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핵심
행25:1~10, 26:30~32
벨릭스 로마 총독이 실각당한 후에 베스도 총독이 부임했습니다. 부임한 지 3일밖에 안 되었는데 대제사장들이 또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대제사장들이 왜 바울을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전파했거든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달라고 강청했던 사람들이 바로 대제사장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들은 예수의 부활 소리만 들리면 양심이 찔리는 거예요.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을 죽여 없애려 했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이게 우리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부활 신앙이 죽으면 기독교도 죽습니다.
1950년대 영국 교인들의 교회 출석율은 90%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밖에 안 됩니다. 유럽의 대부분의 교회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교회가 텅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부활 신앙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기독교가 튼튼합니다. 그 이유는 부활 신앙으로 무장된 선교사들이 이 나라에 들어와 복음의 씨앗을 뿌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의 기독교는 매우 약합니다. 그 이유는 부활 신앙이 약한 선교사들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은 무려 1,480년 동안 제국을 유지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1,000년 이상을 유지했던 국가는 로마제국이 유일합니다. 힘의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엄청나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교인들이 화형을 당하고, 십자가 처형당하고, 맹수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하묘소인 카타콤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현재까지 발굴된 카타콤의 수는 50여 개에 총 길이는 872㎞에 달합니다. 이런 땅굴 속에 숨어 살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시무시한 제국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여성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로마 여성들의 성문란은 아주 심각했습니다. 네로 황제의 어머니도 바람둥이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남자들끼리 칼부림이 자주 일어난 거예요. 또 여성들이 기가 세다 보니 집안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처녀들은 순결하고, 한번의 남편은 영원한 남편으로 섬긴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거예요. 이래서 귀족들이나 로마군 장군들이 몰래 예수 믿는 처녀들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AD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칙령을 발표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넌 거예요.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처녀 때 로마 장군 콘스탄티우스 1세와 결혼했던 거예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 로마의 기독교인은 전 인구의 8%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로마제국은 태양신을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공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8%의 기독교인 중에 상당수는 로마의 귀족과 군장군들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공인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부활”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가 60살에 집필을 시작하여 10년만인 70세 때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부활”의 스토리는 법률가였던 친구에게서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 “네플류도프” 공작이 자기 집의 하녀인 18세 난 카츄사를 강제 추행해서 임신을 시켰습니다. 임신이 된 사실을 안 카츄사는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배 속에서 자라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살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아기가 죽자 그녀는 먹고 살기 위해 창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창녀가 된 자신을 모욕하는 한 남자를 죽이고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정에 배심원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카츄사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는 카츄사에게 임신을 시켰던 옛 주인 네플류도프 공작이었습니다. 카츄사의 법정 증언을 들어보니 정당방위였음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카츄사는 유죄 판결을 받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네플류도프는 카츄사를 따라가며 보살펴 주었는데, 한 여관에서 복음서를 읽던 네플류도프는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던 장면에서 몸이 전율할 만큼의 깨우침을 받게 됩니다. “내가 나의 이 부패한 삶에서 부활해야겠다!” 그리고는 살인 죄수가 된 카츄사와 자신이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심합니다.
톨스토이가 “부활”이라는 작품을 통해 당시 제정 러시아와 러시아 정교회를 향해 외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썩어가고 있는 이 나라를 부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망을 이기신 “예수 부활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정 러시아와 정교회는 변화하지 못하고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혁명으로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무는 휠지언정 절대로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썩은 나무는 조금만 힘을 줘도 쓰러집니다. 뿌리가 썩었으니 버틸 힘이 없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발로 차니까 제정 러시아가 힘없이 퍽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조선 말기 때 농노의 수가 전 국민의 40%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썩은 사회입니까? 그러니까 大軍도 아닌 소수의 일본군대가 발로 한번 툭 차니까 조선이라고 하는 고목이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의 뿌리는 “부활”에 있습니다. 부활 신앙이 죽으면 그때부터 기독교의 뿌리는 썩어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나는 오늘 죽으면 부활해서 천국 간다” 이 확신이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환란이나 시험이 닥치면 좀 구부러질지언정 절대로 꺾이지 않습니다. 환란을 뚫고 나갑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