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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
조 정 래
나는 오늘 돈을 벌었어요.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이에요. 얼마냐구요?
3,3천 원이라구요. 수염이 긴 임금님이 그려진 빠다라시 5백 원짜리 여섯 장을 내가 벌었다구요. 얼마나 쎈(신)나는지 모르죠? 깡충깡충 뛰고 싶고 목이 터져라 소릴 지르고 싶어요. 빠다라시 5백 원짜리를 양쪽 손에 세 장씩 쫙 펴 쥐고 흔들면서 말예요. 그치만 그럴 순 없어요. 그러다가 날치기라도 당해 버림 어떡하게요. 그리고 야코가 죽어 있는 창호 때문에도 참아야 해요. 창호 자식은 나하고 똑같은 일을 하고서도 3백 원 밖에 못 벌었거든요. 자식, 김 팍 샜지 뭐예요. 오늘 아침에도 뻥뻥 공갈을 시켰거든요. 지가 틀림없이 3천 원을 벌 거라구요. 제비를 뽑아봐야 알지 네까짓 게 뭔데 큰소리냐고, 나도 기죽을 순 없었어요. 그런데 자식은 나를 기가 팍 죽게 만들어버렸어요.
“난 어젯밤에 돈을 수백 장 줍는 꿈을 꿨다, 어쩔래. 이래도 아니니?"
창호는 으스댔어요. 나는 겁이 났어요. 제비뽑기가 허탕이면 어쩌나 싶어서요. 억울했어요. 왜 나는 그런 꿈을 못 꾸었는지 말예요. 알고 보니 창호는 정말 공갈쟁이였어요. 꿈 이야기도 공갈이었을 거예요. 창호는 보통 때도 거짓뿌렁을 잘 시켰거든요. 즈네 삼촌이 공군 비행사라고 뻐기기도 하고 이모부가 사장이라고 폼을 잡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본 일은 없어요. 즈네 아빤 리하카 채소 장순데……. 창호 말을 믿는 아이들은 없었어요. 꿈 이야기가 정말이라면 누나 말이 맞아요. 꿈에서의 일은 낮에 반대로 나타난다고 했거든요. 누나의 이 말이 왜 이제야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한테 이 돈을 주면 엄마는 날 얼마나 이뻐할까요.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50원은 줄 거예요. 백 원을 줄지도 모르죠. 그러나 난 50원만 받을래요. 백 원을 다 까먹으면 어떡하게요. 아빠가 알면 다리 부러질 일예요. 10원짜리 엿 하나를 팔면 2원 남는다고, 돈을 아껴 쓰라고 아빠는 항상 울상이거든요. 50원을 받아서 난 껌 한 통을 살래요. 여섯 개짜리루요. 그래서 한 개를 네 동강이 내서 두고두고 씹을래요. 나머지 20원으론 만화 가게를 가야죠. 피, 웃기지 마세요. 만화는 글씨를 알아야만 보나요, 뭐. 그림만 봐도 무슨 뜻인지 다 안다구요. 나두 다음 달부터 학교에 입학한다구요. 지금도 내 이름, 아빠 이름 다 쓸 줄 알구 천까지 거뜬하게 외울 수도 있어요. 그뿐인 줄 아세요? 쓸 줄은 모르지만 보아서 알 수 있는 글자도 많다구요. 참, 피, 온, 스, 카, 웃. 수, 사, 반, 장. 초, 쇼, 쇼. 맞아요, 테레비 프로예요. 어디긴요, 만화 가게에서 보죠. 10원을 내면 이런 신나는 프로를 볼 수 있고 만화도 두세 권은 덤으로 보여주거든요. 뽀빠이도 먹고 싶고 호빵도 군침이 돌지만 참을 수밖에 없어요.
내 욕심 같아서는 이 빠다라시 5백 원짜리를 사진틀에 가득 차게 끼위두고 싶어요. 사진을 다 뻬버리고 말예요. 사진틀의 사진들은 참 보기 흉해요. 엄마 아빠 결혼 사진, 형, 누나, 그리고 내 돌 사진 같은 것이 끼워 있는데, 모두 뻔디기 삶은 물처럼 누리꾸리하게 변해 있어요. 그 사진들을 다 빼버리고 이 빠다라시 5매 원짜리를 쭉 끼워서 걸어두면 얼마나 근사하겠어요. 앉아서도 보고 누워서도 보고, 참 앗싸한 기분일 것 같아요. 아빠도 이런 빠다라시 5백 원짜리는 벌어보지 못했단 말예요. 아빠의 국방색 돈주머니에서 쏟아지는 것은 거의 동전입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긴 하지만 실속은 없어요. 흰색 동전은 별로 없고 노란 동전이 거반이거든요. 하루에 한 장쯤 5백 원짜리가 있긴 해도 모두 걸레예요. 아빠의 밥상 옆에서 그 돈은 엄마가 셉니다. 종이돈부터 추리고 그 다음 흰 동전과 노란 동전을 고르지요. 난 손도 못 댄답니다. 아빠 말로는 애들이 돈을 가까이하면 못쓴다고 그러지만 진짜는 내가 하나라도 슬쩍할까 봐 그러는 것 같아요. 아빠가 하루 벌어오는 돈은 3천 원이 약간 넘기도 하고 조금 모자라기도 해요. 그런데 그 돈이 다 번 것은 아니래나 봐요. 본전을 빼고 나면 이익은 얼마 없대요.
