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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불로 가는 극락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jiri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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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서쪽 끝에 있는 송악산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두 개의 섬이 있으니, 좀더 크며 가까이 있는 섬이 가파도이며 좀더 멀리 조그마하게 보이는 섬이 마라도이다. 마라도는 우리나라 국토의 최남단이다. 대한민국의 영토 중 흙이 존재하는, 인간들이 발로 밟고 일어설 수 있는 제일 남쪽 끝 땅이다. 마라도는 섬 전체 면적이 약10만평 정도이고 섬을 빙 돌게되는 해안선의 길이가 십리 조금 넘는, 도보로 1시간쯤이면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마라도는 길쭉한 타원형으로 마치 한 척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다. 그리고 그 둘레에 마치 운동장 트랙처럼 포장된 도로가 있다. 위에서 보면 타원형의 형체지만 옆에서 보면 마치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형태이다. 바다 가운데 붕 떠있는 듯해 섬이 파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가져올 때도 있다.
기자가 20여년 전 마라도에서 잠시 생활을 할 때와 지금의 마라도는 영 달라져있다. 하기야 강산이 두 번은 바뀔 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제주도의 모습이 20여 년 전 마라도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였다. 굵직한 동아 밧줄로, 마치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은 지붕의 모습이 그렇고,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었을 정도로 낮은 집 구조가 그렇다. 요즘 제주도의 민속촌이나 민속마을의 그것들에선 왠지 억지부린 장사꾼 냄새가 난다.
가끔 소개되는 제주도 민속놀이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이어도 타령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어도 타령에 나오는 전설의 섬 이어도는 마라도 앞쪽에 있다는, 말 그대로 전설의 섬이었다.
제주의 여인들에게 이어도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혼이 잠든 곳이며 결국 자신도 님을 따라 찾아가야 될 곳으로 믿는 전설의 섬이었다. 다시 돌아오지는 못하지만 사시사철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 여겼던 이어도는 지겹도록 고달픈 이승의 삶을 떠나 제주도 여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꿈의 섬일지도 모른다. 소설 <이어도>에서는 '긴긴 세월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이어도를 말하고 있다. 그렇게 이어도는 전설의 섬이자 보이지 않는 상상 속의 섬이었다.
얼마전 이어도에 첨단 해양과학기지가 들어섬으로써 이어도는 더 이상 전설의 섬이 아닌 현실의 섬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400평에 불과한 작은 해양기지이지만 이어도는 동중국해의 어업 전진기지가 될 축복의 장소로 변했다고 한다. 전설 속에 머물던 이어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여전히 구원과 복을 주는 피안의 장소로 마라도 사람들에겐 기억될 것이다. 애환 가득한 마라도 여인네들의 한을 달래고 영혼을 구원해 주며 넉넉한 마음으로 복을 주는 피안의 장소로 인도하려는 듯 작은 섬 한국의 최남단 마라도에도 기원정사라는 절이 있다.
제대로 된 일주문 하나 없이, 바닷가를 걷던 해안 길에서 그냥 들어서게 되지만 기원정사에는 은은함과 웅장한 타음을 담은 범종이 아침저녁으로 영락없이 타종된다. 철썩이는 파도와 기암절벽을 이룬 작은 섬에서 뎅∼ 뎅∼하고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는 마라도 사람들에게 삶의 애환을 달래 줄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그런 푸근함으로 느껴질 듯 하다. 범종각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게 되면 한국 최남단에 자리하고 계신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불자들과 창건주 법우스님의 기원을 담아 1987년 봉안되었으며 그 염원을 이루려는 듯 북쪽을 향하여 자비로운 모습으로 서 계신다.
대웅전에서 몇 걸음만 더 나가면 망망대해 바다뿐인 이곳에도 통일을 염원하며 서 계신 관세음보살님이 은은한 불심을 피워내고 있다. 세계적 불교계 지도자 중의 한 분인 틱낫한 스님은 화를 다스리고 행복을 찾는 방법 중의 하나로 걷는 명상을 말씀하신다. 유람선을 타고 쫓기듯 둘러보는 마라도 기원정사는 조금 초라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루나 이틀쯤 그 곳에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섬 전체를 빙 둘러보며 명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속세의 모든 근심을 씻을 수 있을 것 같다.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섬 벼랑 위를 걷는 여유에서 넉넉한 행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