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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 알렐루야
안녕하세요
김 홍대 토마스 아퀴나스 입니다
먼저 주님께서 부활하심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부터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파스카 축제'에
대해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아니 ....토마스 형제님.... '주님의 부활 대축일'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이제와서 "성주간 "에 대하여 글을 올리다니요?
...... 전례적으로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
맞습니다.. 미리미리 자료를 모으고 충분히 검토하여 전례에 맞게
글을 올렸어야 하는데 제가 게으른 탓으로 준비성이 많이 부족한
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
제가 좀 무리를 하여 전례시기에 맞추어 글을 올릴 수도 있었지만
사순시기의 제일 중요한 ...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에
주님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심을 온전히 받아드리기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제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글을 쓰고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 지신이 먼저
가톨릭 신자로서 ,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해야 될 도리가
먼저이다"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직 '회사'라는 울타리 속에서 일을 해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파스카 성삼일' 전례에는 여건 상 참례하지는 못하였으나
월초 바쁜 회사 업무속에서도 시간이 나는대로 수난복음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자신을 절제하고 내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내가 짊어 지어야할 십자가가 과연 무엇이 이였는지를 찿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제가 찿은 나의 십자가가 참으로 정말 무거웠음을
평생 처음으로 온 몸으로느껴보았고
제 자신을 더더욱 낮은곳으로 이끄심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차분하고 거룩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글을 읽고 계신 교우분들도 '사순시기'와 '성주간' "파스카 성삼일"를
잘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자..... 그럼 성주간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주간 Holy Week
한자 : 聖週間 [성인 성 , '거룩할/성스러울 성'이라고도 함 + 주간(일주일)]
영어 : Holy Week [ Holy 성스러운 경건함을 뜻함 + 주간(일주일)]
고대 그리스어 : Ἁγία καὶ Μεγάλη Ἑβδομάς ('하기오스 까이 메가스
헤브도마스'로 발음됩니다)
명칭에 대한 뜻풀이를 해 볼까요?
한자는 교우분들이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되어 패스를 하겠습니다
영어 'Holy'는 신성한 또는성스러운 을 가진 단어로 하느님·특정 종교와 관련하여 쓰는 단어입니다
크리스마스캐롤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에서
"Silent night, holy night ! " 에서 나오는 단어라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입니다
영어 'Holy' 의 어원은 고대 영어 'halig' '신성한, 축성된, 성스러운; 신성한의 뜻으로
프로토 게르만어 'hailaga'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Holy'는 동의어(같거나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낱말)적 의미는 같은 뜻을가진 다른 어떤 단어보다
강하고 절대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신성한(Holy) 것은 인간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도 있지만, 신성한(Holy)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성스러움을 가지거나 성스러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성경의 신성함(Holy)과 성경을 저서한 이들에 대한 신성함(Holy)을 이야기 할때 쓰는
단어라고도 합니다
신성한(Holy) 사람은 절대적으로 또는 본질적으로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성한(Holy) 것은 개인적 성격의 단어가 아닙니다 ,
신성한(Holy)의 반대는 죄악이거나 사악한 것이고,
신성한(Holy)의 반대는 세속적이거나 불경스러운, 또는 흔한 것 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참조] : Century Dictionary, 1895
고대그리스어 : Ἁγία καὶ Μεγάλη Ἑβδομάς 는
Ἁγία('하기오스/하기아'로 발음됩니다 ) 기본적으로 거룩한, 성스러운, 신성한’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가리킬 때에는 신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사람(성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καὶ ('까이'로 발음됩니다) '그리고' 라는 뜻입니다
Μεγάλη('메가스'로 발음됩니다) 고대 헬라어로 크고 위대한, 놀라움 경의로움을 뜻합니다
Ἑβδομάς ('헤브도마스'로 발음됩니다)고대 헬라어로 일주일을 뜻합니다
위에 개별 단어의 뜻을 모두 결합해 보면
" 신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사람 그리고 경이로운 일주일" 로
'성주간'의 명칭 중 고대 그리스어가 성주간의 참 뜻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지난 번에 '사순시기'에 대해 글을 올렸을 때 '명칭'에 대하여 설명드렸듯이
명칭에 담긴 의미 만으로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본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주간’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를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에 서 1년 전례 중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념하기 위한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성주간이 전하는 핵심 의미는 수난없이 부활은 없다 ! 입니다
