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으로의 지름길, 저출산과 고령화'
운동을 다녀오다 시외버스 터미널 뒤편에서 집회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어지는 미얀마의 군부독재, 그래서 가난한 나라...30여명, 그들은 몇번 보았던, 언젠가 내가 다가섰을때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라달라던 그 다문화 산업역군들이었다.
2025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대의 예상이다. 장기적으로는 저출산 문제가 매우 심각하며, 현재의 낮은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인구 감소가 심화될 것이라는 것은 뻔한 현실이다. 그런데 솔직히 누군가들 깊은 관심이 있을까?
UN산하 저출산 국가 순위(합계출산율 기준)는 1위 대한민국 0.72명, 2위 홍콩 0.75명, 3위 싱가포르 1.02명, 4위 스페인 1.16명, 5위 이탈리아 1.25명 순이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 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OECD 기준, 합계출산율이 2.1명 미만이면 저출산,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으로 분류되고, 한국은 2002년부터 초저출산 국가에 진입했으며, 2018년부터는 1.0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UN에서 정한 고령화 사회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7% 이상인 사회이고,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인 경우를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한국은 2017년에 고령 사회로 진입했고, 2025년에 20%, 2036년에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령화의 속도는 우리나라가 가장 빠르다고 하였다.
나는 다문화와 관련한 티비 프로그램이나 동영상을 즐겨보는 편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2070년대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오명 붙은 이나라, 장차 다문화 그들이 주축되어 다민족 국가를 만들어 이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다.
결혼율이 낮았던 초창기엔 장가 못가는 농촌노총각 떨이하듯, 거짓말 약간 보태어 동남아 여성들을 데려왔다. 심하게 말하자면 사기결혼 같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명분이야 다르지만 우리가 독일이나 중동땅에서 땀흘리고, 베트남의 전쟁터에서 피흘려야 했던건 우리나라가 뼈저리게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자유로운 연애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채 20세도 안된 여성들을 데려다 자기 집에서도 해보지 않은 밭일을 시키며, 말이 통하지 않음을 핑계삼아 닥달을 해대는 농촌 노인들을 보며 그녀들이 측은해 보였다. 섬지역 염전에서 강제노동했던 사람들과 뭐가 다를까?
그들도 집이 가난하니 잘사는 나라 사람과 결혼하여 자기 한몸 희생하여 부모 살림 도우고, 동생 공부시키려는 마음 하나일진대, 왜 그토록 혹독하게 대하는가 싶었다.
요즘들어 우리나라 결혼중개업체가 동남아 각지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흥미가 있다. 그동안 앞에서와 같이 불합리한 부분이 많았으니, 업무를 엄격하게 처리하고, 일부 사후 관리까지 책임진다고 하였다.
어떤 경우 우리나라 남자가 현지에 가서 작은 사업도 하고, 현지 여성을 소개받아 사귀며, 정해진 결혼기간까지 기다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현지의 결혼중개업체들은 좋은 조건만 내세우는 우리나라 여성들과는 달리 동남아 여성들이 순종적이어서 오히려 좋다 하였고, 우리나라 남자들은 또 그러한 이유로 그곳 여성들과 결혼을 원하는 추세가 점차 늘어난단다.
우리사회가 아무리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집이 없어 아이를 안낳는다고 한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옛날 세대는 돈이 많아 결혼을 하고, 20,30대에 자기 집을 가졌었나? 아이 여럿 데리고 여러차례 불편한 셋방살이를 거치다 아이가 자란 40대 초반이 되어서야 내집이란 문패를 달았다.
뻐꾸기는 주로 모성애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등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어릴적 산엘 갔다가 산새집에 어미새보다 커다란 새끼를 본적이 있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을 탁란이라 한다.
이는 뻐꾸기 암컷이 둥지를 짓고, 알을 품어 새끼를 키우는 데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신의 알을 안전하게 번식시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뻐꾸기는 둥지를 짓고 알을 품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다른 새들과 달리, 탁란을 통해 이 과정을 생략한다. 밉상이지만 기발하다.
사람은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를 차지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식들을 보다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자신의 장래도 보장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가지고 더배운 사람들은 노후보장이 잘된 선진국으로 이주하거나, 재산도피처를 찾아 떠나고, 그들이 떠난 곳엔 새로운 하위계층들이 들어선다.
