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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현판은 그대로 두어라
2005-02-03
한글현판은 ‘독재’를 넘어 위대한 문화유산
과거청산 미명하에 한글 사용 훼손해선 안 돼
인터넷신문 '참말로' 논설위원 이대로
요즘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이 광화문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달겠다고 해서 나라가 시끄럽고 말이 많다. 경복궁을 다시 옛 모습대로 만드는 일 가운데 한글현판이 마땅치 않다고 떼어내겠다는 것인데 찬성과 반대 목소리가 부딪치고 있다. 나는 1월 26일 한글회관 앞에서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으로 바꿔 단다는 것을 반대하는 행사를 이끈 사람이다.
그 한글현판은 우연스럽게 달린 게 아니고 한글이 우리 겨레의 글자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통치자가 민중의 소리를 듣고 따른 한글역사 유물이기 때문이다. 세계 으뜸가는 글자인 한글을 만들고서도 수백 년 동안 우리 글자인 한글을 쓰지 않은 건 부끄러운 일이고 못난 일이었다. 우리 글자인 한글이 공문서와 교과서에 쓰이고 정부기관이나 공공건물 현판에 쓰이던 1968년 옛 일제 총독부 건물을 가리는 현대판 광화문을 만들면서 그 현판 글씨를 한글로 써서 단 것은 자연스런 일이고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그 현판이 달린 지 37년이 지난 오늘날 그 글씨를 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 때 일본군 장교였고 군사독재자였다고 해서, 또 옛날에 헐려 없어진 옛 광화문에 달렸던 글씨가 한자였다고 해서 그걸 떼어내고 한자로 다시 달겠다고 한다. 그도 일리가 있지만 우리 글자인 한글을 살려 써야 한다는 간절한 시대상황에서 오늘날에 다시 만든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다는 건 매우 뜻이 깊은 일이고 역사가치가 크다.
광화문 한글현판이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행위에서 나온 게 아니고 한자 대신 우리 글자인 한글을 살려 쓰려는 국민의 요청과 투쟁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들어준 증거품이고 민중과 한글이 통치자와 한자와 싸워 승리한 역사자료이기에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거기다가 '경복궁'에서 한글을 만들고 발표했으며 '광화문'이란 이름을 한글을 만든 세종시대에 집현전에서 지었으며 그 곳이 외국인도 많이 찾는 중요한 위치이니 만약에 독재자가 쓴 것이라고 떼어낸다면 새로 쓰는 현판의 글씨는 세종시대 훈민정음 글씨체로 쓰는 게 여러 가지로 좋다고 본다.
문화재는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게 원칙이라서 뗀다고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하고 주장을 하는 분들 마음속에는 한글보다 한자를 더 숭배하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과 그 시대상황과 배경을 밝히고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장,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
1.박정희 전 대통령은 본래 한글전용자가 아니었다.
박정희는 일제 식민지 때 일본 국민으로 태어나 일본말을 국어로 알고 충실하게 배우고 자라 일본군 장교까지 된 사람이다. 일본 말글은 한자나 일본글자인 가나로 섞어 적고 있기에 일제 때 사람들은 한글보다 한자를 더 좋아하고 잘 안다. 그리고 이들은 일본식 한자혼용이 가장 편리하고 좋은 말글살이로 여기고 우리도 일본처럼 한자를 써야 선진국이 된다며 한글을 살려 쓰자는 사람들을 한글 국수주의자라 비난하며 한글전용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 일제가 물러간 뒤 이 나라의 학자, 선생,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들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고 그들 때문에 한글이 아직도 많은 아픔을 겪고 있다.
박정희도 일제 세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초기까지는 한글의 훌륭함과 중요함, 한국인이 한글을 써야 할 까닭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집권 초기 수원시 화령전의 雲漢閣(운한각)’ 현판 글씨가 한자인 거나 또 그 시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무거운 돌로 된 벼루를 비행기에 싣고 가서 방명록에 한자로 서명한 게 그런 사람임을 나타내는 한 표시다. 그 때 독일까지 가서 우리 글자가 아닌 한자로 서명한 것을 독일교포와 국민도 비판했고 국어운동학생회에선 대통령에게 모든 서명은 한글로 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일제 세대인 박정희, 김종필, 박태준 들 군인들이 5.16 군사혁명으로 집권하면서 일제 한자혼용세대가 득세했다. 이들은 일본 한자말은 익숙하고 잘 알아도 순 우리말은 잘 몰라서 우리 토박이말을 우습게 여겼다. 그래서 '이름씨'란 우리말 문법용어는 안 되고 일본식 용어인 '名詞(명사)'란 말을 써야한다고 하고, '더하기'나 '덧셈'이란 말은 안 되고 일본처럼 '加算(가산)'이나 '合算(합산)'이란 한자말을 써야 한다며 교과서도 한자혼용으로 만들었다. 한글과 우리말이 발전하는 게 아니라 친일파에 의해 일제시대 말글살이로 뒷걸음질 친 것이다.