“이 지경으로 쥐꼬리만큼씩 벌어서 입에 풀칠을 하고 나면 도로 그 꼴, 도로 그 꼴, 다람쥐 쳇바퀴 돌기지. 헛참, 망할 놈의 신세.”
엄마가 돈 계산을 끝내고 액수를 말하면 아빤 매일 똑같은 말을 화가 난 목소리로 하고는 상을 밀쳐버려요. 나는 아직 산수 공부를 배우지 않아 아빠가 하루 엿을 팔아 남기는 이익이 얼마인지는 몰라요.
“가서 잘 돌려라. 잘만 하면 아빠 엿새 벌이를 하는 셈이다.”
엄마는 아침에 크림까지 발라주며 이런 말을 했어요. 사실 나는 창호의 꿈 이야기를 듣기 전, 이때부터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제비를 잘못 뽑으면 어쩌나 하고 말예요. 그렇게 되면 엄마한테 마구 두들겨 맞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에게 발라준 크림은 쉐타 짜는 공장에 다니는 누나가 엄마 생일날 사다 준 거예요. 그런데 엄마는 그걸 다 헐어빠진 장롱 깊숙이 넣어두곤 한 번도 바른 일이 없었어요. 매일 집에서 봉투를 만드는 엄마는 다른 애들 엄마처럼 차려입고 어디 가는 일이 없거든요.
“저 새끼, 남 꼬봉 노릇 하러 가면서 크림은 발라 뭘 해.”
자는 것처럼 엎드려 있던 형이 벌떡 일어나며 한 말이었어요. 그러잖아도 삐꺽거리는 방문을 형은 거칠게 닫고 나가버렸어요.
“저, 저것이…… 아휴 이놈의 팔자도…….”
엄마는 형의 뒤를 쫓아 나가려다 그만두었지요. 형이 화가 났을 때 엄마는 거의 이런답니다. 형은 아빠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지만 엄마한테는 지금처럼 자주 화를 내요. 내가 이번에 1학년이 되면 형은 5학년이 돼요. 형은 공부를 잘하는 편인가 봐요. 아는 게 많아요. 학교를 다녔으면 중학교 2학년인 누나도 형에게는 쩔쩔매거든요.
나는 크림만 바른 게 아닙니다. 엄마가 세수까지 시켜주었어요. 기분이 얼마나 새콤했는지 모른답니다. 그걸 형이 몰라서 더 으쓱했죠. 그전에 엄마가 세수를 시켜준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손발 안 씻는다고 야단맞고 더럽게 씻었다고 머리를 쥐어박히곤 했었지요. 정말이지 엄마는 나보다 형을 더 이뻐했어요. 감자를 삶아도 큰 걸 골라 형을 주었고 끼니때마다 내 밥그릇에 보리가 더 많아요. 형은 성적표를 가지고 올 때마다 칭찬을 받지만 난 언제나 꾸중을 더 많이 들었어요. 옷을 더럽힌다, 신발을 험하게 신는다, 코를 흘린다, 엄만 나만 보면 기분 잡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틀 전부터 달라졌지요. 그 아줌마가 다녀간 다음부터 랍니다.
“그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 잘해야 한다.”
엄마는 옷을 털어주며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어요.
“엄마, 걱정하지 말어. 아주 잘할게.”
“그래, 우리 영찬이 똑똑하지. 큰길 양복점 옆이다. 너 그 아줌마 얼굴 알지? 그래, 차 조심하고…….”
내가 골목을 돌아서면서 보니까 그때까지 엄마는 찌그러진 판자 대문을 붙잡고 서 있었어요.
구멍가게 앞에서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 창호와 만났지요. 창호도 다른 날과는 달리 얼굴도 깨끗하고 옷도 새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듯했어요.
“아쭈, 멋부렸구나? 이러느라고 늦었지? 그치만 넌 별수없이 꽝이야. 허탕이 란 말야. 허탕.”
창호는 날 보자마자 재수 옴 붙은 소리를 지껄여 기분 잡치게 만들려고 했어요.
“웃기시네. 그따위 소리 아무리 해도 넌 미련한 두꺼비라구. 미련한 두꺼비가 제비뽑기를 다 해? 보나마나라구.”
