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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132) 2010. 6. 30
주안에서 사랑하는 문대헌 형제 부부에게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3)
이곳 고국에도 무척 무더운 계절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여러 가지 이상기후로 인하여 과일과 농작물의 피해가 많다고 합니다. 한국도 이제는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되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에서 갑자기 무더운 여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 가운데 모두들 잘 지내고 있는지요?
항상 무더운 기후 가운데 생활하는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 이곳의 무더위는 별것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은 그다지 습도가 높지 않은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인도 꼴까타는 습도가 너무 높아 참으로 힘든 환경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수고와 인내에 격려를 보냅니다.
신학자 Bengal 은 말하기를 “무거운 짐도 각오한 자에게는 가볍게 여겨진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마음의 작정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더위를 각오하고 극복하고자 하면 아무리 무더운 날씨도 시원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흔히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덥다고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냥 있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지만 더위를 무릅쓰고 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운동을 한 후에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면 더위도 순식간에 물러나고 몸의 활력도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무더운 계절에 수고하는 여러분들에게 격려를 보냅니다.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마음에 큰 결단을 하면서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당시 세계의 중심지 로마(Rome)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으로 마침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생애의 과정의 모습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헌신과 각오와 큰 결단이 그로 하여금 선교역사에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근대에 있어서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역사의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들 모두 해외 선교를 위하여 남다른 각오와 결단과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큰 도전과 격려가 되는 발자취들입니다.
문대헌 형제 가족은 고국에서 6주간의 보람되고 유익한 휴가기간을 마치고 지난 19일에 출국하였습니다. 문형제의 비자 문제가 형통하게 진행되도록 기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방글라데시에서 수고하던 김용범 형제 가정이 3년 만에 오늘(29일) 대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약 두 달간의 교제와 휴식의 시간을 통하여 영육간에 재충전의 기간이 되도록 기도하여 주세요.
지난 몇 주간 고국은 World Cup 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목표 달성에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8강의 문턱에서는 좌절의 쓴맛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잘 싸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지 못해 많은 아쉬움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가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항상 끝마무리를 잘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더욱 요구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사도행전을 묵상하며 공부하면서 다시금 사도행전을 개관하여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2001년 3월 호에 사도행전 개관 중 10번(행13장-)까지 보낸 적이 있습니다. 후속편으로 나머지 부분을 개관하여 보냅니다. 개인의 삶과 사역에 조금이나마 유익되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이 각자의 사도행전의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29장부터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여 나가야 합니다.
주님의 넘치는 은혜와 위로가 각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박 남규 부부 서신
11. Preaching the Gospel & Make Disciples(행14:1- )
바울의 본격적인 복음증거와 제자삼는 사역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13:47절에서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바울은 이 말씀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드리고,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이방선교의 사명에 헌신하였습니다. 행13장의 구브로 섬에서 첫 전도를 성공적으로 끝낸 바울 일행은 대륙으로 나아가 갈라디아 지방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였습니다. 구브로를 떠나 밤빌리아 지방 버가에 상륙하고 나아가 타우라스산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큰 핍박이 나서 쫓겨난 바울 일행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지방에서 적극적으로 전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21절) 그러나 이곳에서 바울은 돌로 맞아 거의 죽을 뻔 하였으나 다시 일어나 더베로 가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심한 핍박을 받은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가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투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세워야 하겠다는 오직 한 가지의 집념이 그로 하여금 어떤 두려움과 핍박을 감당할 내면적인 힘을 제공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0-22)
12. Problem Solving(행15:1-Council at Jerusalem)
예루살렘 총회는 바울의 제 1차와 제 2차 전도여행 중간에 삽화적인 기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유대의 신자들로부터 이방인 신자까지 모세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예루살렘 대 안디옥, 유대인 대 이방인, 율법 대 믿음의 중대한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이 총회의 결정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구원을 받는 그리스도교의 기본교리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더욱 확고한 체계를 확립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좋은 교훈들을 여기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문제제기(Current Issues)가 있었고, 그것에 대한 베드로의 모두 발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문제를 제기한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보고가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총회 의장격인 야고보의 종합적이면서 결론적인 발언이 있었습니다. 그의 중요한 발언은 이방인을 받아들일 성서적 근거와 조건의 두 가지이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발언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아모스9:11-12의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의문을 작성하여 문제가 제기되었던 안디옥 교회로 보내졌습니다. 몇 가지 조건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쟁이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그 조건이 구원을 위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실제생활에서 주의하고 삼가야 할 건덕사항으로 당시의 특수한 사정들과 상황에 의한 과도기적 규례이지 항구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가 지엽적인 문제로 인하여 가장 중요한 믿음의 본질적인 내용을 훼손하지 않고 서로가 양보하고 이해하고 존중한 태도가 참으로 성숙한 영적 지도자들의 좋은 태도이며 본이 되기도 합니다. 더 크고 더 중대한 사명과 본질을 위해서는 사소한 문제에 너무 집착하거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 총회는 참으로 은혜로운 회의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성숙한 지도자들이 모여 성숙한 결론을 도출하여 성숙한 자세로 서로에게 격려가 되는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13. Partnership with Tomothy, Aguila & Priscilla, Apollos---(행16:1 - 18: )
