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에 예술을 입혀 파는 ‘쌈지’
쌈지는 매우 독특한 기업이다.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과의 동맹(?)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최근에는 인사동에 문화공간 ‘쌈지길’을 만들고 파주 헤이리에는 어린이 테마파크 ‘딸기가 좋아’를 만드는 등 그 행보는 비단 대기업의 문화공헌과 유사하다. 하지만 쌈지의 천호균 사장이 밝히는 마케팅 철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야 장사꾼이니까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인데, 사람들이 그걸 사회공헌이라고 생각한다면 뜻밖의 소득입니다. 연인들의 데이트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쌈지길’ 을 만들거나 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기 위해 ‘딸기가 좋아’를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제품 좀 팔아보려고 아이디어를 낸 것일 뿐인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감사할 따름 입니다. 요즘 ‘딸기가 좋아’는 입장료를 3000원이나 받고 있는데, 사람 참 미안하게 만드네요.(웃음)”
《한국일보》, 2005년 10월 31일자
문화 마케팅과 메세나
기업 관점의 문화 마케팅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행위의 목적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메세나(Mecenat)와는 다르다.
기업 관점의 문화 마케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를 예술을 포함하는 코드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메세나의 목적성은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사회공헌의 성격이 짙다.
반면 문화 마케팅은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의 목적성에 부합하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기업활동과 연계된 영역에 있어서도 메세나는 사회공헌과 홍보활동의 일환에 머물고 있는 반면에 문화 마케팅은 홍보·광고·영업·브랜드·이미지·프로모션 등의 마케팅파트는 물론이고, 인사·복지·교육·리더십·기업문화·해외 진출 등의 경영 전반에 걸쳐 있다는 차이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메세나는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활동이며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문화 마케팅과 메세나를 구분하지 못할 때, 문화 마케팅은 대기업의 전유물로 전락한다. 메세나는 ‘노블리스의 나눔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철학으로 시작된 문화예술 지원활동이다. 초창기의 메세나는 비단 문화예술뿐만이 아닌 학술과 스포츠 분야까지 포괄하는 사회공익적 활동의 총칭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매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해야만 하는 중소기업을 향해 노블리스의 여유를 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견 부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중소기업에게는 사회공헌으로서의 메세나보다는 매출 증대라는 절대 절명의 가치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문화 마케팅이 더욱 필요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문화 마케팅이 메세나에 비해 자본주의 원칙에 훨씬 충실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두 개념은 구분된다. 문화 마케팅은 마케팅 활동의 일환이다.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을 “기회를 찾아내고 개발하며, 그 기회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기술이다”라고 정의했다. 필립 코틀러의 정의에 따르면 모든 마케팅 활동이 안고 있는 절대 절명의 과제는 수익 창출이라는 핵심 가치로 집약된다.
그리고 수익 창출은 문화 마케팅에 있어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문화 마케팅은 장기적인 관점의 메세나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매출 증대 전략으로 진화한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다.
내부 고객 문화적 취향 파악은 문화 마케팅 성공 첫 단추
그렇다면 과연 중소기업에게 문화 마케팅이 효과적인지를 살펴보자. 문화 마케팅의 첫 번째 효과는 중소기업이 처한 마케팅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회사와 제품을 알리는 가장 주효한 마케팅 수단은 광고와 홍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광고의 비용과 효과가 늘 고민되지 않을 수 없으며, 홍보는 특별한 이슈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상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화 마케팅은 이러한 중소기업의 마케팅 환경을 고려한 마법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쌈지의 경우 문화예술을 제품 개발에 적용한 사례다. 이를 통해 쌈지는 제품의 판매는 물론이고, 독특한 마케팅 기법을 통해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두었다. 그러한 홍보가 제품의 매출과 기업에 대한 투자로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기업을 경영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케이알라인은 케이알문화예술재단 설립으로 유명하다. 2002년 6월 출범한 케이알문화예술재단은 문화예술계 인사와 케이알라인이 공동으로 설립한 중소기업 최초의 문화예술재단이다.
