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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을 드로아란 지역에서 마치려고 7일 동안 머문다. 내일이면 드로아를 떠나야 하기에 떠나는 사람의 심정에 당부할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많으랴! 그러니 밤이 늦도록 말씀을 전한다(7절). 지금으로 말하면 철야예배를 인도하는 중인 듯! 여기서 바울의 열심과 초대 교인들의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예) 중국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히 성도들의 심령에 은혜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마귀 역사도 발악을 한다. 밤이 깊었는데 유두고란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떨어져 죽는다. 그러니 얼마나 큰일인가? 오늘날로 말하면 철야 기도회 하다가 사람이 죽은 것이다. ☆ 왜 하필 청년 유두고가 창문에 앉아 있다가 떨어져 죽어야 했을까? 1. 그는 위험한 장소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9절에 “높은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졸더니” 3층에서 떨어져 죽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왜 창문에 앉아 있는가? 근본적으로 앉는 자리가 틀렸다. 어떤 자리에 앉느냐? 가 중요하다. 시편1편에 “복있는 자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며”라고 한다. ‘삼층’이란 말은 건물의 맨 위를 말한다. 성도에게 신앙의 가장 큰 방해가 무엇일까? 교만이다. 영적 겸손이란 “실력은 높이고 자세는 낮추라”는 말이다(잠16:18-19). 교만은 가장 무서운 병이다. ‘교만하다’는 것은 떨어질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고 “저러다 얼마 못가지”란 느낌을 갖게 만든다(롬12:16). 교만은 ‘-체’하는 것이다. 아는체, 가진체, 받은체 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성도 중 나만한 사람 없어”. 하나님 앞에서는 마찬가지다. 도토리 키재기이다.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못났으면 얼마나 못났을까?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나보다 못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겸손이란 기차가 우리를 하나님의 품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갈 수 있다. 유두고가 3층까지 안 올라갔으면 안 떨어지지 않았을까? 교회서도 앉는 자리보면 신앙이 보인다. 습관적으로 앞자리 앉는 사람은 문제 있어도 넉넉히 이긴다. 중간정도 앉는 사람은 목사가 가끔 전화도 하고 상담도 해야 한다. 좋아서 아니라 아슬아슬해서! 앞자리 비었는데 뒤에 앉는 사람은 기도 제목이다. 2층 있는 교회는 1층 비었는데 목사 머리통 보고 있는건 무슨 일인지! 앞자리 앉아서 목사 일거수 일투족 보고 있는 사람이 은혜 받는다. 유두고가 죽은 이유는 3층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2. 왜 창문이 위험한가? 우리는 밖이 안 보이지만 어떤 교회를 가 보면 사방이 다 보인다. 설교 듣다가 밖에 한번 보고 설교 듣다가 밖에 또 보고!! 절대 은혜 못받는다. 다른 관점으로 하나님만 바라봐야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면 은혜 없다. 유두고는 창문에 앉아 바람쐬며 바울도 보고 밖에 별도 보고 그러니 존다. <창19장>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롯이 “소알성을 향해 뒤돌아보지 말고 뛰라”고 하자 롯의 처가 자기 재산 아까워 뒤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다. 풍랑이는 바다를 항해하던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는데 바다 저쪽에서 누군가 있다. “당신 누구시오 / 예수다 / 베드로가 그렇다면 나를 명하여 물위를 걷게하소서”. 베드로는 물위를 걷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정신차리니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물에 빠진다. 주만 바라라. 3. 반신반의한다. “유두고가 창문에 걸터앉아(9)” 앉으려면 3층에 제대로 앉지 왜 걸터 앉았나? 기회만 있으면 삼천포로 빠질라고! 이런 신앙은 절대 끝까지 승리할수 없다. 성도들을 보면 “마음이 푹 놓이는 성도와 마음이 안 놓이는 성도”가 있다. 걸터 앉았으니 세상과 비교되고, 교회끼리 비교되고, 목사끼리 비교가 된다. 그래서 교회를 옮기는 사람은 계속 옮기는 것이다. 세상과 벗하면 하나님과 원수된다(약4:4). 배를 타도 한배만 타야지 양쪽 배에 다리 올리고 있으면 가랑이 찢어진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세상과 가깝게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세상과 멀어진다. 뜨겁든지 차던지 하라(계3:14). 회색분자는 어디서도 대접 못받는다(예)남북 전쟁때에 윗도리, 아랫도리 4. “깊이 졸더니” 조는것도 적당히 졸지 잔다. 사람이 피곤하면 졸수 있지만 ..., 부흥회를 인도해 보면 저 사람 교회 얼마나 다닌지 대충 안다. 초신자는 졸리면 솔직하게 자는데 오랜신자는 교묘하다. 유두고는 조니 떨어져 죽는다. 불신자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지만 신자 중에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것을 “잔다”고 한다. * 지금 당신은 잠자고 있는가? 아니면 깨어 있는가? (1) 나는 기도를 1시간 했다고 생각하는데 밤이 지났다. or 나는 밤새 기도했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 밖에 안 지났다. (2) 성경을 읽으면 눈이 맑아지나? 잠이 오나? (3)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있는가? 근심 걱정이 많은가? (4) 눈물이 많은가? 말랐는가? (5) 몸과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나? 남 잘사는거 보면 부럽기만 한가? (6) 불신자를 만났는데 전도할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7) 하나님께 헌신하는게 귀찮고 아깝다. 아닌가? 5. 충고를 듣지 않은 유두고는 떨어져 죽는다. 아마 많은 사람이 거기 앉아 있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두고는 “내가 알아서 할께요”라고 말한다. 내가 알아서 할수 있다면 예수님이 죽을 이유도 없고 교회, 목사 필요없다. 내가 못하니 인도자를 세운 것이다(히13:17). 어떤 일이 내 감정과는 안 맞아도 하나님의 뜻이면 따르라. 주의 종의 권면에 듣는 귀가 열리기를 바란다. 6. 어른들의 세심한 관리 소홀이 유두고를 죽인 것이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을 기도와 관심으로 돌보아야 한다. 그것이 다 사는 길이다. 나만 앞서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가는 것이다. 바울의 인생은 떨어진 유두고 같은 사람을 살리는 인생이었다. 이것이 당신의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유두고의 추락 / 행20:7-12|작성자 immanuel95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