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abJhHsmyp8?si=ti_jP6c1fisEcwDF
영화 서울의 봄에서 육군본부 벙커를 지키다가 숨진 것으로 그려진 조인범 병장의 실제 모델, 정선엽 병장.
전역이 불과 석달 앞이었던 그는 국방부 제 50헌병대 소속으로 1979년 12월 13일 새벽 경계 근무에 배치됐습니다.
정병장은 원래 국방부 청사 내부 보안실에 배치될 예정이었는데 후임 일병을 대신해 군 순부가 출입하는 주요 시설인 벙커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최영진(당시 국방부 헌병대 이병)
"'이런 중요하고 위험한 시기에 신병을 세워서 되느냐 중요한 벙커인데'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이제 저 말씀도 못 드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죠. 그러니까 그분이(정선엽 병장)이 가시더라고요. '내가 그 신병을 교대해 가지고 보낼테니까 같이 근무 서러 가라고' 그러면서 가시는 뒷모습이 그게 마지막이었죠.
정 병장은 13일 새벽 1시40분경 국방부를 점령한 공수부대원들이 M16 소총을 빼앗으려 하자 '중대장의 지시없이 줄 수 없다'고 맞섰다가 공수부대원들이 발포에 목과 가슴에 네발의 총을 막고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김호기(당시 국방부 헌병대 상병)
"벙커에서 위로 올 올려놓은 상태죠, 시신을. 우리 내가 출동했을 때는 위로 옮겨놨죠. 한방 맞았어요. 여기서 이리 뚫려 있더라고요"
아들을 앞세운 한 때문이었는지 정 병장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특이한 치매증상을 보이다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명월(고 정선엽 병장의 형수)
"둘째 아들을 굉장히 사랑하나 봐요. 성격도 좋고 인물 좋고 아까운 자식 죽였다고 그때는 그 전두환씨를 많이 욕했었어요."
1997년 대법원의 판결 당시, 군사반란 수괴, 전두환의 죄목에는 초병 살해도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정 병장의 죽음은 끝내 '오인으로 인한 총기사고'로 은폐돼 '순직'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희생은 43년이 지난 작년 9월에서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끝에 '전사'로 인정됐습니다.
-정규상(고 정선엽 병장 동생)
"저희들 힘이 없으니까 (반란세력에)항변할 수도 없고 그 억울함을 어떻게 표현하기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또 1년이 더 지나서야 영화 개봉으로 역사가 재조명되면서 정 병장은 살아서 받지 못했던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병장의 모교이자 영화 주요 장면에 촬영지이기도 한 조선대학교는 지난 6일 참된 군인정신을 기리고자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첫댓글 '중대장의 지시없이 줄 수 없다'... 병장의 계급보다 못한 무능한 육본똥별들이나 반란군놈들... 이 나라에선 독립운동 하면 패가망신 한다고 하더니 그 전통이 유구? 하네요.
육본의 똥별들과 비교도 안되는 참군인이네요...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