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의식
사람에게는 누구나 천부적 인권이 있다. 그러나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는 행위가 빈번해 왔다. 15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동서양을 양분하여 식민지 정책을 펴면서 가톨릭 신앙을 빌미로 천부적 인권을 마구 유린했다. 스페인은 서쪽을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나가면서 국권을 빼앗아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우리의 이웃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얼마나 괴롭혀 왔던가. 16세기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끌고 가서 그들의 종으로 삼았다. 20세기에는 우리를 짓밟으며 민족의 언어까지 말살하려고 했다. 아직도 그 근성을 버리지 않고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칼의 나라이다. 제국주의 사상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우두머리를 천황(天皇)이라고 부르고 있다. 언어의 권위 의식에서부터 깨어나야 인권의 소중함을 알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언어의 유희’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제국주의 권위 의식에서 임금을 왕(王)이라 하지 않고 황제(皇帝))라 칭했다. 로마 시대에 군주가 그러하다. 또 로마 가톨릭교의 수장은 군주의 대관식에 참석하여 왕에게 왕관을 머리에 올려주어 그 위상과 권위를 드높이게 했다. 그러하니 로마 가톨릭교의 수장은 교황(敎皇)이라 칭하여 권위를 내세워 왔다.
우선 제국주의의 잠재의식에서 깨어나야 한다. 누구나 보편적 하느님의 백성인데 누구는 위에, 누구는 아래로 갈라놓는가? 교회의 으뜸이라는 말이 교종(敎宗)이다. 교황을 교종으로 부르면 더 친근감이 들지 않은가. 또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는 신자를 ‘성도(聖徒)’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 ‘평신도’(平信徒)로 낮추어 부르고 있다. 왜 거룩함(聖)을 보통(平)으로 구별하여 부르는가? 이런 것이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잔재한 언어이다.
또 오늘날 교회에서 내려놓을 것 하나가 직분에 따른 계급의식이다. 성직자나 신자나 다 같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직분만 다를 뿐이지 그 사명은 같다. 사제는 신품성사를 통해서 사제로 서품되어 특별한 사명이 부여되었다. 일반 신자들도 보편적 사제직의 사명을 띠고 수행하고 있어 다를 바 없다.
권위 의식과 거룩함과 보편함의 위와 아래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 의식에서 벗어나야 신앙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교회법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신자들의 이탈(프로테스탄트)을 막았다. 400년이 지난 뒤 바티칸 2차 공의회에서 신앙의 해방과 자유를 주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아직도 교회법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다. 주일미사에 빠지면 대역죄인인 양 여기며 스스로 냉담의 길로 가고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직분만 다를 뿐이지 구별 짓지 않아야 한다. 신앙은 죄의 심판에 있지 않고 많은 이를 구원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