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왕당파와의 화해의 술-장충동 족발집 회식
지리산 첫 종주를 전후로 제법 강도있는 연신내-백운대의 삼각산 종주 산행과 근교 산행이라도 가급적 장거리 코스에의 도전이 계속되었는데 마라톤에 빠진 류창하가 마라톤 연습 짬짬이 산행에 참석하게 되고 정기욱의 지리산 종주 산행 참가를 계기로 산우회의 면면은 다시 옛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다.
2001년 7.21 산행은 의상능선 산행이었고 오랜만에 이종수가 참가하고 광주에서 김처사도 올라왔는데 마침 장마철이라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것이었다.억수같이 퍼붓는 빗줄기로 잠간 사이에 계곡에 물이 넘치고 집채만한 바위도 쓸려내려갈 듯한 성난 물결이 짓쳐 내려왔다.
도저히 산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고 막걸리 한두잔 마시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대낮이지만 장충동 족발집에서 소주 회식을 하기로 하였는데 빗속에서 단독 산행이라도 해야겠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는 신윤식을 거의 떼밀듯이 하여 데려갔다.
사실 동기 동창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만나는 곳에는 찌그럭째그럭 소리가 나는 법이어서 南모가 소위 쿠데타의 원흉이기도 하지만 南모와 이종수 사이에도 무슨 사연으로 티격태격하던 일이 있었고 이종수가 백번 양보하여 오늘 소주를 사는 날이었다.
대낮부터 꽤 마셨다.일찌감치 신윤식이 마루에 댓자로 뻗고 사무실에 있던 정기욱과 이용호에게 연락하여 즉시 업무 중단하고 족발집으로 오라하니 금세 달려와 오랜만에 왕당파 4인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질탕한 술판이 끝나갈 무렵 南모가 이종수에게 집에 있는 처자식들도 족발을 먹을 줄 아니 산우별로 별도 포장 서비스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이종수의 주머니에서 족발값만 40만원 가량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다시 노래방으로 몰려갔다가 이종수,이용호,정기욱등 왕당파의 핵심들은 南모의 집까지 가게 되었다.南모도 지체없이 17년산 위스키를 꺼내 모두 미련없이 大醉의 길로 들어섰다.당시에 이종수가 벗어 놓고 간 모자를 아직 南모가 보관중이다.
4)백두산에 올라
南모가 8월초 여름 휴가를 이용해 백두산 천문봉에 올랐다.정식 등산이 아닌 관광코스였지만 妻와 함께 올라 백두산의 거센 비바람도 맛보고 구름 흩어지는 사이로 天池의 푸른물도 내려다 보았다.
비록 지금은 남의 땅이라 하는 곳에서 바라보는 처지이지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겹쳐지는 산줄기들의 웅장한 흐름,일망무제로 펼쳐지는 만주 벌판과 송화강을 바라보며 백두대간의 시발점이자 민족의 명산인 백두산에 올랐다는 감동의 흐름을 맛보았다.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에 빼앗긴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는 아라라트 산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러할까...南모는 눈덮인 아라라트산 바로 밑까지 가 본일은 있었다.
백두산의 조망은 앞으로 산행에서 맛볼 감동을 미리 다 앞당겨 맛보는 느낌이었는데 제대로 계획을 세워 서파 코스로 천지를 끼고 연봉을 넘너드는 산행을 산우들과 함께 하리라 생각했다.산아래에서 먹는 돼지고기,두부,白酒등의 촌스런 맛이 어찌나 입에 착착 달라붙던지....
南모는 연길,북경,백두산의 풍광을 떠올리며 산우들에게 몇자 소식을 띄웠다.
5)신윤식의 Trade Mark
신윤식이 정식 대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산행시마다 크림과 설탕을 듬뿍 친 따뜻한 강북식 커피를 보온병에 싸왔는데 아직도 계속되는 이 보시는 신윤식의 이미지와 상표권 비슷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이 한가지 만으로는 부족한지 여름이면 차게 갈무리한 오이와 겨울이면 따끈한 된장국을 준비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넓혔으며 특히 4인방들이 톡톡히 신세를 졌다.겨울에 김밥 먹을 때 얼마나 좋은가.
朴씨부인이 꾸준히 싸주시는 것인지 본인이 준비해 오는 것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4년 넘게 싸오고 있으니 積善之家에 必有餘慶일 것이다.
학교 다닐 때에는 끙끙거리며 수학2의 문제만 푸는 뚱보인 줄만 알았는데 대학가서 산악반 활동을 하며 인수봉에도 올랐다 한다.당연히 살도 많이 빠졌을 터인데 또 항상 순한 것만은 아니어서 언젠가 산에서 이용호가 이래라 저래라 했다가 혼 난 적도 있었다.
하여간 동네의 어린애나 개에 관련된 일은 반드시 상관하고 넘어가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는데 산우들은 일찌기 신윤식에게 산행의 진로결정권을 부여했고 신윤식도 이 권한 만큼은 꼭 행사하려는 고집을 부려오고 있다.
