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연구]
추락은 아마도 그 역동적이고 직관과 들어맞지 않는 특성 때문에 가상의[상상된] 공포를 불러오는 근원지가 되는 것 같다.
위험을 감수할지 말지에 대해 예 아니면 아니오라는 간단한 답을 이끌어내는 게 우리의 목표다. 대부분의 등반가들은 어떤 종류의 추락에 대해서는 충분히 안전하다고 여기는 반면 또 다른 종류의 추락에 대해선 너무 위험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이 장에서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추락에 대해선 행동으로 온전히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등반가들에게는 이 같은 수용이 쉬운 일이 아니다. 클럽에서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나 스포츠클라이밍 영역에선, 선등하다가 추락하는(lead falls) 데 익숙한 편이다. 그들은 안전하게 추락하는 방법을 대개 초보시절에 배웠다. (이와 달리)전통적인 암벽등반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선등하다가 추락하는 것에 대체로 저항감을 느낀다. 그들은 금속장비[확보물]를 설치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추락하더라도 덜 위험해 보이는 즉 각도 낮은 지형에서 등반했다. 추락에 저항하는 습관은 오래가는 경향이 있고, 확보물을 설치하는 방법을 알고 바위를 오를 때조차도 그렇다. 누구나 추락을 두려워한다. 심지어 스포츠클라이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은 단순히 부상에 대한 공포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다. 추락은 통제력을 잃어버린다는 느낌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바위에 단단히 달라붙어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다가 그 다음 순간 허공 속을 맨몸으로 추락하게 된다.
어떤 심각한 위험이 없는데도 추락의 공포를 느낀다는 건 다른 가상의 공포가 있다는 것이다.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예를 하나 들겠다. 1988년에 엘 캐피탄 살라데 벽(Salathé Wall)을 자유등반으로 처음 오르다가 벌어진 일이다. 이 암벽은 어느 곳보다도 오르기 힘들고 길 뿐 아니라 아직 자유등반으로 누구도 오르지 못한 곳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곳에 도전한 등반가들은 기량이 매우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했다. 지상에서 약 600미터 높이에 있는 헤드월(Headwall) 피치에서 토드 스키너(Todd Skinner)와 폴 피아나(Paul Piana)가 등반하고 있었다. 등반은 이들이 한계에 다다를 만큼 어려웠고 조금만 집중력을 잃어도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 같았다. 헤드월 크랙을 오르는 동안 그들은 며칠 동안 바위벽에 매달려 비박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탓에 정신이 산만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아침이 시작될 때부터 그랬다. 그들이 있는 곳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힘든 (위태로운) 일이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걸 막으려고 그들은 날마다 긴 추락을 의도적으로 감행했다. 4.5미터, 7.5미터, 마지막엔 심지어 12미터까지. 그러고 난 뒤엔 초조함이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늠한) 추락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였고 그들의 온 집중력을 등반 과정에 쏟을 수 있었다.
당신은 추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추락은 등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현대의 로프들과 장비는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등반에서 당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일 위대한 자유를 제공한다. 이 같은 자유를 활용해 추락과 친밀해질 필요가 있다. 주기적으로 추락하지 않으면 추락에 저항하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하게 추락하려면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다리로 로프를 감거나 바위턱에 부딪치는 경우, 또는 옆으로 흔들려 장애물에 부딪치는 경우엔 아주 짧은 추락으로도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안전하게 추락하길 바란다면 이 같은 위험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등반 때마다 준비운동 삼아 추락을 연습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추락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그것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고, 그 루트를 완등하는 데 도구 또는 기술로 그것[추락]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추락에 능숙해지고 친밀해지지 않으면 추락의 공포 속에서 주의가 산만해지고 등반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 안전하게 추락하는 기술
등반가에게 추락은 중요한 도구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아주 짧은 추락으로도 부상을 입을 수 있다.추락은 피치 못할 통제력 상실과 연관이 있다. 거기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확보자가 부주의하거나 서투르면 등반자를 떨어뜨리거나 장애물에 부딪치게 만들 수도 있다. 로프시스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등반하다가 추락에 의해 로프가 날카로운 바위모서리에 쓸리면서 끊어질 수도 있다.
추락의 결과를 가늠할 때는 확보지점 간의 거리뿐만 아니라, 마지막 확보지점을 지나 올라간 방향, 암벽의 각도, 오버행 구간에서 확보물의 위치 들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등반자가 확보지점 옆쪽에 있다가 추락하면 좌우로 흔들리게 되고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다. (1) 추락할 때 마지막 확보물을 설치한 쪽을 향해 뛰면 좌우로 덜 흔들리고 따라서 장애물에 부딪칠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 (2) 오버행에서는 확보자가 로프를 조금 더 (등반자에게) 빼줌으로써, 바위 앞으로 끌려들어가 장애물과 충돌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3) 루프(지붕) 아래쪽에 확보지점이 있을 때, 그 루프를 넘어서려다 추락하면 벽 바로 아래에 부딪칠 수 있다. 이때도 확보자는 로프를 늦춰서 충돌가능성을 낮춰야 한다. 이제 추락연습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 추락 연습
추락을 연습하면 그것을 미지의 것으로부터 정상적인 등반과정의 하나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하라. 추락은 위험할 수 있다! 추락지점을 현명하게 고르고, 조금씩 서서히 연습하라. 연습방법을 선택했다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신 몫이다.
