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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7일 오후의 성판악 숲속길.
나뭇가지마다에 상고대가 엉겨붙어 몽환적인 풍광을 연출했다.
아이들에겐 영락없이 동화 속 유리의 성이었다. 순백의 은세계에 요술처럼 신기루처럼 나타난 유리의 성에 아빠 손을 잡고 올라온 충청도 소년은 연달아 기성을 질러댔다. 봄 속의 한라산은 정상 연중 개방 기념 취재산행에 나선 우리를 그렇게 한겨울보다도 더 찬란한 설경으로 맞아주었다.
한라산 정상은 그간 적설기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에 한해 한시적으로 개방돼 왔다. 대개 화강암질인 육지부 산에 비해 한라산은 부스러지기 쉬운 현무암 지대다. 특히 백록담이 내려다뵈는 정상 화구벽 위까지 등산로 일대가 그간 심하게 훼손되었다. 때문에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성판악, 관음사 2개 코스를 발길이 토양부에 직접 닿지 않은 적설기에 한해 등행을 허용해오다가 올해부터는 연중 개방키로 한 것이다.
관리소 송상옥 소장은 “등산로 정비와 보호시설 설치가 완료됐고, 훼손지 복구 상태도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개방 이유를 밝힌다.
진달래밭대피소엔 관리인 상주
성판악~진달래대피소~정상~용진각대피소~관음사 매표소에 이르는 길은 총 18.5km로, 해가 짧은 겨울이라도 새벽 일찍 산행을 시작해 대개 하루만에 끝낸다. 그러나 일출과 일몰 사진을 위해 취재진은 정상 근처 대피소에서 1박을 원했고, 관리소측은 내 고장 산 소개를 잘 해달라며 이를 허용해주었다. 조난자 구조를 위해 직원 2~3명이 상주하는 진달래대피소에 올라 1박하며 맑은 아침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지독한 안개다. 6일 아침부터 제주도 전역을 내리누르던 안개는 7일 목요일 오전이 다가도록 여전했다. 제주도엔 ‘정월 대보름날 비가 오면 영등달(靈登·음력 2월) 한 달 내내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과연 올 대보름날 비가 온 이래 유난히 눈비가 잦았다고 한다.
이미 점심때가 가깝지만 서둘 것은 없었다. 굼벵이 걸음으로 걸어도 진달래밭대피소까지는 4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루한 숲길이라며 타박 맞기 일쑤이던 성판악 길은 그러나 오늘은 운무 덕에 오히려 풍광이 유달라졌다. 휘익, 휙 하며 설연을 흩뿌려대는 한라산-. 넘어진 아름드리 거목 줄기 옆구리로 이끼가 짙푸른데, 그 위에 허옇게 솜사탕처럼 상고대가 휘감기고 있다. 만병초를 닮은 굴거리나무 잎이 곳곳에 고개를 늘어뜨리고 서서 자칫 허전할 뻔했던 숲속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매표소 근처에선 등산로에 깐 나무판자가 밟히더니, 차차 적설이 두터워지다가 이윽고 난간의 밧줄이 파묻힐 정도로 눈이 깊어진다. 왼쪽으로 폐쇄된, 성널오름 가는 갈림길목을 지나쳐 해발 1,000m대로 진입하자 아예 한겨울 분위기가 된다.
눈석임물이 얕게 고이듯 하며 흐르는 좁은 개울을 두 번인가 건넌 뒤 속밭이란 지명을 가진 널찍한 공터에 다다랐다(N 33°22′37″ E 126°34′59″). 이후로도 길은 여전히 평지에 가까운 경사다. 침낭이며 먹을 것들이 배낭에 잔뜩 들었지만 땀을 흘리는 사람이 없다.
나뭇가지마다 지름 5cm 굵기 얼음막대
▲ 1.눈은 질펀하게 녹고 진초록 굴거리나무 잎이 여백을 채운 3월 한라산 성판악의 숲속 등산로. 2.사라대피소 전 사라악샘터(99년 8월). 나무 속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3.진달래밭대피소의 겨울(왼쪽)과 여름. 5월 들면 거의 눈이 녹아 사진과 같은 상태가 된다.