난 이렇게 맞섰지요. 창호는 금방 화가 나서 특 튀어나온 눈을 디룩거리며 양쪽으로 펴진 볼에 바람을 잔뜩 넣지 않겠어요. 이럴 때 창호는 영락없이 두꺼비예요. 나는 창호 약올려 준 게 깨소금 맛이라서 뺑뺑이를 치며 웃어줬어요. 우린 만나기만 하면 욕하고 약올리며 으르렁대요. 무슨 일에나 서로 지지 않으려고 다투는 사이예요. 그런데 오늘은 더해요. 뜀박질을 하려고 금에 발을 대고 서 있을 때나, 팔씨름을 하려고 손을 맞잡았을 때 나는 지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어요. 나는 지금 그런 때보다 더 가슴이 뛰어요. 아마 창호도 마찬가질 거예요. 그렇잖음 왜 저렇게 화를 냅니까. 두꺼비란 별명은 이름만큼이나 자주 부르는걸요. 자식은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벌겠다고 단단히 벼른 모양이에요. 약이 받친 창호 자식은 숨을 씩씩 불며 걷다가 불쑥 꿈 이야길 해버렸던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만 기가 팍 죽어버렸지 뭐예요. 큰길 양복점 앞까지 가면서 자식을 꼼짝못하게 할말을 아무리 생각해봤지만 없었어요.
창호 자식 약올려 준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얘들아, 여기다, 여기.”
그저께 집에 왔던 아주머니가 우릴 먼저 알아보고 차에서 내리며 소리쳤어요.
“자, 어서 타거라, 바쁘다.”
나와 창호는 새까만 세단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어요. 나는 그만 깜짝 놀랐어요. 차 안이 어찌나 넓은지, 우리 집 안방보다 더 넓은 것 같았어요. 그뿐이 아니에요. 자리엔 말예요, 거 있잖아요. 털이 난…… 거 뭐라더라…… 보들보들한 빠알간 털로 덮여 있었어요. 나는 그 털이 망가질까 봐, 내 옷에서 뭐가 묻을까 봐 엉덩이를 자리 끝에 겨우 걸치고 두 손으론 무릎을 꽈악 잡았어요. 그러곤 앞만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어요. 몸이 굳어져서 고개를 돌릴 수가 있어야지요.
차가 스르루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또 기절을 할 뻔했어요. 갑자기 등 뒤에서 노래가 터져나오지 않겠어요. 그것도 한쪽에서만 나는 게 아니었어요. 왼쪽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른쪽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가운데서 나는 것 같기도 해서 영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난 택시를 딱 한 번 탄 일이 있어요. 작년이에요. 놀다가 보니 점심때가 지났어요. 맛대가리 없는 밀가루 죽이라도 한 그릇 먹으려고 집엘 들어갔어요.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방문을 열어보니 봉투 만든 종이가 흩어진 위에 엄마가 쓰러져 있잖겠어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나 봐요. 나는 방을 뛰쳐나와 옆집으로 달려갔어요. 마구 울면서 말예요. 옆집 아줌마와 함께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어요. 급체를 했었대나 봐요. 그때 난 택시를 타보았는데 택시는 이 차에 대면 새발의 피예요. 2층집하고 판잣집 꼴이에요. 그때 엄마는 뒷자리에 누워서 병원까지 갔는데 문을 닫느라고 억지로 다리를 구부려야 했어요. 그런데 이 차는 다리를 쭉 뻗고 누워도 남을 것 같은걸요.
나는 이마를 앞자리 등받이에 쾅 부딪히곤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차가 신호등에 결려 갑자기 정거를 한 때문입니다.
“아니 얘, 다치지 않았니?”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붙들며 물었어요. 머리가 멍멍하고 정신이 얼떨떨했어요. 그치만 빠르게 대답했어요.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손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얼른 내 발 옆의 바닥을 가렸어요.
“얘, 어서 일어나거라.”
아주머니가 겨드랑이를 잡아주었어요. 훅 풍겨 오는 냄새. 매운 것도, 향긋한 것도, 달차근한 것도 아닌 냄새. 그건 엄마한테서 맡을 수 없는 냄새였어요. 엄마한테서는 김치 냄새, 설거지 냄새, 건건한 냄새, 찝찔한 냄새가 납니다. 어디서 맡아본 냄샌데……, 그렇지. 아까 바른 크림 냄새였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몇 배 진한 냄새였습니다. 나는 재빨리 아주머니를 피했어요. 엄마 말이 생각났거든요.
“목욕이라도 하고 갔음 좋을걸. 값이 좀 비싸야지. 집에서 잘못 씻다 감기 들면 약값이 더 무섭고, 낯이나 깨끗이 씻자. 냄새 풍겨 비위 상하게 하지 말구.”
