의 일도 아니지만, 함께 모여 위로하고 격려하며, 악수하고 어깨동무합니다. 힘센 자들이 부수고 간 곳을 약한 자들이 한데 모여 어르고 달래고 함께 눈물 흘리는 자리, 이곳 밀양 송전탑 현장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한 달 뒷면 교황님의 방문을 앞두고 있습니다. 회칙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께서는 “규제없는 자본주의 경제는 새로운 독재”라고 하시면서 “전 세계 지도자들이 가난과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현대의 소비문화와 이기적 개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교회는 성전에만 안주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하십니다. 미국의 한 기자는 “교황, 마르크스주의인가?”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실었습니다. 교황님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분이 복음의 수호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라는 것을, 그러기에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하시고 약하고 가진 것 없어서 자신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길을 나서야 한다는 그분의 생각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믿어 신앙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 생명과 평화, 저의를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탐욕과 쾌락,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인간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은 신앙적 과업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신부님들, 수녀님들 또 많은 신자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밀양 어르신들 힘드시겠지만 지치지 마시고, 여러분들의 지지자들이 전국 곳곳에 많이 계시다는 것 기억하시고, 꿋꿋하게 이 가치로운 일에 임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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