사라대피소 근처엔 사라오름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있으나, 정상 오름길은 폐쇄돼 있다. 등산로는 경사가 조금 급해졌지만, 여전히 완경사라 할 정도로 순하다. 안개는 시계가 10m 이내로 떨어질 정도로 짙어졌다. 때문에 정상 오름길목의 초소와 원색 등산로 안내판이 아니었으면 진달래밭대피소를 그냥 지나칠 뻔했다. 초소 오른쪽 저편, 눈보라 속에 대피소는 검은 윤곽선을 어렴풋이 드러내고 있다. 이 근처는 진달래밭이긴 하지만 그리 큰 규모는 아니라고 한다.
한라산 중턱은 평평한 평지에 가까운 산록이고 별달리 지표를 삼을 만한 지형지물이 없는 지역이라 만약 길을 잃으면 하루 종일 숲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때문에 관리소 직원들은 폭설이 내린 이후엔 일부러 등산로를 한 번 걸어 지나서 발자국을 내둔다고 한다.
▲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화구벽을 향해 오르는 취재진. 나뭇가지에 굵게 빙설화가 피었고 안개가 짙게 스몄다.
이 진달래밭대피소도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고 있으니 물은 반드시 성판악매표소에서 넉넉히 챙겨 올라야 할 것이다. 전화는 되지 않으며, 위급시 무전 연락만 가능하다. 단 한 군데, 매점 바로 앞을 제외하고는, 이 근처에서는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았다.
3월인데도 2m가 넘는 적설량 보여
▲ ‘아이스케키’처럼 굵은 빙설화를 만져보는 제주 산꾼 양진석씨(위). 한라산 정상에 종일 서서 등산객들의 안전을 살피고 있는 한라산 관리사무소 직원 한재근씨. 산중 근무만 이미 17년째라 한라산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이다(아래).
숲지대를 벗어나 급경사 화구벽 오름길로 접어들자 엄청난 강풍이 내리닫기 시작한다. 우측 앞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설이어서 정면을 바라보기 어렵다. 눈이 두터이 덮여 쇠난간은 발치께로 내려앉았고, 등산로변 가로지름대는 한 아름쯤 되는 굵직한 상고대 기둥이 되었다. 사람들 머리칼, 옷자락, 배낭에도 허옇게 수염 같은 상고대가 엉겨 붙는다.
토요일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청주에서 온 할아버지 일행, 서울에서 온 신혼부부도 있다. 운동화에다 겉옷도 없이 그냥 눈보라를 맞으며 오르는 사람이 많다. 개중엔 어딘가 의식이 몽롱해진 것처럼 걸음걸이가 위태로운 사람도 보였다. 저 아래 대피소나 매점은 이런 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겠구나 싶지만, 아무튼 너무들 준비 없이 이 큰 산에 오르는 것 같다.
▲ 여름의 삼각봉(99년 8월). 겨울철로 왼쪽 사면의 적설이 흘러내리며 눈사태가 나기도 한다.
북사면이어선지 적설량은 성판악쪽보다 훨씬 더 많았다. 관리소 직원들이 적설기 길 표시를 위해 2m쯤 되는 높이로 띄워 묶었다는 주황색 노끈도 발치께에 깔리는 것으로 보아 올해 강설량이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눈이 그렇게 깊이 쌓여서 딱딱하게 굳은 탓에, 우리는 종종 엉금엉금 기거나 슬라이딩 하듯 ‘아이스케키‘ 터널이 된 나뭇가지 밑을 지나야 했다. 경사는 급했고, 실수하면 저 아래까지 한참 굴러내리며 다칠 위험이 높은 곳도 여러 번 지났다. 이미 지친 기색이 가득한 한 무리의 부산 아가씨들이 지나쳤는데, 저 위 강풍이 몰아치는 정상을 어찌 오르고 지날 것인지 진정 걱정스러웠다.
