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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척 덥네요.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바람도 불어주니 작년같은 지독한 폭염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이 더워야 여름이지 라고 생각하면 한결 낫지 않을까요.
지금같은 날씨라면 얼마든지 견딜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 토왕폭 등반을 다녀온 후 SNS에 짧게 소식을 올리긴 했는데 다시 살을 붙여 조금 길게 써봤습니다.
겨울 생각하며 잠깐이나마 더위 좀 잊어버릴겸 말입니다
'2019 토왕폭 등반기'
3년 전, 직장생활 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대전으로 오게 되어 서울과 산을 오가는 일상이 무겁지 않게 되었지만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스트레스와 약간의 참담함들이 숨어 있었다.
당시 끄적거렸던 일기가 있어 들춰보니 내용이 이랬다.
"서울을 떠나면서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Leaving Las Vegas'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생각이 난다.
남주인공 '벤'(니콜라스 케이지)과 '세라'(엘리자베스 슈)의 사랑이야기.
그렇지만 알코올 중독자 남자와 몸을 팔아 살아가는 여자(prostitute)의 전혀 재미있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우울하고 가라앉은 스토리
이렇듯 영화 캐릭터와 설정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음에도 영화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술병을 들고, 술마시는 걸 멈출 수 없는 벤. 이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술을 주고 또 술병을 사주는 세라.
두 사람이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단점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 것을 인정하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그게 쉽다면, 쉬운 일이라면 연인들의 다툼도, 헤어짐도, 부부간의 결별도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봐주면서 또 다시 혼자가 된 그 녀.
그래도 그 4주 동안 그 녀는 행복했을까?
...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고 그 첫 직장에서 26년을 머물렀다.
최근에 회사에 지방근무를 요청했다.
다행히 나의 청을 들어줬고 이제 서울을 떠난다.
지역이 어디인지,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악산과 속초의 거리,
구떼산장과 샤모니
인수봉과 우이동의 물리적 거리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다만 떠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알콜중독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 후 대전지사로 발령받아 내려온 후 내 상황 탓인지 등반에 대한 갈망이랄까 집착, 이런 것들이 더 심해진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갈증을 풀어낼 만한 파트너의 부재는 갈증을 더 일으켰다.
함께 등반하던 대훈은 새로 찾은 일로 인해 등반을 더 이어갈 수 없었고 파트너십을 이어갈 만한 사람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속된 말로 앵벌이처럼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건 성격상 맞지 않았다.
차라리 등반을 안하고 책이나 읽자는게 스스로의 성격이었다.
그러던 재작년 늦가을, 성욱과 석문 명희 등이 함께 등반하자며 내려왔다.
그 들의 등반시즌은 끝이 났고 혼자 지내는 독거노인을 위해 위문등반 차 내려온 것이다.
그 들이 매년 저승봉에서 개최하는 ‘트레드 클라이밍 페스티발’ 을 끝내고 홀가분 한 기분으로 내려온 것.
첫 날은 천등산에서 등반을 하고, 대둔산으로 이동해서 한밭식당에서 뒤풀이를 하고 거기에서 하루를 잤다.
이튿날 대둔산의 ‘연제대길’(5.12a)을 올랐는데, 등반하는 내내 그 들의 등반역량과 열정을 고스란히 보게 되었다.
연제대 길의 하이라이트 ‘사자크랙’(5.11d)에서 그 들은 먹이를 앞둔 맹수처럼 달려들었고 온사이트로 해치우며 저승봉의 루트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성욱은 사자크랙을 다 오르고 난 뒤 저승봉의 ‘재밍머신’보다 조금 쉬운 듯 하다고도 했다.
그 들과의 등반이 끝나고 다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러저러한 삶의 이유로, 인간관계의 괴로움으로 다시 암벽등반을 한 동안 쉬었고 겨울시즌을 빙벽등반없이 보내기도 했다.
