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毛允淑 詩人의 글을 한편 올려 놓았는데 그녀의 아호가 嶺雲(영운)이었다는게 떠 올랐습니다 어렸던 시절에 어디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고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春園 李光洙가 지어 준것이라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嶺雲이라면 높은 산마루에 걸린 구름일테고 내 아호 臥雲은 산골짜기에 낮게 깔린 구름일테니 일맥상통 하는데가 있다고나 할까요
렌의 哀歌(슬픈노래)에 나오는 시몽이 춘원 이광수 였다고 세간에 알려 졌었는데 내 생각에도 아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유부남이건 말건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은 이성이나 윤리관으로만 단순히 어쩔수 없다는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서도 잘 알려져 있겠지요
아시다 시피 내 아호 臥雲은 畏友 원평재 德兄께서 만들어 준 것이지요
내가 사랑방에서 글을 쓰면서 경상도 갈비에 대한 질문까지 한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경상도식 갈비를 서울에서도 어딘가 에서 먹어 볼수가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답니다
내가 2009년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내가 독일로 떠나오고 2년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형님이 한분 계셨는데 그 형님의 손자아이 두명이 서울에서 큰애는 연세, 작은애는 고려 대학교엘 다니는 대학생 이었답니다
내가 1987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때 두 아이가 다 유치원엘 다녔었는데 그후 내가 한국엘 갈때마다 계속 아버지 직장따라 외국에서만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였기 때문에 만날수도 없었고... 대학교를 한국에서 보내겠다고 고등학교를 둘다 서울 대원외고인가 보냈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그애들 어미하고 애들만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제 어미는 다시 남편곁으로...
그래서 애들 둘이만 서울에서 학교엘 다녔다더군요
그애들 부모도 고려대와 이화여대 컴비랍니다
이 두명의 대학생들은 자기들 할아버지도 안계시니 나를 할아버지 처럼... 어릴때 유치원에 다닐때 보곤 대학생이 될때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어였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답니다 애들이 둘다 인물도 훤하고... 서울에 사시는 형님얘기가 이 애들 둘이서 고기를 먹는걸 보았는데 엄청 잘 먹더라나... 고기 잘먹기로 집안에 소문이 났답디다 내가 그애들 아니라도 그애들 사촌들도 있고 또 돌아가신 내 누님의 손자도 있고... 애들을 불러서 파티를 한적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아이들 두명만 따로 불렀답니다
올때 자기 어버지가 타는차를 몰고 왔는데 동생아이가 운전을 하더군요 왜 큰애 너는 면허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면허증은 있는데 시내운전은 신경이 많이 쓰이고 해서 동생이 한다나... 그래서 그날 내가 얘기하기를 오늘 우리 불고기를 실컷한번 먹어보자 내가 서울에서 어디에 어떤곳이 있는지 잘 모르니 너희둘이 알아서 내가 제일 맛있게 먹을수 있는곳으로 안내하라고 했답니다
내가 독일에서 살지만 수원갈비 정도는 알고있고 포천쪽으로 나가도 숯불갈비 괜찮게 하는집이 있다는것도 알고 서울시내만 해도 삼원이니 늘봄이니 우리 동네나 마찬가진데... 심지어 전주 한옥촌이나 나주 하얀집의 곰탕인지 설렁탕이 맛있다는것 정도는 아는데... 그날 비도 부슬부슬오고... 그때 어디를 빙글빙글 도는데 보니까 천주교성당이 보이고... 지금 생각하니 강남 도곡동 부근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쪽은 며칠전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형님을 바꿔주었던 그 조카내외가 처음 결혼하고 살았던 아파트가 LG 건설에서 지었던지 아니면 LG 사원들이 지은 아파트인지 그쪽에서 살았었고 현재도 도곡동 네거리 근처에서 아파트를 사서 산지도 20년 가까이 되기때문에 그래서 어디쯤인지 대강 알수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날 어떤 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큰애와 나 우리집사람은 내리고 작은애는 차를 주차해놓고 오겠다고 차를 몰고 가고... 그래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걸 보았지요
옆집이나 그 부근에 음식점들이 많았는데 그게 도곡동 먹자골목이라는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다른집은 넓은 홀들이 거의 텅 빈상태 였는데 그집은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니 자리 나는데로 번호를 부르고... 우리는 우리 4명외에 또 누구를 오라고 해서 그곳에서 만났었는데 그애들 사촌 남자애였던지 여자애였던지 확실한 기억이 없네요 와운에게도 이런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 이틀전에 침대양쪽에 탁상이 있지요 그 한쪽은 내가 사용하는것이고요 서랍을 완전히 빼내가지고 거실에서 하나하나(정리 차원에서) 훓어 보았는데 내 병역수첩이 보였답니다 육군 제 2훈 26 R (R는 Regiment 연대) 라는게 보이는데 갑자기 그때 중대장 이름을 기억해낼수가... 내가 생각해도 희안한 일이지요 그 중대장님은 계급이 대위 명찰에 이군할 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그때 재봉틀로 이름을 새겼드시....