방금 나간 그 누군가의 소행인 듯, 용진각대피소(N 33°22′04″ E 126°31′55″) 안은 타다 남은 재가 가운데에 수북하다. 찬 바람에 얼이 빠진 등산객들이 서둘러 들어서며 멋모르고 밟는 바람에 대피소 안이 재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바람 피할 곳은 여기뿐이라 버너 피워 라면을 끓이거나 벽에 기대어 앉아 차를 마시기도 한다.
폐쇄된 구 용진각대피소 건물 앞을 지나 계곡 지류를 한 가닥, 또 한 가닥 건넜다. 두번째 지류에서는 한겨울에도 물을 뜰 수 있다고 제주대산악부원인 양진석씨(23)는 일러준다.
▲ 개미등 능선을 내려가고 있는 취재진.
개미목부터는 거의 쉼없는 완경사의 내리막길. 구상나무, 소나무들에 설화는 케이크 장식한 크림처럼 얹혀 기경을 이루었고, 안개구름은 순식간에 숲 속 저편까지도 들여다뵐만큼 걷히기도 한다. 그 조화 속을 걷는 동안 기이한 황홀감이 찾아든다. 예각으로 치솟은 삼각봉 일대의 풍광이 기막히지만, 오늘은 짙은 잿빛 안개 바다에 잠겼다.
▲ 개미등 능선 숲속의 설화 풍광.
빙설화의 굵기가 점차 가늘어지며 수림상도 침엽수림에서 활엽수림으로 바뀐다. 산죽군락은 저 위 삼각봉 근처부터 변함없이 발길을 따르다가 개미등이 꼬리를 맺는 탐라계곡대피소 근처에서는 광대한 밭을 이루었다. 백록담~관음사 간 9km 거리에서 3분의 2 지점인 탐라계곡대피소(N 33°23′49″ E 126°32′31″)는 붕괴 위험이 있어 아예 사용 금지다.
저 아래 제주시와 푸른 바다도 바라뵐 만큼 안개가 걷히고 간혹 희미하게나마 햇살이 비쳐들기도 한다. 뒤돌아보았지만, 한라산 정상은 여전히 짙은 구름장 속에 들어 있다. 오늘 하루 종일 제주시내는 화창한 봄날이었다는 관음사 관리소 직원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산행 길잡이
성판악 코스는 진달래대피소 근처까지 어차피 짙은 숲속이며 완경사의 순한 길이다. 반면 관음사 코스는 올라가면서 삼각봉과 정상 분화구 북사면 풍광이 펼쳐지는 등 급경사이되 오르면서 보는 맛이 뛰어난 길이다. 그러므로 걸음의 편하기를 택한다면 성판악→관음사 방향, 바라보는 경치의 뛰어나기를 택한다면 관음사→성판악으로 방향을 잡는다.
방향을 어떻게 잡든 중간 대피소에서의 유숙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하루만에 넘어야 한다. 각 코스 길이가 9km 남짓 되므로 합해서는 18km로, 겨울이라도 아침 일찍 출발해 당일 산행으로 넘어간다. 성판악 코스가 관음사 코스에 비해 완경사여서 시간이 덜 걸리므로 이 코스로 올랐다가 그대로 되내려가기도 한다.
길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적설기에는 아니다. 적설기에는 난간이 모두 눈에 파묻혀 길을 잃고 헤맬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유의한다.
교통
◇제주도내 버스편
제주공항에 내려 성판악까지 가려면 일단 공항버스로 15분 거리인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한다. 공항버스는 수시 운행.
제주 발 성판악 경유 서귀포행 버스 1일 83회(06:00~21:30) 운행. 성판악까지 40분 소요. 요금 1,600원. 제주 시외버스터미널 064-753-1153~4. 성판악 매표소 064-758-8164.
