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통 중에 산다
1. 네가 어디서 살든지 어느 방향으로 돌든지 하느님께로 돌아서기 전에는 가련하게 살리라. 너는 네가 뜻하고 원하는 대로 일이 안 된다고 왜 그리 괴로워하느냐. 자기 뜻대로 일이 되어가는 사람은 없다. 너도 나도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그렇지 못하니라. 세상에 걱정이 없고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한 나라의 왕도, 교황도 그렇지 못하다. 그럼 어떤 사람이 좀 더 낫게 사느냐?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고통을 참아 나갈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2. 정신이 박약하고 항구성이 없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가. 얼마나 부요하고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권력이 크고 명성이 높은가 하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너는 천상의 부귀함을 살펴보라. 세상의 부귀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의 부귀란 영구성이 없고 차라리 짐이 되느니라. 그가 세상의 부귀를 지니고 있자면 번민도 많고 공포심도 떠날 사이가 없느니라. 세상의 재물을 많이 가져야 인간이 행복한 것이 아니고, 살 만큼 가지면 되느니라. 세상에 사는 것은 결국 고통이다. 신심 생활을 할수록 현세 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인간의 부패성을 좀 더 알아듣고 좀 더 느끼는 까닭이다. 속세에서 이탈되어 죄를 피하여 살려는 사람에게는 먹고, 마시고, 깨어 있고, 자고, 쉬고, 일하면서 육체의 생명 보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 나가는 것이 고역에 지나지 아니한다.
3. 내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현세의 육체 요구를 채워나가는 것이 성가신 일로 생각된다. 그래서 예언자는 이런 점에서 구해 달라고 이렇게 열렬한 기도를 했다. “오! 주여, 나의 곤경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시편 25,17) 인간의 고역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이 가련하고 없어지는 이 생활을 좋아하고 사랑함이다. 어떤 사람들은 간신히 일해서 또는 원조를 얻어서 간신히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언제나 살 것처럼 생각하고, 천국에 대해서는 상관치 아니하고 이 세상 사는 데에만 마음을 붙이고 지낸다.
4. 오! 이런 사람들은 왜 그리 철없이 구는가? 마음에 믿음이 없어 세상일에 깊이 파묻히고 육욕을 채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아니한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리 탐내서 찾던 것이 결국 아주 가치도 없는 일이었음을 슬피 깨닫게 될 때가 오리라. 하느님을 따른 성인들과 그리스도를 따른 그의 참된 제자들은 육체의 오락을 피하고 현세의 존경을 무시하면서 다만 영원한 것만 희망하고 찾았다. 그들은 유형한 물질을 사랑해서 저속한 생활에 끌려들까 두려워 영원하고 무형한 일에만 끌려가려고 힘썼다. 벗이여! 신심 생활 진보에 확신을 가지고 매진하라. 아직도 진보할 시간이 있으니.
5. 왜 좋은 결심을 하루하루 미루어만 가는가? 곧 일어나 당장에 시작하라. 지금은 행동할 때이고, 지금은 싸워 나갈 시간이고, 지금은 내 생활을 개선해 갈 시절이다. 괴롭고 어려우면 이는 선공을 할 때로 알라. 네가 안전지대에 이르려면 불도 지나고 물도 건너야 한다. 너는 네 자신을 가혹히 다스려 이겨 나가기 전에는 악습을 고치지 못한다. 우리가 이 부패한 몸을 지니고 사는 동안은 죄를 떠나 살지 못하고, 염증도 나고, 고통도 당할 것이다. 걱정 없이 안온히 살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우리는 죄를 지어 무죄지위(無罪地位)를 잃었고 참된 행복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아 나가며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죄과가 없어지고 죽음도 새로운 생명에 옮겨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오! 인생은 왜 그리 약해 악습으로만 흐르는가? 너는 대죄를 회심해 고백했다가 내일 또 다시 같은 죄에 떨어진다. 지금 당장에는 주의하겠다고 결심하더니 한 시간이 못 되어 그 결심을 잊어버리누나. 우리는 이처럼 약하고 항구성이 없으니 스스로 겸손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생각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과 애써 일해서 얻은 것도 경솔히 해서 잃는 수가 있다.
7. 아침부터 우리가 이렇게 게으르니 해가 지는 때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의 행실에 참다운 성덕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빨리 평화를 얻고 안전한 위치에 선 것처럼 일에 경솔하고 쉬려고만 하니 우리는 불행하다. 장차 우리 생활을 개선하고 영신상의 진보를 보려면 아마도 지원 수도자(志願修道者)가 받는 훈련과 고상한 윤리 도덕을 좀 더 배우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묵상 자료
세상에는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없다. 인간은 그 위치를 막론하고 걱정이 있고 고통이 있다. 가난한 사람은 푼돈에 쫄려 살고, 부자는 큰 돈에 몰려 번민한다. 결국 자기 위치를 알아듣고 세 끼 먹고 살며 충족한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담 너머 남들이 사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도 남모르는 근심 걱정에 싸여 산다. 행복은 고대 왕실에 깃들이지 아니한다. 살 만큼 가지고 바르고 착하게 살려 함만이 인간의 행복일 것이다.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따르자면 그가 가난하게 사셨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면서 하느님 성부의 뜻을 따랐음을 본받아 우리도 육체와 정신과 마음에 당하는 고통을 참아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약해서 바르게 착하게 살지 못하는 때가 많은데 이를 반성해서 고쳐가며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속의 일은 필요한 대로 보고 네 마음에는 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살아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다.
- 그리스도를 따라/ 토마스 아 켐피스/ 가톨릭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