산악인이 산에 가지 않고, 클라이머가 등반을 안하고 시즌을 보낸다는 건 일해야 할 사람이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며 지낸다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남들처럼 재충전의 시간으로 혹은 의미있는 트레이닝의 시간으로 보내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다시 해가 바뀌어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등반을 시작했고, 주위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올 겨울이 끝날 무렵, 토왕폭 등반을 가자던 석문과의 약속은 계속 적당한 날짜를 잡지 못해 시간이 흘렀고 그러던 2월 말, 다시 석문에게 연락이 왔다. 토왕폭 등반의 날짜를 잡았으니 가자는 것이다.
다들 일정이 바빠 간신히 맞춘 일정이었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고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차를 설악산으로 몰았다.
대전에서 출발해서 설악동에 도착하니 새벽 6시쯤.
차량의 외부온도가 영상 3도이니 토왕폭은 영하 5도쯤 아닐까 생각해보며 친구들을 기다린다.
차에서 빵과 우유로 아침을 먹고 쉬고 있자니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들이 7시에 주차장으로 온다.
다들 반갑게 해후를 하고 함께 쌍천을 건넌다.
석문과 명희, 성욱과 병영 그리고 종능 5명이다.
토왕으로 오기 전 내가 생각한 등반 팀은 나와 병영이 한 팀으로 오르고, 석문과 명희가 한 팀, 성욱이와 종능이 한 팀으로 오르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비룡폭포위까지 눈이 없다가 계곡을 건너면서 조금씩 눈과 얼음이 있다.
Y계곡 조금 못 미쳐 바위에 다리를 부딪힌 명희가 고통을 호소한다
출발지점에서 바지를 걷어보니 무릎뼈만한 혹이 정강이에 튀어나와있다. 엄청 아팠으리라.
장비를 착용하고 토왕폭 하단으로 오른다.
거기에서 등반 팀을 어떻게 할까 라고 내가 물으니 석문이가 미리 준비했다는 듯 이야기를 한다.
석문과 내가 줄을 묶고, 성욱과 병영이가 한 팀, 그리고 종능과 명희가 한 팀이다.
아마 설악으로 오는 차 안에서 그렇게 등반 팀을 꾸리기로 합의를 봤나 보다.
내가 생각했던 자일파티와 달라 내 생각을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내 욕심보다는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부부사이를 갈라놔도 되냐!' 그랬더니 매일 등반하는 사이라 이럴 때라도 좀 떼어놔야 한다는 성욱의 답이 돌아온다.
석문이가 명희와 줄을 묶게 된 종능에게 '너 영광인줄 알아'라고 일갈한다.
석문과 명희 종능은 원래부터 오랜 친구 사이이고, 성욱도 오랜 기간 함께 등반을 이어온 선배이자 허물없는 식구다.
이들 사이의 대화는 농담이 자주 오가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거나 심각한 대화는 없다.
가볍지만 웃음과 해학이 있고 쿨한 농담식 대화다.
내뱉은 말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갈만한, 무겁게 주위 공기 속에 머물만한 말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항상 유쾌하다
그 속에서 배울 점도 많다.
John paul Young(존 폴 영)의 명곡 'Love is in the Air' 라는 곡이 있는데, 해석하면 ' 사랑은 공기 속에 있다' 가 된다. 즉 우리가 숨쉬는 공간 어디에든 사랑은 존재한다는 말이니, 행복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요 존나 멀리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 들을 보면 클라이머들의 굳은 믿음과 애정이 생각나고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하단 좌측으로 오르던 종능이 바로 오른쪽으로 나란히 약간 앞서 오르는 석문을 향해 '스크류 좀 설치해, 그냥 가지 말고!' 라고 외친다.
석문이 스크류를 설치하자 옆으로 다가와서 바로 퀵드로우를 연결하고는 등반을 이어 나간다.
다 들 ‘하하하’ 재미있어하며 웃는다.
상단까지 이렇게 등반하며 모여서 쉬고 농담하며 오른다.
스윙 한 번에 여지없이 박히는 얼음.
성욱의 표현대로 '원샷 원킬(One Shot One Kill)'이다.
예전 팔봉과 함께 토왕폭을 등반할 때는 날씨가 어찌나 추웠던지 빙벽화와 양말, 장갑을 대충 준비한 나는 심한 동상에 걸렸고 꽤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C지구 숙소 로비에 걸려있던 온도계가 영하 -15도 였으니 강풍이 몰아치던 토왕폭은 체감온도 -25도는 넘었으리라.
