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통치는 영원하리라
다니 7,9-10.13-14; 2베드 1,16-19; 마태 17,1-9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24.8.6.
1. 말씀의 흐름과 초점
오늘 교회가 거행하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은 십자가로 인한 부활의 신비를 미리 보여주고 일깨우기 위하여 앞으로 사십 일 후인 9월 14일에 지낼 성 십자가 현양 축일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러한 전례 취지에 따라 배치된 오늘 제1독서에서는 다니엘 예언자가 장차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이룩하실 하느님 나라를 미리 내다보았고, 복음에서는 이 나라를 보여주시고자 타볼 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세 제자에게 얼굴이 거룩하게 변하시는 기적 사건을 전해주었습니다. 또한 제2독서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타볼 산에서 하늘에서 들려왔던 소리를 증언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에 의해서 그분께서 시작하신 그 나라가 교회 안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 같은 말씀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초점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화와 함께 우리가 이어 받아야 할 거룩한 변화입니다.
2. 거룩한 변모 사건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얼굴이 변하신 이 사건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위해 일으키신 기적이라는 점에서 여느 기적들과는 달리 특별합니다. 놀라운 광경은 예수님의 변모(變貌)만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는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아주 오래된 인물들이지요. 더구나 그 두 사람은 활약했던 연대도 서로 달랐습니다. 모세는 당시보다 1250년 전 인물이요, 엘리야는 800년 전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동시에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성(神性)의 차원에서는 현세의 시공(時空) 차원을 넘어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고차원의 현실에서 존재하시고 천사들과 성인들을 다스리시면서 현세의 우리들을 지켜 보시고 돕고 계십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놀랍고 신기할 뿐이지 하느님의 편에서는 하나도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온 율법을 제정했던 모세, 그리고 하느님을 믿고 섬기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그 율법의 기반 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바알 신의 우상숭배자들과 치열하게 대결했던 예언자 엘리야, 이 두 인물을 예수님께서 시대를 초월하여 동시에 불러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율법을 완성하시고 예언을 성취하실 분이 바로 당신이심을 드러내고자 하신 때문입니다.
3. 미사에서 재현되는 거룩한 변화의 기적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이 거룩한 변화의 기적은 미사 중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습니다. 주일미사의 경우, 말씀 전례에서 두 꼭지의 독서 말씀과 한 꼭지의 복음 말씀을 듣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주로 구약성경을 봉독하는 제1독서에서는 율법과 관련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 등 모세오경을 비롯하여, 이사야, 에제키엘, 예레미야, 다니엘 등 예언자의 예언이 기록된 말씀을 듣습니다. 이는 마치 타볼 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처럼, 율법과 예언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완성되고 성취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로 신약성경을 봉독하는 제2독서에서는 사도들의 행적이 기록된 사도행전과 바오로와 베드로 등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된 말씀을 듣는데, 이는 복음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와 부활의 신비가 교회 안에서 이어져 가는 역사를 신자들에게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역사 안에 사도들이 이룩한 거룩한 변화가 생생한 기록으로 담겨 있습니다. 또한 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골고루 봉독하는 복음에서는 우리의 거룩한 변화를 이룩하기 위한 기준이자 목표가 되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렇게 말씀 전례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이 성찬 전례에서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거룩한 변모 기적 사건이 미사에서 재현되는 것입니다. 사제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하셨던 그대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하고,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의 삶도 축성함으로써 예수님의 삶에서 일어난 거룩한 변화가 신자들의 삶에서도 일어나도록 기원하는데, 이것이 조용한 기적처럼 일어나는 거룩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성체와 성혈이 축성된 직후 사제와 신자들은 이러한 신앙의 신비를 환호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환호에서 신자들은, 세 가지 양식으로 응답합니다.
제1양식: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제2양식: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제3양식: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받으소서.”