1963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일 정치인과 학자들의 그런 꼴을 보고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대학에 가서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우리말과 한글 지키기에 나서서 공문서와 교과서를 한글로 쓰게 하는 운동에 나선 게 지금까지 이르렀다.
2. 국어운동대학생회와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전용 정책
박정희 정권 초기 한글만 쓰기와 한자 섞어 쓰기 논쟁이 뜨거웠고 한글이 한자에 밀렸으나 젊은 대학생이 일어나니 한글이 다시 힘을 쓰기 시작했다. 1967년 서울대 국어운동대학생회(회장 이봉원)를 시작으로 연세대, 고려대, 동국대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이어서 출범했고 이들은 연합해서 국어운동을 활발하게 했다.
5000년 민족사에 학자나 정부 관리가 아닌 민중이 스스로 일어난 국어독립운동이었다. 이들은 정부에 한글전용법을 지킬 것을 건의하고 더 강력한 한글전용정책을 펼 것을 주장했다. 일제식 한자혼용으로 되돌아가는 건 큰 잘못임을 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국민들에게 한글간판을 달고 바른 말글살이를 하자고 호소했다. 이름도 한자가 아닌 한글로 짓고 쓰자는 운동도 벌렸다.
그 때 신문과 방송은 일본식 한자 약자 쓰기 정책반대 등 국어운동학생회 활동을 크게 보도했는데 그 보도를 박정희 대통령이 읽고 신기해하면서 비서들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단다. 그 당시 학생들이 군사독재와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하는 건 봤어도 문화운동 시위는 처음 봤기 때문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마침 노산 이은상 선생이 박 전 대통령의 문화정책 자문을 하고 있던 때라 비서들은 노산에게 연락했고 노산은 학생들의 주장이 옳고 학생들 말대로 한글전용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면 세종대왕 다음가는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 설명했다고 한다.
머리 좋은 박 대통령은 바로 알아듣고 한글전용정책 추진계획을 세우라고 했고 비서들은 다시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에게 부탁했고, 한 이사는 평소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정리해 보고하니 거의 그대로 1968년 초에 '한글전용 정책 5개년 계획 시안'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 말에 1970년부터 한글전용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겠다고 확정 발표했다.
그 때 국회의원 뱃지(보람)와 이름패도 한글로 쓰고 모든 현판도 한글로 쓰기로 하고 실천한 것이다. 그러나 한자파가 끈질기게 반대하고 1972년 유신정치 시작과 함께 김종필총리, 민관식문교장관이 앞장서서 그 정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1968년 3월 18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회원들은 동숭동 서울문리대에서 정부의 "한글전용 5개년 계획 시안"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광화문, 명동, 종로 등 시내 거리로 나가 우리의 주장을 적은 전단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 일이 있는데 그 때 나는 광화문 지역을 맡아 후배들을 데리고 지하도에서 그 성명서를 뿌린 일이 있다.
그 날 서울 문리대에서 성명서를 발표할 때 라디오 인터뷰를 내가 했는데 뉴스 시간마다 내 목소리가 나가서 시골에 사는 내 어머니가 방송에서 아들 이름과 목소리가 나오니 무슨 사고를 치는 거 아닌가 놀라서 큰 걱정을 한일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전용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결심을 할 때 이야기는 노산 이은상 선생과 한갑수 선생으로부터 생전에 들은 이야기다. 1990년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고 했을 때 한글회관에서 안호상, 공병우, 허웅, 한갑수 선생들 한글단체 대표들이 모여 그 대책회의를 했는데 한갑수 선생은 "아무 걱정할 거 없다. 청와대는 대학생들 말이라면 꼼짝 못한다. 학생들을 내세우자"면서 박 대통령이 국어운동학생회 주장을 잘 들어준 일을 이야기를 하며 국운회 학생들을 크게 평가하셨다. 그 회의에 나는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만 못한 인물이고 다르기에 학생들 힘만으로 막을 수 없다. 한글단체 모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다.
3. 광화문 한글현판은 한글운동가들이 쟁취한 한글역사 유물이다.
한글전용 정책은 한글단체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한자파와 싸워 쟁취한 것이고 그 표시가 광화문 한글현판이다. 한글학회(회장 최현배)가 한자파와 힘든 싸움을 할 때 국어운동대학생회가 나타나 지원 사격을 했고 박 대통령의 문화정책 선생인 노산 이은상 선생과 한갑수 선생이 박 대통령을 설득해 이룬 한글시대 상징물이고 역사 자료다. 박 대통령의 친일행위나 독재정치행위에서 나온 게 아니고 한글운동가가 통치자를 설득하고 굴복시켜 쟁취한 귀중한 민중운동 역사 문화유산이다.
