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은의 야성이 일냈다!
^양용은의 PGA 챔피언십 우승은 문자 그대로 경천동지할 일이다. 세계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PGA 챔피언십을 동양인으로서는 처음, 그것도 자타가 인정하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했다는 사실은 한국 골프사는 물론 세계 골프사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최경주가 한국골프의 세계 진출의 길을 열었다면 양용은은 그 길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셈이다.
^국내외 언론의 분석기사를 읽으면서 과연 양용은의 우승 비결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PGA 챔피언 우승 직전 세계 골프랭킹이 110위인 양용은과 타이거 우즈를 같은 저울에 놓고 우열을 따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타이거 우즈가 지구촌 골프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전무후무한 골프천재(PGA 통산 70승, 메이저대회 14승)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객관적인 실력이나 전력으로 볼 때 솔직히 양용은(PGA대회 1승)은 타이거 우즈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 톱클래스의 골퍼들도 그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절절 매는 타이거 우즈를 양용은이 꺾었다. 그것도 메이저 대회 14승을 올리는 동안 4라운드를 선두로 시작해 단 한 번도 역전패를 당한 적이 없는 우즈에게 역전패의 치욕을 안기면서.
^내로라하는 세계적 선수들도 우즈와 한 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죽 하면 우즈와 한 조가 되면 우즈의 기에 눌려 주눅이 들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두고 ‘우즈공포(Woods phobia)'라는 말이 만들어졌을까. 최근에는 우즈가 4라운드 때 붉은 티를 입고 나와 승리를 일구어나가면서 ‘붉은 공포(Red phobia)’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8월17일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 91회 PGA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2타 앞선 선두인 타이거 우즈는 빨간 상의를 입고 우승을 예감하는 수천 갤러리들의 환호를 받으며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발에서 머리까지 온통 흰색 일색으로 차려입은 양용은은 우즈의 관심 밖에 있는 듯햇고 갤러리들 역시 우즈의 우승을 더욱 빛나게 할 조연으로 치부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라운드가 시작되고 홀이 지나갈수록 타이거 우즈는 불만과 짜증에 쌓여 페이스를 잃어 갔고 반대로 양용은은 과감한 도전에 행운까지 겹치면서 기가 살아나 오히려 타이거 우즈가 양용은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상황으로 변했다.
^마지막 홀에서 양용은이 나무 장애물을 넘기는 과감한 하이브리드 샷으로 홀에 붙여 버디를 잡아내 보기에 그친 우즈를 3타차로 밀어내면서 양용은의 우승이 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양용은이 두 타나 앞선 타이거 우즈를 물리치고 우승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올해 3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 PGA내셔널 골프코스에서 열린 혼다클래식에서 우승 펏을 성공시킨 뒤 주먹으로 허공을 찌르며 기뻐하는 양용은을 두고 필자는 야생마를 떠올리며 ‘히히힝---, 히히힝---, 히히힝---’하는 말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야생마’라는 별명에서 양용은의 승리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제주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보디빌더를 꿈꾸다 지역 골프장에서 골프 볼을 주우며 골프를 배운 그는 결코 길들여진 경주마가 아니다.
^그에게 초원을 제멋대로 내달리는 야생마의 기질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의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잘 길들여진 말이었다면 혼다클래식이나 PGA 챔피언십 대회에서의 우승이 가능했을까.
^말하자면 양용은은 앙시앙 레짐을 거부한다. 타고난 ‘야생마기질’은 쉽게 말해 야성이다. 비록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이 참가하지 않았지만 어닐 엘스, 데이비스 러브 3세, 세르히오 가르시아, 저스틴 레너드, 로버트 알렌비, 벤 크레인, 부 위클리, 마크 캘커베키아 등 당대의 강자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권자의 빈자리를 기다리던 양용은이 노련한 대선수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야성이라는 유전인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와 수많은 갤러리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게임을 펼쳐 결국 타이거 우즈 스스로 무릎 꿇게 만든 것 또한 기존 체제,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야생마의 야성’ 때문이 아닐까.
^그의 PGA도전사를 보면 그야말로 야생마의 행적을 보는 듯하다. 1996년 프로에 입문한 그는 장타력을 갖춘 기대주로 이듬해 신인왕이 됐다. 최장타자로 명성을 날리며 국내무대를 석권해 오다 최경주의 조언으로 2004년 일본프로골프(JGTO)에 진출, 첫해에 일본투어 2승 등 통산 4승을 거둔 그는 2005년 PGA투어 퀄리파잉(Q)스쿨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06년 11월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타이거 우즈의 7연승을 저지하며 우승해 잠깐 주목을 받았지만 그해 12월 Q스쿨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HSBC 대회 우승 등으로 쌓은 랭킹으로 2007년 PGA 투어 9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1년간 PGA 투어에서 모은 상금이 5만3000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성적은 초라했다.
^그러나 양용은은 포기하지 않고 2007년 다시 Q스쿨에 도전해 공동 6위로 통과했다. 이후 정회원 자격으로 1년 내내 투어에 나섰지만 상금 랭킹이 157위로 밀려 다시 Q스쿨로 밀려나야 했다. 지난해 12월 Q스쿨에서 공동 18위를 차지해 상위 25명에 주어지는 풀시드권을 얻었으나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권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시즌 두 번째 대회인 소니오픈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리다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는 AT&T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 대회(공동 22위), 마야코바골프클래식(공동 20위)에서 살아나면서 역시 대기자 명단에서 출전 기회를 잡은 혼다클래식 대회 우승으로 야생마의 포효를 토해낼 수 있었다.
^PGA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한 양용은의 성공은 타이거 우즈의 난조라는 행운도 한몫을 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앙시앙 레짐을 거부하고 야생마처럼 제멋대로 초원을 내달리려는 양용은의 야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날뛰는 야생마의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