당시 내가 하단폭을 오르고 난 뒤, 헬기가 두 차례 왔다가 돌아갔는데 바로 옆 개토왕폭(M7+)을 등반하던 지성이가 추락해서 다리가 복합골절되었던 것이다.
당시 얼음이 워낙 강빙이어서 수직얼음은 타격이 안되어 피크가 튀었고, 얼음 사이의 오목한 부분이나 눈이 쌓인 얼음의 윗부분 만이 타격이 가능했다.
지성이 추락한 것은 그의 등반실력과 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 강한 얼음 탓이었다.
지성은 하단부 믹스등반 구간을 통과해서 얼음으로 진입한 후 추락했었다.
워낙 바람이 세게 불어 헬기로 구조가 불가능했었고, 구조대가 도착한 뒤에야 병원으로 이송했다.
중단에 모여 장비를 추스리고 상단을 오르는데 하단에서처럼 좌측은 종능, 가운데는 석문, 우측은 성욱이다.
내가 선등으로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사이좋게 그리고 진정으로 즐기며 오르는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럴 때는 함께 오르는 것만으로도 내게 주어진 행복과 기쁨에 가슴이 뿌듯했다.
셋이서 나란히 오르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게다가 등반중이면서도 자기들끼리 농담도 주고 받으며 매달려서 사진도 찍고 오른다.
밑에서 확보를 보는 세 명은 자잘한 낙빙을 피하고 맞고 정신이 없으면서도 웃으며 그들을 부러워한다.
상단 종료지점에 모여 간식을 나눠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얼음위로 하강을 하기로 한다.
등반자가 없기도 하지만 아발라코프식 하강법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 석문의 지론이다.
그는 헌터북벽 ‘문 플라워’(Moon Flower) 루트 등반을 마치고 하강하면서 이 시스템으로 30회 넘게 하강을 했고 그 뒤 성욱과 한 번 더 등반을 가서 Variation Route를 뚫은 후 또 이렇게 하강을 하여, 합 70회 정도 이 시스템으로 하강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가히 ‘아발라코프식 하강’의 마스터라 할 만하다.
게다가 하강할 때는 꼭 백업시스템을 갖춘다.
저렇게 오랜 시간 등반을 해 온 친구들도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안전한 하강시스템을 지키는 걸 보면서 많은걸 배웠다.
사고는 하강할 때 많이 발생하지 않는가,
예전에 도봉산에서의 하강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대장님도 이 시스템을 사용했다면 충분히 안전했을거란다.
이렇듯 그들은 등반도 등반이지만 자만하지 않고 가장 기본에 철저하다.
그들 식으로 하강을 하니 시간도 빠르고 시스템도 배우고 익히고 좋은 시간이다.
하단 하강하는데 엄청난 낙수가 쏟아진다. 그 새 기온이 대폭 올라간 탓이다.
오전과는 다른 상황에 난감한데 장갑과 바지위로 물이 엄청나게 쏟아진다
그나마 다들 오버트라우저를 입어서 괜찮은데 유일하게 방수바지를 입지 않은 성욱이만 흠뻑 젖었다.
하단 출발지점에 모여서 공무원의 퇴근시간을 체크하며 장비를 정리하며 천천히 여유있는 시간을 갖는다.
커피를 끓여 마시고 준비해온 빵을 먹으며 쿨한 농담들이 맑은 공기 속에 섞여 오간다.
정강이에 주먹만한 혹이 붙었던 명희의 상태는 많이 좋아져서 부기가 내려앉았고 자주 가는 식당이 있어 그리로 가자고 권했다.
야영장 바로 위에 있는 연탄구이 삼겹살 집인데, ER전 대표강사이자 현 KMG대표인 전용학과 설악에 올 때면 꼭 들르는 집이기도 하다.
지난 번 6월 첫 주 연휴에 ER 형님들을 모시고 3박 4일간 설악산을 등반했을 때에도 첫 날 등반을 마치고 온 식당도 이 곳이었다.