바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며, 다음은 아마 동역자 디모데를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뛰어난 면도 있었지만, 또한 함께 동역하면서 격려하며 오로지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팀웍 가운데 동행하였던 디모데가 항상 곁에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제 2차 선교 여행 중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할 때까지 디모데는 바울의 그림자처럼 함께 동행하며 동역하며 힘을 돕는 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자신의 삶이 이 땅에서 마감될 마지막 순간에 디모데를 속히 만나 보고자 하였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4:6-9)
아마 사랑하는 디모데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임박한 자신의 죽음(순교)까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믿음의 모든 유산(legacy)이 디모데를 통해 계승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결코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복음 안에서 열매를 맺어 계승될 것을 전망하며 큰 격려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 디모데 같은 동역자와 계승자를 얻는 것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일까요!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함께 영적 전쟁의 동반자인 그리스도의 군사(Soldier)로서, 주님의 복음 사명을 위하여 함께 동역하는 주님의 종(Servant)으로서, 마침내는 영적 자산을 승계할 후임자(Successor)로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울과 함께 순교의 영광과 기쁨을 공유하는 영적 아들(Son)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잘 감당하였습니다.
또한 18장에서 바울은 직업이 같은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아볼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바울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 중차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디모데 같은 충성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주님의 사역은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함께 동역하는 동역자들(Partners)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은 동역자들을 보내어 주시도록 기도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14. Providential Leading of Holy Spirit(행16:1- Asia → Europe )
선교사역은 개인적인 목표나 열망이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영적 분별력이 매우 요구되어 집니다. 선교지의 방향, 선교 기간, 선교사역의 열매 등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 지방으로 가서 복음 전하기를 노력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반면에 성령께서는 유럽선교의 문을 열기 위하여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바울로 하여금 선교지 방향을 돌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의 빌립보로 향하게 되었습니다.(행16:6-10)
우리나라 선교역사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외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열악한 한국(당시의 조선)에서 오래 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싶었지만, 얼마 되지 못하여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가령 윌리암 웹킨지 목사님은 캐나다 분으로 캐나다 교회의 정식파송을 받지 않고 한국에 오셨습니다. 결국 그 분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캐나다 교회는 한국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암 웹킨지 목사님은 우연히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되어 몇 사람의 신앙 동지들의 후원을 받아 한국에 선교사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한국을 향해 떠나는 배 갑판 위에서 엎드려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저로 하여금 오래오래 한국에서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인천에 상륙하고 서울에 잠시 계시다가 황해도 솔레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19C말에 한국인처럼 살았습니다. 한국의 초가집에서 한국음식을 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얼마나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오래오래 이 땅위에서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하였지만, 1893년 6월 23일 한국에 도착한 후 559일, 약 1년 반 만에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으로 우리의 사역의 기간을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선교사역에 있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인도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지면, 유영식 번역>
15. Prison in Philippi & Protest of Jews(행16:16- )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으로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성공적인 사역의 시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앙심이 깊은 루디아를 만나며 큰 격려를 얻었습니다. 그녀는 유럽에서의 첫 열매요, 신앙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대가로 옷을 벗기우고 심한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로마시민권을 주장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었지만, 아마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묵묵히 매를 맞았습니다. 옥중에서도 기쁨에 찬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을 찬양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간수장과 모든 식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복음의 역사입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과 복음의 진보를 위한 바울의 희생과 어떠한 환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는 감사의 기도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교향곡이었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고 한 이 놀라운 복음의 선언은 빌립보 감옥이라고 하는 특별한 환경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16. Power of the Word in Ephesus(행19;1- )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몇몇 주님의 제자들을 만나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강림을 위해 안수하였을 때 성령 강림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열두 명의 제자가 성령세례를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그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강론하여 많은 제자들을 얻고, 그들을 따로 분리하여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하나님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무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때 또한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마술에 관한 책들을 모아 불사르는 온전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무려 책값을 계산하니 은 오만이나 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의 결과이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항상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님의 역사로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며,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말씀의 능력은 더욱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 뿐 아니라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시므로 병 고치는 역사와 귀신들을 내어 쫓는 역사가 일어나기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보게 된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붙들린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며,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희한한 권능을 나타내시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능을 높이어 드렸습니다. 할렐루야!
