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마약 관련 뉴스가 심각한 수준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왜 마약 거래가 뿌리 뽑히지 않고 성행하는지 궁금증만 더합니다.
이해를 돕고자, ‘문피아’에 올리지 않은 마약 관련 몇 회차분도
임시로 급히 옮겨 싣겠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
147. 부산 조폭 순위 3위, 통합서면파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있는 유태파 본부 사무실.
두목 박신배가 홀로 앉아 봄비가 추적거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착잡한 기분에 휩싸여 있다.
부산 영도다리 남항만 근처 ‘유태주유소’에서 조폭 간의 전투를 벌인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고문도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대가로 유태주유소의 지분 51퍼센트를 건네주고, 고문도를 등기이사로 등록까지 해줬다.
거기다 감사 자리는 문도가 추천한 어방배달 박강철 사장으로 임명하고 보니, 자기가 대표이사 자리를 차지하고, 수족인 영도파 보스 배차돌을 나머지 등기이사로 임명했지만, 어쩐지 허전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50대 중반 나이 때문인지 요즘 들어 날씨만 우중충해도 근육과 뼈마디, 온몸의 삭신이 욱신거리고 쑤신다.
젊은 날 조직 내에서 빨리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온몸으로 발악하며 험한 세상을 살아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끊어볼까 생각하던 담배를 꺼내 막 피워 무는데,
핸드폰이 ‘날 좀 보소~’ 하며 울린다.
“어떤 시브럴 놈이야?”
하면서 열어보니, 서면파 두목 서면발의 전화다.
‘어? 이거 어쩌지? 큰일이네!’
붉어졌던 박신배의 얼굴이 금세 하얘진다.
서면파는, 위치가 유태파 나와바리인 범일역 바로 위에 붙어 있으면서, 서면역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데, 조직원이 유태파보다 10명 많은 50명이다.
물론 지금 박신배는 조직원이 30명인 배차돌의 영도파도 자기 꺼나 마찬가지로 거느리고 있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해삼과 멍게 추적이 어찌 됐냐고 물어볼 텐데, 뭐라고 변명하지?’
박신배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서면파에서, 자기들과 우호 관계에 있는 서울 신림동 이글스파를 배신하고 잠적한 조직원의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내면서, 혹시 김해 쪽 어느 조직에 은둔하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었다.
바로 해삼과 멍게의 사진이었다.
그들의 위치를 알아낸 배차돌이, 자기한테 보고도 안 하고, 무뎃뽀로 어방배달에 쳐들어갔다가 되레 역습당해서 큰 사달을 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자기 유태주유소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그 결과 마약 거래의 덜미가 잡혀서 묵인해 주는 대가로,
시가 50억 원이나 되는 자산을 문도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었던 것이다.
‘배차돌이 이 자식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 살 거야!
해삼은 아직 수색 중이라고 해야지 뭐, 별 수 있나?’
“아, 서면발 보스님. 안녕하시오?”
-“하하, 그래요. 많이 바쁘시지요?”
연배도 비슷한 서면발이 웬일인지 기분 좋은 웃음으로 답한다.
“저야 뭐, 바쁠 게 있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낼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요? 무슨 일이신데요?”
가까운 사이라도 직접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서울 이글스파 이인자 되시는 분이 내려오셨는데, 식사나 함께했으면 해서요.”
‘이글스파 2인자가 왔다고? 이거 진짜 큰일 났네!’
시침 뚝 떼고,
“아, 그 해삼인가 하는 배신자 때문에 오신 모양이네요? 그런데, 어쩌지요? 우리가 맡은 김해 쪽에는 아무리 훑어봐도 없는 것 같은데……”
-“아, 부담 가질 거 없어요. 우리 잘못도 아닌데요, 뭘! 그냥 오셔서 인사나 나누시면 됩니다. 알아 둬서 나쁠 거 없잖습니까? 허허.”
서면발이 서면파와 유태파의 우의가 돈독하다는 걸 이글스파에게 과시하고 싶은 게 분명하다.
“아, 그래요? 당연히 시간 내야지요! 어디로 몇 시에 가면 되겠습니까?”
-“7시에,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 2층, 일식 레스토랑으로 오시지요.”
“아, 예. 알겠습니다. 우리 영도파 배차돌 보스를 데려가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러십시오. 그럼 이따 봅시다. 허허.”
“예, 그럼 들어가세요. 허허.”
안심된 박신배가 굽실, 전화를 끊었다.
뭐야? 이거. 유태파와 서면파가 완전 하하 호호 관계잖아!
