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타운급 항공모함(Yorktown-Class Aircraft Carrier, 1938년)
제2차 세계대전 미합중국 해군에서 초기부터 운용한 항공모함. 이 함급에 속한 3척의 항공모함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수 많은 활약을 했으며, 특히 2번함은 전장에서 홀로 일본 제국 해군과의 격전을 치르고도 끝까지 살아남아 태평양 전쟁의 전설이 되었다.
1931년 미국 해군은 신형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적당한 수준의 기동력, 적당한 수준의 함재기, 적당한 수준의 방어력을 원했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 운용경험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항공모함의 배수량은 최소 20,000톤 정도는 되어야 적절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마지노 선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미국에게 허용된 항모쿼터는 55,000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미 해군은 3척의 새 항공모함을 건조할 생각이었는데 5만 5천톤을 균등하게 3분의 1로 나누면 고작 레인저급 수준의 소형 항공모함 3척을 건조하고 끝나는 격이었다. 이게 싫었던 미 해군은 27,000톤급 2척을 만드는 방안과 14,000톤급 4척을 만드는 방안, 20,000 톤급 2척과 14,000톤급 1척을 건조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다 2만 톤급 2척과 14,000톤급 1척을 건조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1931년 5월 CV-5 요크타운으로 명명된 신예 항공모함의 설계가 시작되었고, 건조되는 신예 항공모함은 요크타운급으로 명명되었다. 설계가 마무리되자 1934년 5월 21일 요크타운의 건조가 시작되었고, 7월 16일에는 미 해군 전사에서 전설적인 항공모함으로 기록될 일명 Big E, CV-6 USS 엔터프라이즈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이 두 항공모함은 기준배수량 19,800톤에 만재배수량 25,500톤에 달하고 32.5노트로 항해가 가능하며 함재기도 80 ~ 90기 가량 탑재할 수 있었다. 요크타운급 건조사업은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추진중이던 뉴딜 정책에 따라 공공사업적인 성격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1938년 항모 보유 쿼터에 여유가 생기면서 새로운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였다. 당시 미 해군은 아이오와급 전함을 위시한 주력함급의 설계에 매달려 있었고, 요크타운급이 워낙 성공적이라 새로 설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때문에 그냥 과거 요크타운급 설계에 지금까지 운용하면서 발생한 요구사항들을 반영하는 형태로 요크타운급 3번함 CV-8 호넷을 건조하였다. 호넷의 경우에는 배수량이 100톤 정도 더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기존 요크타운급과는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미군이 운용한 요크타운급은 총 3척이 되었다.
4. 전쟁에서의 활약
진주만 공습으로 미 해군의 전함이 털린 까닭에 태평양 전쟁 초창기 살아남은 항공모함들이 미국 태평양 함대 작전의 주 타격력으로 활용되었다. 태풍이 살린 엔터프라이즈 그 결과 전함과 전함 사이의 함포결전이 아닌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사이의 항공전 위주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항공모함들이 손실되었다. 요크타운급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중요한 것은 요크타운급은 하나같이 침몰하기 직전까지도 일본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길동무로 삼았다는 것이다.
네임쉽인 CV-5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에서 전치 3개월 진단서를 끊고도 일꾼 1,400명이 달려들어 3일 동안의 응급수리를 마치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 일본 해군에게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를 선사했다. 게다가 일본군에게 두들겨 맞고 빈사상태까지 갔지만 그걸 또 악착같이 복구해내는 바람에 일본군을 두 번이나 속여먹는 위업까지 세웠다! 하지만 결국 수리하러 진주만으로 예인하던 중 해대 6형 잠수함 I-168의 뇌격으로 가라앉았다. 요크타운의 활약을 상세히 정리한 글
CV-8 호넷은 개전 초기 일본 천황의 거처를 포함해 도쿄를 폭격한 둘리틀 특공대를 실어날라 사기를 북돋았고 미드웨이 해전에도 자매함들과 함께 참전했다. 하지만 결국 과달카날 전투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 격침당했다. 그러나 호넷 역시 격침당하기 직전까지 일본 해군의 수많은 베테랑 조종사들을 저승길 동무로 삼았다. 무엇보다 일본은 호넷을 노획하려고 했지만 정작 자신들의 공격과 미군의 자침 처분하기 위한 공격에 호넷이 너무 많이 손상된 것을 확인하고는 구축함 아키구모와 마키구모를 시켜 뇌격해 격침 처분했다.
2번함인 CV-6 엔터프라이즈는 여러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지만, 행운의 여신의 도움과 숙련된 승조원과 든든한 동료들이 함께 있었기에 전쟁 시작 전 7척의 항공모함 중 새러토가 및 레인저와 더불어 종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전선에 등장하기 전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4척의 항공모함이 상실된 상황에서 미 태평양 함대가 곧바로 사용 가능한 항공모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일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맞고 전선에서 물러난 새러토가가 수리가 완료되어 복귀한 이후 함께 일본군의 공세에 대응했다. 과달카날 전투가 끝나고 전선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요크타운급에 대한 대대적인 개장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배수량 제한으로 인해 설계시 부족했던 어뢰방어 보강을 위한 벌지를 설치하고 구식 대공포였던 1.1인치 포를 제거하고 40mm 보포스 대공포를 추가로 설치하는 등 당시 태평양 전쟁의 사정에 맞게 거의 모든 시스템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기준배수량은 21,000톤으로 늘어났다. 이후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대량 건조되어 배치되면서 이들과 함께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오키나와 전투 당시 카미카제 공격에 엔터프라이즈가 대파되면서 요크타운급은 전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엔터프라이즈는 제대로 된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귀환하여 건선거에 들어가 대규모 수리를 벌이던 중에 종전을 맞이했다.
그러나 미 해군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이 벌인 전설적인 활약은 널리 이야기될 것이다.
가끔가다 네임쉽 요크타운이 요크타운급이 아닌 에식스급의 설명을 달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요크타운이 침몰한 후 그 이름을 에식스급 항공모함 중 하나에게 승계시켰기 때문이다. 승계 이유는 미드웨이에서의 전설적인 활약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비슷한 예로 렉싱턴과 와스프가 있다. 막내인 호넷의 이름 또한 에식스급중 하나에 계승되었다.
또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이 조약 때문에 방어력을 많이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래 버틴 것을 알 수 있는데, 요크타운과 호넷의 최후를 봐도 요크타운은 진주만으로 예인하려다가 I-168의 뇌격을 받고 포기한 뒤에도 몇 시간이나 떠 있었고, 호넷도 전투불능이 된 상황에서 자침시키려 했는데 결국 실패해 일본군이 격침시켰지만 꽤 오래 버텼고 엔터프라이즈의 경우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
특히나 호넷의 경우를 보면 방뢰능력이 부족했다는 요크타운급이 어뢰를 전투에서 3발, 자침시키려고 할 때 9발을 맞고도 안 가라앉았다. 이후 일본이 추가적으로 산소어뢰 4발을 쏴서 3발을 명중시킨 후에야 천천히 가라앉았다. 호넷의 잔해는 침몰 77년 만인 2019년 2월 12일 해양 탐사업체 벌컨(Vulcan)에 의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