특히 지원관계를 맺고 있는 극단의 공연에 많은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단체로 관람하여 연극인들과의 친밀한 교류를 나누고, 매월 회사 비용으로 일정액을 두 곳의 연극 극단과 현대무용 집단에 지원하고 있다.
이 또한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두면서 현재 케이알라인은 넷마블, 금호건설을 비롯한 약 1500여 업체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기업 인터넷 전용 공급 업체로 자리잡았다.
최근 기업의 임직원과 고객을 초청하여 이색적인 송년회 및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공연 티켓을 제공하는 문화 마케팅은 지속적으로는 경품 제공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가 힘들다.
특히 공짜 문화가 만연한 대한민국 문화계의 현실에 자칫 문화를 무료로 즐기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잘못된 풍조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갈비명가 ‘이상’은 종업원들과 함께 ‘이상독서회’를 조직하여 종업원들의 창의력을 배양하고 결속을 다지는 문화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경영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구성원들과의 교류라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가진 것을 함께 나누겠다는 문화 리더십에서 출발한 것이 이상독서회의 취지다.
책을 읽지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 다른 직원이 책을 읽어주고, 이제는 직장을 넘어 지역 도서관 건립이라는 지역 사회 공헌까지 뻗어나가는 이상독서회는, 문화 마케팅이란 돈을 많이 들이는 것보다 아름다운 문화를 함께 나누고 즐기는 발상의 전환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사례다.
회의실을 창의력 개발의 공간으로 만들고, 직원들과 함께 회사 내에 도서관을 만들고, 함께 책을 읽고, 회의 전에 음악으로 여유를 찾고, 서로에게 문화생활을 선물하는 등의 활동이 중소기업에게 더욱 효과적인 문화 마케팅이다. 비록 작은 프로그램이라도 문화적 자산을 분석한 토대 위에서 실행한 문화 마케팅은 그 어떤 마케팅보다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의 문화적 자산을 찾는 노력은 중소기업이 기업문화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문화 마케팅이 성공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문화 마케팅은 대기업과 차별성을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 언론에 소개된 대기업의 문화 마케팅을 절대로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문화 마케팅 4C에서 설명한 창의력(Creative)이야말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차별화를 통해 성공할 수 있는 핵심 가치다.
쌈지와 케이알라인의 사례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듯이 유일무이(Only one)한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중소기업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내부 고객들의 문화적 취향을 먼저 살피는 일이야말로 중소기업의 CEO들이 최우선으로 실천할 수 있는 문화 마케팅 성공의 첫 단추다.
좋은 일
터 만들기 성도GL의 ‘삼더’ 기업 문화 혁신
“우리는 함께 있기에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좋은 일터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의 터전입니다.“
─ 성도 GL의 좋은 일터 만들기 중
국내 중소기업의 문화 마케팅 성공사례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 메세나의성공사례는 언론을 통해 가끔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보다 혁신적인 중소기업의 문화 마케팅 성공사례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쌈지가 중소기업 문화 마케팅의 선두주자라면 케이알라인은 중소기업 메세나의 선례를 남긴 대표적인 사례다.
중소기업이 문화 마케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바람직한 효과는 종업원들의 변화된 모습과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기업문화의 확산이다.
직장인들에게 좋은 일터란 어떤 의미일까? 월급을 많이 주는 기업이 좋은 일터일 수도 있고, 적은 노동으로 편한 생활을 보장 받는 기업이 좋은 일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문화를 만드는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큰 기업일수록 핵심 인재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많은 기업들이 높은 이직률 때문에 고민하는 요즘, 성도GL은 좋은 기업문화 구축을 통해 혁신적으로 이직률을 낮추어 모범사례로 평가 받는 대표적인 중소기업이다.