사실은, 서면파와 유태파는 오랜 전부터 아주 밀접한 우호 관계에 있는 조직이다.
폭력조직 서면파는 지난 1991년 강OO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서면 일대에서 각종 범죄를 저질러 왔다. 그러다 2007년 두목 강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조직이 급속히 약화됐다.
이 틈을 타 서면 북쪽에 인접한 연지동과 초읍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물개파’가 조직 이름을 ‘부전동파’로 바꾸면서 서면역 북쪽 부전동 일대의 유흥주점과 오락실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서면파는 2007년 12월에 조직원이 칠성파 조직원에게 보복 살해당하기도 하는 등, 코너에 몰리게 되자, 남쪽 범일동 일대 조방 인근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유태파에 눈을 돌렸다.
유태파도 당시 부두목의 구속 등으로 세가 떨어진 상황이었고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2008년 3월 결국 두 세력이 전격 연합해 ‘통합 서면파’라는 연합세력이 생겨났다.
유태파를 등에 업은 서면파의 세력이 커지자 부전동파가 조직 간 전쟁을 선포했고, 서면 복개천 등에서 몇 차례 충돌위기를 겪었다.
같은 나와바리인 서면 일대에서 자주 부딪치던 서면파와 부전동파의 세력다툼은 급기야 2008년 7월 부전동파 40명과 서면파 10명이 회칼 등으로 정면충돌한 초읍동 오락실 난동 사건으로 터지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양측 행동대장을 포함한 51명이 붙잡혀 33명이 범죄단체 가입 혐의로 구속되었다. 범죄단체 구성 혐의가 적용될 경우 조직에 가입한 것만으로도 징역 2년 형을 받게 된다.
그 이후로 서면파와 부전동파는 최대한 충돌을 자제하면서 세력 균형을 이루고 있다.
부전동파는 조직원이 46명인데, 우군인 초읍동 ‘모라파’ 10명을 더하면 56명이 되어, 조직원이 50명인 서면파에 약간 우위를 보인다.
그러나 서면파가 조직원 40명인 유태파와 합치면 90명이나 되므로, 서면파 두목 서면발은 어떻게든 유태파 두목 박신배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오래 전인 1993년에 영화 ‘친구’처럼 칠성파에서 갈라져 나와 반칠성파의 선봉 조직이 된 신20세기파와도 우호 관계인 서면파와 유태파의 연합조직 ‘통합 서면파’는 현재 부산에서 조폭 순위 3위로 손꼽히는 큰 조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이 2010년 초에, 두목에서 갑자기 물러나며 부두목 중에서 한OO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 일에 반발한 일부 하부 조직들이 이탈해 나가면서 칠성파는 심한 내부 분열로 인해 세력이 급속히 약해지게 되었다.
아무리 쇠락했다 해도 본부 조직원이 58명이고, 충성스러운 사상파, 동방파, 온천장파 등등 하부 지역 조직원이 260명이나 되는 칠성파는 현재까지도 부산 조폭 순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신20세기파는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 유흥가를 기반으로 1980년대에 1대 두목 정OO에 의해 구성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와해와 재결성 과정을 거치면서 3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대 두목 하OO에 이어 3대 두목으로 취임한 한OO는 2006년 1월 흉기를 든 조직원 60명을 동원해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난입하여 칠성파 조직원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2015년인 올해 42살인 두목 한OO는 3년 전에 구속되어 징역 6년 형을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고교 시절에 프로급 운동선수 출신인 조직원들이 막강해서, 신20세기파는 두목의 부재중에도 반칠성파 조직들과 연합세력을 형성하고 현재 부산 조폭 순위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편 새로 부상하여 통합서면파와 자웅을 겨루는 부전동파는 주로 오락실을 장악하고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여 조직의 자금줄로 삼고 있다.
부전동파의 자금책 고문인 차OO는 ‘부산 게임업계 대부’로 알려져 있는데, 2013년 7월 차OO가 통합서면파 조직원에 구타당하자 부전동파 두목 윤OO는 회칼과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조직원 20명을 서면파 비호를 받는 게임장에 보내 게임기 54대(시가 6,300만 원 상당)를 박살 내고 업주 등 2명을 폭행했다.
급 부상한 부전동파는 현재 부산 조폭 순위 4위를 넘보고 있다.
