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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5일 화요일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보니파시오 성인은 675년 무렵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가 된 그는 수도회 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다. 성인은 특히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마인츠의 교구장이 된 보니파시오 주교는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세웠다. 성인은 선교 활동에 주력하다가 754년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다. 1874년 비오 9세 교황은 보니파시오 주교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베드로 사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고 한다(복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3,12-15ㄱ.17-18 사랑하는 여러분,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15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8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이제와 영원히 그분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이 말씀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입니다. 이것을 질문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세상의 다스림보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반해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결탁하고 그분을 궁지에 빠지게 할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만을 섬기라.’고 하시면 로마 황제에게 반역하는 사람이 되고, ‘황제를 섬기라.’고 하시면 하느님을 거역하는 예언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되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섬기라고 가르치십니다. 정치의 질서와 종교의 질서는 구분되는 것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접점이 있습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은 다른 것이나, 속된 것 안에 거룩한 것이 존재하며, 거룩한 것 안에 속된 것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지만 이 세상의 삶을 꾸려 나가려면 재물이 필요합니다. 종교가 이 세상의 권력을 추구하지 않지만, 이 세상의 권력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권고하여야 합니다. 거룩한 질서와 속된 질서가 섞여 있는 이 현세에서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두 질서의 충돌과 혼란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하느님을 섬기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이미 와 있지만, 현재 진행형인 하느님 나라 ‘종말론’에서 ‘하느님의 나라’ ‘주님의 날’과 관련해서 자주 강조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미 와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 하느님 나라.’
이와 관련해서 베드로 2서의 저자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베드로 2서 3장 12절)
베드로 2서 저자의 요점 정리는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생활은 겸손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첫번째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권능과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재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지막 시대의 모든 양상과 의미가 다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날은 이미 도래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완전하거나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어둠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으며, 성경의 빛, 성령의 이끄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쪽 발은 주님 나라에, 다른 한쪽 발은 인간 세상에 딛고 서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생활, 티없고 흠없는 삶을 통해, 주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기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날, 마지막 날, 종말에 대한 베드로 2서의 가르침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과 기쁨을 주는 표현은 ‘새로움’입니다. 주님의 날이 도래하면 그분 가르침에 충실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놀라운 은총의 선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이 부여될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로 말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도성에 살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그간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언약이 어김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 티많고 흠많은 사람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 내면 가득 욕심과 분노로 가득한 사람은 거기 들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주님께서는 합당한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우리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베드로 2서 3장 15절)
사실 90분 정규 시간이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를 위해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일분 일초가 소중한 추가 시간입니다. 더 이상 시간을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주님 나라 도래를 앞당기기 위해 온전히 사용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미래의 유토피아는 없다>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역,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한 지 6분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음악을 들었고 43분 동안 일곱 명이 청년의 바이올린 연주를 1분 남짓 지켜보았습니다. 스물일곱 명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고 그렇게 모인 돈은 32달러 17센트였습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공연하던 청년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날 350만 달러(한화가치 30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43분 동안 멋진 연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오가던 1,070명은 단 1초도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이 공연을 제안한 ‘워싱턴 포스트’는 현대인이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문제를 꼬집고 싶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신자분과 대화 중 유토피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언젠가 건설될 하느님 나라. 그것이 유토피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고 결국 주님이 오실 때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대탕녀 바빌론처럼 영원한 바다의 심연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많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제1독서에서 마지막 날에 이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2베드 3,12)
그렇다면 미래에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건설될 것이라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사실 미래의 유토피아를 말하는 이들은 지금의 행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즘 선거철이라 그런지 운전하다보면 여러 후보자들의 공약이 걸린 현수막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자주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미래의 유토피아 이야기를 하는 공약들이 많습니다. 이런 공약들이 먹히는 이유는 우리는 여전히 현재의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리키는 곳만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유토피아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해 지금 당장 기도하고 묵상하고 주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하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동전 하나를 가져와보라고 하십니다. 그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돈에 집착하느냐고 하시며 황제에게 줘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에나 집중하자고 하십니다. 하지만 돈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돈이 참 행복을 가져다줄 현실적인 대안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행복은 여전히 미래에 돈을 충분히 벌게 되었을 그 때에 있습니다.
우리가 뽑아주어야 할 지도자들은 ‘지금’을 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하느님 나라’를 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 순간 마음만 바꾸어먹으면 만날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입니다. 돈과 상관이 없습니다. 미래에 건설될 눈에 보이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눈을 감으면 내 안에서 펼쳐집니다. 지금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그나마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대한 비전이 없으셨습니다. 노예제도를 그대로 인정하셨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로마에 세금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선거에 나가셨다면 아무도 찍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우리 옆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만 당부하셨습니다. 배부른 돼지를 만들어주겠다는 이들을 조심해야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의 부족한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을 심어주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줘 버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것인 우리 자신을 매일 주님의 것으로 봉헌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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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보니파시오(Boniface)
신분 : 대주교, 선교사, 순교자
활동지역 : 크레디톤(Crediton)
활동연도 : 675?-754년
같은이름 :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빈프리트, 윈프리드, 윈프리트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675년경 영국 웨식스(Wessex)의 크레디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빈프리트(Winfrid, Wynfrith)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불과 7살 때에 엑서터(Exeter)의 베네딕토 수도원 학교에 들어갔고, 14세 되던 해에는 너슬링(Nursling)의 베네딕토 수도원 학교에서 윈버트(Winbert)의 지도하에 공부하였다.
그는 너슬링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30세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어 교수생활과 설교자로서의 생활이 성공하자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716년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렇게 되자 그는 718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가 계시는 로마(Roma)로 갔으며, 여기서 교황으로부터 라인 강 동쪽에 사는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는 보니파티우스로 개명하고 3년 동안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도와 프리슬란트에서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그가 722년 가장 이교도적인 헤센(Hessen)으로 가서 아뫼네부르크에 베네딕토회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하고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등 선교활동의 대성공을 거두게 되자, 교황은 보니파티우스를 로마로 불러들여 주교로 서품하고 교회 법령집과 독일의 모든 수도자들과 관리들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써주었다. 이 서한은 그의 독일 선교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니파티우스는 카를마르텔의 보호를 받으며 723년부터 725년까지 제2차 헤센 선교에 나섰는데, 이때 그는 가이스마르(Geismar)에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베어 경당을 짓는 데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개종자들이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그는 튀링겐(Thuringen)에 가서 오르트루프(Ohrdruf)에 수도원을 세웠고, 영국의 수도자들을 독일의 선교사로 파견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744년에 그와 성 스투르미우스(Sturmius, 12월 17일)는 풀다(Fulda)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북유럽에서 가장 큰 중심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과 프랑크의 교황대사로 임명되었고, 피핀을 프랑크의 유일한 통치자로 세우는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754년에 마인츠(Mainz)의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성 빌리브로르두스의 사후 이방 관습에 다시 떨어진 프리슬란트를 재건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그가 프리슬란트의 도쿰(Dokkum) 근처 보르네 강변에서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려고 준비하던 중에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게르만족의 사도' 또는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그의 축일은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1874년부터 전 교회에서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