추락연습 지역에는 돌출된 바위가 없어야 하고, 확보지점에 상태가 좋은 여러 개의 볼트가 있거나 전통적인 암벽등반에 쓰는 확보물들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한 지점에서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위험한 추락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처음 연습할 때는 약간 오버행인 장소가 부상 가능성을 줄여준다. 경험이 쌓이면 수직의 암벽이나 어느 정도 앞뒤 또는 좌우로 흔들리는(swinging) 추락도 연습할 수 있다. 등반자와 확보자 사이의 로프 길이는 9m가 넘어야 추락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연습하는 동안 로프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몇 차례 추락한 뒤에는 확보물에 의지해 매달려서 로프가 원래의 모양과 길이로 돌아올 시간을 주어야 한다.
추락 연습을 할 때는 올바른 자세를 잡아야 한다. 두 팔과 다리는 살짝 구부린다. 두 팔은 가슴 높이에서 앞으로 뻗는다. 그래야 충격에 대응할 수 있다. 로프를 잡지 마라. 뒤쪽으로 몸을 던지기보다는 스텝을 부드럽게 떼는 편이 낫다. 뒤쪽으로 점프하면 앞으로 돌아오게 돼 벽에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계속 호흡하고 편안함을 유지하라.
아래에 단계별 추락연습법을 추천한다.
A) 톱로프(Toprope).
일단 톱로프로 추락연습을 시작한다. 먼저, 루트를 등반하다가 손을 놓고 로프에 매달린다. 발을 끌거나 달리듯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왔다갔다한다. 시스템을 믿고, 바위에 붙어있지 않는 상태에 편안해져라. 다음엔 안전지대에서 로프를 1m쯤 늦춘 상태로 뛰어내린다. 로프 길이를 조금씩 늘려가면서 이를 반복한다. 연습하는 동안 자세에 신경 쓴다.
B) 선등 중 추락(Lead falls).
이 단계의 추락은 확보지점에서 시작한다. 방법은 톱로프 상태에서의 추락과 비슷하다. 로프가 길어지는 만큼 추락 거리도 늘어난다.그것이 익숙해지면 등반 동작을 한 번 취하다가 추락한다. 다음엔 한 번에 하나 내지 두 개 동작을 취한 다음에 추락하는 식으로 늘려간다. 추락거리가 늘어나도 편안할 수 있으려면 단계마다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6m 정도 추락해도 편안함을 느낀다면, 웬만한 스포츠클라이밍 루트에서의 추락엔 대비된 셈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추락 연습은 위험할 수 있으니 추락 지역을 현명하게 골라야 한다.
C) 비스듬한[사선] 추락(Diagonal falls).
모든 루트가 다 반듯한 것도 아니고, 반듯한 루트에서만 추락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추락 요령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면 펜듈럼을 포함한 다른 추락들도 경험하고 싶을 것이다.
추락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게 되면 옆으로 흔들리는 위험한 추락도 예방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연습하려면, 먼저 마지막 확보지점에서 약 1m 정도를 비스듬하게 올라간다. 그런 다음 방금 지나온 마지막 확보물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내린다. 그 직후에 로프가 팽팽해지면서 몸이 어느 쪽으로 흔들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뛰어내리면) 펜듈럼이 줄거나 일어나지 않는지를 주의 깊게 느껴보라. 어느 쪽으로 어떻게 뛰어내리는가 하는 전략, 그리고 확보지점과의 거리에 따라 당신 몸의 궤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주의를 기울여라.
▲ 덧붙이는 말
추락 연습은 근거 없는 두려움과 진정한 걱정거리를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추락의 결과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추락을 제대로 배움으로써 “일상적인” 추락에서 부상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비록 부상을 완전히 막을 순 없다 하더라도.
어떤 추락이든 당신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다. 그런데 추락하면 부상이나 죽음까지 불러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루트들이 있다. 이런 루트들에서는, 일단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고 따라서 추락하게 되는 지점으로 진입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뻔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 사실을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추락은 불시에 일어날 수 있다. 추락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R”(런아웃[runout]: 확보지점 간 거리가 먼 곳)이나 “X”(추락하면 바닥을 칠 가능성이 있는 곳) 루트에 가선 안 된다. 추락하지 않을 거란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마라. 홀드가 깨지거나, 발이 미끄러지거나, 팔에 펌핑이 올 수도 있다. 추락에 대한 공부 안에는 추락과 부상/죽음과의 연관성에 대한 공부도 들어있다. 위험을 감수할지 말지를 먼저 결정하라.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라. 내려올 때와 루트를 중단할 때를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