그러면서 엄마는 비누질을 두 번이나 해서 얼굴을 씻겨주었어요. 머리는 어제 깎았구요. 난 엄마가 왜 크림을 발라주었는지 알았어요.
나는 곁눈질로 아주머니 눈치를 살폈습니다. 얼굴을 만지는 체하면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두었거든요. 아까 넘어져서 일어나려 할 때 나는 바닥을 보았어요. 바둑 무늬가 새격진 흰 고무판은 너무 깨끗했어요. 신발을 신고 밟기에는.아까울 만큼 말예요. 차 안이 우리 집 안방보다 크다고 했지만 바닥은 정말 우리 집 방바닥보다 훨씬 깨끗해요. 우리 집 방바닥은 벽이나 똑같이 부대 종이로 때운 데가 많아요. 그리고 봉투 만드는 풀이 말라붙고 해서 언제나 지저분하거든요, 그 깨끗한 고무 바닥에 흙이 묻어 있지 않겠어요. 내 신발에서 묻은 거예요.
“미스터 박, 김 국장 댁 앞에 잠깐 세워.”
아주머니가 운전사에게 말하는 틈을 타 나는 재빨리 고무판에 묻은 흙을 닦아냈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졌어요. 나는 휴우 숨을 내쉬었어요.
차가 골목으로 접어들어 커다란 철대문 집 앞에서 정거했어요. 운전사가 빵빵 소리를 내자 곧 문이 약간 열렸어요. 참 이상해요. 철대문 밑이 창살로 되어 있어 안쪽 시멘트 바닥이 들여다보여요. 거기에 사람의 발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무거워 보이는 철대문이 빙긋 열렸거든요. 조금 있다가 땅에 끌리는 긴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가 나왔어요.
“얘야, 넌 여기서 내려라.”
아주머니가 창호더러 말했어요. 운전사가 창호 옆의 문을 열어주고 창호는 철대문 집 아주머니에게 팔을 잡혀 내렸어요. 그때서야 난 창호를 바로 보았는데 두꺼비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그 두꺼비 얼굴은 화가 나서가 아니라 겁이 날 때의 얼굴이었어요.
“이렇게 수고를 하셨으니 어쩌죠. 영감도 주책이지, 오늘따라 회의는 무슨 회인지 몰라.”
철대문 집 아주머니가 신나게 말했어요.
“그게 어디 국장님 잘못인가요? 그애 훈련 단단히 시키고, 시간 늦지 말아요.”
“이앤 어쩐지 덜 똑똑해 뵌다. 그렇죠?”
“그럴 리가 있어요? 그럼 이따 학교에서 만나요.”
아주머니가 말을 마치는 것과 함께 차 문이 탕 닫겼어요. 차가 움직일 때 다시 보니까 창호는 이제 왕두꺼비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차가 다시 정거한 곳은 아까보다 더 큰 철대문 집 앞에서였어요. 나는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그 집으로 들어갔어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개들이 쾅쾅 컹컹 왕왕 짖어댔어요.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큰 개 짖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우리 집에서는 아무리 작은 개라도 기른 일이 없어요.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미쳤다고 개를 키우느냐고 언젠가 엄마가 말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집만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개를 기르는 집은 한 집도 없어요. 작년 여름에 갈색 개가 한 마리 동네에 나타났어요. 개는 순하디 순했어요. 우리들이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때리고 해도 왕왕 몇 번씩 짖기만 하고는 그만이었거든요. 그 개는 그날 밤에 죽었더랬어요. 어른들이 잡아서 보신탕이래나 왕왕탕을 해 먹어버렸대요.
“물지 못하니까 빨리 들어가.”
누가 등을 멀었어요. 뒤따라 들어온 운전사였어요. 차도 기막히게 좋았지만 운전사가 양복을 쪽 빼입은 신사인 것도 처음 보았어요. 개들은 쇠줄로 묶여 있었어요. 그러나 쇠줄을 뚝 끊고 달려와 콱 물어버릴 것 같은 무서움을 떼칠 수가 없었어요. 창경원에서 본 호랑이만큼 큰 개 두 마리가 마당 양쪽 끝에서 맞바라보고 이리저리 뛰면서 짖어대는걸요. 그러니까 현관 앞에 있는 발바리까지 덩달아서 왕왕거려요.
“미스터 박, 뭘 하는 거야. 시끄러 살 수가 없네.”
아주머니가 획 돌아서더니 운전사에게 쏘아붙였어요. 운전사가 개들 이름을 부르며 손짓을 하자 곧 조용해졌어요.