17. Possession of God's Word (행20:1- ) -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을 방문하고 돌아오기 전 마지막 날 저녁 시간을 보낼 때는 함께 식사하면서 지난 시간들의 즐거운 추억과 감사와 회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눕니다. 바울은 참으로 특이 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을 강론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드로아를 방문하여 그들과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떠나기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밤새도록 강론하였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강론하였기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턱에 걸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서는 다시금 날이 새기까지 교제하고 떠났습니다.
또한 밀레도에서는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놓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고별설교를 하였습니다. 고별설교의 핵심은 자신의 지난 3년간의 에베소 생활을 회상하며 자신은 모든 영역에서 모본을 보였으니 너희 지도자들도 모범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떠나는 시점에 강조한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바울의 깊은 확신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오직 영혼들을 굳게 세우고, 무장하고 견고하게 하여 마침내는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롭고 능력의 말씀이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말씀 이외의 어떤 사역도 제자들과 일꾼들을 세울 수 없습니다. 말씀 사역 이외의 다른 사역들은 일시적으로 우리의 감정이나 정서를 자극할 수 있으나 결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디모데 후서의 말씀이 제자삼고 일꾼을 무장하는 우리의 깊은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4-17)
18. Passion for the Gospel(행20:24- 21:13- )
19. Persecution & Arrest in Jerusalem(행21:1- Plot to kill Paul)
신학자 Bengal은 “무거운 짐도 각오된 자에게는 가볍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지만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를 환관장에 구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도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였습니다. 때론 중대한 결심과 각오가 여러 가지 두려움과 압박과 올무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57:7) 망설이고 주저하고 갈등하면 더욱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에너지가 분산되고 낭비됩니다. 집중과 결단은 새로운 힘을 제공하며 활력있는 에너지를 불러일으킵니다.
바울은 지금 중대한 결단을 하였습니다.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결산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바울을 만류하여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권고하였으나 이미 고난의 길을 각오한 그는 여러 가지 만류들을 물리치고 이제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제단에 바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32:13)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예언대로 체포되어 무리들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비록 심한 고난과 수난을 당하였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마음의 간절한 소원대로 로마로 갈 수 있는 빠른 길(행19:21)이 열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고난은 때로는 주님의 뜻을 더 빠르게 이룰 수 있는 첩경의 도구인 경우가 됩니다. 고난을 인하여 결코 낙심하거나 실망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20. Presentation of Paul's Faith & Testimony(행22: 23: )
믿음의 여정에서 자신의 변화된 삶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확신가운데 증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주셔서 일어난 변화된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복음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구원하여 주신 주님의 역사와 능력과 방법을 나타내므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한 호기심과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무기인 것입니다. 좋은 간증은 개인적인 확신과 경험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회심의 경험을 가진 자는 주님을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확신가운데 증언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자신이 정통 유대교 생활을 하였던 것에 대한 변명과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된 회심을 설명하고 그 이후 주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개인적 소명을 드러내므로 반론할 수 없는 변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논쟁으로서 도저히 당할 수 없으므로 폭력을 행사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위기를 느낀 바울은 이때에 자신의 로마시민권을 주장하므로 더 이상 폭행당하지 않고 로마 가이사 황제 앞에 갈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였습니다.
우리 개인적인 삶에서도 주님께서 어떻게 나를 구원하여 주셨는지를 돌아보며 명확하게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는 간증문을 작성하여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확신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21. Prisoner in Caesarea (행23:12 24:1- )
공적으로 바울은 해치지 못한 유대인들은 음모를 꾸며 그를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음모도 탄로가 되고, 바울은 무사히 가이사랴로 호송되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안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이며 당시 팔레스틴의 행정부의 소재지로 로마 총독이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110km 거리였습니다. 행24-26장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보낸 2년간의 옥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독 벨릭스(행24장)와 베스도(행25장)의 관할하게 있었고, 또 가이사랴를 방문한 아그랍바 왕(행26장)앞에서도 간증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비록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높은 임금들과 위정자들 앞에서 자신의 간증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계시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가 주님께로부터 구원의 큰 은혜를 받을 때, 함께 받은 소명의 실천이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바울에게 있어서는 항상 행동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환경이 편안하고 편리한 것(efficient)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복음을 증거하는 데 효과적인 것(effective)인가 하는 것이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2-18)
가이사랴의 옥중에서 바울의 영웅적인 증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26장에서 아그랍바 왕 앞에서의 용기있는 증거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큰 격려와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아그랍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행26:27)의 단도직입인 전도는 참으로 용기 있는 태도입니다. 또한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행26:29)는 도전은 자신의 삶 가운데 넘치는 확신과 주님의 날에 그 분의 영광을 바라보는 전망에 찬 신념과 가치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심문 받는 죄수의 신분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영웅적이고 도전적인 간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호소하므로 그토록 간절히 소망하던 로마로 갈 수 있는 길이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본국의 성도를 구제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바울은 그 본국인의 음모로 예루살렘을 떠나 결박당한 죄수의 몸이 되어 가이사랴에서 2년간의 옥중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의 손길이 계셔서 그를 로마로 보내신 것입니다.