[ 매우 ! 아주 ! 중요 ! .... 합니다 !! 기억 하세요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성주간의 시작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실을 기념하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일로 사순 제5주일 이후 시작되는 사순 '제6주일'이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순 제 6주일' 이라고 하지 않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지칭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분들 중 "성지 주일"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거룩한 땅(예루살렘)으로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기에서 '성지'라는 단어는
거룩한 땅이라는 뜻의 성지(聖地, Terra Sancta, Holy Land) 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하는 나뭇가지. 본디 종려나무나 올리브 나무의 가지를 뜻하는 말로
'성지(聖枝)'는 그 자체에 '거룩한 나뭇가지'라는 뜻이 있으므로 이를 '성지 가지'라고 표현하면
중복적으로 반복되는 단어가 되어 '성스러운 나무가지 +가지 ' 되므로 '가지' 라는 말을 빼고
'성지' 주일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다시 알아듯기 쉽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 주님 수난 성지가지 주일" 이라고 표기 했었다면
애시당초 거룩한 땅이라는 뜻의 성지(聖地, Terra Sancta, Holy Land)라던지
성모 마리아, 성인, 순교자 등과 관련하여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적지라는 뜻의
성지(聖址,anctuarium, sanctuary)로 착각하지 않았을 것인데 말입니다
‘성지’는 종려나무 잎이나 올리브 가지가 전통적으로 쓰였으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열대식물인 종려나무가 많이 없는 관계로 구하기 힘든 종려나무가지 대신 사철 푸른 나뭇가지인
측백나무가지나 향나무 가지를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주님의 수난 주일' 을 "고난주일" 과 '종려주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 장엄한 행렬 예식은 4세기부터 예수 부활 한 주 전 주일에 예루살렘에서 시작됐고,
점차 동방교회로 퍼져 나갔습니다
서방교회 즉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5세기부터 부활 전 주일을 '수난주일'로
정하여 '수난복음'을 봉독하였는데 9세기에 들어와서 이 장엄한 행렬예식과
'수난 주일'의 두가지 전통이 합처져 '주님수난성지주일'로 정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때 왜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이
자기 겉옷을 벋어 길에다 깔고 빨마(종려나무)가지를 꺽어 들고 예수님을 환호하였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번 예루살렘 방문이 처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아기 때에도 오셨고, 해마다 예수님의 부모와 같이 오셨고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루카 2,41)
특히 열두 살 때에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에 두고 오셔서 사흘동안이나 예루살렘을 찿아다니다 성전에서
찿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라고 요셉과 마리아에게 대답하신 것을 교우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때에는 예루살렘 누구도 예수님을 반기셨다는 내용은 찿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왜 예루살렘 백성들이 격하게 환호하며 예수님을 반기셨을까요 ?
그 이유는 시간을 되돌려 '나자로' 와 관계가 있습니다
'나자로" 는 예수님께서 "사랑한 이"라고 성경에서는 표현합니다
그런 나자로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머무신뒤
마르타와 그 여동생 마리아와 라자로가 살고 있는 베타니아로 가십니다
그러나 나자로는 죽어 무덤에 묻힌지 나흘(4일)이 지난 후라 냄새까지 난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살리십니다
그리고 난후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이제 시선을 좀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나자로의 죽음을 지켜본 어느 유다인의 시점에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자로를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고 죽을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장례 예식 풍습은 죽은 이의 눈을 감기고, 고인과 입맞춤하며 시신을 씻긴 뒤
기름( 이때 기름은 발삼을 섞어 향료로 사용했다고합니다)을 바르고 아마로 싼 노끈으로
향기 나는 약초와 함께 시신을 묶습니다.
시신을 안치하고 애도가를 시작하며 시신은 대부분 죽은 날에 관도 없이 들것 위에서
묘지로 가는 길에서, 무덤에 도착하여 장례 가 끝날 때까지 계속 노래합니다 돌 무덤으로
들어가 시신을 내려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돌로 무덤입구를 막습니다
그는 나자로가 죽어 이러한 과정을 처음부터 끝가지 지켜보았고 다른 유다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나자렛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그 라자로를 살리겠다고 합니다
그 유다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
이제 다시 시선을 현재 시대로 돌려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죽은지 나흘이 지난 사람을 그것도 여러분의 가족, 친척 아주 친했던 친구 잘 아는
사람이였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 병에 걸려 병원 중환자 실에 가서 면회도 하였고
그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그의 장례식에서도 입관하는것을 지켜보았으며 발인을 하여
화장을 하기전, 또는 하관을 하기전에 누군가가 와서 그사람을 살리겠다고 한다면 ?
여러분은 어떤생각이 드시나요?
"이런 미친XX " 또는 누군가는 " 사이비 XX " 경찰을 부르라고 난리를 치며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라고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성경에서 알고있는 그대로 입니다
여기에서 보는 시선을 다시 아까 그 유다인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보겠습니다
그가 보았을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경악을 합니다 ....
도저히 안 믿으려고 해도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 손으로 눈을 여러번 씻어보아도
나자로는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나옵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 하였습니다
자 ~ 여러분들이라면 "그래, 살아났구나" 하고 안도하는 마음으로 기뻐만 하였을까요 ?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해 봅시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갔습니다.