여기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라는 재림(再臨) 청원은 주님의 기도를 바친 후에 사제가 재차 청원하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이 재림 청원에 이어서, 사제는 축성된 성체를 신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장엄하게 선언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러니까 이렇듯 성체를 높이 쳐들고 보여주는 것을 ‘거양(擧揚) 성체 예식’이라고 부르는데, 거양 성체 후에 진행되는 영성체 예식이 바로 신자들에게 주님이 재림하시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체를 분배하는 봉사자들은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은 성체를 영할 때 반드시 “아멘!”하고 응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아멘’은 미사의 말씀 전례를 거쳐 성찬 전례에서 이룩된 거룩한 변화를 신자들이 자신들의 삶에서도 이룩하겠다는 응답인 동시에, 타볼 산에서 들려온 하늘의 소리 즉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하는 말씀에 동의하는 응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미사는 타볼 산에서 일어났던 거룩한 변모의 기적 사건을 재현하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4. 산에서 내려온 제자들
타볼 산에서 세 제자가 목격한 광경, 즉 예수님의 얼굴이 빛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대화를 나누던 광경은, 이 일이 있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권능을 떨치며 오는 하느님 나라”(마르 9,1)였습니다. 그 산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는 너무 좋아서 초막이라도 지어놓고서, 아예 눌러 앉아 살고 싶은 광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 17,4)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제안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산에서 내려가기를 말없이 재촉하셨을 뿐입니다. 산에서 내려가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이 재촉하심은 하늘의 구름 속에서 들려온 소리,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라는 뜻이었습니다.
5. 제자들에게 일어난 거룩한 변화
타볼 산에서 놀라운 이 기적을 목격한 이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렇게 세 제자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 초대교회에서 사도단을 이끌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우선, 베드로는 이전과는 달리 담대한 믿음으로 예수 부활을 증언하여 삼천 명 가량 되는 유다인들에게 세례를 주었으며(사도 2,41), 불구자를 고쳐주는 기적을 베풀었는가 하면(사도 3,1-10), 이를 보고 위협하는 대사제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사도 4,19) 하고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이를 목격한 신자들을 감화시켜 서로 섬기고 나누는 공동생활을 이끌었습니다.(사도 2,42-47; 4,32-37)
야고보는 당시 땅 끝으로 알려진 스페인까지 가서 선교했으며 예루살렘 공동체의 주교로서 치명하기까지 초대교회의 본산을 책임졌습니다. 특히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이방인 선교 활동의 결과로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을 지킬 의무를 지우는 할례를 면제하기로 하는 첫 사도회의의 결정을 주도함으로써 자칫 교회 분열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첫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공로를 세웠습니다.(사도 15,13-21).
요한은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는데,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는 티모테오의 초대에 따라 에페소로 가서 새로운 초대교회의 본산을 지키며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이 무렵에 닥친 로마의 박해를 견디면서 요한은 사목서한과 요한묵시록 그리고 요한복음서를 집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변모를 목격하고 체험했던 이 세 제자가 사도로서 이룩한 생애는 실로 놀랍고도 거룩한 변화였습니다. 본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을 내용으로 합니다. 십자가는 과정이요 부활은 목표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짊어지면 자동적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부활한 삶에서 나오는 원동력이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십자가를 짊어질 수도 없거니와, 설사 어찌어찌해서 겨우 짊어졌다고 해도 부활의 영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기 힘으로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자만심의 유혹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남기 일쑤입니다. 부활의 영성으로만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고, 그렇게 짊어진 십자가라야 부활로 이끌어줄 수도 있는 것이기에, 십자가 현양 축일 전에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 말씀드린 세 제자는 열성적인 사도가 되어 예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교회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 놓았습니다.
6. 우리의 거룩한 변화를 향하여
교우 여러분! 다니엘 예언자가 일찌감치 내다보았던 대로, 이미 2천 년 동안 교회를 통해 이어져 내려온 예수님의 통치는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백성으로서 우리는 그분의 나라를 더욱 널리 펼치기 위해서, 사도 베드로가 권고한 대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2베드 1,19) 이런 의미에서 특히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 자신의 부활, 즉 거룩한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초대이며 촉구입니다. 그 확신이 예수님처럼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기 위한 수난을 통하여 우리도 또한 거룩하게 변화되는 은총을 맛보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