6)국립공원 명산 순례 산행
한국에는 15개의 산악형 국립공원이 있다.요즈음이야 삼각산 국립 공원은 매주 오르다시피 하고 설악산과 지리산도 백두대간 산행에의 참가 덕택에 자주 가보게 되었지만 나머지 국립공원 명산은 산행 모임을 따라 가거나 자체로 교통,숙박을 해결하여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다.
南모는 앞만 보고 걷는 산행 모임을 따라 다니며 시간 제약을 받는 것 보다는 자체 계획으로 움직이는 것이 융통성 있고 자유롭다는 판단아래 국립공원 명산 순례 계획을 세워 2001.9.1 속리산 산행부터 2003.2.22 주왕산 산행에 이르기까지 십수차례에 걸친 산행을 기획하였다.이 산행들은 대부분 南모의 주관과 책임아래 계획되어 시행되었고 南모의 최대 관심사중의 하나는 하산하여 먹게될 맛좋은 그 지방의 향토 음식이었다.
당시의 산행기획 내용의 質에 대해 참여하였던 산우들의 공정한 평가를 기대한다.
(1)명산에의 첫 발걸음 속리산 산행 :2001.9.1-9.2
참가산우:김인욱,김종철,남장현,류창하,신윤식,한수복
하루 전날 도착하여 한밤중에 먹은 민박집의 매운 라면 맛이 그럴듯하였고 백두산잣을 안주로 술 몇모금 한 다음 김처사가 코를 골지 않을 것 같은 동숙자로 남모를 골랐다가 낭패를 당했다.
풍성한 모습의 주인 아주머니가 싸준 김밥을 들고 물길 따라 걷다가 산중턱 암자에서 수능 고득점기원 3배도 드리고 올라갔다.
백두대간 마루금인 천황봉을 먼저 올라 소위 충북알프스의 굼실굼실 흘러가는 산줄기들을 바라보고 힘을 내어 산죽이 다가오는 산길을 걸어 문장대에 올랐다.
천황봉에서 해의 南中시의 방위측정법에 대해 한수복,류창하등의 이견으로 신윤식이 화가 나 문장대까지 분을 삭이며 걸었었다.샘물이 솟는 자리는 모두 장사꾼들이 차지하여 문장대 부근의 물한모금의 인심도 어찌 그리 사납던지....
법주사 절구경에 마음을 조금 닦고 내려와서 먹은 정갈한 산채 음식들이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었다.
(2)壯快無比 설악산 서북능-공룡능선 산행:2001.9.22-9.23
참가산우:김경중,김인욱,김종철,남장현,류창하,신윤식,정기욱,한수복
南모에게는 처음 가는 산길이었다.아마 김처사를 빼고는 다 그러했을 것이다.南모가 끗발로 봉고차를 기사 포함 징발한 덕분에 늦잠자는 정기욱까지 깨워 태워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소위 서북능 산길을 처음 걸었는데 절벽에 걸린 듯한 느낌의 길이 아슬아슬 하였고 끝청의 시원한 전망,바람결에 실려오는 봉정암의 목탁소리가 나그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류창하와 김처사가 선발대로 중청에서 먼저 내려가 산장을 예약했고 나머지는 대청봉에 오른 다음 희운각으로 내려와 한수복이 준비한 고기를 많이 구어먹고 南모가 준비한 술도 잔뜩 먹은 다음 잠이 들었다.
다음날 김처사의 선도로 처음 공룡능선에 발을 디뎠는데 험한 바위 봉우리들의 아찔한 경치가 그만이었다.이날 피로 징후를 일찍 보이는 김처사가 노쇠하였슴을 느꼈고 류창하의 발걸음이 공룡능선에서만 1시간 이상 빨라 지도사범으로 자동 임명되었다.
마등령에서 정기욱이 준비한 산밤을 맛있게 먹고 지긋지긋한 금강굴 너덜길을 걸어내려와 비선대에서 맛보는 맥주 한모금은 역시 최상이었다.
척산온천 원탕에서 땀을 씻어내고 속초 부근 바닷가로 나가 한수복의 보시로 회를 푸짐하게 썰어놓고 소주를 마셨다.南모도 집에가서 생색낼 건어물을 보시하였다.
정기욱은 별도의 산행 준비없이도 큰산 산행에만 성공적으로 참여하여 자칭 6강의 실력을 선보였다.
(3)恍惚無比 오대산 단풍 산행:2001.10.13-14
참가산우:김종철,남장현,신윤식,한수복
콘도 비용을 한수복이 보시하여 편안한 잠도 자고 막걸리도 꽤 마셨는데 신윤식이 감자부침을 유난히 좋아했다.라면으로 해장하려다가 아침도 못먹고 대신 약수만 한바가지 퍼마시고 상원암을 출발한 발길이 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미륵암-상원암-월정사에 이르기까지 장장 오십리길을 걸은 산행이었다.