관음사 매표소에서 제주 택시료 10,000원선. 아니면 2km 아래의 제주대학교 근처까지 걸어가야 한다. 제주도는 대개 택시를 호출할 경우 미터요금에서 1,000원 정도 더 받는다. VIP콜택시 064-702-6666, 모범운전자회 064-757-1407. 개인택시조합 064-744-2793.
제주OK렌트카 064-743-4000, 동아렌트카 743-1515, JIC렌트카 711-1666, 자보렌트카 711-3222, 가가대리운전 080-369-5858.
성판악 매표소 064-758-8164, 관음사 매표소 064-756-3730.
숙박
성판악 매표소나 관음사 매표소 근처에는 일체의 숙박·요식업소가 없으므로 제주시내나 해변가의 업소를 이용한다. 제주도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관광안내코너(cyber. jeju.go.kr)에 들어가면 각 숙박시설별 상세 정보를 볼 수 있다.
절물자연휴양림 한라산 북동쪽 제주시 봉개동에 소재하며, 삼나무숲 풍치가 뛰어나고 독립 산막이 여러 동 있다. 17평형 70,000원, 10평형 55,000원, 8평형 44,000원, 6평형 40,000원. 전화 064-721-4075. 야영장의 야영데크가 넓고 숲속에 위치하며 가까이에 취사장 등 시설이 있어 이용할 만하다. 4,000원.
성복식당 제주도 토박이들이 종종 찾는 고등어나 갈치 요리 전문점이다. 서울 강남에 분점을 냈을 정도. 서너 명 일행이 5만~6만 원이면 고등어와 갈치조림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전화 064-757-2481. 제주시 건입동 소재.
태광식당 한치와 삼겹살을 함께 볶은 한치불고기, 주물럭 등으로 인기가 높은 집으로 모범식당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전화 064-751-1071. 제주시 용담동 서문로타리에 소재.
한라산 사람들
“한라산 정상 연중 개방 결단”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송상옥 소장
현재 한라산 국립공원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임업직에만 35년 근무해온 송상옥 소장(宋祥玉·55)이 관리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임업직이란 곧 한라산과 연관된 일이다. 그러니 한라산 문제는 마음 푹 놓고 안심해도 되지 않겠는가. 관리소 직원들은 “송 소장은 자타 공인의 한라산 전문가답게 한라산 성판악~정상~관음사 코스의 정상 등산로 연중 개방이라는 소신 있는 결단을 내려 등산인들의 칭송을 사고 있다”고 밝힌다.
송 소장은 제주도청 산림과장을 지내다 한라산 관리사무소장을 맡았다. 88년 한라산 보호순찰을 시작하며 매일 올가미 수백 개씩을 수거해 내리던 일이 엊그제 같다는 송 소장이다. 그는 “94년부터 총 108억 원을 들여 추진해온 등산로 정비와 훼손지 복구공사가 이제 거의 마무리되어 더 이상의 훼손은 없을 것이란 판단이 서서 정상 연중 개방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1년까지 150억 원을 추가 투입, 원상 그대로에 가깝게 식생을 복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다.
그는 한라산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존이 잘 돼 있는 산”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1966년부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해왔고, 육지부의 공원 관리자들과는 전문성에서 이미 크게 차이가 나는 임업 관련 전문가들을 주축으로 관리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장료와 주차료 수익이 고작해야 연간 5~6억 원 수준인 데 반해 관리비는 수십억 원씩 들이는 것은 한라산이 곧 제주도의 자존심을 걸고 지키자는 도민들의 뜻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그는 말한다. 좀더 원활한 등산객 안내와 구조를 위해 매년 청원경찰 5명씩 한국등산학교에 교육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오는 5월17일 백두산과 설악산에 이어 한국에서 세번째로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 보전지구 지정패 전달식이 기다려진다는 그는 한라산에 몇 번이나 올라가 보았느냐는 어느 등산객의 질문에 “정상부 훼손지 복구공사 현장에 연일 오르내린 것까지 다 따지면, 글쎄 대체 몇 번이라고 해야 하나”하며 당황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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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원상 보존이 곧 최상의 개발”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김경숙 원장
관광에 사활인 걸린 제주도만큼 환경 문제가 예민하고 중요한 지역도 다시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제주도 환경 파수꾼들의 대표로 산악인 출신의 치과의사인 김경숙씨(金敬淑·48·명치과의원 원장)가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3인 중 1인을 맡아온 김 원장은 어릴 적부터 한라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제주도 토박이이자 연세대 치대산악부를 나온 산악인. 90년 네팔 트레킹을 갔다가 ‘어찌 보면 구질구질한 곳인 네팔에 왜들 매력을 느끼는 것인지 불현듯 깨닫고’ 고향 제주도도 원시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곧 가치를 최상으로 높이는 것임을 주창하고 실천하는 환경운동에 나서게 됐다.
