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이 일어난 시점은 1절에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로 주전 609년 9월 경에서 주전 608년 4월경 사이가 됩니다. 이 말씀이 선포된 장소는 여호와의 성전 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시어 선포하게 하시는 이유는 3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선포될 때에 듣고 그 악한 길에서 떠나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4~6절에 보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삼상 4장에 의하면 당시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법궤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실로의 옛 성소도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저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지금 예루살렘의 성전의 운명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순종이 없을 때 성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전을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성전이 무너지고 파괴된다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제사장들, 선지자들,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붙잡고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합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유다 방백들도 왕궁에서 성전으로 올라와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죽어야 할 이유는 이 예루살렘 성을 쳐서 예언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국론분열과 유언비어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당당합니다. 12절에 의하면 그 당당함은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3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원하신 것은 바로 돌이키라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선고한 재앙을 돌이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반응이 일어납니다. 16절 이하에 보면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의탁하고 선포했기 때문에 죽음이 부당하고 하면서 예레미야를 감쌌습니다. 특히 장로 중 몇 사람은 과거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시온의 파멸을 예언했으나 그것 때문에 죽지 않았고 도리어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간구함으로 자기들에게 선고한 재앙을 하나님께서 돌이키신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자신의 죄악은 보지도 않고 자기 생각대로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함 순종하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형식만 붙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와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