당시 형님들과 등반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선 직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캐노피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반주 삼아 마신 술맛이 절묘한 하모니였다.
식당에 들어서니 쥔장이 성욱을 알아본다. 그도 이 식당이 단골이라고 한다.
두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삼겹살에 맥주와 소주를 곁들여 담소를 나누며 뒤풀이를 한다.
고기를 먹은 후 후식으로 열무 국수말이가 맛있는 식당이기도 하다.
짧은 뒤풀이 후 서울로 떠나는 일행들과 악수와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헤어진다.
베낭을 뒤적거리는 종능이가 자신이 쓰던 BD헤드랜턴을 꺼내 내게 선물로 준다.
종능은 블랙다이아몬드를 전개하는 회사의 팀장이다.
예전 성욱을 소개하는 잡지의 글에서 봤던 내용으로는 성욱이 등반기술은 종능에게 배웠고, 산에 관한 사상은 엄지훈씨에게 배웠다고 했다.
성욱과 종능 둘은 히말라야 브락상피크 700미터 거벽에 ‘마스터 오브 퍼펫츠(Master of puppets)'라는 신루트를 개척했었다.
그 들이 좋아하는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다
그 들과 헤어진 후 혼자 숙소로 향한다. 난 다음날까지 휴가를 낸 상태다.
다음날은 가벼운 주변과 바닷가 산책을 하고 서울로 갈 예정이다
꿈같은 하루가 지났다. 하루지만 마치 며칠이 지난 것 같은 One Day
그리고 언제 만나도 반갑고 정이 넘치는 후배들.
또 한 등반에 대해서는 항상 배우게 되고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는 스승같은 존재들.
글을 정리하면서 석문이 헌터북벽 등반을 마치고 돌아와 소식을 전했을 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잠시 메모했던 글을 꺼내본다.
2011년 석문과 희용의 헌터 북벽 등반을 접하고 당시 메모를 해놓았던 기록이다.
글이란 등반처럼 몰입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런 글을 썼었나?" 하며 기억이 희미해진다. 이 글 역시 마찬가지.
그 때나 지금이나 석문은 변함이 없고 여전히 암빙벽등반에 몰두하고 알파인등반을 추구하고, 신루트를 개척하고 크랙등반에 집중한다.
집중하고 크게 나아간다.
그렇지만 조용하다. 그래서 멋지다.
‘헌터북벽 등반의 의의’
석문과 희용 그리고 종일 셋이 헌터북벽 문플라워 루트를 통해 정상에 섰다.
헌터 북벽 등정의 의미는 크다.
왜냐하면 그러한 첨예한 등반에 있어 우리나라 산악계는 줄곧 취약함을 내보여왔으며 내세울만한 성과가 미약했었으니 말이다.
거벽등반 예를 들면 파타고니아의 세레또레 라든가, 히말라야의 트랑고산군(그레이트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 그리고 히말라야 6~7,000M 에서의 벽등반 그것도 알파인 등반은, 우리가 국가적인 영웅으로 내세우는 엄홍길, 박영석, 오은선 등과 같은 산악인을 가졌음에도 항상 부족한 부분이었다.
그것도 기존루트가 아닌 신루트를 통한 등반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만큼 희소성을 가졌다.
김세준 등이 이끄는 등반팀이 그 동안 히말라야 거벽과 배핀 아일랜드 등지에서 신루트를 통한 등반을 많이 해왔지만 그것은 인공등반(Aid Climbing)이었고, 거벽에서의 극지법등반이 아닌, 알파인 등반에서는 성과가 극히 미약했다.
경기등반가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고, 고산등반가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히말라야 자이언트봉들을 등반하는 우리나라의 등반가들이 Technical한 등반에서는 매우 떨어지는 등반역량을 가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가 없다.
야생화를 잘 찍는 사진가가 인물사진 분야에도 쉽게 넘나들며 잘 찍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고, 설렁탕 잘하는 식당이 짬뽕이나 족발도 잘하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등반의 흐름은 경계를 넘나드는 극한의 Cross over식 등반행태를 곧 잘 보여주곤 한다.