입소하던날 중대본부 사무실앞 공터에서 환영인사말씀 딱 한번했었고 언젠가 한번 훈련출장할때 중대장님이 하얀 띠와 백색 페인트로 대위 계급장도 페인트로 뿜어서 표시된 화이버군모를 쓰고 칼빈소총을 어깨에 맨 중대장님의 바지가 멋져 보였던 기억이 나고 그 중대장님은 어쩐지 군인 이라기보다는 살결이 희고 귀공자 타잎이었다는 기억이... 그리고 이군할 이라던 이름이 기억나더군요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점호시간에 직속상관 관등성명을 묻기나 하면 거침없이 대답을 해야 했기에 내무반장 감금대(삼천포가 고향) 일병님 중대장 이군할 대위님 참모총장 누군지 기억없고 국방장관 김성은님 외웠던 기억이...
어쨋거나 그래서 먹자골목에 갈비집이 그런곳이 있었다는걸 알았고 그게 돼지갈비집이고 마포갈비라고 한다는것도 알고... 그날 다섯명이서 8일분을 시켜서 먹었는데 처음 8인분을 시키니 그집 여자종업원이 그걸 누가 다 먹을거냐고 하면서... 5인분만 시켜도 충분 할거라나...
그래도 내가 우겨서 8인분을 먹었는데 어림도 없지...
갈비부터 더 가져오고 먹고 나중에 계산을 하면 되지 먼저 또 식권을 사야 한다나 어쩐다나... 여하튼 그런일이...
달포전에 그애 애비랑 스카이프로 통화를 했는데 애들은 잘 있는냐고 묻고 그애들 고모가(나랑 통화한 조카의 여동생) 나에게 말하기를 둘째 아이가(삼성전자 근무) 몸이 다시 불어나는것 같다고 하더이다 그 아이는 고등학교때와 대학교들어 가서도 과체중이라 걱정한다고 하더니 내가 그를 보았을땐 물찬 제비처럼 날씬 했드랬습니다 순전히 본인의 노력으로 운동을 하며 살을 뺏다기에 너 잘했다고 칭찬도 해 주었는데...
보나마나 뻔 합니다 그애 애미가 자식 좋아하고 잘먹는 음식을 저녁마다 늦게 퇴근하고 오면 매일 먹이니 자기전에 많이 먹고... 안 봐도 비데오 이지요
그래서 내 조카에게 경상도식 갈비를 설명해주고 요새도 서울에서 어디에 그런 갈비를 먹을수 있는지 애들한테 경상도식 갈비가 어떤것인지 한번 먹여나 보아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다음번에 경상도 갈비를 어디서 먹을수 있는지 알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아 요새 경상도 갈비가 무슨... 궁시렁 궁시렁... 대화를 하다가 내일 김장을 담그는데 곧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설겆이도 도와주어야 하고 어쩌고 하길래 내가 뭐라고 했을까요 이사람아(耳順보다는 古稀가 더 가까운 조카) 일을 도와 줄려면 완전무결하게 도와 줘야지... 김장준비하고 설겆이만 도와줘서야 되겠느냐 어차피 도와줄려거든 가서 변소청소도 깨끗이 하거래이... 하고 심기를 건드려 놓았지요
그리고 또 얼마후에 연락이 닿아 홍준표 그자식은 병신같다고 욕을 해놓고(내 조카도 고대 경영학과 출신) 고대에는 촌놈들이 많이 다녔지만 옛날에는 애들이 박력있고 안암골 호랑이라고 했는데 너그들(홍준표하고 내 조카)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호랑이는 커녕 고양이도 못되겠다고 일갈을 했답니다 무슨 얘길 하다가 나를 보고 한국의 현실을 몰라서 그렇지 요새 젊은 애들은 무슨 말을하면 꼰대라고 늙은이를 폄하한다나.... 우리가 학교 다닐때도 어른들을 심지어 선생님들 까지도 꼰대라고 불렀었지요
그래서 이제 그만끝내자 하고 나 할일이 있어서 끊는다면서 일방적으로 스카이프 창에 빨가 전화수화기를 눌러서 통화를 종료했답니다 그리고 내가 화가 나 있었던지 혼잣말로 너 삼촌 목소리 다시 듣기 힘들것이다 라고 했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라고 내 조카 목소리가...
