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김병수
대낮에 보면
세상에 못난 놈은 없다
잘 안 나가는 때가 있을 뿐이다
노을에 보면
세상에 잘난 놈은 없다
잘 나가는 때가 있을 뿐이다
다투지 마라
모두가 다 때의 그림자
제 빛으로 빛나는 놈은 없다
--김병수 시집 {세상에 지는 꽃은 없다}(근간)에서
부처가 유태민족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고, 예수가 힌두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부처는 야훼를 믿는 유태교도가 되었을 것이고, 예수는 브라만과 비쉬누와 시바 등을 믿는 힌두교도가 되었을 것이다. 안중근이 영국에서 태어났다면 넬슨 제독이 되었을는지도 모르고, 유관순이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잔 다르크가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역사에 있어서의 가정은 성립될 수가 없지만, 그러나 모든 역사가 지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맞는다면 그가 태어난 환경은 어느 누구도 극복하지 못할 숙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 인간들이 태어난 시기와 환경과 인종과 종교 등은 숙명적인 것이고, 이 숙명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운명에의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운명에의 사랑’은 참으로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초라하고 부정적인 말일 수도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왜, 로마제국이나 중화민국, 또는 대영제국이나 미국이 아니고, 수천 년 동안이나 그처럼 이민족의 지배와 착취의 대상이 되었단 말인가? 안중근은 왜,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넬슨 제독이 되지를 못했고, 유관순은 왜, 대일본제국을 물리친 영웅이 되지 못했을까? 프랑스 함대를 물리치고 대영제국의 승리를 이끌어낸 넬슨 제독은 왜, 그 승리의 기쁨도 맛보지 못하고 죽어갔던 것이고, 오를레앙 전투에서 대영제국군을 물리친 잔 다르크는 왜,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죽어갔던 것일까?
예수, 부처, 브라만, 안중근, 유관순, 넬슨 제독, 잔 다르크, 나폴레옹 등은 지구촌의 역사 안에서 바라보면 그 엄청난 차이를 보이지만, 그러나 지구촌 밖에서 바라보면 그 어떠한 차이도 없다. 동일한 인물과 동일한 행위의 당사자들일 뿐, 대자연의 법칙, 즉, 지구의 운행과 별들의 생성과 소멸에 그 어떤 관여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 일을 하고, 해가 지면 발을 씻고 잠을 잔다. 늙고 쇠약해지면 파리 한 마리와 모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 운명의 때가 다하면 한 줌의 먼지와 때로 사라져간다. 인간의 생명이란 본디 그 잘남과 못남, 그가 살아 생전 누리고 살았던 부귀영화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한 줌의 먼지와 때로 사라져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운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대자연의 법칙인 그 운명에게 복종을 하게 된다. “대낮에 보면/ 세상에 못난 놈은 없다/ 잘 안 나가는 때가 있을 뿐이다.” “노을에 보면/ 세상에 잘난 놈은 없다/ 잘 나가는 때가 있을 뿐이다.”
김병수 시인의 [때]는 운명이고, 운명은 한순간이며, 대자연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주연 배우이고, 각자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연주하면서 살아간다. 자기 자신의 주연배우로서 잘 나갈 때도 있고, 못 나갈 때도 있다. 키 큰 소나무 옆에 키 작은 소나무가 있고, 아름답고 예쁜 장미꽃 옆에 꽃이 피기도 전에 벌레가 먹은 꽃송이도 있다. 헤라클레스 옆에 절름발이가 있고, 소크라테스 옆에 백치가 있다. 키 큰 소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 아름답고 예쁜 장미꽃과 벌레 먹은 꽃송이, 헤라클레스와 절름발이, 소크라테스와 백치 등,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가 있는 것도 같지만,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먼지와 때처럼 사라져간다. 다투고, 소송전을 벌이고, 시기하고, 질투할 일이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때의 그림자/ 제 빛으로 빛나는 놈”이 없기 때문이다.
운명은 아침 해와도 같고, 운명은 저녁 노을과도 같다. 운명은 저울이고, 이 저울은 대자연의 법칙과도 같다. 아침 해와 저녁 노을의 무게도 똑같고, 삶과 죽음의 무게도 똑같다. 채권과 채무의 무게도 똑같고, 소크라테스와 백치의 무게도 똑같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잘 나가는 때가 된 것이고, 저녁 노을이 지면 잘 안 나가는 때가 된 것이다.
부와 지혜가 결합되면 전인류의 아버지가 되고, 건강과 지혜가 결합되면 천하무적의 장수가 된다. 지혜와 예술이 결합되면 지상낙원을 창출할 수도 있고, 부와 무지가 결합되면 그야말로 ‘불로초’를 찾아 헤매는 천하제일의 바보가 된다.
우리 인간들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운명에의 사랑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지혜를 사랑하면 그는 전인류의 스승이 될 수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 자신이 얻고 축적한 그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고, 먼지와 때처럼 사라져 가는 것이 ‘운명에의 사랑’이며, 가장 행복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김병수 시인의 [때]는 인간 존재론이며, 운명에의 사랑이며, 가장 기초적이고 울림이 큰 서정시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