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특집 시 모음> 정연복의 '어머니' 외
+ 어머니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인생살이 같다가도
세상살이가 힘겨워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 때
나지막이 불러보는 세 글자
어 머 니
당신의 그 여린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어낸
이 몸 이 소중한 생명이기에
꽃잎 지듯 쉽게 무너질 수는 없어요 (정연복·시인, 1957-)
+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어머니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 말이 없는 어머니. (한하운·시인, 1920-1975)
+ 외상값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 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신천희·승려 시인)
+ 어머니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김초혜·시인, 1943-)
+ 어머니날에
빛은 빛이면서 당신의 몸을 비치지 못하고
소리는 소리이면서 당신의 귀를 밝히지 못한다.
기도는 기도이면서 당신의 구원을 빌 짬이 없고 목숨은 목숨이로되 당신의 영화를 도모할 겨를 없다.
언제나 당신은 우리의 그늘 뒤에 서시며
그래서 그 그늘은 오히려 따스하고 환하다. (문효치·시인, 1943-)
+ 어머니의 눈물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시진 못하고 노려보시는 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 꼭 껴안으시던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너무나 힘찬 당신의 포옹
바른 길 곧게 걸어가리라 울며 뉘우치며 다짐했지만 또다시 당신을 울리게 하는
어머니 눈에 채찍보다 두려운 눈물 두 줄기 볼에 아롱지는 흔들리는 불빛 (박목월·시인, 1916-1978)
+ 어머니·5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 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신다 칠십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반칠환·시인, 1964-)
+ 가냘픈 손
만수무강하세요 어머님 앞에 머리 조아릴 때 쭈글쭈글 어머님의 손이 눈에 보인다.
어깨를 쓰다듬는 작고 쭈그러진 가냘픈 손 환하게 웃음 주시는 다정한 눈길
오늘은 왜 이리 쓸쓸해만 보이시는지 아 자꾸만 가슴이 찡해 옵니다.
그러곤 겨우 흰 봉투 하나 딸랑 건네 드렸다. 어머님을 가슴으로 부를 뿐입니다.
언제나 고운 모습으로 꾸중을 웃음으로 대신하신 내 마음을 먼저 읽어주시든 어머님
세월이 너무 야속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런 어머님은 내 가슴에 항상 계실 줄만 알았는데 (이영균·시인, 1954-)
+ 어머니날
온 땅 위의 어머니들이 꽃다발을 받는 날 생전의 불효를 뉘우쳐 어머니 무덤에 눈물로 드린 안나 자아비드의 한 송이 카네이션이 오늘 천 송이 만 송이 몇 억 송이로 피었어라. 어머니를 가진 이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 없는 이는 하이얀 카네이션을 달아 어머니날을 찬양하자 앞산의 진달래도 뒷산의 녹음도 눈 주어볼 겨를 없이 한국의 어머니는 흑인노예 모양 일을 하고 아무 찬양도 즐거움도 받은 적이 없어라. 이 땅의 어머니는 불쌍한 어머니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싹을 내거니 청춘도 행복도 자녀 위해 용감히 희생하는 이 땅의 어머니는 장하신 어머니 미친 비바람 속에서도 어머니는 굳세었다. 5월의 비취빛 하늘 아래 오늘 우리들의 꽃다발을 받으시라. 대지와 함께 오래 사시어 이 강산에 우리가 피우는 꽃을 보시라. (노천명·시인, 1912-1957)
+ 어버이날
온 땅 위의 어머니들이 꽃다발을 받는 날 생전의 불효를 뉘우쳐 어머니 무덤에 눈물로 드린 안나 자아비드의 한 송이 카네이션이 오늘 천 송이 만 송이 몇 억 송이로 피었어라.
어머니를 가진 이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 없는 이는 하이얀 카네이션을 달아 어머니날을 찬양하자.
앞산의 진달래도 뒷산의 녹음도 눈 주어볼 겨를 없이 한국의 어머니는 흑인노예 모양 일을 하고 아무 찬양도 즐거움도 받은 적이 없어라.