나는 완전히 기가 죽고 말았어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걸음도 맘먹는 대로 걸어지질 않았어요. 어깨가 움츠러들며 내 몸이 자꾸만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큰 집에 들어와 보기는 생전 처음이었거든요. 무지무지하게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찍하는게…… 기막히게 좋아서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얼굴이 비칠 만큼 번질번질 윤이 나는 마루방은 우리 집 마당보다 배는 더 될 거예요. 그뿐인 줄 아세요. 꼭 지붕처럼 뾰족하게 생기 높은 천장에는 수백 개의 구슬이 달린 전등이 길게 매달려 있구요. 구부러진 엿처럼 생긴 의자는 어쩌면 그렇게 큰지 몰라요. 그 검은색의 길고 큰 의자 가운데 한 아이가 커다란 책을 보고 앉아 있었어요. 김새게 왜 오줌이 자꾸 마려운지 모르겠어요.
“얘, 일루 와 앉아라.”
아주머니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어요. 나는 그때까지 마루 구석 벽에 기대서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거든요.
“낙준아, 책 그만 보구. 쟤가 네 일을 도와줄 영찬이란다. 인사해야지.”
아주머니 말에 책을 보던 애가 나를 빤히 건너다보았어요. 나는 웃으려고 했지만 웃음이 나오질 않았어요.
“앉아, 여기.”
낙준이란 아이는 턱으로 자기가 앉은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고는 다시 책으로 얼굴을 돌려버렸습니다. 울긋불긋한 쉐타를 입은 머리카락이 긴 낙준이는 나보다 훨씬 커 보였어요.
“이리 와 앉거라. 어서 연습해야지 시간 없다.”
아주머니 말에 나는 조심조심 걸어가 의자 끝에 앉았어요. 자동차에서처럼 엉덩이 끝만 걸치고요.
“자아,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해.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꼭 외워두어야 한다. 알겠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네 아버지 직업이 뭐지? 예, 우리 아버진 태양무역 사장입니다.”
“예, 우리 아버진 태양무역 사장입니다.”
“액, 얘, 어깨를 펴고 똑똑한 목소리로 말해야지 그게 뭐니. 다시 해봐.”
“예, 우리 아버진 태양무역 사장입니다.”
“그래, 됐어. 너의 특기는 뭐지? 예, 저의 특기는 피아노입니다.”
“예, 저의 특, 특…….”
“야 임마, 특기야 특기!”
낙준이가 소리쳤습니다. 나는 얼굴이 뜨겁도록 창피했습니다. 특기, 특기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기가 왜 피아노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특제 피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과는 영 딴판이구요. 난 ‘특제’ 란 말은 잘 압니다. 누나가 쉐타 짜는 얘길 할 때면 곧잘 나오는 말이거든요. 나는 눈을 내리깔았습니다. 낙준이가 날 깔보는 웃음을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해봐. 너의 특기는 뭐지?”
“예, 저의 특기는 피아노입니다.”
“어디까지 공부했지? 예, 체르니를 다 마쳤습니다.”
“예, 체, 체…….”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아주머니의 말을 외우려고 했지만 이 대목에서 또 막히고 말았어요.
“저런 쪼오다. 체르니도 몰라, 체르니?”
낙준이가 또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 질렀습니다. 나도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화를 낼 수는 없었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 체르니를 외울 때까지 네 번이나 되풀이했지요. ‘어디까지 공부했지?’ 나 ‘무엇을 치고 있지?’ 는 똑같은 말이 라고 아주머니는 다짐을 주었어요.
“너의 장래 희망은 뭐지? 예, 의사입니다.”
“예, 의사입니다.”
여기까지를 처음부터 다섯 번인가 연습했답니다. 연습을 마치고 나니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물을 좀 달라는 말은'하지 않았습니다. 또 낙준이 새끼가 아니꼽게 지랄을 할까 봐서였어요. 낙준이 엄마 말로는 제비를 뽑기 전에 면접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리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어요.
“자, 이제 우리 낙준이 차례다. 한번 연습해 보자.”
“아, 엄만 시시하게. 벌써 몇 번째예요. 다 안단 말예요.”
“건방지게 굴지 말어!”
아주머니는 꽥 소리를 질렀어요. 나만 깜짝 놀랐지 낙준이 새낀 씽씽해요.
“아버지 직업이 뭐지?”
“예, 우리 아버지는 검사입니다.”
“너의 특기는 뭐지?”
“예, 저의 특기는 피아노입니다.”
“무엇을 치고 있지?”
“예, 쇼팽을 시작했습니다.”
“너의 장래 희망은 뭐지?”
“외교관입니다.”
낙준이는 술술 잘도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의 물음에 따라 속으로 대답을 해나가다가 낙준이 것하고 헛갈려 생각해내느라 낑낑댔어요.
아주머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빠 생각이 났어요. 어디선가 “깨엿 사려, 찹쌀엿요”. 하는 아빠의 쉰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구요. 엄마 생각도 났어요. 아이고 이놈의 팔자, 그 다음에 빼놓지 않는 휴우 하는 한숨 소리도 들려요. 창호도 지금쯤 나처럼 고생을 하고 나서 즈네 엄마, 아빠를 생각할 것만 같았어요. 창호가 보고 싶습니다. 창호가 옆에 있으면 슬픈 생각이 안 들 것 같거든요.