더 좋은 곳에 사는 것, 끼리끼리 모여 살고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도시의 아파트처럼, 여유있는 사람들이 점차 좋은 곳으로 옮겨가면 어딘가는 슬럼화가 되고, 결국엔 버려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제 도시의 건축.생산현장엔 외국인들이 하급 책임자가 되고, 농촌은 외노자 없으면 농경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이싯점에서 그레샴의 법칙을 떠올린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여기서의 양화란 처음부터 환경에 순응하는 마음이다.
'거지끼리 보자기 짼다'고 하였던가. 결국 이 나라도 대기업과 부자들은 외국으로 떠나고, 가난뱅이들만 남아 아귀다툼을 해댈게 뻔하다.
"다문화"는 여러 문화를 의미하며, 특히 한 사회 내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거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외국인 이주자를 넘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문화는 다양한 문화공존, 국제결혼, 이민자 및 외국인, 소수문화 존중, 사회적 포용, 문화적 다양성, 개방적인 사회, 지속적인 상호작용, 새로운 가치 창출에서 발생하는 공통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사회 관련 정보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다문화 교육을 실시하며, 다문화가족지원법,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등 다문화 사회 관련 법규 및 정책을 통해 사회적 포용을 강화한다.
시민 사회단체 에서도 다문화 가족 지원 및 차별 해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5,121만 7,211명 중 외국인 주민은 265만 783명으로, 5.17%를 차지한다.
외국인 주민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로 간주되며,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했다.
2020년 기준 다문화 가구는 전체 가구의 1.8%인 37만 가구이며, 다문화 가구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서울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오산시, 부천시, 포천시, 인천 부평구, 충북 음성군, 진천군, 전남 영암군 등에서 높은 비율을 보인다.
2025년 3월 기준으로 한국 내 다문화 외국인 주민의 국적별로는 중국(한국계 포함), 베트남, 태국 순서이다. 그외에도 필리핀, 라오스 등 아시아계는 물론 세계의 여러나라 태생들이 있다.
그중 2030세대가 절반에 가까운 49.7%를 차지한다.
다문화 인구는 외국인 근로자, 결혼 이민자, 유학생, 귀화자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다문화 학생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4년에는 19만 3,814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 도시에도 중소기업체가 많아 외국인 근로자들과 다문화 가정이 많은 편이다. 특정 동네에는 그들이 모여 살거나, 그들 가까운 휴일의 시장을 보면 그들이 거의 석권하다시피 가득찬다.
여러가지 피부색, 각기 다른 말투, 나는 그들이 좋다. 고깝게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반갑지 않은 문화교류가 생긴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이 우리가 기피하는 일을 해주어서 바람직하고, 그들이 기술을 읽히고, 국적을 취득하면 저출산 문제는 다소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저들을 배척하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저들에게 우리의 올바른 문화를 가르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나누어야 한다.
몇년전 병원에 며칠 입원했을때 병실엔 중국인과 방글라데시인이 함께 있었다. 중국인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고, 방글라데시인은 내게 형님 대하듯 무척 살갖게 행동해서 좋았다.
함께 살아가려면 눈높이가 같아야 한다. 어느새인가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신이 모든걸 아는 듯하고, 자신의 주장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앞장서 행하는건 꺼려한다. 무조건 좋은일 같은데(?), 뭐가 좀 찜찜하다. 그게 맞는지 검증쯤 해 보았을까?
한편으론 이러다 이나라 토박이들이 일터에서 밀려나고, 짝맞추기에서도 외면 당하는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뻐꾸기처럼 어려움 딛고서라도 혈통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다 언젠가는 1970년대 초반처럼 그들나라가 우리보다 잘살게 되는 날 우리는 정녕 쪽팔려 숨어 설곳도 없어질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퍼부어본들 위정자들의 획기적 인식 전환과 빈부격차가 완화되지 않는한 결코 개선될 수 없는 현실이다. 쓸데없는 걱정한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늘과 바다가 푸른건 그렇게 보일뿐이다. 빛의 합은 흰색이고, 색의 합은 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