이전까지 간헐적으로 보여줬다면 지금의 등반 트렌드에서는 대세로 자리잡은 듯 하다.
우엘리 스택, 데니스 우룹코, 발레리 바바노프,, 토마즈 휴마, 야마노이 야스시 등이나 황금피켈상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클라이머들은 단순히 노멀루트로 셀파를 앞세우고 자이언트 봉을 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알파인 스타일(무산소, 무셀파, 무고정로프)로 등반을 한다.
또한 그 들은 테크니컬한 등반도 잘해서 암벽등반, 빙벽등반에 있어서도 온사이트 5.12 이상의 등반역량을 보여준다.
앞서 열거한 우리나라 히말라야의 영웅들에게 인수봉의 루트 중 하나를 골라 선등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그 들은 히말라야 고산등반에 특화된 사람들(고산등반가)이므로 분야가 다르다 라고 항변한다면, 그것은 지독한 자기변명밖에 안된다.
IT 분야에선 세계 흐름을 이끌어가는 한국이 등반에 있어서는 아주 후진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등반에 있어서는 등반 트렌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박희용이 몇 년 전 익스트림라이더 빅월 페스티발에 참가하여 2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인공등반을 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 그야말로 잠깐 며칠 배워서 참가한 성적치고는 두드러진 성적을 낸 것이다.
인공등반을 꾸준히 해온 클라이머들이 머쓱해 할만도 하지만, 희용이의 등반능력과 판단력, 그리고 자유등반 역량이 워낙 출중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자신감을 가진 희용은 고산등반에도 관심을 가졌었으나, 이내 자기의 등반세계로 돌아갔다
희용의 주 등반무대는 하드프리와 빙벽등반, 드라이 툴링(Dry Tooling)이다.
그런 희용이가 최석문이라는 클라이머를 만나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석문은 아내인 이명희와 문성욱, 임성묵 등과 고산거벽 등산학교를 운영했었는데, 거기에 교육을 들어온 희용이는 인수봉 믹스등반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좌절하고 만다.
5.10~5.11 급의 기존루트에서 바일과 아이젠을 차고 자신있게 선등으로 나가는 석문, 성욱과는 달리, 5.14루트를 등반한 자신은 후등으로도 등반이 어려웠던 것.
당시 희용이 쓴 글에서 그의 심정을 잘 읽을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진대 그의 그런 용기는 ‘겸손’ 이 아닌 ‘겸허’로 볼 수 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자세, 마음가짐이고, 겸허는 자신을 낮추면서 남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다.)
겨울이면 판대 아이스파크에서 빙벽등반뿐 아니라 어려운 믹스등반 구간에서 함께 등반하는 석문과 희용을 자주 보았었다.
그 들의 등반역량은 우리나라 톱 클래스 수준이며, 특히 희용은 월드컵 아이스클라이밍 세계랭킹 1위의 실력이며, 석문은 비록 경기등반에 자주 나서지는 않고 루트 세팅을 하지만 하드프리 5.13c/d 이상의 등반실력에 특히 야전에서의 실전등반은 독보적인 수준을 갖췄다.
말없고 조용하고 예의바른 성격의 석문은 등반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보다 공격적이고 저돌적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클라이머인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이 지배한다”고 정의했다.
무의식이 구체화되어 생각으로 발전하고, 이는 말로 나타난다.
이렇게 나온 말은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최석문은 등반에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알파인 등반에서 국내 최고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가 이를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데 이번 헌터북벽 등정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골프에 이런 말이 있다.
‘90대는 훈수를 두고, 80대는 물어보는 것만 가르쳐주고, 70대는 물어봐도 안 가르쳐준다’는...
많이 알수록 입을 굳게 다문다는 말인데 석문을 보면 그 말이 생각난다.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취재해 갈 정도로 철저한 몸관리로 유명했던 여자 프로농구 선수였던 전주원코치.
그 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실성’과 지독한 ‘자기관리’이다.
커피는 아예 마셔본 적이 없고, 탄산음료는 고교시절 이후 20년 넘게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인스턴트 식품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데, 라면은 비시즌 때 가끔 먹는 정도이니 그 녀의 ‘자기관리’의 수준이 얼마나 지독한지 짐작할 만 하다.