다행히 너무나 고운 오대산,동대산의 단풍 덕분에 시장기를 조금 덜 느낄 수 있었는데 비로봉에서 상왕봉 가는 길이 너무나 편하여 하늘에 걸린 오솔길 같은 느낌이었고 빨간 마가목 열매가 깊은 산중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뒤엉킨 단풍 인파와 차량으로 교통 수단은 자기 다리 밖에 없었는데 김종철이 월정사까지 걸어 내려오느라 무리했던지 발에 물집이 잡혀 고생했다.내려와 산채 백반을 먹을 때에는 배들이 고파 거의 민란이 일어날 수준이었는데 아뿔싸 진부로 나가는 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南모의 기지로 지나가는 트럭의 짐칸에 올라탈 수 있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담배나 한개피 달라는 것을 마침 아무도 가지고 있지않아 주지를 못했다.공짜로 차 얻어 타는데 미안하게 시리.....경상도 사투리와 함경도 사투리를 합하여 반분한 듯한 영서 지방 사투리를 들으며 버스 대합실에서 강원도 찰강냉이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4)雪景 산행의 진수 소백산 비로봉 산행:2002.2.2
참가산우:김종철,남장현,신윤식,한수복
풍기쪽 삼가동에서 둥글게 보이는 비로봉까지 단숨에 올랐다.비로봉의 바람이 그렇게 거센 줄을 몰랐다.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하여 깜짝 놀랐다.
천년 朱木 구경을 하며 내려오는 길에 눈이 어찌 그리 소담스럽게 쌓였는지 눈밭에 온 몸을 뒹굴렸다.붉고 푸른 주목이 흰눈을 이고 있는 모습에 기품이 서려 있었다.
단양으로 나와 마늘 정식을 먹고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이 날이 마침 立春이었다.집에 돌아오니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소식이 날라와 있었다.딸 아이가 무진 고생 끝에 미술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그 동안의 실패에 아빠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입춘에 희망을 느낀 날이었고 기뻐서 아끼던 아이스 와인을 딸아이와 집사람에게 한잔 따라주었다.사실 일주일전 산행에서 관악산 봉우리를 희망봉이라고 이름 붙인 연유가 여기에 있었다.
(5)金鷄抱卵의 계룡산 산행:2002.3.9
참가산우:김인욱,김종철,남장현,신윤식,이윤선,한수복
김경중이 산행을 많이 도와주었다.승용차를 내어주어 김인욱과 이윤선을 만나는 대전역부터 이동이 수월했다.
갑사에서 금잔디 고개를 넘고 또 자연성능과 몇 개 봉우리를 넘어 동학사로 내려왔다.춘삼월인데도 눈이 제법 쌓여 있었고 은선폭포는 바짝 말라있었다.언제 어느 때 다시 올 줄 모른다는 아쉬움에 정도령 생각도 했었는데 그 때 내려보던 땅들이 헌재의 위헌 판결이 난 천도 후보지는 아니었는지.....
내려와서 온천물에 땀을 닦아내고 김경중이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은 다음 서울행 경부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6)돌탑을 쌓은 奇人이 생각나는 치악산 산행:2002.4.5
참가 산우:김인욱,김종철,남장현,신윤식,한수복
기차표를 얕은 꾀로 고속버스로 바꾼 것이 잘못이었다.꽉막힌 고속도로에서 속만 졸이다가 열두시 다되어 원주에 도착하였다.자장면을 점심으로 먹고 처음 보는 콜밴 덕분에 치악산 밑 구룡사에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험악한 비탈길 사다리병창의 진달래가 찬바람에 떨고 있었는데 신윤식과 선두에 서서 도착한 정상에는 돌탑이 3기나 서 있었다.누가 왜 이 높은 곳에 탑을 쌓았단 말인가.남대봉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가고자하는 길은 모두 통제된 것을 알고 계곡길을 엄청나게 빨리 걸어 다시 구룡사로 내려왔다.모처럼 계속 선두에서 빨리 걸은 발걸음 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거스름돈 대신 찐감자를 받아 맛있게 먹었다.돌아오는 기찻간에서 고속도로 정체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산우들에게 안동 간고등어 한 마리씩 서비스하였다.
章鉉
2004.12.3
※계속해서 국립공원 명산 산행,경기고봉등 각지방 명산 산행및 맛기행 산행,아주머니들과의 만남,쌀 한포대의 갈등,년말회식과 보시의 물결들,12대문 산행,2산 산행등 서울 근교 산행의 재발견,동기회 전체 산행 준비,백두대간 산행에의 참여와 철쭉부인의 등장과 새로운 젊은피 산우들의 참여,맺는말등이 차례로 소개됩니다.
이 글을 끄적이는 동안 이종수 동기의 격려 전화와 잘 써달라는 압력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