아주머니는 옷을 한아름 안고 나왔어요.
“예, 이 옷 좀 입어보자.”
아주머니는 옷을 내려놓고 나를 끌어 당겼어요.
“엄만 뭐야? 그런 거지 같은 새끼한테 내 옷을 입히면 어떡해.”
뭐 거지 같은 새끼? 나는 이빨을 앙다물었어요. 저 새끼, 돌로 골통을 까버릴까 부다. 너보다 몸집은 작아도 니깐 새끼 하나쯤 코필 터쳐놓기는 식은 죽 먹기다. 우리 동네에서 날 이길 놈은 하나도 없어. 그래서 내 별명이 쌩깡이다, 이 새끼야. 나는 당장 쫓아가 낙준이 새끼 주둥아리를 찢어놔야 분이 풀릴 것 같아서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어요.
“낙준이 너 그런 말 하면 못써.”
아주머니는 낙준이를 나무랐어요. 그리고 나를 구술렀어요. 나는 참기로 했어요. 여태까지 고생을 했는데 산통 깰 수가 없거든요. 엄마가 크림까지 발라줬는걸요.
아주머니는 옷을 이것저것 대보았어요. 나는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내 옷을 벗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어요.
“네 몸집이 작아 마침 잘됐다. 옷을 벗지 말고 그 위에다 그냥 이걸 껴입어라.”
나는 살았다 싶었어요. 내 속옷은 엉망이에요. 팔꿈치, 무릎, 여기 저기를 기운 누더기거든요.
“그 옷을 입으니 너 참 미남이구나. 영 딴판이야.”
아주머니는 수다를 떨었어요.
옷을 갈아입는다고 아주머니가 낙준이 새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그 넓은 마루방에 혼자서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나는 지금까지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꼭 찍어 정해 본 일이 없었어요. 전쟁놀이가 신나서 그냥 군인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을 뿐예요. 그런데 오늘 낙준이 엄마가 시킨 대로 나는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는 싫습니다. 나는 병원이 지독하게 싫은걸요. 그치만 죽었으면 죽었지 아빠처럼 엿장수는 안 될 거예요. 아까 낙준이 새끼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마 기똥차게 좋은 건가 봐요. 이렇게 기막힌 부자로 사는데도 즈네 아빠와 같은 검사가 아닌 걸 보면 말예요. 낙준이 새끼가 뭐가 되든 나는 검사가 되기로 결심 했습니다.:
“오래 기다렸지? 자, 가자.”
나는 낙준이 새끼의 구두 여섯 켤레 중에서 하나를 골라 신어야 했어요. 우주 소년 아톰이 다 지워져버린 헐어빠진 내 신발은 종이에 싸서 들었지요.
학교 운동장에는 자동차들이 수십 대 줄지어 서 있었어요. 몇 시부터 시작하는지를 운전사가 알아보러 간 사이에 난 차 속에서 앉아서 낙준이 엄마가 묻는 말에 다시 차근차근 대답을 했습니다.
“곧 시작한댑니다. 내리시죠.”
운전사가 돌아와 알렸습니다.
“이결 달고 나가야지.”
아주머니는 헨드백에서 손바닥만 한 종이를 두 장 꺼냈습니다.
아주머니는 낙준이와 내 가슴에 하나씩 달아주었어요. 그 빳빳한 종이에는 2자 7자 5자가 씌어 있고 그 아래. 내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나는 차에서 내려,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말로만 들은 ‘샛별사립국민학교’ 를 볼 수 있었어요. 나는 순 엉터리라고 생각했어요. 아랫동네에 있는 내가 다닐 학교의 반밖에 안 되는 크기였어요. 근데 소문에는 학교가 기막히게 좋아 들어가기가 영 힘들대나요. 그래서 나도 오늘 공갈로 입학하러 온 거지만요.
“자모님 들께 알려드립니다. 자모님들께 알려드립니다. 신입생들의 추첨이 곧 시작되겠습니다. 자모님들께서는 아동들을 곧 강당으로 인솔해 주십시오. 자모님들께서는 강당에 들어가실 수가 없게 되어 있으니 식당이나 그 외 장소에서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마이크에서는 똑같은 말을 몇 번씩 이나 되풀이했어요.
“엄마, 나 오줌 마려.”
낙준이가 상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뭐어? 집에서 누고 오잖고. 영찬이 넌?”
아주머니는 나더러도 묻더니 대답할 사이도 주지 않고 말했어요.
“둘 다 가자. 미리 눠둬야지.”