주위에서 등반 꽤나 한다는 클라이머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위의 전주원 같은 자기관리의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클라이머는 많이 보지 못했다.
일반인들이 따라하기에는 너무 힘든 극단적인 사례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최석문은 전주원 같은 자기관리의 모습과 태도를 가졌다.
미국의 저명한 야구 칼럼니스트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외야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다. 외야수비는 직감과 반사신경,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측과 연습의 소산이다”
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크게 공감했었다.
그러나 이 말이 비단 야구선수에만 한정되는 말일까
등반도 마찬가지 아닐까,
“클라이밍은 직감과 판단력, 그리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측과 연습의 소산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알래스카에는 1급부터 6급까지의 등반 그레이드가 있어요. 예를 들면 등반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데날리(매킨리)의 웨스트 버트레스 있잖아요, 거기가 2급이구요,
저희가 등반한 헌터벽의 문플라워 루트는 6급이에요…”
(실제 매킨리를 등정하는 산악인들 중 85% 이상이 웨스트 버트레스를 통해 등반한다고 함)
어제 저녁에 귀국했다는 석문과의 통화 중에 등반루트의 난이도를 묻자 그가 대답한 내용이다.
“토왕폭같은 거대한 빙벽으로 이루어진 구간이 가장 많구요, 중간 중간 믹스등반을 해야 하는 구간이 있어요.
정말 재미있게 등반했어요…”
선배 클라이머가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가르침이 있다면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등반이 아닐까,
그런 앞선 등반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자 그 들이 나가야 할 방향과 좌표이므로…
<서유기>는 중국의 4대 기서(寄書)중 하나로 꼽히는 장편 소설이다.
삼장 법사와 그를 따르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불경을 가져오기 위해 머나먼 천축국까지 험난한 길을 헤쳐 가는 모험담이다.
즉,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인 것. 왜 이들은 목숨을 걸고 책을 찾아 나서야 했을까?
<서유기>의 시대적 배경은 중국 당나라 시대다.
삼장 법사의 모델인 ‘현장’이 인도까지 가서 불경을 구해 온 것은 실제 일이다.
당나라 초기에는 개인의 참선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귀족풍의 ‘소승 불교’가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고통받는 다수의 대중을 구원하는 ‘대승 불교’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통치세력 입장에서도 교화를 통해 체제의 확장을 꾀하는 차원에서 대승 불교로의 변화는 장려할 만한 일이었다.
문제는 기존 세력들은 당연히 이런 개혁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
따라서 변화를 위한 논리적 근거로 불교의 본토인 ‘천축’의 권위에 기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소중하게 구해 온 불경은 그곳에서 ‘직접 가져온 목소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 활자 자체가 갖는 권위와 확장성이 더해져 개혁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삼장 일행의 경로를 끈질기게 방해하는 요괴들은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과 각 지역의 토호 세력들로 해설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물리치고 천축에 이르는 길 자체가 개혁과 깨달음의 과정이다.
겁 많고 변덕스럽지만 도덕성을 지닌 리더로 귀족적 지위를 대표하는 삼장 법사와, 욕망에 약하고 거칠지만 성정이 고운 서민들의 상징인 세 제자가 협심해 열어 가는 길이다.
긴 여행의 마지막에 그들이 얻은 것은 글자가 하나도 없는 백지 경전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일행들이 분노하자 글씨가 있는 경전으로 바꾸어 받기는 한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경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음은 거기로 향하는 여행 중에 존재함을 암시한다.
‘오공(悟空)’이 한자로 ‘비어 있음을 깨닫다’ 라는 의미인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우리가 등반을 하는 목적, 의미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땀흘리며 운동하고, 어려움과 위험을 동반한 등반(Climbing)을 하는 과정 자체가 개인의 자아완성과 깨달음의 중요한 Process 이듯 말이다.
첫댓글 부럽고 멋진 등반모습이네요..
필력이 등반을 더 부럽게 완성시킨거 같기도 하고요ㅎㅎ
재미있고 뭔가 신이 납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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