군사독재 반대 투쟁과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분들이 "독재자 박정희가 쓴 광화문 현판을 떼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다. 친일파 청산과 일제 찌꺼기 쓸어내는 민족운동을 하는 분들이 박정희가 쓴 현판을 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걸 잘 알고 있고 그 심정 나도 공감한다. 탑골공원의 삼일문 한글현판을 떼어낸 분들과 박정희 동상을 쓰러트린 분들이 나와 함께 친일파 청산운동을 한 분들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광화문 한글현판은 또 다른 큰 의미가 있어서 그대로 두길 바라는 것이다.
한글은 우리 민족문화유산 가운데 으뜸이며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600년 간 우리는 천대하고 쓰지 않았다. 이제라도 그 한글의 훌륭함과 중요함을 깨달았으면 즐겨 써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글보다 한자와 영어를 숭배하는 얼간이들이 많다. 정치인, 언론인, 교수, 재벌 사장 가운데 그런 자가 많아 한글과 우리말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한글을 살려 쓰자는 우리를 한글 국수주의자, 배타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자도 있다. 한글을 그 주인인 우리가 쓰고 지키지 않으면 누가 쓰고 지키겠는가? 어째서 편리한 말글살이를 하자는 게 국수주의인가?
나도 대학생 때 한일회담 무효 시위도 했고 3선 개헌 반대 시위대 맨 앞에서 어깨동무하고 돌진하다 경찰 곤봉에 맞은 일도 있다. 친일파 청산을 위한 모임인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 조직위원장으로 그 모임 기틀을 다졌고 광화문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날 민족운동과 한글운동동지들을 이끌고 탑골공원에서 자주 민족문화선언을 한 뒤 종로 거리에서 "친일파 청산하고 민족정기 바로 세우자!"고 동지들과 외치고 방송 인터뷰도 한 일이 있다. 그런데 내가 박정희 업적을 찬양하는 마음에서 한글현판을 지키자고 하겠는가?
이번 한글현판 일이 터진 뒤 '발해 뗏목탐사대 후원회날" 행사장에서 만난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이 내게 "선생님, 한글현판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라고 말할 때 미안했다. 그가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 부위원장 이봉원(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님으로부터 우리 뜻을 듣고 우리 심정을 이해하는 데 다른 회원들은 그걸 모르고 비난하는 데 설득하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쓴 삼일문 현판을 뗀 민족반역자처단협회의 한 친구가 "광화문 한글현판 일에 선생님이 가담된 건 아니지요"라고 할 때 "그 문제는 좀 긴 이야기가 필요하오"라고 말하면서 동지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박정희에게 정치 감정이 있는 이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박정희 찬양자가 되었느냐!"고 항의 전화를 할 때, 젊은 한글운동 동지들이 "어른들이 민감한 정치문제에 나선 건 성급했고 잘못이다."고 말할 때, 박정희 반대쪽 언론이 우리의 주장을 철저히 무시하고 박정희를 찬양하는 조선일보 쪽으로 몰 때에 답답하고 섭섭했다. 한글문제는 정권 싸움이나 박정희 정권 비판보다 더 위에 있는 중대한 문제로 보았고, 정치 싸움에 휘말리기 싫다고 겨레와 겨레말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책임 회피요 비겁한 일이고 죄악일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4. 새로 만드는 광화문 현판은 한글로 써야 한다.
광화문 현판이 한글로 썼다고 한자파들은 오래 전부터 한글현판을 떼어야 한다며 박정희의 한글전용정책을 비판했다. 지금도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로 쓰고 싶어서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를 내세우고 문화재 복원은 본래 대로 해야 한다고 떠드는 사람이 많다. 이런 감정에 한글현판이 없어지는 건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다. 어차피 지금 광화문은 본래 진짜가 아니고 가짜다. 이 시대 만든 건물에 한글현판이 달리는 건 시대상황과 이 시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잘 나타내는 일이다.
왜 돈을 들여 문화재를 복원하는가? 우리도 문화민족임을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후손에게 알리기 위함이며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갖자는 것 아닌가? 우리가 글자가 없어 중국 한자를 썼고 그들에게 눌려 살았다는 걸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한글이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고 훌륭한 문화유산이고 그 한글이 경복궁에서 만들어 졌으며 한글시대에 새로 광화문을 짓는 데 한글현판을 다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다.