나는 변소엘 가보고 그만 찍소리도 못 하게 기가 죽어버렸어요. 거 있잖아요, 오줌을 벽에 붙은 하얀 사기그릇에 누고 위에 달린 꼭지를 누르면 물이 쏴악 나와 오줌을 깨끗하게 설거지해 버려요. 문이 달려 있는 곳이 똥 누는 데가 틀림없는데 한 군데의 문이 열렸길래 슬쩍 훔쳐보았더니 햐아 텔레비전에서 본 그 의자같이 앉는 것이잖아요. 영 달랐어요. 내가 다닐 학교의 변소는 우리 집 것하고 똑같아요. 우리 집 건 벽이 판자고 학교 건 시멘트라는 것만 다르지요. 내가 다닐 학교 것에 비하면 이건 변소가 아녜요. 아무리 킁킁거려 봐도 냄새가 나야죠. 그뿐이 아녜요. 손 씻는 데도 있는데 비누, 수건까지 있잖겠어요. 누가 훔쳐 가지 않나 모르겠어요.
“얘, 네 아버지 직업이 뭐지?”
아주머니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물었어요. 나는 얼떨떨했어요.
“저어…… .”
난 어떤 걸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아 벌써 까먹었어?”
아주머니가 짜증을 부렸어요. 난 정신이 퍼뜩 들었지요.
“예, 우리 아버진 태양무역 사장입니다.”
“알았지? 넌 오늘 진짜 태양무역 사장 아들이야. 괜히 기죽어 빌빌거리지 말구 사장 아들답게 폼을 잡는 거야. 넌 지금 멋진 옷에 근사한 구두를 신고 있어.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그러면서 차 안에 두고 온 종이에 싼 신발을 생각했어요.
넓고 넓은 강당에는 애들이 바글바글했어요. 선생님들이 애들의 가슴에 단 종이에 적힌 번호대로 줄을 세웠어요. 나는 낙준이와 떨어졌어요. 창호를 찾아보려고 뒤꿈치까지 들고 빙빙 돌았지만 창호는 보이지 않았어요. 애들은 지독하게 떠들었어요. 저쪽에 따로 선 계집애들이 더 시끄럽게 하는 것 같았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빠뜨리고 있다가 변소에서 했던 아주머니 말이 생각나서 고개를 번쩍 들곤 했어요.
한참이 지나서 저 앞에 놓인 높은 책상에 선생님이 나타났어요.
“여러분,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지금부터 떠들면 안 됩니다. 곧 번호대로 추첨을 시작할 테니 조용히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떠드는 사람은 맨 나중으로 빼놓겠어요.”
강당 안은 금방 밤중처럼 조용해져 버렸어요.
“자, 여학생, 여학생만 뒤로오 돌앗!”
계집애들은 뒷문으로, 우리들은 앞문으로 네 명씩 선생님을 따라 가기 시작했어요. 나간 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제비를 잘못 뽑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가짜라고 들통이 날까 봐 겁이 나는 것이었어요. 나도 좋은 옷, 좋은 구두를 신었으니까 아무도 모를 거라고 마음속으로 쌩폼을 잡아봤지만 왜 오줌은 자꾸 마려 운지 모르겠어요.
나는 아빠가 엿장수인 것이 이렇게 창피한 것을 처음 알았어요. 그전에는 아빠도 돈 잘 버는 회사에 다니거나 큰 공장 기술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창피한 생각이 든 때는 없었어요. 창호 아빤 채소 장수, 영진이 아빤 고물 장수, 민규 아빤 뻥튀기 장수, 다 그게 그거니까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아빤 왜 엿장수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죽었으면 죽었지 엿장수는 안 될 거예요.
내 차례가 왔습니다. 나는 두 주먹을 꼬옥 쥐었어요. 자꾸 온몸이 떨려요. 선생님이 내 번호와 이름을 부를 때 어찌나 크게 대답을 했는지 선생님이 깜짝 놀라고 옆의 애들이 깔깔대고 웃었어요. 나도 모르는 일예요.
나는 다른 세 아이들처럼 동그랗게 생긴 제비 뽑는 기계 앞에 섰어요.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손잡이를 잡고 돌렸어요. 눈을 질끈 감고 말예요. 그리고 그 교실을 나왔어요.
밖으로 나오니 아주머니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어요.
“영찬아, 여기다, 여기.”
낙준이 엄마였어요.
“잘했니? 자신 있어?”
아주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요. 목소리도 아주 다정했구요. 난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아주머니에게 손을 잡혀 차로 돌아오니 낙준이가 빵을 우물거리고 있었어요. 나도 빵을 하나 받았지만 영 먹고 싶지가 않았어요. 제비 뽑은 것도 걱정이었지만 면접이래나 뭐래나 하는 그 거짓뿌렁 시킬 일이 무서워서였어요.