이로써 순위 1위인 칠성파와 2위인 신20세기파에 이어 3위에 속하는 통합서면파의 한 축인 유태파 박신배는, 오늘 다른 한 축인 서면파 두목 서면발과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 일식 레스토랑에서 만나 막강한 서울 이글스파 부두목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서면발과 통화를 마친 박신배는 우울했던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나 휘파람이라도 불 것 같은 기분으로 수하인 영도파 보스 배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큰형님! 배차돌입니다.”
“너, 앞 니빨 산뿌라한 거 작동 잘 되냐?”
배차돌의 앞니 두 개가 박강철이한테 맞아서 흔들리는 걸, 박신배가 뒤통수를 세게 치는 바람에 완전히 빠져나와 버렸다.
유태주유소 전투 때 적군이 테이저건 갖고 있는 걸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고 화가 나서 그랬다. 배차돌이 말을 하기는 했는데, 수십 명 조직원들이 아우성치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산뿌라는 산플라티니를 잘못 말한 것으로 크롬을 함유하는 은색의 니켈합금을 치아에 덧씌우는 것을 뜻한다.
-“예, 음식은 씹어먹을 만합니다. 근데, 산뿌라가 아니고, 브리지 했는데요?”
배차돌이 떨떠름한 소리로 대답했다.
브리지는 빠진 이빨의 양 옆에 있는 이를 버팀목으로 삼아 다리를 걸듯이 해 넣는 인공치아인 가공 의치이다.
“그래? 그럼, 저녁 먹지 말고 다섯 시까지 이리 와라!”
-“다섯 시까지요? 무슨 좋은 일 있습니까?”
식탐 많은 배차돌의 목구멍에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귀한 손님과 식사할 거니까 정장 차림으로 와.”
-“귀한 손님이요? 누구신데요?”
“오면 얘기해 줄게. 시간 있으니까, 때 빼고 머리도 단정하게 손질해서 광 좀 나게 하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큰형님! 목욕탕, 이발소 다 들렀다 가겠습니다. 흐흐.”
해운대 특급호텔에서 저녁 식사라니!
뭔 일인지도 모르는 배차돌이 간만에 신바람이 났다.
**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짙은 곤색(감색) 정장 차림의 배차돌이 박신배의 검은색 벤츠 S450을 운전하며 우쭐거린다.
“이거 완전 고급 세단이라, 승차감이 정말 죽이네요? 큰형님!”
배차돌의 차는 에쿠스인데, 어쩌다 삐까번쩍한 고급 외제 승용차를 처음 몰아보니 은근히 부럽고 탐이 나는가 보다.
“그래. 외제 차가 그냥 비싸겠냐? 국산 차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아직은 멀었다!”
상석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박신배가 봄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만족하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박신배는 그가 좋아하는 아래위 하얀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구두까지 하얗게 반짝이는 백구두를 신어 영판 늙은 제비처럼 보인다.
시골에서 땅 좀 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된 사람들이나, 흙수저 비슷하게 태어나 머리에 든 것도 없으면서 어쩌다 출세해서 큰돈이라도 벌게 된 부자들은 너나없이 대부분 외제 승용차를 선호해서 타고 다닌다.
과거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을 맘껏 누리려는 심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괜히 남에게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감추고 허세를 부리고자 하는 얄팍한 우월감의 발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조폭 두목쯤 되면 경쟁적으로 고급 외제 차를 선호해서 타고 다니는데, 이는 자기의 세력과 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딸린 식구들이 부러움과 함께 언젠가는 자기도 두목처럼 저렇게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조직에 대한 충성심도 깊어지게 되니까.
시가 1억 7천만 원이나 하는 벤츠 S450이 빗길을 뚫고 미끄러지듯이 달려가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 입구로 들어섰다.
해운대 명소로 손꼽히는 동백섬 초입의 이 호텔 바로 옆에는 해운대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있다.
울창한 동백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누리마루 APEC하우스는 세상, 세계를 뜻하는 우리말 ‘누리’와 정상, 꼭대기를 의미하는 ‘마루’의 합성어로 명명되었으며, 2005년에 열린 제13차 APEC 정상회담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조선호텔 입구에서 정중하게 맞이하는 호텔 보이에게 차 키를 넘겨준 두 사람은 우쭐거리며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뻐기며 앞장선 백구두 노신사 박신배와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뒤따르는 곤색 정장차림의 배차돌이 로비로 들어서자, 카운터 직원과 로비의 몇몇 손님들이 흘깃거리며 쳐다본다.
바로, 이 맛에 목숨 걸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힘들게 폭력조직의 보스 자리에 올라온 것 아니겠는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을 요상한 이방인처럼 여기고 있는 줄은 제 잘난 그 들이 알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