16강에도 한번도 올라간적이 없는 세계강팀만 만나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졌던
우리 대한민국 팀이 .... 내노라 하는 강대국을 차례차례 꺽으며 승리를 하였을 때
여러분은 그때 가만히 "그래 4강에 올라갔네?"라고 조용히 바라만 보았을까요?
맞습니다 ... 마치 그때처럼..... 그 유다인을 비롯한 그것을 지켜본 유다인들은
광분하여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는 휴대폰도 인터넷도 SNS도 없는 시대 입니다
나자로가 살아난 사건(?)은 멀리 멀리 퍼져나갑니다. 예루살렘과 베타니아의 거리는
15 스타디온입니다 ( 약 2.77 Km) 로 성인이 걸어서 약40분 정도의 거리입니다
| (참고) 여기서 1 스타디온은 약 185m이고 고대 올림픽 경기장은 192m 입니다 이 길이에 대한 단위는 스타디움의 어원이 됩니다, 스타디움은 경기장을 뜻합니다 마라톤의 거리가 42.195 Km 입니다 마라톤은 출발부터 경기장 입구까지가 정확히 42 Km 이고 입구부터 결승점까지의 거리가 정확히 195m 입니다 |
이 소문은 가까운 예루살렘의 도시에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유다인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구세주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앞서 가는 군중과 뒤따라가는 군중이 외쳤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
라고 환호 하게 됩니다
이제 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을때 예루살렘 백성들이 열광적으로 환호 하였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
성경적 배경과 그 해석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하였셨음에 대하여 마태오, 마르코,루카,요한, 네 권의 복음서가가
모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6일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요한 복음서는 유월절(파스카축제) 6일전으로 명확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이 아닌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고
또 유다인들은 종려나무가지를 꺽어 예수님 앞에도 깔고 종려나무가지도 흔들며 환호를
하였을까요?
특히 나귀는 예수님께서 정확한 위치와 나귀를 가져올 때 어떤 질문을 받을것이고 어떻게
대답하라고 까지 알려 주십니다
마태오 복음서 에서는
“딸 시온에게 말하여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마태 21,5) 의 구절을 비유하시며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즈카 9,9)라는
예언이 실현되심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에수님께서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것을 선포하심을 표현합니다
나귀는 레반트 지역에서 전쟁의 동물인 말에 대비되는 존재로 평화를 상징합니다.
구약시대의 왕들은 전쟁에 나설 때 말을 타고 전투에 임하였으며 ,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즉 말을 타고 나간다는 것은 전쟁을 의미하고 나귀를 타고 입성한다는 것은
평화가 왔음을 상징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전쟁을 즐기는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서 입성한 것을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유다인들은 왜 종려나무가지를 꺽어 흔들었을까요 ?
고대 근동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최고의 명예를 누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지나갈 때에는 그 길을 흙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덮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사팟의 아들 예후가 이런 대접을 받는다느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재빨리 저마다 제 겉옷을 벗어 예후의 발밑 층계에 깔고는
나팔을 불며,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하고 외쳤다" (2열왕 9,13)
공관복음서와 요한의 복음서는 모두 군중이 예수님에게 이런 형태의 예절을 갖추어 주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 사람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덮은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종려나무 가지로 길위를 덮었다고 묘사 되었습니다
종려나무는 하느님의 집을 꾸미는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집의 본관 안벽에 방백나무 판자를 대고 질 좋은 금을 입혔다.
그러고 나서 그 위에 종려나무 가지와 사슬을 새겼다.(2열왕 3,5 )
종려나무는 레위기에서 사용되는 사용되는 네 종의 식물 중 하나입니다
로마제국의 문화에서도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의 상징이였습니다
이는 니케나 빅토리아 여신의 가장 흔한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종려나무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장례행렬에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승리의 상징 보다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였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고대 근동에서 어떤 식으로든 최고의 명예를 누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지나갈 때에는 그 길을 흙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덮는 관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에도
이러한 모습들을 아주 쉽게 찿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나라 정상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에서 스텝카(계단차)로 내리면 붉은 카펫이
바닥에 깔려있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 그 뿐만 아니라 유명한 시상식에서도,
호텔이나 중요 관공서에서도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곳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붉은 카펫으로 장식하는 것도 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오늘도 쓰다보니 긴글이 되었네요
다음시간에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에 대한 미사 전례 에 대한
특징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전례적으로 많이 늦었지만 전례와 관계없이 계속 해서 이어가도록
히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진정으로 축복받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수난없이 부활이 없음을 기억하시고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2026년 04월 11일 작성 후
04월 13일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김 홍대 토마스 아퀴나스가 직접 작성한 글을
입니다
※ 자유롭게 퍼가시는것은 좋지만 퍼가신 분이 마치 본인이 작성한 것처럼
주장하시는 것은 삼가 하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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