“얘, 어서 먹어라. 참 고생 많았지. 괜히 하지도 않을 면접 땜에 널 못살게 굴었구나. 여기 우유도 마시고.”
“……”
엄마…… 난 눈을 꼬옥 감았어요. 그리고 속으로 몇 번이고 엄마를 불렀어요.
얼마가 지나서 운전시가 헐레벌떡 뛰어왔어요.
“사모님, 추첨 발표를 한댑니다. 빨리 나오십쇼.”
아주머니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차에서 내려 운전사와 뛰어가고 그 뒤를 낙준이가 따라서 뛰었어요. 사람들이 차마다에서 내려 저쪽으로 몰려갔어요. 난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찬물로 낯을 씻을 때처럼 기분이 시원해졌어요. 나는 낙준이 새끼 구두를 벗었어요. 그리고 종이에 싸둔 내 신발을 꺼냈어요. 옷도 벗어버렸습니다.
“너 미쳤니? 여기서 옷을 벗으면 어떡해. 남들이 보잖니.”
차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내가 옷을 벗은 것을 보고는 화를 냈어요.
“영찬이 아니었음 어떡할 뻔했니? 이 학굔 영 영 못 다닐 뻔했다구.”
아주머니는 자기 아들 낙준이를 나무라듯 말했어요.
“엄만 왜 자꾸 야단야. 그러니까 돈 줘가며 저 새낄 데려온 거지 뭐야.”
낙준이는 대들듯 쏘아붙였어요.
이런 말을 듣고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잡았어요. 그러면서 속으로 또 엄마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까처럼 울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었어요. 그 반대로 펄떡펄떡 뛰면서 엄마를 소리쳐 부르고 싶은 거예요. 나는 제대로 제비를 뽑고 낙준이는 허탕을 치고 만 것이지요.
“자, 이것 받아라. 오늘 고생했다.”
아주머니가 5백 원짜리 여섯 장을 세어서 내게 주었억요. 나는 그길 접기가 아까웠지만 딱 가운데를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어요.
운전사가 창호와 아까 본 아주머니를 찾아가지고 왔어요. 그 아주머니 옆에도 한 아이가 서 있었어요.
“경식이 엄만 괜히 수고만 했구려. 둘 다 돼버렸으니.”
낙준이 엄마가 말했어요.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야지요. 안전한 게 젤이지. 3대1 이래잖아요. 그러나 어쩌죠, 또 폐를 끼쳐야 되겠으니. 오늘따라 무슨 놈의 회의가 글쎄… …, 이 통에 공무원 못해 먹는다구요.”
창호네 아주머니는 수다를 떨었어요.
“아무 걱정 말아요. 우리 집 차가 바쁠 땐 경식이 엄마 신셀 지는걸. 쟤 빨리 태워요.”
“옷은 어떡하죠?”
“거기 가서 벗기죠 뭐.”
“그게 좋겠네요. 그럼 부탁해요. 이따 만나 고스톱이나 한판 벌이자구요.”
“좋지요. 먼저 가 계세요.”
아침에 떠난 양복점 옆에 차가 정거하고 창호는 옷을 벗어주고 내렸어요.
창호는 화가 나서 인상을 쓰며 걸었어요. 구멍가게 앞에까지 왔어요. 창호와 헤어져야 합니다.
“잘 가.”
“……”
창호는 대답도 안 하고 걸어갑니다. 나는 창호 자식 뒤에다 대고 용용이를 쳐주며 속으로 놀렸어요. 야 임마 몰랐지, 꿈은 반대라는 걸, 몰랐지. 콧쌤이다, 쌤통이다, 헤헤 용용 죽겠지. 창호를 놀리다가 언뜻 그 생각이 떠올랐어요. 내가 뽑은 자리에 낙준이 새끼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 말예요. 그치만 어떡해요. 첨부터 그렇게 등록증을 뗀걸요. 그런 학교 못 간다고 슬퍼하면 뭘 해요. 우리 아빤 엿장수고 낙준이 새끼 아빤 검산걸요.
이런 쓸데없는 생각 더해서 기분 잡치고 싶지 않아요.
“엄마, 엄마, 나야.”
나는 마당으로 뛰어들며 소리쳤어요. 방문이 열리며 엄마가 뛰어나왔어요.
“엄마, 난 3천 원이구 창호는 5백 원이야. 창호는 그 집 애도 뽑혀버렸거든. 이거야 이거, 돈. 3천 원이야, 빠다라시로 3천 원.”
엄마는 돈을 받지 않고 나를 덥석 안았어요. 그리고 팔에 힘을 주어 꼭꼭 끌어안았어요. 그러면서 우는 거예요. 소리는 안 나지만 엄마 몸이 떨리는 것으로 알 수 있었어요. 나도 울음이 나오려고 했어요. 그러나 꾹 참았어요. 그러면서 커서 꼭 검사가 되겠다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요.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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