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아마 13살이 되던시절부터였나
편지라는걸 쓰기 시작했다
"국군아저씨께"라는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편지란 참 난해하고
(물론 그 시절엔 난해하다는 말은 몰랐지만)사람을 복잡하게
만들었었다
"얼굴도 모르는 국군아저씨께"로 시작하여 국군아저씨들
덕분으로 우리는 건강하고 근심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로 매번
끝맺음을 했던것 같다.
코흘리개의 아이들이 낑낑거리고 온 몸으로 썼던 그편지를 받은 국군
아저씨들은 정말로 위문편지답게 위안을 받았을까?
내내 궁금했지만 아는 국군아저씨가 없어서 확인을 못해봤다
때로는 그 편지를 인연으로 가끔 핑크빚염문도 있긴했었다.
중학교시절엔 짝지끼리 혹은 그냥 그시절엔 온 몸으로 친했던 친구들과
죽을것처럼 편지를 주고받았다
왜 그때는 꼭한번 받으면 꼭 한번 답장을 했어야했을까?
쓰고 싶을때 쓰는 편지가 아니고 답장을 받으면 그 답장에 또 답장을
보내야했고 그 답장에 친구는 답장을 보내오곤 했었다
그렇게 편지와 더불어 우리는 학창시절을 보냈고
젊은날의 고통을 고스란히 편지와 더불어 살았던것 같다.
내 나이 스무살이 넘어가고 서른에 가까워 올 즈음 난 잊어버렸다.
편지도 잊었고 친구도 잊었고 우리의 젊은날도 그렇게 가는것 같았다
흐린 가을하늘이 꼭 아니어도
비 내리는 날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하늘이 유난히 맑아서 눈물이 날것 같은 날에도
가을이 시작되는 날에도
겨울이 끝나는 날에도
노을이 유난히 예쁜 날에도
내 마음에 파도만 일렁이면 써내려가던 그 편지를......
하늘이 유난히 맑은날 지금은 눈물이 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노을이 그때처럼 예쁘지 않은걸까?
편지는 그렇게 사라져 갔다
고통도 잊게했고 기쁨도 함께했고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었던 우리들만의
편지는 그렇게 사라져 갔다
장롱 깊숙이 있던 빛바랜 편지를 꺼내본다
친구가 거기 있고 내 우정이 거기 있고 내 젊은날의 열정이 거기 있다
어느날 내 나이 사십이 다가오면서 난 그리워졌다
밤을 세워 써내려가던 그편지도 그리웠고 그 시절의 친구도 눈물겹도록
그립다.
그래서 난 다시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그리고는 난 한줄도 쓸 수가 없었다
빈 여백을 보면서
그 시절에 어떻게 몇장씩 쓸 수가 있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내가 나는 너무 서러웠다.
난 다시 편지를 쓴다.
밤을 새워 낑낑거리며 다시 편지를 쓴다.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아직은 기억할때,
비가 내리면 친구와의 술잔이 그리울때,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어 친구와 같이 가고 싶을때,
무더운 여름날 광안리 노천카페에서 친구와 생맥주가 마시고 싶을때,
이렇게 잠 못드는 밤에 무지 친구가 그리울때,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들을때,
난 다시 편지를 쓴다
친구와 우정과 내 젊은날의 열정이 아직은 남아있을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