스카이프가 종료되지 않은 상태였던가 봅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고 컴퓨터에 연결했다는 표시가 뜨고...
특히 할말이 없으면 몇초후에 자동으로 표시가 없어지는건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요
그리고는 지난번에 내가 한 말도있고 했으니 나에게 대화신청이 왔으나 거절을 두어번 했었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화신청을 또 하길래 거절을 했는데 또 신청을 하기에 아예 컴퓨터를 끄버렸답니다 그랬더니 전화가 오는데 보니까 서울에서 전화가 왔답니다
왜 귀찮게 자꾸 전화를 하느냐고 했더니 신사동 삼촌이 벌써 사흘째 연락두절이 되셨다나 신사동에 살던집은 애들도 다 출가시키고 자기들 보금자리가 있으니 집은 세를 주고 돈암동에 아파트를 사서 사신것이 벌써 오래전의 일이고... 나도 돈암동 그집에 가 본적도 있고 미국건설회사가 아파트를 지었던지 이름도 브라운스톤이고 후니쿨라(Rolltreppe)도 설치되어 있더군요
실종된 형님이 나타나셔서 다행이긴 하지만 인간들이 어쩌면...
우리의 맹세
1.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2.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 침략자를 쳐부시자.
3.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첫댓글 " 그 뒤에 듣께나? 너그 자꼬 주껠래?" "야 최종호 이놈들 조회 끝나도
해산 시키지 말고 나한테 연락해" "아이구 두야 , 오늘 일수가 사납구먼"
그래도 또 웅성~웅성~ 중얼~ 중얼~ 엎드려 뻗혀 기합받던일...
흥사단에서 사무총장을 오래했던 최종호 동기가 작고한 지도 오래 되었네요.
내가 대학 본부에서 직합을 갖고 있을 때 한국 중국 미국(UC Fresno) 3국의 국제학회가
격년으로 열려서 젊은 교수들 데리고 LA를 갔는데 같은 호텔에 최종호가 이끄는 흥사단 분들이
들어와있더군요. 반가운 해후와 함께 흥사단 행사에도 덤으로 참석했는데 그 후 두어해 후던가
최 동기가 작고했다고~~~. 아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기회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
@源坪齋 김유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드님이 안필립씨 이고 따님이 안수산여사 이지요
내 아들 이름도 必立(Phillip)으로 내가 작명을 했습니다만...
호적에도 엄연히 주독대사가 송부하여 한문으로 등재가 되어있고...
나는 1999년까지 근 30년을 한국여권을 가지고 생활을 했으며 내 자식은
祖國을 옳게 알도록 나와 내 처는 독일 국적을 취득할때도 자식은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어서 여권유효기간을 연장할때도 혼자가서 했고...
물론 내 자식은 독일에서 출생했으므로 군대 안가도 되었겠지먄
엄연히 한국여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왜 입영안내 같은것도
안보냈는지 국방장관, 주독대사 모두 직무유기한것 아닌가?
자식놈도 지금은 독일국적을
최종호가 언제 죽었는지 기억에 아물아물~~
이걸 머리라고 ㅎㅎㅎ
암으로 2~3년 고생하다 죽고난후 아들 결혼식에서 부인 천여사의 기쁨인지 슬픔인지 쓴웃을을 지어면서 인사를 나누곤 보지 못했군요
살아생전 도산기념관에 근무할때 행사때마다 불려주어 안창호동상건립및 준공식에도 참석했던 기억도 나고
최종호 사무실이 도산공원 부근에 있었던 모양이던데 아마도 백초형이
사진을 올려서 최종호를 사진으로 본적도 있었지요 최종호는 3학년때 한반이라
운영위원장 입후보했을때 김영삼 변호사도 그때 상대후보 였었고... 나와 김진복이가
최종호의 선거 본부장 역할을 했었답니다 물론 우리반 학우들은 대부분 도왔고요
죽포 丁允鎭 은사님 추모문집을 만들때 백초형, 동암형(작고한 여경우 교수) 또 윤병우?