성도GL은 1974년 설립된 이래, 인쇄 산업 및 그래픽 아트(Graphic Arts)로 명명되는 프리프레스 업계에서 30년간 굳건한 리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우량 중소기업이다. 성도 GL은 세계적 필름 산업의 리더인 후지 필름(Fuji Film)과 그래픽 아트 그룹의 한국 총책임 기업으로 선정되어 제판 및 출력용 필름, PCB 제조에 필요한 공업용 필름, 인쇄용 PS Plate, 현상 관련 화공 약품 등을 기초로 하여 국내 신문사 및 대표적인 인쇄 및 출력 기업들에 이들 제품과 기술 서비스를 통하여 선진 기술을 제공하는 사업을 꾸준히 수행해왔다.
1997년 이후에는 산업의 디지털화에 발맞추어 후지필름의 영국 자회사인 Fujifilm Electronic Imaging Company(FFEI)와의 공급 계약으로 디지털 입출력 장비 및 Work Flow solution, 교정 장비(Proofing Solution) 등의 공급과, 이에 관련된 솔루션의 선진 기술을 습득함과 동시에 자체 연구 및 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또한 2002년 3월 1일 CI 선포식을 통하여 새로운 기업 이름으로 ‘(주)성도 GL’을 채택하고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로서 세계 수준의 그래픽 아트 리더 ; The World Class Graphic Arts Leader’의 비전을 달성 하고자 변화와 도전을 시작하였다.
성도GL의 좋은 일터 만들기는 ‘삼더’라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삼더란 ‘더 똑똑하게, 더 빠르게, 더 즐겁게’를 축약한 단어로 세 가지를 더욱 잘하자는 열정을 나타낸다.
‘더 똑똑하게’란 지식과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서 개인의 탁월성, 전문적 기술과 지식의 프로페셔널리즘, 대담한 의사결정 능력, 전략적 사고, 그리고 엄격한 자기계발 등을 함축한 표현이고, ‘더 빠르게’란 구체적 목표의 설정과 달성, 실행 중심의 성과 창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힘 등을 표현하며, ‘더 즐겁게’ 란 도덕성과 인간미, 정직과 유연한 사고, 팀워크과 리더십, 사랑과 존경, 신뢰 등을 전제로 한 내용이다.
성도GL의 문화 마케팅은 차별화된 기업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일어난 즐거운 혁명이었다. 문화나눔정신에 입각한 성도GL만의 첫 번째 문화 마케팅 혁명은, 내부 고객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브런치 콘서트 정기 초대, 창립 30주년 기념 정세훈 콘서트, 직원 가족들과의 마당극 관람 등으로 내부 고객 문화나눔이다.
자율독서대를 운용하면서 우수 서적에 대한 독서토론회를 개최하고, 생일자와 결혼기념일에는 전 직원이 책에 축하메시지를 담아 선물하는 등의 감성나눔은 그 두 번째 혁명이며, 전 직원의 급여에서 0.5%, 회사가 0.5%를 기부하여 사랑의 1% 나눔 운동에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양로원을 방문하는 사회공헌을 통한 나눔이 그 마지막 혁명이다.
다른 기업에서와 별반 차별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 성도GL의 문화 마케팅을 성공사례로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차별성에 성공 코드가 숨어 있다.
첫째는 큰 전략적 틀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내부 고객을 우선하여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는 점이며,
세 번째는 비록 작은 활동이지만 성과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교육·인사·직무 설계 등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는 혁신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성도GL 문화 마케팅의 성과는 <그림 2, 3>에서 볼 수 있듯이 이직률의 감소율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외부 고객의 만족도 또한 문화 마케팅을 통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성도GL이 좋은 일터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리더십, 삼더정신, 문화나눔 등의 여러 가지 요소가 한 방향으로 복잡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문화 마케팅만으로는 절대로 성공하는 기업을 만들 수가 없다. 문화 마케팅은 절대로 기업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큰 전략적 틀 안에서 기능할 때 문화 마케팅은 마법의 주문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성도GL의 경영성과는 2005년 12월 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경영혁신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로 이어졌다. 아직까지 성도GL의 문화 마케팅이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공의 법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성도GL 문화 마케팅의 미래가 중소기업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지나친 꿈일까? ●