제주도는 2001년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되며 각종 개발 압력에 직면, 환경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추가되는 골프장만 20개쯤 되는 등 제주도의 환경용량을 초과하는 여러 시설이 추진되는 한편 축산 분뇨 지하수 오염, 광역 소각로 설치, 자연생태를 무시한 도로 확포장, 항공기 매연 등 기존의 환경오염원 문제까지 겹쳐 있다.
김 원장은 제주도 토박이라 주민들은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이웃이자 친인척이다. “환경운동은 이들의 소득 문제와 곧바로 맞물리는 일이지만, 먼 훗날엔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란 믿음 하나로 원상 그대로의 제주도와 한라산 지키기에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고 김 원장은 다짐한다.
문제가 하도 많아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지만 당장엔 바닷물을 끌어들였다가 더러워지면 그대로 되버리는 육상 양식장의 근해 오염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김 원장은 말한다. 한라산 케이블카도 현재의 기술력과 조직력으로는 심각한 자연 훼손이 뻔한 만큼 적어도 20년쯤 뒤로 논의 시기를 밀어두어야 한다고도 김 원장은 주장한다.
김 원장은 바쁜 가운데도 늘 수련에 열중하는 검도 유단자다. 남편 또한 동국대산악부 출신 산꾼인 이종량씨(48)로, 제주 환경보호에 김 원장 못지 않는 논리와 열성을 가진 사람이다.
“한라산 사진 찍으려 관리소 주방장 자청”
어리목관리소 직원식당 조리사 강광미씨
한라산 관리의 총본부격인 어리목 관리사무소 현관에는 햇살이 밝게 비춘 가을 한라산 사진이 걸려 있다. 이 사진은 바로 직원식당 주방장인 강광미씨(姜廣美·60)의 것이다. 이 사진은 우연히 얻은 사진이 아니라 강씨가 나름대로 열성을 다해 찍은 ‘작품’ 중 한 컷이다. 멋진 한라산 사진을 찍기 위해 바로 여기 관리소 주방 일을 자청했노라고 강씨는 고백한다.
강씨는 제주시의 크라운프라자호텔 주방 일을 했던 한식 1급 조리사다. 10여 년 전부터 비번 때마다 한라산을 올랐는데, 대피소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오곡밥이며 낙지볶음, 우족탕 같은 음식을 해 지어다 주곤 했다. 그러다 사진전문가인 관리소 직원 신용만씨를 만나 사진을 알게 됐다.
카메라는 니콘 FM2가 유일하지만 제주도 미술대전 우수상, 구미 미술대전 특선 등 수상경력이 자못 화려하고, 어엿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다.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마친 뒤면 종종 이 카메라를 들고 한라산 전모가 뵈는 관리소 뒤의 어승생악에 오른다. 토요일은 직원 급식이 없으므로, 금요일 오후엔 늘 윗세오름대피소에 올라가 자면서 한라산의 영기어린 모습을 기다린다. 이런 맛에 다른 일반 호텔에서 월급여 300만 원으로 유혹해도 요지부동인 강씨다. 개인전은? 하고 묻자 강씨는 “아들들이 해주겠지요, 뭐” 한다.
글 안중국 차장 / 사진 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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