지금 광화문이 시멘트로 만든 것이지만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가려주는 뜻에서, 그곳에서 태어난 한글로 현판을 쓴 것은 그곳 역사성과 시대공간의 뜻을 살렸다는 뜻에서, 한글사랑 정신과 한글 창제 정신을 드높이고 한글을 외국인에게 자랑하는 기회도 되었다는 뜻에서 지난 37년 동안 한글현판은 제 몫을 톡톡하게 했다고 본다.
나는 광화문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박물관으로 쓰고 있을 때 외국 관광객들이 한글 창제 모형 그림을 보면서 한글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경복궁 안에서 그 창제 장소와 모습을 볼 수 있느냐고 묻는 걸 본 일이 있다. 옛날에 한자를 썼다고 지금 건물에 한자현판을 다는 게 한글현판을 다는 거보다 그 복원 의미와 가치를 더 높여주는 게 아니다. 한글로 쓰는 게 교육과 경제 가치는 말할 거 없고 민족문화 발전에 엄청나게 이바지 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 반독재운동을 하다가 고통을 받은 분들과 친일파 청산운동을 하는 분들이 광화문 한글현판을 떼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 오래전부터 수없이 들었다. 나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좀 넓게 생각해보시면 좋겠다. 한글은 박정희 개인이나 한 시대 정치 감정에 파묻힐 게 아니다. 한글은 우리뿐 아니라 후손들은 말할 거 없고 온 인류가 누려야 할 문화유산이다. 앞으로 100년 안에 우리말과 한글이 이 땅에서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다. 이제라도 한글을 창제한 문화가치를 깨닫고 경복궁에서 그 한글이 태어났음을 널리 알리고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살리는 의미로 보면 좋겠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내 소원은 우리 나라가 정치나 군사강국이 되기보다 문화강국이 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일제 때 중국에서 돌아가신 당신의 사랑하는 부인 무덤의 묘비를 "최준레 묻엄. 남편 김구 세움"이라고 한글로 썼다. 한자로 묘비를 쓰는 게 상식인 그 시대에 중국에서 왜 한글로 쓰셨겠는가! 우리말글을 쓰는 게 겨레의 얼을 지키고 민족문화를 꽃피는 첫걸음이고 근본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글현판을 고집하는 건 그런 마음과 상징성에서다. 짧은 생각과 감정으로 한글을 죽여선 안 되기 때문이다. 광화문 한글현판이 우리 국어운동대학생회의 업적이고 민중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우리 자랑 같아 참았으며 이 기회에 밝히는 것도 그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뜻에서다.
한글단체는 정치꾼이 아니고 정치 감정에서 한글현판을 떼거나 두자는 게 아니다. 광화문 자체가 우리 민족 수난역사다. 겨레가 어려울 때 광화문은 사라졌고 민족정기가 일어날 때 광화문을 다시 세웠고 그 현판글씨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잘 나타내는 우리글자로 써서 후손과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게 한자로 쓰는 거 보다 더 뜻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광화문이 북경의 천안문처럼 서울의 얼굴이고 겨레문화의 상징일진대 그 현판 글씨는 우리 글자로 써 있는 게 부끄럽거나 잘못된 게 아니다.
어차피 오늘날 만든 광화문은 옛 것 그대로도 아니고 진짜는 아니다. 옛것을 본 따서 오늘날 만든 오늘날 건물이다. 그렇다면 그 현판 글씨는 오늘날 시대상황을 반영해 한글로 써서 그 의미를 살리는 게 무엇이 나쁜가? 기왕에 없어진 걸 다시 세우면서 오늘 우리나, 내일 우리의 자손이나 또 이 땅을 찾는 남의 나라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중국의 한자를 쓰는 게 더 잘하는 것도 아니며, 가장 잘하는 것도 아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유신독재하기 전 60년대에 잘해보겠다는 마음, 업적을 남기겠다는 초심에서 불같이 일어나는 한글사랑 자주문화운동에 손을 들어주었고 그건 잘한 정치행위이고 광화문 한글현판은 그 역사의 증거물이다. 그걸 독재에 대한 증오, 감정 풀이로 떼어내게 되면 한글역사에 오점을 찍고 민족정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야가 박정희 전 대통령 문제로 밤낮 싸운다고 국민까지 할 말을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잘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우리 뜻을 밝힌 것이다. 그걸 독재찬양으로 보는 이가 있어 섭섭했고 답답했기에 더 자세하게 광화문 한글현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밝혔다. 광화문 현판은 민주주의와 민중의 승리, 민족자주문화의 상징이고 자긍심이며 그 자신감에서 나온 역사현상임을 알아주고 혹시 지금 현판을 떼어내더라도 한글로 써주기 간절히 호소한다.
[한말글이름을사랑하는사람들(카페지기 이봉원) https://cafe.daum.net/hanname/Na1M/23에 이봉원님이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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