든가 누구랑 서너사람이 도산공원에서 사진을 찍어서 여경우 교수가 나에게 보내 온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내 컴퓨터에 찿아보면 있을것입니다
키가 커서 말종호라고 불렀었지 종호야 극락왕생 하거라 진복이도~~
舍廊房의 뜻---------
舍 : 집, 家屋
廊 : 복도, 行廊
房 : 방 ~ 사람이 거처하기 위하여 집안에 만들어 놓은 공간.
舍廊 : 한옥에서, 집의 안채와 떨어져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
舍廊房 : 한옥에서, 집의 안채와 떨어져 있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방
舍廊房 이라는 用語에 대한 ㅡ學友인 국문학자 오양호교수의 견해--------
‘사이사랑방’으로 하는 것은ㅡ최고의 명문, 慶北中`高等學校에는 어울리지않는 用語 使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중`고등학교의 국어시간에 예문으로 배운 ‘驛前앞’~ ~ ~
‘驛前’ ; 역의 앞을 가리키는 것인데,ㅡ여기에 ‘앞’을 붙이는 것은 어법에 어긋나는 것과 같이ㅡ
舍廊으로 하면 되는데 왜 房까지 붙여서 舍廊房으로 하는냐 ?
‘사이사랑’으로 하는 것이 옳다
언어라는게 글자 한 字의 뜻 풀이로 엮어서 해설을 하면 안 되지요
언어라는것은 생활환경과 習俗,(습관과 풍속) 환경등으로 자꾸
변화를 해 가는것이지 글자 한자 단어 하마디 字句 하나로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慣用句(관용구)라는 것도 있고 俗語 같은것도... 역전은 앞전자가 있어서
역앞이란 뜻인데 또 앞전자를 쓰면 안된다는것은...그리고 사이사랑으로 하는것이 옳다고 하면?
내가 당장 한마디 물어 볼게요 사이사랑이라 써두면 기둥서방 이란게 연상되지 않나요?
불륜 비슷한.... 사랑방이란 자연스럽게 사용할수도 있고 카페가 한국어 입니까? 외래어
이지만 한국어가 되었지요 트랙터가 이북에선 뜨락또르 라틴어 어원에서..
역시 와운!
사이사랑방 작명의 전말은 내가 원래 "경북중고42회 카페"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처음 만들어 운영을 하자
두천이 짧게 멋진 작명을 한번 해보는게 어떠냐라고 하여서, 나름 고심을 하다가 42회를 모두 아우르는
뜻으로 우리사이(42와 발음도 같고)에 우정을 나누는 카페 방이란 뜻으로 사이사랑방이라는 명칭을 지어내 본 것이지요.
모두들 "거 조타~" 뭐 이런 과정을 거쳐 개명을 하고 내가 카페를 몇년하다가 백초에게 억지로 승계
하였더니 안하겠다고 하던 사람이 지금처럼 대 발전을 이룩하였고---.
그건 그렇고 따로 "사랑방"이란 말만 하더라도 와운의 명쾌한 해석, 해설이 더이상 변설을 불요하게 하네요~.
여기시간 지금 11시 30분인데 오늘 오전에 8시에 피 뽑아러 갔고 10 시에 치과의사
예약 때문에 갔다오고...새벽 한시쯤 부터 컴퓨터는 나의 부주의로 완전 연결불통이 되고...
한밤중에 전화질을 몇번이나 하고... 이제 겨우 자력으로 연결 하였습니다
나의 부주의로 프로토콜을 전부 지워버려서... 하지만 자력으로 복구는 했으나
독일 넷트워크 놈들이 속임수로 나를 곤경에 빠뜨린걸 나는 압니다
내가 한국을 찿아 왔을때 원평재 형이 서울 방장이었고 여경우 교수가
운영자처럼 홈페이지 사진도 올리고 그랬었지요
박철상 이란 대학생도 그때 한국의 인터넷에서 한번 읽었는데
지금도 기억을... 그 학생이 어떻게 하버마스 교수를 --
희안하다 싶어 그 당시 찿아보니까 서부국민학교 졸업생이기에...
지금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었때문에 그렇게 많이 조회를
할까요? 나는 압니다 왜? 마지막 댓글에 내가 쓴것 내 조국을 위해서
한번 조언을 해 주겠다는 그 말 때문에... 궁금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