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이야기꾼-
옛날 추운 겨울 밤, 온돌방에 펴 놓은 이불 밑에 동생들과 발을 한 곳에 모우고 엄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던 적이 있다. 이야기가 끝나면 더 해 달라고 보채다 잠들었던 옛날이 있었다. 그런 시절, 시골장터에서도 이야기판이 벌어졌는데 거기서 들었던 이야기를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 기억 못하지만 세상살이에 얽힌 이야기들이었다.
삶의 한 풍경이었던 그 이야기판 현장은 이제 없다. 아이들은 바빠 부모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고 이야기꽃의 산실이었던 시골장터는 황량한 아파트단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옛 장날은 축제였다. 장날이 되면 살찐 씨암탉, 새끼 돼지, 갓 잡아 온 생선, 신선한 밭나물 등 팔 물건을 챙기고, 농에 넣어두었던 옷을 시장나들이 옷으로 갈아 입느라 사람들은 아침부터 부산했다. 또 모처럼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눌 생각에 기쁨이 그리고 물건을 사고 팔며 떠드는 소리로 왁자지끌한 축제였다. 그래서 시골장은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 정보 교류장, 다양한 눈요기 제공처였다.
이런 시골장에 별난 것 하나가 이야기판이었다. 시장 한 모퉁이에 걸쭉한 목소리의 한 노인이 이야기판을 여는 것이다. 어릴 적, 시장에 자주 놀러 갔고 또 이야기판이 좋았던 나는, 장날이면 어김없이 이야기판 현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구경꾼들은 이야기 꾼을 중심으로 반달모양의 대형을 갖추고 앉거나 서서 들었다. 한바탕 이야기 마당이 펼쳐지면 반응은 즉각 나왔다. 재미있는 이야기면 "옳소" 맞장구를 쳤고 판이 끝나면 박수와 환호는 물론, 돈을 던져 주는 사림도 있었다. 그 반대일 때는 판이 금방 썰렁해 지고 사람들이 속속 자리를 떳으니 이야기판에 나서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경꾼을 모우고 호응을 얻어려 그들은 이야기 내용과 표현기법들을 열심히 준비했을 것이고, 구경꾼들의 숫자와 반응에
명예와 자존심을 걸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것과는 달랐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이야기 창조자였다. 자기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다양한 표현으로 이야기의 맛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런 독창적인 표현들은 그들의 작가적 소산이므로 그들은 작가였고 그들이 창작한 작품을 시장에서 발표한 셈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다 자기 철학과 인생을 담았고 또 이야기를 통해 여유로운
삶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멋진 이야기꾼들은 지금 없고 사람들도 옛날이야기를 나누거나 즐겨하지도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다양한 매체가 공존하는 오늘의 문화적 현실을 잘 반영한다.
인터넷, SNS, TV이야기판이 옛날 이야기판을 밀쳐내었기 때문이다. SNS와 인터넷은 허무한 언어만 양산, 난무하고 TV에서는 아무 감흥도 여운도 없는 개그맨들의 우스개소리로 뒤범벅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판은 아날로그 세계에서 행해질 때 맛이 나고 진한 법. 디지털 이야기판은 문화의식도 작가정신도 부족한 사람들이 판치고 '무엇이라 카드라 식'의 이야기들만 하고 있을뿐이다. 이런 모습은 이야기판의 본질인 감동도 철학도 인생의 냄세도 담기지 않은, 한갓 소음일 뿐 시청자들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패거리판 정치 논란들, 연예인들의 추문이나 몸값 이야기들, 말 장난식의 우스개들이니 들으면 오히려 공허감만 쌓이고 우리 영혼은 황량해지고 있다. 셰월이 흐르면 바뀌거나 없어지는 것 많다지만,
영혼을 살찌게 하고 삶을 즐겁게 했던 이야기꾼은 정말 사라지고 없단 말인가? 그 정겹고 그리운 이야기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