22. Peace in the ship caught by the storm(행27:1- )
요한 웨슬러가 대서양을 건너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선교사이었습니다. “이 풍랑이 배를 덮친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선교 사역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진정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판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 살펴보니 모라비안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교파에 속한 몇 사람이 풍랑이 일고 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도회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소?”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소? 내가 사랑하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구원의 주님 앞에 설 것이 아니요?” 웨슬러는 훗날 자기의 일기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보다도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이 모라비안 형제들의 신앙 간증이 나에게 더 커다란 도전이 되었고 충격이었다.”
사도행전 27장은 사도 바울을 태우고 가던 배가 큰 풍랑을 만나 난파되어 모두가 죽게 되기 직전의 위급한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도우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도 때론 어려울 때가 있고 또 순풍을 타고 가는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13) 그러나 “얼마 못 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14-15)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15절의 설명처럼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갔다고 하였습니다. 도저히 배를 조정하여 항해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베테랑 선원들이 있었습니다. 항해 때에 생기는 온갖 문제들에 대처하는 훌륭한 기술과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모두의 기술과 경험이 다 무용지물일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배처럼 이미 조정 능력 한계 밖의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또 20절을 보면 드디어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암담하겠습니까? 이제는 다른 길은 없고 죽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풍랑을 만나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으면 자기가 간직했던 모든 아름다운 꿈은 사라지고 자기와 연관된 모든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영원히 이별할 것을 생각하며 비통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 상황에서 도울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평생을 배에서 보낸 선원들도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이제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새 희망을 안겨 주는 놀라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니라.”(22)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그들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기쁨과 평안의 소식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간직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습니까?
(1)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23)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평안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평안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의 삶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119:165)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119:50)
(2)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신뢰가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7:25)
무디 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죠지 스위딩은 “사람의 신앙의 깊이는 그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평상시에 순탄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에 진정한 위기가 닥쳤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드러나게 됩니다. 바울이 심한 풍랑 속에서도 온전한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과 약속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거나 실망시킨 적이 없기에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3) 주님을 위한 분명한 사명과 목표가 있을 때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정글에 도전하면서 리빙스턴은 종종 자기의 동료들과 자기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존재 이유가 다할 때까지, 나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크게 외치고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마침내 이 풍랑을 극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서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할 것이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사명이 너무나 분명하고, 주님께서도 나에게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기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위한 사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주님을 위한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사명과 목표는 자신을 위한 것인가 주님을 위한 것인가? 성서적인 타당성이 있는 그런 목표인가 하는 것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23. Promise Fulfilling(행27:25-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7:25)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의 성취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의 성취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명하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큰 권능을 덧입혀주시므로 그들은 성령의 권능 가운데 목숨을 바쳐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이제는 로마를 향해 복음의 불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방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고 하신 말씀이 바울과 그 일행을 통하여 성취되고 있습니다. 온 세계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놀라운 구원의 비밀과 경륜이 세계 열방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을 다시금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4. Proclaim the Kingdom of God & preaching Gospel at Rome(행28:1- )
바울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고난과 핍박과 험한 풍랑을 이겨내고 그토록 갈망하던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입성한 것은 주후 60년 입니다. 역사학자들은 바울 사도가 순교한 것이 대략 주후 64년에서 68년 사이의 그 어느 시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주후 60년부터 64년까지의 약 4-5년은 바울 사도가 마지막 로마 옥중 생활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옥중 생활은 어느 정도 자유가 허용된 생활이었습니다.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초청하고 싶은 사람들을 초청할 수 있는 오늘날의 연금 상태와 유사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약간의 자유를 이용해서 로마의 복음화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의 성취를 위해 온전히 자신의 삶을 불태웠습니다. 그 일을 위해 그는 지금도 로마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 불꽃이 시들기 전에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행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행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행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행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행20: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행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5. Personal History of Acts(행29:1- )
이제부터는 우리는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분명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에 합당한 삶을 살면서 우리 각자가 사도행전의 아름다운 선교 사역의 발자취를 기록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25:21, 23) 하시는 주님의 칭찬받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What is the Christian Mission?
(2) What is the Christian Message?
(3) What is your Role to enlarge the Kingdom of God?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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