이 땅의 어머니는 불쌍한 어머니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싹을 내거니 청춘도 행복도 자녀 위해 용감히 희생하는 이 땅의 어머니는 장하신 어머니 미친 비바람 속에서도 어머니는 굳세었다.
5월의 비취빛 하늘 아래 오늘 우리들의 꽃다발을 받으시라. 대지와 함께 오래 사시어 이 강산에 우리가 피우는 꽃을 보시라. (노천명·시인, 1912-1957)
+ 나에게 만일
나에게 만일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이다
내게 부족한 게 있다면 그 아버지 만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승신·시인)
+ 아버지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고은·시인, 1933-)
+ 아버지
아버지는 없다 고향 마을에도 타향 거리에도
아버지
하늘 높이 불러보지만 텅 빈 세월뿐이다 (강신용·시인, 충남 연기 출생)
+ 말
등짐 노동을 하면서도 말은 평생 서서 잠을 잔다 서서 잠을 자고 서서 꿈을 꾼다
마지막 날 비로소 등짐 내려놓고 누운
아버지. (강만·시인, 1943-)
+ 귀여운 아버지
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박씨보다 무섭고,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최승자·시인, 1952-)
+ 아버지의 안경
무심코 써 본 아버지의 돋보기 그 좋으시던 눈이 점점 나빠지더니 안경을 쓰게 되신 아버지, 렌즈 속으로 아버지의 주름살이 보인다.
아버지는 넓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그 좋으시던 눈이 희미해지고 돋보기 안경을 쓰시던 날 얼마나 가슴 찡하셨을까.
돋보기 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주름살이 자꾸만 자꾸만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이탄·시인, 1940-)
+ 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하청호·시인, 1943-)
+ 아버지와 자장면
내 어릴 적 아버지 손목 잡고 따라가 먹던 자장면
오늘은 그 아버지가 내 손목 잡고 아장아장 따라 와 자장면을 잡수시네
서툰 젓가락질로 젓가락 끝에서 파르르 떨리는 자장면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처럼 혈흔처럼 여기저기 툭툭 튀어 까만 피톨로 살아나네 (이영춘·시인, 1941-)
+ 아버지의 구두
아버지 돌아가시고 누님이 유품 모아 불태워 버렸는데 내 구두인줄 알고 놔둔 고흐의 구두 같은 흙 묻은 구두
논두렁 밭두렁 당신의 생처럼 질척거리는 길 걸었을 내 마음보다 한 치수 품이 넓은 구두 닦아도 쉽게 빛이 나지 않는데
아버지의 지문처럼 뒷굽 닳은 구두를 신고 내 길을 가면 마치 아버지의 등을 밟은 것 같아 구두 꺾어 신지 못하고 함부로 돌멩이 차지 못해 조심스럽게 길 건너갈 것 같은 구두
철모르는 아들 안 잊혀 이승에 남아 함께 길을 걷는 낡은 아버지의 구두 (강경호·시인, 1958-)
+ 아버지의 눈물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 쓴 소주잔을 기울이면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 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구나
하늘을 보면 생각이 많고 땅을 보면 마음이 복잡한 것은 누가 건네준 짐도 아니건만 바위보다 무거운 무겁다 한들 내려놓을 수도 없는 힘들다 한들 마다할 수도 없는 짐을 진 까닭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니 목이 메일 수밖에
용기를 잃은 것도 열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건만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아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무엇하나 만만치 않아도 책임이라는 말로 인내를 배우고 도리라는 말로 노릇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눈물이 없으니 가슴으로 울 수밖에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이채·시인, 1961-)
+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힘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프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도 돈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돈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 되어보니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든든하고 크게만 보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아플 때가 있다는 것을 돈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장이니까 가족들이 힘들어할 까봐 가족들이 실망할 까봐
힘들어도 아파도 돈 없어도 말을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우공 이문조·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출처-당당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